제 42 화 희망은 있는 가(5)
-퍼어억-
불시의 일격에 맞은 인간족이 멀리 날아가 옥수수밭에 처박혔다.
“ [ 뭐지... 이 기분은... ] ”
에테른은 신기한 듯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며 말했다. 놀랍게도 전신을 뒤덮고 있던 상처들은 빠르게 아물었고 내부의 신제릭은 용암처럼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 [ 이게... 너희 종족의 힘이란 말인가... ] ”
“ [ 나도 이런 느낌은 처음이라 적응하기가 어렵군, 옥죄어 있던 몸이 풀려난 느낌이야. ] ”
에테른의 물음에 츠렌달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두 목소리가 동시에 들리는 형세에 마치 에테른 혼자서만 말하는 느낌을 풍겼다.
바깥세상을 오랜만에 나온 것처럼 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수분을 가득 머금은 신선한 공기가 에테른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저벅 저벅-
그렇게 잠시 신체의 변화를 음미하던 에테른은 고개를 떨군 채 천천히 상대에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점점 다가오는 적의 모습에 간부가 느끼는 위압감은 처음의 그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웠다. 또한 이미 자신의 무기조차 박살이 나버렸기에 그에게는 도망치는 것밖에 살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던 간부는 멀찍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인간족 간부와 아이들을 바라봤다.
저들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그는 더 이상의 뒷걸음질을 멈추고 땅에 떨어진 칼의 파편을 쥐어 잡았다.
-투두둑 뚝 뚝-
날카로운 칼날에 손에서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칼날을 에테른에게 겨눴다.
이내 인간족의 앞에 도달한 에테른은 자리에 선 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끄아아아아!!-
-푸욱 푹 푹-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대며 에테른 몸체에 칼날을 박아대는 인간족의 모습은 처절하기 이를 대 없었다.
광기 가득 한 표정으로 상대에게 모든 공격을 적중시켰지만 인간족의 눈빛은 점점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깊숙이 파였던 상처들이 무려 실시간으로 회복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는 끝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흐아아아아!!”
-푸욱 푹 푹 푹-
“ [ ...질기다 못해 징그러운 놈이구나. 너도 이미 느끼고 있을 텐데. 누가 여기서 목숨을 잃을지 말이야. ] ”
그늘이 드리운 에테른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도 공포스러워 보였다.
-푹 푹 푸욱...-
-터억-
에테른은 인간족의 목을 쥐어 잡아 허공으로 끌어 올렸다.
“끄으어억”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악력에 간부는 자신도 모르게 고통의 겨운 소리를 내뱉었다.
“ [ 너희 족속들이 자초한 일이다. ] ”
-서걱 서거억-
인간족은 연신 칼날으로 에테른의 팔을 베었지만, 타격이 있을 리 없었다.
“ [ 우리는 살고 싶었다. 단지 그것 하나뿐이었다. 그저 살고 싶어서 도망쳤고, 살고 싶어서 수비벽을 올렸을 뿐이란 말이다. 그런데 너희가... 너희 종족이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다. 나의 전부를... ] ”
-꽈아아악-
손아귀에 더욱 힘을 끌어올리자 인간족의 얼굴이 점차 푸르스름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산소 공급이 끊어진 몸체는 벼락에 맞은 듯 부르르 떨어댔지만 그는 끝까지 손에 쥐고 있는 칼날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 [ 내가 비겁한가? 다른 이의 힘을 빌린 내 모습이 비겁하냔 말이다. 네가 뭐라고 생각하든 상관없다. 너희를 멸하기 위해서라면 나의 모든 살가죽은 물론 영혼까지도 팔 수 있으니까... ] ”
-꿀럭 꿀럭-
인간족을 들어 올린 팔이 마치 내부에 무언가가 밖으로 나가려 발버둥 치는 것처럼 기괴하게 울렁이기 시작했다.
그 정도는 점차 심해지며 에테른의 팔이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 [ 죽어라, 어머니의 원수. ] ”
-드드득 드드드득-
내부의 존재를 이기지 못한 팔 가죽이 서서히 갈라졌고 그렇게 몇 초 후,
-쩌어억 쩌어어어억 쩌억-
-퍼버버버버벅-
에테른의 팔에서 수십 개의 뼈들이 뻗어 나오더니 그대로 인간족의 온몸을 관통해버렸다.
“ 그어... 어어.. 어... ”
전신에 피를 철철 흘리던 간부는 생명이 꺼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멀리 있는 아이들을 향해 무언가 말을 하는 듯했지만, 결국 그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몸을 축 늘어뜨렸다.
“ [ 허억... 허억... ] ”
엄청난 아드레날린을 분출했던 탓인지 에테른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 [ 이렇게... 끝난 건가... ] ”
“ [ 그래, 네 어머니의 복수는 이룬 거지... ] ”
공허했다.
긴 시간 동안의 인내와 기다림, 그 끝을 알 수 없는 터널을 지나 자신의 그토록 바라던 무언가를 해냈지만. 에테른은 그 어떤 만족감도... 해소감도 느낄 수가 없었다.
“ [ 크흐흐... 크흐흐흐흐... 끝난 거야... 끝난 거지? 그렇지? 나는... 여태 잘해 온 거지? ] ”
그는 정신을 놔버린 듯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감정을 느끼며 눈물을 뚝뚝 떨구고 있었다.
“ [ 이런... 감정이 드는 게 맞는 거겠지? 사실 무슨 감정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내가 지금... 아... 나는... ] ”
멍하니 바닥에 처박혀 있는 상대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더욱 허전했다. 마치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아직 남아있는 것처럼 텅 비어있었다.
“@#$@# !!!!!”
그때 미친 듯이 절규하는 인간족 아이들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에테른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지만 그들의 질주는 다른 간부의 손에 가로막혀 버렸다.
“#$%#$ !!!!”
“@#%@ !!!!”
계속되는 그들의 처절한 외침에 고개를 돌린 에테른은 아이들의 얼굴을 천천히 바라봤다.
“ [ ... ...저건... ] ”
마음속 깊은 곳 무언가가 천천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 [ 저 감정... 저 표정... 5년 전에 나와 너무도 비슷하잖아... ] ”
순간 그때의 기억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에테른... 어서... 어서 도망치거라... 그리고 반드시 살아남...“
-푹슈우우우우-
"안돼!!!!!!!!!“
“끄아아아아아아!!!!”
에테른은 정신없이 고개를 흔들며 그때의 기억을 흩트리려 애썼다. 그렇게 겨우 정신을 차렸지만 이번엔 점차 혼란스러운 감정이 그의 머리에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느껴지는 감정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곧 인간족 간부는 더 이상 아이들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그들의 목을 각기 내려쳐 기절시킨 후 빠르게 말의 고삐를 쥐어 잡았다.
“ [ 에테른, 저 자식 분명 도망가려고 하는 것이다. 지원을 요청할 수 도 있다. 어서 따라가 모두 죽여 버려야 한다. ] ”
츠렌달의 계속된 외침에도 에테른은 요지부동이었다.
‘ [ 어떻게 인간족에게서 저런 감정이 느껴질 수가 있는 거지...? 5년 전 내가 느꼈던 분노를... 어떻게 너희 같은 족속들이 오히려 나에게 느끼고 있느냔 말이다... 도대체 왜!!! ] ’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감정에 파묻힌 그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그는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이내 간부는 아이들을 품에 안은 채 점차 멀리 사라져 버렸고, 에테른은 그들을 그저 넋 놓고 바라볼 뿐이었다.
‘ [ 저들의 분노는 다시 나처럼 복수를 낳을까...? 그렇다면 그때와 같은 일이... 끄으윽... ] ’
에테른은 깨질 것 같은 두통에 머리를 쥐어 감싸며 고통스러워했다.
-치이이이이이-
정신이 불안정했던 탓인지 그의 몸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오며 몸의 절반을 덮고 있던 검은 빛 피부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거지? 인간족들은 그저 살육에 눈먼 괴물일 뿐이다. 알잖아.]
“제기랄... 나도 알고 있단 말이다!!”
“끄으으으으!!”
두통은 가라앉을 줄 모르고 에테른의 온 정신을 후벼 팠고 결국 그는 물웅덩이 바닥을 뒹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평생을 단단히 지탱하고 있던 가치관에 미세한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때,
“끄아아아아악!!”
주위가 떠나갈 정도로 큰 비명소리가 에테른의 고막을 관통했다.
“이 목소리는... 쿤스니크다... 어서 소리가 난 곳으로 가야 해.”
곧, 일어날 기세로 천천히 무릎을 꿇는 에테른,
[그 버러지 같은 자식 죽기 일보 직전 인가 보군, 이참에 그냥 버리고 가는 게 어때?]
연신 독설을 퍼붓는 츠렌달이었지만 에테른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끄으으윽... 나는 지금 저 녀석을 살리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는 강하게 입술을 깨물며 두통을 견뎌냈고,
“인간족들을 죽이러 가는 것이다...”
곧 몸을 일으킨 후 붉으락푸르락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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