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 - 괴물이 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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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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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1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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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4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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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 이야기 -8-

DUMMY

[901년, 5월 28일, 11시 35분, 아르타니아 동부, 비치르, 말치 오솔길(헤이즈)]


나와 누나는 오솔길 남쪽에 있다. 채비를 했던 숲은 북쪽에. 북쪽은 지대가 낮고 남쪽은 지대가 높다. 숲이 없었기에, 누나와 나 모두 더운 여름 기운을 듬뿍 받은 땅바닥에 엎드렸다. 아무래도 이런 차림을 보여서 좋을 게 없었으니 모습을 숨기는 게 좋은 선택이다. 누나는 접이식 망원경으로 계속해서 오솔길을 정찰했고, 누나가 내게 부탁한 건 회중시계를 보는 일이었다.


시계 자체가 저렴한 물건은 아니다. 다만 그 시계들 중에서도 가장 저렴한 것이 있다면 내가 들고 있는 것이다. 누나한테 받은 거지만, 아주 작고 녹이 슨 시계. 초침이 뒤로 갔다가 비틀거리며 앞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래도 분침이나 시침까지 그렇진 않아서 시간은 알 수 있다. 그렇게 11시 35분. 예정보다 조금 늦은 시간. 누나가 침묵을 깨고 말한다.


“헤이즈, 지금 시간 기록해줄 수 있어? 목표가 오고 있어.”


명령조가 아닌 차분한 부탁조. 이상한 기분이었지만 시키는 대로 한다. 11시 35분. 누나가 품속에서 아까 그 이상한 호루라기를 꺼낸다. 그리고 들리는 괴이한 소리. 동시에 익숙한 소리가 난다. 까마귀 소리가.


“이제, 우리 일은 끝났어.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지켜보면 돼.”


멀리서 지켜보는 일. 맥 빠지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할 거다. 잠시 후, 마차가 멈춰 선다. 시선을 마차 앞쪽으로 두니 뤼종씨가 있다. 당신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는데, 말들이 난동을 부리다가 갑자기 축 늘어진다. 죽은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곧이어 마차 안에서 어떤 남자가 내리고, 뤼종씨에게 삿대질을 하며 화를 낸다.


재미있게도 마부는 상황이 안 좋은 걸 알았는지 도망간다. 남자는 그런 마부에게도 여기까지 들릴 정도로 큰 고함소리를 낸다. 대부분 욕설. 그런데...


“저 상인 분. 그렇게 큰돈을 갖고 간다면서 혼자 왔을까요?”


이상하다. 단순히 도적단들에게 대항할 것을 생각해도 상인 혼자 큰돈을 가지고 있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마차 모양이 이상하다. 보통 마차는 관짝의 절반정도 되는 트렁크를 갖고 있다. 그리고 상인은 물건을 갖고 가는 게 아니라 돈을 갖고 가는 거다. 그런데 저 마차. 구조가 이상하다. 뭐랄까. 보안관들이 범죄자들을 호송할 때 쓰는 것처럼 생겼다.


이거. 누나에게 말해야 할까. 아니, 내가 이상하게 느낀 점을 다른 사람들이 모를까?


“헤이즈, 왜? 무슨 이상한 점이라도 있어?”


... 고개를 끄덕인다. 이왕 누나가 물어본 김에 말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마차가 모양이 이상해서요. 아무래도 상인 혼자 큰돈을 쥐고 이동하기엔 저런 모양의 마차를 선택해야 했나 싶어요. 애시당초 혼자 움직이는 것도 이상하고요.”


내가 말하는 동안, 상인이 뤼종씨 앞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액시 누나와 레오씨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은 어디서 뭘 하려는 거지?


“확실히 나도 그렇게 느껴. 추측컨대 아마... 숨겨둔 경호원들이 타고 있을 거야. 아버지를 안심시키고 확실한 정황이 보이면 역으로 갚아주려는 거겠지.”


누나가 호루라기를 꽉 움켜쥔다. 그리고 다시 입에 갖다 댄다. 그랬더니 이번엔 까마귀가 아닌 비둘기 소리가 난다. 움켜쥐는 정도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나는 건가?


“이걸로 됐어. 아마 나미와 리스도 움직일 거야.”


이들의 신호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위험요소를 감지했다는 뜻일까. 누나는 아까보다 조금 더 무거운 표정으로 현장을 바라본다. 나도...


“헤이즈, 넌 망원경 없어도 잘 보여?”


솔직히 완전히 잘 보이진 않는다. 현대인이니까. 그래도 눈이 나쁜 편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편이다. 고개를 끄덕인다. 누나의 망원경을 뺏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눈 좋구나."


누나가 말한다. 굳이 쳐다보진 않는다. 현장이 더 중요하니까. 뤼종씨가 잠깐 이쪽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칼을 뽑지 않는다. 이미 습격했어야 정상 아닌가? 오히려 뤼종씨는 이런저런 제스처를 하며 상인과 대화한다.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둘의 표정조차도 제대로 보이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3분여가 흘렀다. 저것이 협상이라면 아마도 협상은 결렬된 모양이다.


상인이 무언가 과장된 제스처를 보이자, 예상대로 마차 트렁크 쪽에서 사람이 내린다. 그것도 무려 5명 정도가. 뤼종씨는 여전히 혼자다. 누나의 신호를 제대로 들은 게 맞나? 레오씨는? 액시 누나는? 나미도, 리스씨도 다 어디 간 거야. 가슴을 졸일 수밖에 없는 상황, 뤼종씨는 여전히 칼을 뽑지 않는다. 계속해서 뭔가 대화를 하려고 하고 있다.


당장에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전부 칼을 빼어든다. 베이면 아픔을 넘어서 죽을 것 같은 무시무시한 칼들. 하지만 뤼종씨는 한 손에 지팡이를 들고 있는 걸 제외하면 그 어떤 행동도...


“헤이즈, 진정해야 해.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금 더 평온한 마음으로 봐.”


마차 안에서 누나에게 했던 말들이 너무도 바보 같다. 솔직하게 떨린다고 말하는 게 나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누나는 정작 떨고 있지 않다. 어떻게?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내게 있어서 저들은 죽어도 그만인 사람들이다. 그저 일단은 사람이니까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거다. 그런데 누나한테는 완벽한 가족이잖아요. 왜 그렇게 담담한 거죠.


“내가 했던 말 기억해? 액시에 대해서.”


액시 누나. 분명 제4 지부에서 엄청나게 유능한 존재였고, 죽어라 이용당하다가 제2 지부에 버려지듯 떠넘겨졌다고.


“기억해요. 그런데 그걸 지금 왜 말하는 거예요. 누나.”


그러자 누나가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우리 지부는 버려진 자들만 모였어. 때문에 서로 유대감이 강해. 그래서 믿는 거야.”


그때, 반대쪽에서 까마귀 소리가 울린다. 놀라서 쳐다봤는데 정말이지 판타지 같은 일이 벌어졌다. 나미? 액시 누나? 누군지 모르겠으나 키를 보면 아마도 액시 누나. 그래, 누나일 거다. 나미일 리가 없다. 누나가 마차로부터 4M 쯤 위, 허공에 있다. 후드와 가면 사이로 삐져나온 주황색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게 보여.


“액시는 동부에서 ‘천재’라고 불렸어. ‘메리우스’들이 아닌 사람들 중에선 역사에 남을 천재.”


누나가 말한다. 메리우드 아닌가? 메리우스? 동부의 천재?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떻게 사람이 높이 떠오를 수 있을까. 아니, 떠오른 게 아니다. 다리 힘으로 뛰어오른 거다. 그것도 숲의 나무에서. 바람 한 점 없는데 나무 하나가 흔들린다. 생생한 잎사귀가 낙엽이 되어 흩날리니까.


액시 누나가 마차 위에 착지한다. 마차 전반이 흔들리는데 말들은 왜인지 미동도 없다. 뤼종씨도 그제야 지팡이를... 뭐지? 지팡이를 거꾸로 잡는다. 그러니까, 칼을 쥐듯이 말이다. 케인 소드 아니었나? 칼을 왜 빼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액시 누나의 무기도... 곤봉?


물론 둘 다 심하게 맞으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대로. 또는 내 생각과 같지 않게.


살인마 집단이면서 사람들을 제압하기만 한다.


액시 누나가 한 경호원의 어깨에 올라탄다. 그리고 아크로바틱한 모양새로 남자의 목을 다리를 이용해 조른다. 그 경호원이 선채로 축 늘어지자, 그렇게 채조 선수처럼 내려온 누나의 등으로 다른 경호원 중 한 명이 달려든다. 레오씨가 나온 건 그때였다. 심지어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그것도 맨 손바닥으로 경호원의 얼굴을 움켜쥐더니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는다.


분명히 경호원들이 비실비실한 약골들은 아니다. 하나같이 뤼종씨 정도는 아니지만 꽤나 건장한 채구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이다. 나미와 리스는? 보이지 않는다. 뭔가 다른 작업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로키 누나에게 했던 얘기가 무색하게, 저 세 사람보다 두 배 정도 많았던 경호원들이 전부 제압됐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작해야 2분. 남은 건 상인 한 명.


여전히 칼을 뽑는 사람들은 없다. 레오씨는 손을 털고, 액시 누나는 기지개를 편다. 뤼종씨는 지팡이를 역수로. 다시 말하자면 원래대로 쥐고 가만히 서 있다. 상인은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황급히 도망간다. 액시 누나가 상인의 뒤를 천천히 따라간다.


사실, 누나가 그럴 이유는 없었던 것 같다. 나미와 리스가 어디 갔나 했더니 상인이 도망가는 그 방향에 있다. 리스가 이상한 모양새로 나미 뒤에 붙어 있는데, 뤼종씨가 갑자기 달린다. 레오씨도. 무슨 상황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상황은 해결된다. 나미가 상인의 복부를 빛나는 무언가로 찌른다. 상인은 맥없이 쓰러지고, 이상할 일은 전혀 없다. 단지 사람이 죽은 것에 거북함이 들 뿐이다.


“끝났네요.”


누나를 돌아보자, 누나가... 입을 막은 채 심각한 표정이다. 왜? 질문도 하기 전에 누나가 말한다. 입술을 꽉 깨물고 분하다는 표정으로.


“작전은 실패했어.”




작가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openobserver


작가의말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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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난 또 왜 이런 거야 21.06.07 32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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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바라는 이야기 -2- 21.05.12 26 0 9쪽
195 바라는 이야기 -1- 21.05.10 32 1 16쪽
194 들어가는 이야기 -9- 21.05.05 27 0 8쪽
193 들어가는 이야기 -8- 21.05.03 31 0 13쪽
192 들어가는 이야기 -7- 21.04.30 28 0 12쪽
191 들어가는 이야기 -6- 21.04.28 3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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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들어가는 이야기 -3- 21.04.07 30 0 10쪽
187 들어가는 이야기 -2- 21.04.06 37 0 8쪽
186 들어가는 이야기 -1- 21.03.31 38 1 9쪽
185 불씨 이야기 -5- 21.03.29 58 0 9쪽
184 불씨 이야기 -4- 21.03.24 51 0 10쪽
183 불씨 이야기 -3- 21.03.22 44 2 9쪽
182 '빛깔' 이야기 -에필로그- 21.03.17 38 0 8쪽
181 '빛깔' 이야기 -13- 21.03.15 36 0 12쪽
180 '빛깔' 이야기 -12- 21.03.11 44 0 12쪽
179 '빛깔' 이야기 -11- 21.03.08 34 0 12쪽
178 '빛깔' 이야기 -10- 21.03.03 32 1 10쪽
177 '빛깔' 이야기 -9- 21.02.26 48 0 11쪽
176 '빛깔' 이야기 -8- 21.02.24 3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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