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아 - 괴물이 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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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야
작품등록일 :
2020.05.11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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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6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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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 이야기 -10-

DUMMY

[901년, 5월 28일, 20시 41분, 아르타니아 동부, 비치르, 카낙스 동부 제2 지부(헤이즈)]


“다시 생각해도 아까 그 가지볶음은 최악이었어, 언니. 우웩.”


액시 누나가 혀까지 삐죽 내밀면서 불평한다. 지금 우리는 회의실이다. 우리에 누가 포함되어 있냐면 나미와 뤼종씨를 제외한 모두다. 레오 리스 형제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말수가 적을 뿐, 성격이 모나거나 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때문에 레오씨와 리스씨라는 호칭도 안 하기로 했다. 대신 레오 형과 리스 형이 됐다.


“액시. 그래도 로키 누나가 아니면 너 굶어 죽었을 걸.”


리스 형이 액시 누나를 노려보며 말한다. 말하는 건 거의 처음 듣는 것 같은데, 본인의 형과는 다르게 미성이 특징이다. 액시 누나는 이를 갈며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지. 가지는 세계 최악의 식물이야.’라고 한탄한다. 이들에겐 이 모든 것들이 일상일 거다. 거기에 갑자기 난입한 건 나고. 적응이 안 되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다들 나를 많이 챙겨준다.


화목한 가족 분위기. 이런 분위기를 살면서 처음 겪어본 건 아니다. 그렇다고 피가 이어진 가족들에게서 느껴본 적도 없다. 누나들은 나를 챙겨주는 척하면서도... 내가 남자니까. 자기들보다 더 강해지면 본인들의 취급이 안 좋아질까 봐 은근히 무신경했다. 그러다가 고아원 생활의 끝에서야 잠깐이나마 가족 같은 사람들과 살았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가족.


여긴... 뭘까.


카밀씨가 그랬다. 가족이 되어주겠다고. 카밀씨가 추구한 가족은 적어도 내가 아는 그 가족은 아닌 것 같다. 그냥 한 말일 거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그러는 너는 가지볶음 다 먹었어? 남겼으면 아주 죽을 줄 알아!”


머쓱한 표정의 로키 누나. 여전히 무심한 레오 형. 장난스레 버럭대는 액시 누나. 그리고 그런 누나를 은근히 무시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리스 형.


이 사람들은 서로를 가족이라고 생각할까. 비살상을 추구하는 이상한 살인마 집단. 카낙스 제2 지부에서. 그래도 싫지 않은 기분이다. 미약하게나마 입가에 미소를 머금을 수 있다. 조금이나마 가슴을 쓸어내리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조금이나마.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뤼종이란 남자. 여전히 그의 행태가 의심스럽지만 그래도 이들의 결속을 완성하는 건 그 남자가 맞다.


물론 그 구심점이 깨져버린다면 얘기가 달라질 거다.






[같은 날, 21시 02분, 아르타니아 동부, 비치르, 카낙스 동부 제2 지부 밖(헤이즈)]


잠시 외출하기로 했다. 어차피 도망갈 생각은 없다. 갈 곳이 없으니까. 나 같은 놈이 어딜 간다고 써먹어줄 사람도 없다. 그렇다고 혼자서 살기엔 고작 10살이다. 나는 내가 나약한 걸 안다. 고아원이 불이 탈 때도 아무것도 못하던 약해 빠진 인간. 레오 형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로키, 액시 누나가 괜찮다고 안심시켰다. 어찌 보면 레오형의 그 눈이 당연한 시선이다. 온지 갓 이틀 정도밖에 안 된 놈인데 날 믿는 게 더 신기할 뿐이다.


“좋아 보이네. 신입.”


이 목소리는... 뒤를 돌아보니 나미가 있다. 이 인간도 자유롭게 외출하는 건가?


“나도 가끔은 바람을 쐬고 싶거든.”


나미는 민소매 티를 입고 있다. 바지는 뭔가 펑퍼짐하다. 증기 파이프를 만지는 배관공 아저씨들이나 입을 법한 차림이다. 문제라면 그녀가 바지 주머니에서 꺼낸 것. 살면서 몇 번 본 적 없지만 확실히 뭔지 안다. 담배다.


“너도 필래?”


그러고 보니 나미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많지 않다. 달빛을 받아서 그럴까. 분명 그녀는 검은 머리카락이다. 그런데 엄청 짙은 검은색은 아니다. 오히려 은은하게 빛나는 색. 노란색 눈동자와 매서운 눈매는 뭐... 첫인상과 다를 바 없지만 말이다.


그보다 담배는 거절할 거다만, 존대로 말해야 하나? 아니면 반말로 해야 하나. 마음 같아선 반말이지만 일단 나보다 나이는 많으니까...


“괜찮습니다.”


그렇게 답한다. 그러자 나미는 콧방귀를 뀌면서 담배를 입에 문다. 담뱃갑 안에 있던 성냥개비를 꺼내더니 불을 붙인다. 활활 타오르던 불이 담배 끄트머리에 옮겨 붙는다. 뭔가 폼 나게 연기를 빨더니 정작 기침을 하는 건 간접흡연을 하는 내가 아니라 그녀다.


“언제 펴도 익숙해지질 않는다니까.”


... 그녀도 나도 애 아닌가. 고작 4살 차이인데 왜 저렇게 나이가 많은 사람처럼 구는 지 원. 생각보다 서늘한 여름 밤공기. 빛은 나미의 허벅지까지. 쪼그려 앉는 내겐 전신을 비춘다.


“나는 여전히 모르겠어. 우리가 밉보이지 않으려면 저렇게 화목해선 안 돼. 더 실리를 추구해야지. 우리가 약하지 않다는 걸 모든 지부한테 보여줘야 해.”


의외다. 나미의 신념을 알 기회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가 아무리 엇나간 사람이어도 이 지부가 망하길 바라진 않을 거다. 왜냐하면 나미도 갈 곳이 없을 거니까. 이곳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녀도.


하지만 지부가 잘되길 바란다는 게 느껴진 적도 없었다. 오히려 이 지부 사람들의 방향과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었으니까. 나미라는 사람은 말이다.


“나도 나만의 생각이 있어. 저 바보들이 오래 살고 싶으면... 지금처럼 물러 터져선 안 돼.”


말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물고 있던 담배를 입에서 뽑고는 가운데를 구부러뜨린다. V자로 부러진 담배는 바닥으로 떨어져 나미의 발에 짓밟힌다. 그게 담배의 최후였다.


“이렇게 된다고. 연약하면.”


담배가 연약하다는 걸 비유한 것 같다.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어쨌든 담배도 잎과 종이의 모임이다. 약한 재질로 만들었으니 저렇게 바스러지는 게 당연하다. 그녀가 보길, 제2 지부 사람들은 약한 사람들이다. 물론 힘이 약하다는 뜻은 아닐 거다. 오히려 아까 액시 누나의 모습을 봤다면, 나미도 그런 의미로 말한 건 아니다. 오히려... 마음이 약하다는 뜻이지 않을까.


“너도 강한 사람이 되고 싶을 거 아니야. 누군가를 지키려고.”


지키려고... 이젠 지켜야 할 대상이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왜 힘을 가지려고 하는 걸까.


“저 바보들 말에 현혹되지 마. 네 선택은 네가 내려.”


그게 나미의 마지막 조언이다. 솔직히 말해서... 화기애애한 가족들보다 나미의 말이 더 실리 있는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말하자면 그렇다. 왜냐하면 나미의 생각이 내 생각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미에게 이끌리진 않는다. 그녀에게서 거부감이 느껴져서 그런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같은 날, 21시 49분, 아르타니아 동부, 비치르, 카낙스 동부 제2 지부(헤이즈)]


“아버지? 이 아이는...”


뭐지?


“누구예요?”


뭐야.


“언니, 얘 누군지 알아?”


뭐냐고.


“그게... 나도 모르겠는데...”


우리는 이렇게 알고 있었다. 뤼종씨의 아내가 임신했다. 그걸 이틀 전에 들었다. 게다가 액시 누나가 분명 말했다. 곧 출산이라고. 그 말은 지금은 아이가 없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이들 모두가 뤼종씨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런데...


“아빠?”


3살 남짓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있다. 금발에 벽색 눈. 뤼종씨와 닮진 않았지만 충분히 그 성질을 물려받은 아이가. 그 아이가 이 사람들 아버지의 손을 위태롭게 붙잡고 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말한 거다. ‘아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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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난 또 왜 이런 거야 21.06.07 32 0 8쪽
199 소원은 개뿔이 21.06.02 28 1 7쪽
198 오늘 기도할 걸 정했어 21.05.31 25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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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바라는 이야기 -2- 21.05.12 26 0 9쪽
195 바라는 이야기 -1- 21.05.10 32 1 16쪽
194 들어가는 이야기 -9- 21.05.05 27 0 8쪽
193 들어가는 이야기 -8- 21.05.03 31 0 13쪽
192 들어가는 이야기 -7- 21.04.30 28 0 12쪽
191 들어가는 이야기 -6- 21.04.28 32 0 12쪽
190 들어가는 이야기 -5- 21.04.26 41 0 10쪽
189 들어가는 이야기 -4- 21.04.09 34 0 10쪽
188 들어가는 이야기 -3- 21.04.07 30 0 10쪽
187 들어가는 이야기 -2- 21.04.06 37 0 8쪽
186 들어가는 이야기 -1- 21.03.31 38 1 9쪽
185 불씨 이야기 -5- 21.03.29 58 0 9쪽
184 불씨 이야기 -4- 21.03.24 51 0 10쪽
183 불씨 이야기 -3- 21.03.22 44 2 9쪽
182 '빛깔' 이야기 -에필로그- 21.03.17 38 0 8쪽
181 '빛깔' 이야기 -13- 21.03.15 36 0 12쪽
180 '빛깔' 이야기 -12- 21.03.11 44 0 12쪽
179 '빛깔' 이야기 -11- 21.03.08 34 0 12쪽
178 '빛깔' 이야기 -10- 21.03.03 32 1 10쪽
177 '빛깔' 이야기 -9- 21.02.26 48 0 11쪽
176 '빛깔' 이야기 -8- 21.02.24 3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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