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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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능선
작품등록일 :
2020.05.12 10:45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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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5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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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마족

DUMMY

- 어떻게 생각해?

- 글쎄요, 정말 미친 여자 같은데요. 분노조절 장애 같기도 하고. 그 이유가 무엇이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싶어요. 저토록 주변 모든 사람을 마치 안 보인다는 듯 행동하는 건 이미 사회에 부적응자 정도로 생각해야 할 것 같은데요.

- 설마 싶었지만, 며칠 전 연락 온 그 친구가 자살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군.

- 그러게요. 설마 그렇게까지야 그랬는데, 생각보다 미친년인데요.

어떻게 저런 사람이 저런 자리에서, 저런 권력을 가질 수 있는 건지 정말 이해할 수 없네요. 그보다도, 아무리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기는 해도 저토록 당하면서 그 직원으로 있어야 할까요. 세상에 직장이 저기만 있는 것도 아닌데.

저는, 저런 상태가 오도록 그냥 참고 버텨낸 그 직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 하하, 우영이가 그런 생각을 다 하나?

- 뭐,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하는 게 너무 갑갑해서요. 하하.

- 알잖아······. 직장의 문제라기보다는 주변에서 그런 일들을 덮으려고 무시하려고 하는 사람

그 때문에 더 막막한 절벽에 다다른다는 것.

저들 마족에게는 인간의 ‘상식’이 통하지 않아.

그저 그들은 자신을 스스로 포식자라고 본능적으로 생각하며 살아오다 보니 그들의 포식 대상이 감히 대든다고 생각하지. 마치 고양이에게 덤벼드는 생쥐라고 말이야.

- 그게 너무 무서워요.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자신들의 행동이 인간사회에서 과연 어떻게 보일지 전혀 개의치 않잖아요.

- 우영이는, 인간이 목욕하거나 옷을 갈아입을 때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 앞에서 부끄럽다고 생각하며 가린다고 생각해?

저들에게 우리 같은 ‘보통’인간들은 자신들과 동급의 종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게 마족들의 특징이기도 하지. 더 무서운 건.


잠시 말을 끊은 지용이 충혈된 눈을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 저들은 자신이 마족임을 모른다는 거야. 의식하지 않고 알지도 못하므로 자신들이 잘못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지. 그들에게 있어서 주변의 천민들이란 그냥 이용할 수단이며 가축 같은 존재로 인식이 되기 때문에, 자신들의 행동으로 법적 손가락질을 받는 일이 간혹 있더라도 그건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끔 일어나는 ‘동물학대죄’ 같은 무게감밖에 없어.

아, 내가 짐승을 좀 지나치게 다뤘나? 그렇기로서니 짐승 때문에 나를 비난할 건 뭐람.

뭐 하도 저리들 떠드니 미안한 척은 해줘야겠지. 이런 게 저들 마족의 심리상태라고 할까.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 않는 우영은 가슴에 먹먹한 느낌이 들어서 잠시 말을 멈췄다.

지용이 저처럼 눈에 충혈이 될 만큼 분노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오히려 늘 냉정하기 짝이 없어서 인간미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우영이었다.

그가 개인적으로 자신에게는 생명의 은인이고,

그로 인하여 검계에 들었고 마족의 존재를 알게 되었지만, 우영은 아직도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마족의 존재를 교육받았었고 많은 마족을 보고 그들을 처단하기도 했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보통의 사람과 똑같은 마족을 구별하는 것은 아직 우영에게는 무리였다.

우영의 생각에는 그저 그들은 ‘천성이 못된’ 사람이었다.

하지만 검계에서는 보편적인 상식을 벗어나는 인간들은 마족이라 생각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세상에 나쁜 인간들은 모조리 다 죽여야 한다는 말일까.

이따금 우영은 자신이 목을 쳐냈던 필살 적들이 꿈에 나타나곤 했다.

그들이 정말로 마족이라는 걸까.

그냥 정의를 실천한다는 검계의 규칙에 맞춰 합리화하는 것이 아닐까.


종업원들의 사정에 쫓기다시피 라운지를 벗어난 두 남녀는 호텔 밖에 서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두 남녀는 그냥 보통의 커플처럼 보였다.

단지 어딘가 그 호텔 라운지라는 장소에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는 것 외에는.

그들에겐 고맙게도 거의 강제로 쫓겨나다 보니 커피값은 무료였다.

물론 실제로는 지배인이 다 물어내야 했겠지만.

그들이 연락을 받은 것은 며칠 전이였다.

대형 유람선 회사의 선장인 사내였다.

바닷바람에 잔뼈가 굵었고, 누가 봐도 마도로스라고 불릴 법해 보이는 프로필 사진의 사내는 의외로 죽고 싶어서 연락을 드렸다고 했었다.

남자가, 아무래도 문자 입력은 무척이나 더딜듯해 보이는 그 남자가 오랜 시간 더듬거리며 작성했을 내용을 앱을 통해서 읽는 내내 우영은 가슴이 체한 듯 갑갑했었다.


해운 회사의 회장인 조 여사가 배에 탔고,

예정대로 출발하려고 했으나 약속한 조 여사 친구들이 늦는 바람에 한 시간여를 출항 대기를 해야 했다.

크루즈 승객들에겐 날씨 탓으로 이유를 돌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기하던 승객들의 항의가 격해졌다.

그리곤 한 시간 반을 뒤늦게 도착한 여사의 친구들이 배에 오른 후 출발을 하려고 하자,

조 여사는 자신의 지인들에게 선장이 와서 인사도 안 했다고 트집을 잡으며 수많은 승객이 오가는 객실 라운지에서 선장의 뺨을 쳤다.

그리곤 무릎을 꿇리고 졸지에 사죄해야 했다.

물론 사나이의 성질 같아서는 다 때려치우고 배에서 내리고 싶었지만,

수백 명 승객의 안전을 책임진 처지에서 어찌할 수 없어서 그저 조 여사의 미친듯한 광기를 애써서 달래어가며 부두를 떠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크루즈의 고물에 서서 부서지는 파도를 맞으며 선장은 제복이 흠뻑 젖는 것도 모른 채 흔들렸다.

평생 뱃일을 천직으로 여겼고, 젊어서 외항선을 타기도 했었지만 안정된 직장으로 선택했던 크루즈 회사였었다.

풍문으로 간간이 들은 적은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전해 들은 이야기들을 다 믿지도 않았었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깟 직업일 뿐인데.

도저히 모욕을 못 견디겠으면 그만두면 그뿐 인 걸 왜 당하고 있냐, 생각하던 자신이 어리석다 생각들이었다.

그 상황들, 승객들과 선원들.

이미 잡혀버린 출항 일정과 그에 얽힌 수많은 관계.

그런 모든 상황이 꼼짝없이 수모를 당해도 함부로 몸을 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상상한 적 없었고 그제야 선장은 그 숱한 풍문의 주인공들이 왜 꼼짝없이 현장에서 당하고는 나중에 퇴사하는 모양이 되었는지 이해되었다.

하지만, 직업에 자부심을 품고 살아가던 선장의 처지에서는 도저히 이 모욕을 삭이기 힘들어서 뱃머리에 서서 위태한 정신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안타까운 눈빛으로 항해사가 다가서 있었다.

- 선장님. 저기······. 죄송합니다.

- 아니야. 괜찮다. 무슨 일이냐.

- 어쩌면···. 필요하실지 몰라서요. 혹시 검사라는 스마트폰 앱 아세요?

- 응?


지용은 우영과 마주 앉아서 많은 의견을 나눴다.

- 조 회장이란 사람, 그 사람을 지워야 하겠지?

- 그렇네요. 그 선장이란 사람이 말한 그것보다 더 심해 보이는걸요. 그런데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어요. 과연 그들의 잘못이 이 세상에서 죽을 만큼 커다란 걸까······. 이런 생각 요.

- 우영아. 하지만 잘 생각해봐. 그 여자로 인해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 실제로 그렇게 되어버린 사람들이 한둘 아니지. 하지만 법적으로는 무엇도 할 수 없는 거야. 우리 검계가 지금까지 전승된 이유, 바로 그것 아닐까.

- 그건 알아요. 하지만 우리가 이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저 우리는 연쇄살인범일 뿐. 적어도 법적으로 말이죠.

- 우영이 너도 그렇지만 나도, 어차피 그런 세상에서 견디지 못해 한번 죽기로 마음먹었던 사람들. 인연으로 지금 이렇게 검계에 들어가 있다만, 우리의 생명은 검계에 든 이후 우리만의 것은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결국, 우리에게 덤으로 생긴 이생은 그렇게 사는 게 바르다고 생각해. 나는.

- 계주께선 그렇겠죠. 하지만······. 저는 이따금 우리 이후로 과연 검계가 이어질 것 인가도 그렇고, 과연 우리에게 타인의 생명을 거두어달라 부탁했던 그들도 정말 다른 어느 사람에게도 그런 존재는 아니었을지···. 의문이 들어요.

- ‘을’은 또 누군가의 ‘갑’ 이란 말이구나. 인정해. 그럴 수 있지.

- 과연 우리가 거둔 목숨이 그렇게 완벽하게 악인이기만 했을지, 그 일을 의뢰한 사람들이 과연 그렇게 천생’을’ 이기만 했을지, 우리는 알지 못해요. 게다가.

잠시 말을 멈췄던 우영이 지용의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우리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 게 아니란 것, 알고 계시잖아요.


우영의 말을 듣고 지용은 입을 다물었다.

서울 외곽의 작은 호숫가에 자리 잡은 카페.

손님도 거의 없을 오후 시간의 창가에 기울어지는 저녁볕이 들었다.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정경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어쩌다가.

어쩌다가 우리는 이런 피비린내 나는 일을 계승 받고 손에 피를 묻히며 사는 걸까.

목숨값의 대가일까.

문득 아물어가는 왼쪽 어깨의 상처가 욱신거리는 게 느껴졌다.

세상에 정의를 실현할 순 없다.

하지만 부분이라도 불의를 징계할 수는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악인들을 제거하여 다른 악인들에게 경고한다는 것.

그것이 검계의 존재 목적.

하지만 그 속에 휩쓸린 자신과 우영 같은 사람들이 대체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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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부상 20.05.19 156 6 10쪽
10 칼싸움 20.05.16 180 5 11쪽
9 노예 20.05.15 199 4 9쪽
» 마족 20.05.15 245 4 10쪽
7 미친 아줌마 20.05.13 288 6 11쪽
6 살 법 殺法 20.05.13 361 6 11쪽
5 검계의 회 會 20.05.12 409 9 10쪽
4 검계 20.05.12 472 11 11쪽
3 최회장 20.05.12 526 14 9쪽
2 군사경찰 20.05.12 651 1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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