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귀찮게 좀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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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생P
작품등록일 :
2020.05.1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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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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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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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3월의 층 (4)

안녕하세요~




DUMMY

“악신... 정도 되는 존재가 아닐까요.”


“악신?”


에오스였다. 그녀는 교단의 사제이자 달을 섬기는 술사였다. 그런 그녀가 뱉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반드라스의 평가는 냉정했다.


“미안하지만 이 대륙에 악신은 없어. 인간에 널리 퍼진 여러 종파의 신들만 있을 뿐이지. 그조차 실체가 있을 것 같나? 종교. 그 이상의 가치로 생각하기 어렵다.”


“저희는 초창기부터 그걸 알기 위해 여행했어요. 왜 우리가 여기로 끌려온 건지. 누가 우리를 끌고 온 건지. 거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요!”


비장하게 말하는 라일라였다. 머리에 피어있던 노란 프리지아 사이로 보라색 라벤더가 조금씩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프리드는 그 모습을 신기하게 보다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래서 그쪽분들은 그에 대한 해답을 찾으셨습니까?”


“아니, 하지만 저 너머의 존재들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다.”


반드라스의 진중한 목소리에 라일라조차 숨을 죽이고 목소리를 낮췄다. 무리에 끼어있던 한 여행자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초월의 격이 뭐죠?”


“나랑 라일라가 규격 외의 존재들에게 임의로 붙인 용어다. 그들을 표현한 것으로 추측되는 단어는 많았다. 아신, 반신 등.”


“저희는 애초에 그 흔적을 따라서 동부 작열 사막에 있었어요. 초대장을 받고 응해서 여기에 온 거구요”


“강한, 겁니까?”


“물론.”


“강함이라고 한다면 블레임의 검공이나 제국의 변경백을 말하는 건가?”


키리예의 물음이었다. 제국을 근방으로 활동한 그에게는 그들이 하늘이었다.


“미드레이? 대륙급으로 평가받는 강자들을 말하는 건가? 실례지만 그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격을 가진 존재들이지. 낭설로는 미드레이가 일검에 성을 가른다고는 하지만 이런 장난을 칠 수는 없잖아. 그보다 반 급수 정도 떨어진다고 평가되는 소르다스도 마찬가지.”


“그런데 그걸 지금 말하는 의도는 뭐죠?”


“초월의 격에 오를 만큼 고강한 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당연히 정신적으로도 완성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말이야.”


“우리도 의뢰 때문에 관련된 유적을 꽤나 오래 조사했거든요. 아저씨는 마냥 일반적이게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예요.”


그들의 말대로 이 미궁을 설계한 존재가 나사가 하나 빠진 존재라면 이런 흐름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이 그 정도의 격을 쌓기 위해서 정상적인 삶을 살았을까? 그랬다면 인간의 반은 승천했겠지. 대개의 초월자들은 본래 악하다는 게 우리가 내린 결론이야.”


“그래도 깊게 들어가면 갈수록 우리의 발목을 잡게 될 거라는 건 변하지 않습니다.”


“놈이 내려가는 층계마다 이런 꼴을 내버린다면 좋건 나쁘건 성장할 수 있는 기대치는 낮아지기 마련이니까요.”


2층에 내려가길 결정했을 때보다는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생겨난 것이다.


망설임.


2월의 층에서 실질적인 사상자는 0명이었다. 과정을 모른다면 고무적인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는 지표였지만 어째 분위기는 더욱 침울했다. 살아남은 여행자들은 거의 반반의 수로 두 패거리로 나뉘어졌다.


“굳이 이 이상 내려갈 필요가 있을까요.”


“설령 이 미궁을 방치한다고 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불이익은? 이대로 나가는 게 좋을 수도 있어. 대륙에 직접적인 해를 가하는 것도 아니잖아.”


근본적인 의문.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그 전염병 같은 감정은 점차 많은 여행자들에게 퍼져나갔고 그들이 전진하는 걸 망설이게 만들었다.


“그래. 저 말대로잖아. 사실 재앙이라고 해도 이 미궁이 대륙에 악영향을 끼칠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그러니까. 여행자의 참여를 장려하기 위해 거창하게 재앙이라고 한 거 아니야?”


“당장에 우리가 내려간다고 해도 아래는 멀쩡할 거라는 보장은 있나?”


“어쩌면 이 미궁도 제 2의 환몽의 탑 같은 존재일 수도 있지.”


그들에게 다른 이들의 의견을 중요하지 않았다. 퇴로가 보장된 이상 굳이 타인의 허락을 구할 필요도 없었다. 손만 몇 번 까딱하면 가방에서 초대장을 꺼내서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잠깐만 기다려줘!”


너무 많은 인원의 이탈이었을까? 몇몇 여행자들이 떠나가는 이들을 붙잡으려고 하기도 했다.


“굳이 여기에 남는 이유는?”


“그건...”


“거 봐. 바로 안 나오네. 댁도 후회하기 전에 빠지는 게 좋을 거요.”


그는 편지를 읽기 전에 반드라스 등이 모여 있던 곳을 한번 흘겨보고는 흘리듯이 말했다.


“솔직히 우리 같은 범인들이 저쪽에 비빌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작은 소리였지만 반드라스가 서있던 곳에서 충분히 들릴 크기였다. 실제로도 들었고.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떠나가는 이들 중 일부의 시선을 느낀 것일까? 라일라는 한껏 뾰로통한 표정을 보였다.


“흥! 우리가 구경거리는 아니잖아요! 여기까지 오려고 저희도 노력 많이 했어요!”


“진정해. 오히려 잘된 거야.”


“반드라스 씨! 잘 된 거라니요! 이 인원은 레이드를 진행할 최소한의 인원도 되지 않습니다!”


애초에 1층도 단체의 힘으로 돌파하려고 했던 아서였기에 지금의 상황은 그에게 그리 달갑지 않았다. 한차례 정예화된 걸로도 솔직히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또 절반이 넘게 이탈하다니? 하지만 반드라스는 평온했다.


“어차피 이 앞은 향상성이 없다면 나아가지 못할 시련들밖에 없을 거야. 긍정적으로 생각해.”


“말은 그렇게 하셔도...”


“난 저런 어중이떠중이들한테는 등 못 맡겨.”


남은 이들은 한눈에 담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수가 줄어있었다. 프리드와 면식이 없는 이들 중에 남은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서와 에오스의 곁에 서서 허리춤의 화살통을 만지는 사내. 키리예의 뒤에 서있는 롱후드의 여인. 마지막으로 아이언을 따라서 남은 남자까지. 총원을 따지면 20명도 넘지 않는 수였다.


이제 정말로 단체라는 틀에 묶인 것보다는 말 그대로 개인으로서의 강자들이 추려진 느낌이었다.


“그럼 다시 가보지. 이 이상 지체되었다간 정말 모두 놓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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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층에 발을 디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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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퍽!


“아야!”


=====================

시나드의 조형미궁에 진입했습니다.

당신의 용기와 지혜를 시험해보겠습니다.


=====================


“시나드의 조형미궁?”


“으윽...”


갑작스레 들리는 신음소리에 루아리는 밑을 쳐다봤다.


“으헣!”


“아우, 허리야. 놀라는 건 나중에 하시고 좀 비키죠.”


“미, 미안해요!”


프리드는 그제서야 주위를 확인했다.


“분명히 시나드의 조형미궁이라고...”


“미궁 속에 미궁이라니.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갑자기 프리드와 루아리가 떨어진 곳은 넓어도, 아주 넓은 미로였다. 대체 무슨 원리인지 모르겠지만 일정한 거리마다 횃불이 걸려서 어둠을 밝혀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거리 이상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가 없었다.


“하, 이거 골 때리게 됐네.”


“네? 뭐라고요?”


‘뭐야? 갑자기 가는 귀라도 먹었나?’


프리드의 목소리가 그리 작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루아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티를 팍팍 냈다.


“골 때리게 됐다고요!”


“아! 왜 소리는 지르고 그러세요?”


“뭐하자는...”


지금은 목숨조차 슥슥 베어내는 곳에 살고 있었지만 그는 본래 21세기 말로 해결하는 사회에서 평생을 살아온 몸이었다. 이 정도 욕구는 참을 수 있었다.


‘아, 꿀밤 마렵네.’


“아니에요. 잘 안 들려요?”


“이상하네. 귀가 좀 먹먹해요. 막힌 것처럼.”


“그러게 평소에 귀 좀 파시지.”


“이씨! 무례해요!”


분명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조용히 뱉었는데 이런 말은 또 귀신같이 들어버렸다.


“농담요. 농담. 사람이 삭막하게만 살았나. 유머잖아요.”


“됐어요. 말이나 못 하면 밉지나 않지.”


“삐졌어요?”


“안 삐졌거든요?”


“삐졌네.”


“아! 아니라고요.”


“워워, 소리는 지르지 말구요. 시야도 제한적인데 그렇게 소리라고 막 지르면 멀리서 듣고 와도 대처를 못하잖아요.”


보통 있지 않나? 이런 정석적인 미궁이 나오면 세트메뉴처럼 따라다니는 존재들이. 소고기들이 엄청 큰 도끼를 들고 돌아다닌다거나 다른 무서운 친구들이 돌아다니는 법이었다.


“그럼 지금처럼 능글맞게 말하지 마세요.”


“네네. 알았어요.”


“그런데 시야가 제한된다는 건 무슨 소리세요? 불도 이렇게 다 밝혀줬잖아요.”


“거의 5m까지만 보이고 그 뒤는 어둡게 보이는데요?”


“네? 좀만 더 크게 말해봐요.”


“대충 5m까지만 보인다고요!”


“정말요?”


그녀에게 들은 정보를 종합해봤다. 프리드의 경우와 달리 그녀는 가시거리가 끝나는 한계까지 충분히 보인다고 말했다. 그걸로 추측할 수 있는 바는 간단했다.


“특정 감각에 어느 정도 제약을 주는 것 같네요.”


“예를 들면 저는 청각, 그쪽은 시각인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다행히도 둘이 이 사실을 알아내며 삽질을 실컷 하던 그 시간 동안은 미궁을 돌아다니는 피에 굶주린 괴물은 만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죠?”


“흠...”


“네? 뭐라고여?”


단지 미간을 찡그리며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을 뿐인데도 그녀는 프리드가 무슨 말이라도 한 줄 알고 그에게 반문했다. 그 모습을 보며 프리드는 생각했다.


‘아, 진짜 꿀밤 마렵네.’


이 미궁이 얼마나 거대할지 아직은 알 수 없었지만 그리 순탄한 동행은 아닐 거라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프리드는 차분하게 잘 들리도록 말했다.


“그쪽, 루아리 맞죠?”


“네.”


“루아리, 왼손법칙이라고 알아요?”


“알죠. 왼쪽만 집고 진행하면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미로 외곽으로 나갈 수 있잖아요.”


“알면 앞장서요.”


“네? 뭐라고요?”


“불리할 때만 안 들리는 척하지 말고요.”


“어, 티... 났어요?”


“네, 너무 티났어요. 그러니까 빼지 마시구요. 멀리까지 보이신다고 하셨잖아요. 전 안 보이니까 부탁 좀 할게요.”


“알았어요. 혹시 뭐 들리시는 거 있으면 말해주세요.”


양성평등주의자인 프리드는 경우에 따라서 언제든 여성도 앞장서게 할 수 있는 올바른 사나이였다. 루아리가 다행히 큰 반발 없이 받아들여준 것도 계획에 큰 도움이 되었다.


“어... 프리드 씨?”


“왜요.”


“뭔가 빙글빙글 도는 기분인데요?”


“확실해요?”


바닥, 벽, 천장을 이루는 타일들이 전부 동일한 문양이었기에 정신을 놓는다면 금새 방향감을 상실하기 좋은 공간이긴 했다. 솔직히 루아리가 느낀 것도 그런 것이기를 바랬다.


왼손법칙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낸 건 그로부터 3시간 정도가 흐른 뒤였다.


“미궁이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걸 누가 상상이나 하겠어요? 하핫.”


“하핫? 웃음이 나와요? 귀가 들리면 미궁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야 정상 아니에요?”


“그러는 그쪽은요? 저~ 멀리까지 다 보이시는데 이상한 거 못 느꼈어요?”


“그쪽이라뇨. 루아리라고 불러요! 이름이 있는데 자꾸 그쪽, 그쪽 듣기 거북하거든요?”


“어? 화났어요? 표정 좀 풀어요. 누가 보면 나는 여기서 기다리고 혼자만 걸으신 줄 알겠네.”


“화가 안 나게 생겼어요? 아, 몰라요! 따로 가요.”


“으음, 제가 손해일까요. 그쪽이 손해일까요?”


“또! 내가 그쪽이라고 하지 말랬죠!”


루아리는 결국 혼자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단단히 화난 걸로 보였다. 프리드는 하는 수없이 그녀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제 글이 여러분에게 어떤 방향으로라도 영향을 끼쳤기를 바랍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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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179. 기사, 최선의 기사 (10) 22.04.23 1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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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177. 기사, 최선의 기사 (8) 22.04.16 33 0 12쪽
177 176. 기사, 최선의 기사 (7) 22.04.12 19 0 11쪽
176 175. 기사, 최선의 기사 (6) 22.04.09 16 0 11쪽
175 174. 기사, 최선의 기사 (5) 22.04.05 24 0 12쪽
174 173. 기사, 최선의 기사 (4) 22.04.02 34 0 12쪽
173 172. 기사, 최선의 기사 (3) 22.03.29 25 0 10쪽
172 171. 기사, 최선의 기사 (2) 22.03.26 30 0 12쪽
171 170. 기사, 최선의 기사 (1) 22.03.22 4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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