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귀찮게 좀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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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생P
작품등록일 :
2020.05.1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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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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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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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3월의 층 (5)

안녕하세요~




DUMMY

조금만 거리가 벌어져도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기에 어느 정도 거리만 유지하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청각에 제약이 있어서 그런지 프리드가 따라가는 발소리를 듣지 못했다.


“저기요.”


프리드는 조용히 그녀를 불렀다. 그녀는 열심히 움직이던 발을 멈추고 자리에 멈췄다. 프리드가 부르는 소리를 들은 걸까?


“이제 좀 풀렸어요? 얘기 좀 해요.”


그녀는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어느새 프리드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그녀. 프리드는 조심스레 그녀의 어깨를 터치했다.


“저기요.”


“꺄아아악! 흡!”


그녀는 뒤를 바라보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더욱 이해가 안 가는 건 비명을 지르다 말고 갑자기 스스로의 입을 틀어막는 그녀의 행동이었다.


“왜 그래요?”


“쉿! 제발 입 좀...”


프리드를 향해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보인 그녀는 다시 뒤를 돌아봤다.


“왜 그래요?”


루아리가 바라보는 방향을 프리드는 어둠밖에는 볼 수 없었다.


“천천히... 뒤로 가세요.”


“뭐가 보이는 거예요?”


“조용히 하고 빨리요. 그 잘난 눈이랑 귀로 옆으로 빠질만한 길이라도 찾아보라구요.”


프리드는 보지 못하는 위협에서 그녀가 긴장을 놓은 건 그로부터 3번 정도 코너를 돈 이후였다.


“대체 뭘 본 건데요?”


“직접 보지 않고는 절대로 공감 못할걸요.”


코너에 딱 붙어서 잠시 숨을 돌리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편하게 쉬는 건 아니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코너를 돌아보며 뭔가를 경계하고 있었다.


“진정되면 말해요. 언제까지고 숨어있을 수는 없잖아요.”


“쉿.”


계속해서 어둠 너머를 살피던 그녀는 돌연 프리드를 벽 쪽으로 끌어당겼다. 예측을 전혀 하지 못했던 상황이라 프리드조차 힘없이 끌려갔다. 그녀는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숨소리까지 낮췄다.


“왜요? 뭐가 보여요?”


“쉿. 기척 좀 죽여요.”


그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보였기에 프리드도 그 이상은 토를 달지 않았다.


두두두두두.


“음?”


불길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코너 저편의 어둠에서. 아마도 무수히 많은 개체수의 발소리로 추정됐다.


“한번 봐도 될까요?”


“절대로요. 저것들 지금 저희 절대 신경 못쓰니까 벽에만 붙어 있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들리는 것으로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프리드는 잠자코 그녀의 말에 따랐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가까이서 들리던 발소리는 서서히 멀어졌고 코너를 확인한 그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제 말해주면 안 되나요?”


“조형미궁이라더니 딱 그에 어울리는 놈들만 우글우글했어요.”


다양한 몬스터들의 신체부위들을 이리저리 엮은 키메라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도사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이었던 건 거대한 네발짐승의 육체에 오우거의 상체를 기워 붙이고 그 위에 소의 머리를 얹은 괴물.


“이거 딱 어느 섬의 어떤 미궁이 떠오르네.”


“다행인 점은 그 소머리가 다른 키메라들이랑 우호적인 관계는 아닌 것 같았어요.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일방적으로 쓸어버리던 모습이었거든요.”


이동하던 길에서 반가운 얼굴도 만났다. 하레이와 카나. 그 둘이 한 팀으로 움직이고 있던 걸 만나서 임시적인 파티를 형성할 수 있었다.


“이 조합도 평범하지는 않네요.”


“동료는 보정이라도 따로 있는 거야? 어떻게 하필 여기서 너를 만나지?”


“음~ 이 목소리는 나의 벗. 프리드구만!”


미궁의 규칙에서 하레이도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건 카나도 마찬가지였고 다만 특이한 점이라면 하레이는 거의 맹인 수준으로 시력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카나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덜했는데...


“대체 기준이 뭔데? 참 알다가도 모르겠네.”


“냄새를 못 맡는다고요?”


“네. 그냥 코가 막힌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딱 냄새만 안 나요. 숨은 자유롭게 쉴 수 있거든요.”


이 정도면 거의 패널티가 없는 수준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문제라면 저 장님을 어떻게 하냐는 거였다. 외팔이 검객 이미지였는데, 맹인 외팔이 검객이 되어버렸다.


‘일반적인 창작물이라면 거의 세계관 최강자인데...’


“선생님, 뭐 아예 안 보여요?”


“아쉽게도 그렇다네. 빛만 간신히 판별할 수 있을 정도지. 사방이 보이지 않는 미지의 공포는 인간에게 때때로 가장 필요한 것들을 상기시키게 도와주지. 바로 나의 벗. 프리드.”


“그래서 내가 지금 그쪽한테 가장 필요한 동료라고 말이라도 하고 싶은 거야?”


카나와 하레이. 둘만 남겨두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 이질적인 조합이었지만 의외로 카나는 그리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휴. 그래도 다행이네요. 솔직히 좀 막막했는데.”


카나의 입이 열리고 그녀가 뱉은 말들을 들어보니 프리드는 바로 좀 전에 내린 평가를 바로 거둘 수밖에 없었다.


“이쪽이랑 다닐만 했어요?”


“네... 뭐, 그럭저럭요?”


“하하하! 우린 임시지만 나름 훌륭한 파티였다고!”


구구구구궁...


또다시 미궁 저편에서 거대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이것도 미궁이 자체적으로 구조를 바꾸는 소리일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이후로 다른 여행자들을 만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른 분들은 이미 나가셨을까요? 저희가 만난 걸 보면 다른 분들도 어디에 계실 것 같은데.”


“나가는 조건이나 알고 싶네요.”


“몇몇 사람들은 정말 넘어갔을 지도 모르겠군. 프리드 군과 달리 워낙에 강한 친구들이라.”


맹인 검객의 입은 프리드가 무력을 행사하자 닫혔다. 그 뒤로 미궁을 얼마나 헤맸는지 모르겠는데 한 번 정도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를 느꼈다.


{다들 들었죠?}

조용히 속삭이는 프리드의 말에 카나는 끄덕였다. 이미 루아리에게 가해진 패널티에 대해 들은 그녀였기에 프리드가 턱짓하자 그의 의도를 단번에 이해했다.


{하레이, 입 다물고 조용히 여기 붙어있어.}


조심스레 루아리에게 다가간 카나도 그녀를 조용히 붙잡으려 했지만 마법사인 그녀가 검사인 루아리를 붙들고 있기는 무리였다.


{일일히 설명해주기엔 너무 다가와서...}


하레이가 의외로 이해가 빨랐기에 손이 빈 프리드가 직접 루아리를 맡았다. 프리드가 갑자기 나아가다 말고 뒤를 돌아 자신에게 다가오자 그녀는 예상대로 입을 벌렸고 프리드는 어쩔 수 없이 강제력을 행사했다.


“엥? 왜요? 으그읍!”


프리드가 다짜고짜 손으로 입을 틀어막자 그녀는 놀란 토끼 눈을 뜨며 발버둥쳤다. 프리드로서는 최대한 소리를 차단하며 그녀가 이해해주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쿵!


아마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바로 뒤로. 프리드는 놈을 등지고 있었지만 느낄 수 있었다. 프리드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동자는 어느새 그의 뒷통수 너머로 향하고 있었고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제발. 제발 그냥 지나가라.’


등 뒤로 놈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뜨거운 입김이 느껴졌다.


루아리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웠다. 임시적이지만 동행하던 이 남자가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벽을 향해 밀어붙이자 여성적인 공포마저도 느꼈다. 여전히 시야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체 왜...?’


그는 자신의 입을 막지 않은 손을 입가에 가져다 대더니 침묵을 종용했다. 아까까지의 가벼움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의 눈동자가 떨리는 게 선히 보였다. 뭔가가 달랐다.


그녀는 볼 수 있었다. 어깨 너머로 형체는 보이지 않았지만 무언가 거대한 것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부분 부분이 환상처럼 가시 상태와 비가시 상태를 오가는 탓에 한눈에 놈의 모습을 담을 수는 없었지만 얼굴이 잠깐 드러났을 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눈이... 없어?’


거기서 그녀는 한 번 더 놀랐다. 이 남자는 놈이 앞을 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리도 가까이 다가왔음에도 저리 태연하게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리라.


자그마한 마나의 유동도 조심해야 했다. 하나의 감각이 사라지면 다른 감각은 극도로 상승하기 마련이니까. 루아리는 최소한의 힘을 남기고 몸에 힘을 빼버렸다.


긴장감이 팽배했다. 루아리의 입을 막은 손에 땀이 흘렀다. 불안정한 자세를 억지로 유지하려고 하자 반동이 서서히 밀려오고 있었다.


“큿...”


“...?”


프리드의 입을 비집고 작은 신음성이 새어나오자 루아리는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보이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프리드의 고개 바로 옆에 놈의 성난 주둥이가 김을 뿜고 있었다.


쿵!


그닥 멀지 않은 거리에서 뭔가 소음이 들려왔다. 꾸물거리는 거체는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곧 거대한 진동을 울리며 그들이 있던 곳을 떠나갔다.


프리드는 두 다리에 깃든 힘이 일순 빠져버린 것인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잠깐이었지만 육체가 받아야 했던 스트레스는 그 크기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프리드는 그녀의 반응에서 대충 유추했다.


“후우. 본 거예요?”


“잘 모르겠어요. 사자의 갈기, 맹금류의 뒷발, 뱀의 눈. 솔직히 저도 부분 부분만 흐릿하게 본 게 전부에요.”


단순히 일렁거리는 걸로 봤을 때, 확실하게 덩치는 엄청 거대했더랜다.


“그 특징들만 보면 아마 만티코어나 그쪽 계통의 비스무리한 친구가 아닐까요?”


“만티코어? 독수리랑 사자랑 짬뽕한 그거요?”


“네. 키메라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면 그것밖에 떠오르지가 않네요. 순종이 아니니까 생김새도 제각각이고요.”


죄다 알 수 없는 키메라들뿐인지라 함부로 싸우고 다닐 수도 없었다. 주저앉은 프리드는 주위를 둘러봤다. 긴장이 풀어지자 뭔가가 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근데 하레이는 어디에 있지?”


“하레이 씨요? 여기에... 어?”


하레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





시야를 완전히 잃은 그였기에 자칫 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위기상황의 조짐을 가장 먼저 느꼈던 건 항상 하레이였다. 물리적인 능력은 여행자들 기준으로 거의 0에 수렴했지만 그 특유의 감각만큼은 좀처럼 빗나감이 없었다.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서성였다. 후회가 한 점, 망설임이 한 점, 그밖에도 온갖 자잘한 감정들이 한 점씩 모여서 거대한 짐이 되었다.


불쾌했다.


일행들은 침묵 속에서 걸어갔다. 프리드는 알 수 없는 허전함과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무력감에 빠져 있었고 다른 둘은 그런 그를 따라가며 침묵만을 지켰다.


“...역시 아까 그 만티코어가 물러났을 때 잡혀간 게 아닐까요.”


카나가 조심스레 침묵을 깼다.


“괜히 내 눈치 볼 필요 없어요. 어찌 보면 지금까지 살아있던 게 신기할 정도였으니까. 언젠간 일어날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리드는 자조적이게 웃으며 말했다. 애써 담담하게 말했지만 지금 그의 수중에 남아있는 건 하레이가 생전에 들고 다니던 수첩뿐이었다. 언제 넣었는지 모르겠지만 주머니에 들어와 있었다. 그 수첩을 보자 더욱 쓴 맛이 돌았다.


“그게 오늘일 줄은 몰랐지만...”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건 사고였잖아요.”


“그렇겠죠. 슬픈 감정은 아닙니다. 아마 슬픈 감정은 아닐 겁니다.”


말에 날이 서있었다. 티격태격하기는 했어도 아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다는 건 기분이 더러운 일이었다.




제 글이 여러분에게 어떤 방향으로라도 영향을 끼쳤기를 바랍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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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 176. 기사, 최선의 기사 (7) 22.04.12 19 0 11쪽
176 175. 기사, 최선의 기사 (6) 22.04.09 16 0 11쪽
175 174. 기사, 최선의 기사 (5) 22.04.05 24 0 12쪽
174 173. 기사, 최선의 기사 (4) 22.04.02 3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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