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귀찮게 좀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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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생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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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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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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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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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3월의 층 (9)

안녕하세요~




DUMMY

프리드네가 계층에 도착하고 어느덧 보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어딘가 위화감이 들게끔 만들었다.


단말기가 보여주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시간이 흘러가니 정확한 비율을 알 수는 없었지만, 매일매일의 하루가 달랐기에 어지간히도 비틀렸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오늘로 며칠 째입니까?”


“이제 모르겠어요. 새는 것도 지치네요.”


그들은 체력도 충분히 회복했고 시간도 충분히 있었지만, 여전히 3월의 층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시나드에게 한 번씩 찾아가서 혹시라도 계층에 대한 단서를 묻는 것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뭔가 중요한 것을 잊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허나 미치겠는 것은 그게 무엇인지 떠오르지가 않는다는 것이었다.


“더는 머무를 수 없습니다.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글쎄... 엄밀히 따지자면 이 계층에는 쓰러뜨릴 존재 같은 건 없다는 것 정도? 실질적으로는 나도 계층의 주민일 뿐이니까.”


계층의 주인만 제압하면 그만이었던 이전과는 다른 흐름.


“그렇다면 다음 계층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나야 모르지. 그건 자네들이 이제부터 열심히 알아봐야 할 것 아닌가?”


명확한 목표가 없는데 목표를 달성하라고 하니 뭐부터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하루에 1시간 정도는 시나드에게 붙어서 정보를 받았고 그 외에 모든 시간은 오두막 바깥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도중 시나드로부터 마나에 대해 뜻밖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자네의 마나는 조금 특별하군. 자연을 기반한 마나가 아니야.”


얼추 들어맞았다. 프리드가 며칠을 귀찮게 군 결과였다. 그는 그럴싸한 말들을 툭툭 내뱉기 시작했다.


“자연에 기반을 둔 마나는 사실상 무한하다고 볼 수 있지. 가령 불의 의지를 지닌 마나를 예로 들자면, 이 세상에서 불이라는 원소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상 불의 마나는 사라지지 않아.”


“불의 마나는 스스로도 불을 피울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정확하네. 그래서 스스로 무한하다고 할 수 있지.”


자연의 마나는 그 자체로 영속성을 지닌다.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바람과 불은 상호를 보완해주고, 물과 나무도 어우러진다. 빛과 어둠은 서로를 지우고자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상대가 존재하기에 스스로도 존재한다.


“확실히 제 마나는 그런 것들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정확한 성질을 특정 짓기는 힘들지만 비슷한 느낌 정도는 알고 있지. 자네의 힘은 계승되는 힘일세.”


“계승된다고요? 좀 더 자세한 설명 가능하십니까?”


“자네가 받았으니 다른 누군가는 자네에게 준 게 아닌가?”


“어, 그렇겠죠?”


프리드는 여전히 침묵하는 백색의 롱소드에 시선을 줬다. 그가 했던 얘기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분명 나 이전에도 정복의 마나를 사용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어.’


“대개 그런 힘들은 세계의 의지에 인식될 수 있는 힘의 총량이 명확하다네. 누군가가 그 그릇이 넘칠 정도로 가지고 있다면 누군가는 부족할 수밖에 없겠지. 한계를 늘리기가 어려워. 단 한 존재에게 허락하기엔 과분하지만 여럿이 나누기엔 부족한 그 정도의 양이지.”


그의 설명은 대충 거기까지였다.


“잘 한번 생각해보게.”





◎◎◎◎◎





카나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넋을 놓은 채로 풍경만 바라보고 있었다. 간혹 호기심이 생기면 시나드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했지만 딱 그 정도였다. 그 이상의 활동적인 뭔가는 없었다.


“카나, 뭐라도 하시죠. 그래도 셋이서 찾는다면 조금이지만 가능성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왜 지금 이 미궁을 뚫고 있는지도 이해가 안 되는데요. 그냥 여기도 그럭저럭 살만한 것 같은데요.”


“뭐라고요?”


“그냥 조금 기다리죠. 우리보다 강한 분들도 많이 있잖아요. 기다리면 미궁도 해결할 테고... 그럼 우리도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야 그녀의 현재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초점이 명확하기는커녕 흐려진 그녀의 눈동자는 어떠한 향상의 심리도 찾을 수 없었다.


프리드는 어쩔 수 없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예로부터 대상이 뭐가 되었든 고장에는 매가 약이었다.


짜악!


“어때요? 정신이 좀 들어요?”


“아! 왜 때려요? 미쳤어요?”


빛바랜 꽃망울이 그제야 조금이지만 빛을 되찾았다. 그녀는 눈가에 이슬이 맺힌 채로 프리드를 매섭게 쏘아봤다. 힘 조절을 하지 않았기에 고개가 휙 돌아갈 정도의 충격이었다. 아쉽게도 그에게 이런 섬세함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정신은 차린 것 같네. 아까보다는 나아.’


“약속한지 얼마나 됐다고. 루아리 씨한테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프리드가 말없이 고개를 내밀자 카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손바닥을 움직였다.


짜악!


독기를 잔뜩 품은 손바닥이 프리드의 안면을 강하게 타격했다.


“윽.”


“나빴어요.”


‘누구는 때리고 싶어서 때렸답니까?’


라는 말은 다행히 프리드의 목구멍에서 제압당했다. 괜히 꺼냈다가는 맞기만 할 게 뻔했으니까. 똑같이 때리고도 남은 게 있었는지 그녀는 씩씩거렸다.


살짝이지만 붉게 부어오른 그녀의 볼을 보자 썩 미안한 감정이 들기도 하는 것 같았다. 오해를 풀고 의지를 세워주는 데에도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카나라는 전례가 있었기에 루아리의 상태를 확인하는 데에 두려움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상태는 정상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이 무기력함 속에서도 검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푸른 기사를 집요하게 붙어 다니며 감시했다. 그 원인을 알기 위해 노력했는데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프리드의 시선이 푸른 기사의 허리춤으로 향했다.


‘아...’


레이피어였다.


‘그래. 저런 곳에서라도 흥미를 찾는다면 알아서 잘 하겠지.’


프리드가 기웃거리자 루아리는 그에게 의문부호를 띄웠지만, 그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간 프리드도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확실히 정의할 수 있는 생물이 한정된 탓에 명확한 정보는 아니었지만 익숙한 생김새의 친구들도 있었다.


일단 오두막 뒤에 이어진 숲을 쭉 지나가서 빠져나가면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이 펼쳐져 있었고 어마어마한 수의 오크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극한의 적응력을 가진 생물답게 이계의 존재들이 즐비한 이 층계에서도 그들은 그 세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저건 보고 또 봐도 경이롭네.”


그날도 프리드는 생각하고 있었다.


‘대륙의 오크는 정말 돼지 사촌쯤 되겠네.’


대륙에 익히 알려진 오크의 생김새와는 너무 달랐다. 인간쯤은 가볍게 찢어 죽일 정도로 우락부락한 근육. 피부색도 짙은 갈색을 지니고 있었다. 부족 고유의 특성인지 털들은 하나같이 붉은색 일색이었다.


계층으로부터 간섭되는 힘에 의해 진화와 발전에 어느 정도의 제한이 되어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기를 완전히 포기했다는 말은 되지 않았다.


감히 하나의 세계라고 표현해도 좋을 이 조형된 세계에서 그들은 확실히 살아있었다.


보름 정도 관찰한 결과, 그들은 동계층의 거의 모든 생물들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오로지 약탈하고, 먹을 뿐이었다. 그 외의 교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이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매우 단순한 이유였다. 그들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프리드는 그런 그들을 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명확한 시련이 존재하지 않는다라...’


가야 할 방향도, 목적지도,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보이지가 않았다. 적어도 이 계층에서만큼은.


“씁...”


프리드의 머리를 스쳐 지나간 하나의 목표가 있기야 했다. 다만 그건 현재의 여행자들의 수준으로 봤을 때, 지독한 오만이었으며 명백하게 주제를 모르는 생각이었다.


‘영감님이 클래스 8이란 걸 처음 알았을 때에도 그 정도는 아니었지. 아마?’


상념에 젖어 걷고, 또 걸었다. 이상하게 전혀 지치지가 않았다. 그렇게 프리드는 사흘 밤낮을 쉼 없이 걸어갔다. 숲을 벗어나서 초원 위를 지나갔다.


“이건 아무리 봐도 누가 만든 건데.”


문명의 흔적으로 보이는 특이한 양식의 구조물도 발견할 수 있었다. 잠시 흥미가 동했지만, 결국엔 정교하게 만들어진 누군가의 장식장이라는 생각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별 게 다 있네. 그래봤자 만들어진 것일 게 뻔하지만.”


그 뒤를 기점으로 프리드는 꽤나 많은 구조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수라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바위였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거대함에 그 정교함까지 더해지니 자연스레 뿜어져 나오는 위엄이 상당했다. 이는 프리드를 전율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분명히 처음 오는 장소... 처음 보는 구조물인데... 어딘가 익숙해.’


그렇게 넋을 놓고 쳐다보던 그를 깨우기라도 하려는 건지 모래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푸훼엑! 퉤! 뭐야? 사막이라도 있나?”


주위를 둘러봤지만, 모래가 불어올 어떤 지형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넓게 펼쳐진 초원이었으니까.


허공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은 프리드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발 바로 아래에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어둠이 넓게 깔렸고 시야 저 너머에는 빛의 안개가 차단하고 있었다. 세상의 끝을 보게 된다면 이런 모양이리라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풍경이었다.


“하아.”


“여기가 끝일세.”


“예?”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다만 그는 확실히 이곳에 프리드와 있었다.


“그래서 소감은? 견학은 제법 만족한 모양인 것 같은데?”


“예, 뭐, 그럭저럭요.”


얼떨떨한 표정으로 프리드가 말했다.


“다행이군.”


시나드는 한차례 웃어 보인 뒤, 그의 손바닥을 하늘을 향하게 펼쳤다. 곧 그의 손바닥 위에서 찬란하게 빛이 나는 구체가 형성되었다.


“이건 서비스일세.”


프리드는 천천히 점멸하는 그 구를 들여다봤다. 프리드가 지나왔던 모든 기억들이 빠르게 되감아지며 그들은 어느새 아늑한 오두막으로 돌아와 있었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 제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정말 꿈일지도 모르지. 완벽한 꿈은 곧 현실인 법이니까.”


“완벽한 꿈은 곧 현실...”


전이계의 마법이었지만 이전의 것들과 다르게 어떠한 리스크도 동반되지 않았다. 마법을 사용한다면 당연하게 느껴져야 할 마나의 유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 짐작조차 되지 않는 까마득한 경지에 허탈함조차 들지 않았다.


단지 세상의 끝에서 마주했던 작은 생각이 들 뿐이었다. 자신은 왜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걷기 시작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시나드는 자신의 흔들의자에 몸을 묻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래. 하나 정도는 있었군.’


그는 계속해서 자문을 건넸다.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목적조차 없는 이곳에서 신념까지, 그간의 모든 걸 잃어버릴까. 그게 두려웠던 건가.’


“하, 누가 보면 내가 뭐라도 이룬 것처럼 말이지.”


지금까지 프리드의 사고는 전부 누군가의 상정 범위 내에 있는 것들이었다.


‘앞길이 없다면, 찾으면 그만이다.’


틀에 박혀있던 그의 생각이 뭔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앞길을 가로막는 짙은 안개를 걷어내는 것. 그 이상의 무언가가.


‘누구 좋으라고 시키는 대로 할 뻔 했네.’


“잘 알았습니다. 이제부터 정해진 길을 이탈하도록 하겠습니다.”


“제대로 봤군. 이제 울타리를 허물게.”




제 글이 여러분에게 어떤 방향으로라도 영향을 끼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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