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령을 품은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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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녀
작품등록일 :
2020.05.17 08:02
최근연재일 :
2024.03.28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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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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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18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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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DUMMY

*****



세희가 눈을 떴을 때 미영과 아이는 방에 없었다.

길게 잤던 건 아닌데 방에는 아이를 낳았던 흔적만 남아 있었다.


피가 묻은 것들은 이미 잠들기 전에 다 치워 두었다.

모유가 안나오는 걸 대비해 준비해둔 분유통과 젖병. 기저귀들이 아이가 태어났다는 것을 알려 줄뿐 정작 생명체는 엄마와 함께 사라지고 없었다.


세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세상에 끌어내었다. 생각해 보면 아이를 받는다는 것이 무척이나 공포스러운 일이었고, 긴장되는 일이었다.


이를 악물고 출산하는 미영을 도와 나오는 아이를 아주 조심스럽게 받아 탯줄을 자르고 씻기는 것까지 어느 한 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았다.

미영은 아이와 함께 피를 쏟아내고 있었고, 그런 상황이 처음이었던 세희는 온 몸으로 흐르는 땀을 닦을 여유도 없었다.


그때만큼은 자신의 뱃속에도 생명체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몰입했었다.


대충 뒷정리를 하고 아이를 미영이 옆에다 눕혀 놓고는 한순간에 긴장이 풀린 탓인지 벽에 기대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만 지금 남아 있다.

얼마나 잤는지는 기억에 없다.


지금 이 방안에 아이도 산모도 없다는 사실이 마치 꿈인 듯 황당했다.

수면으로 머리는 개운했지만,그녀는 산모이기에 무거운 배를 움켜쥐고 힘들게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눈이 펑펑 내리는 거리의 어느 방향에서도 미영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거리의 모든 것들은 무차별적으로 내리는 눈에 반이상 점령 당했고, 아직은 성이 다 차지 않는다는 듯이 눈의 속도는 빨라졌다.


뱃속 아이가 한기를 느껴 몸을 움츠려서인지 배가 땡기기 시작했다. 미영이도 없는 이곳에서 갑자기 출산을 하게 될까봐 겁이난 세희는 조심스럽게 배를 감싸쥐고 서둘러 방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돌아오지 않을까?’


‘아이는 도대체 어디로 데려 간거지?’


‘만약에 그녀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하지? 나 혼자서 아이를 낳아야 하나?’


그런 생각으로 방을 둘러보았다.

미영이 누워 있던 이불을 한 켠으로 밀어내고 자신의 이불을 펴고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피곤한 몸을 뉘었다.


잠을 자야 하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뱃속의 아이는 이미 잠이 들었는지 미동도 없지만, 정작 그녀는 금방이라도 곯아 떨어져야 하는 몸과는 다르게 정신은 점점더 맑아졌다.


이런 추운 밤에 그것도 금방 아이를 낳은 몸으로 모든 것들을 삼키는 눈보라 속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간 미영과 갓난쟁이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선택을 한 미영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뱃속의 아이에게도 닥치게 될 것 같은 불안한 미래가 공포감이 되어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세희는 기다리고 있다.

금방이라고 문을 열고 아이를 걱정하면서 눈을 비난하는 미영의 얼굴이 들어올 것 같았다.


모든 소리들을 눈이 삼키고 있다.

세영은 그 속에서 행여 들리지 않을까하는 미영의 소리를 찾으려 한다.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런 이별을 예상을 했지만 너무 빠르다.

세영은 전혀 준비 되지 않은 이별이다.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과 자신이 미영의 입장이었으면 돌아오지 않을거라는 이중적 마음이 계속 갈등한다.


돌아오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짙어지면서 세희는 이제 자신과 자신의 뱃속 아이를 걱정해야 했다.

지금이 그곳을 도망 나오던 밤보다 더 무섭다.


아마도 의지할 사람이 없어서다.

미영이 옆에서 도와줄거라는 생각에 출산에 대해서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고, 모든 것을 혼자 해나가야 한다는 새로운 공포감이 철저히 혼자라는 생각으로 세희를 몰고 가고 있었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공포스러운 외로움이다.


그래서일까?


지금 세희가 가장 보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 남자의 얼굴이 갑자기 떠올랐다.

한번이라도 그를 더 만나고 싶어서 괜실히 뒤돌아 보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세희는 아무도 모르게 도망가야 한다는 것은 받아 들였지만, 혜성을 만나면 안되는 이유는 여전히 믿고 싶지 않았다.


혜성이 역시 그녀만큼이나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었다.

그런 혜성이 아이의 생명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 전혀 말이 안되었다. 그녀의 이성으로는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다.


아이를 원한다는 그의 말이 아직도 그녀의 귀에는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임신을 한 그녀를 민기에게 맡기고는 한번도 찾지 않던 그를 생각하면 야속했고, 무심한 그의 행동에서 의사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망을 나왔었다.


이렇게 완전히 혼자이고 보니 더욱 의지할데가 그리워져서인지 무심한 혜성의 생각만 났다.


세희는 여전히 혜성을 사랑하고 있었기에 혜성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가 보고 싶은 것이다.


민기의 말을 완전히 사실로 믿어버리면 세희는 지금까지 자신이 믿고 사랑했던 그와의 모든 시간들이 거짓으로 변해버려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을 잘 알기에 애써 부정하면서 그와의 과거를 간직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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