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너무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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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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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17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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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07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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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운석우(1)]

DUMMY

[64화-운석우(1)]


“어둠이 다가온다. 우리 종족 마지막 희망은 새로운 세계들을 향해 기약 없는 여정을 떠났다. 그들은 살아남을 것이고, 우린 죽을 것이다. 그러나 우린 죽음으로서 어둠의 여정을 묶어둘 것이다. 우리 문명 최후의 발악은 어둠도 결코 무시할 수 없으리라.”


모성을 개조하고, 모성계의 태양을 압축하여 동력원으로 삼은 세계함을 필두로 그들은 종족 최후의 항전을 기다렸다.


“우리의 요람들은 어둠에 삼켜졌고, 이제 남은 것은 초라한 불빛에 불과할지라도..., 의미는 있으리라.”


그것은 희망이었다.


부디 어둠에 상처를 입힐 수 있기를.


저 두렵고도 강대한 존재에게 우리의 발버둥이 의미가 있기를.


헛된 희망이라는 것을 알아도, 그들은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리고 어둠이 도착했다.


“포문을 열어라! 에너지를 공급하라!”


함대의 모든 함선이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세계함의 주포가 빛을 뿜어냈다. 저 어둠에 비해선 지독히도 초라하지만, 그럼에도 그들 종족이 쌓아올린 문명의 정수가 그 빛에 담겨 있었다.


한 성간 제국의 마지막 불꽃이 타올랐다.


그러나 어둠에는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드래곤 로드와 파종자들이 미지의 종족과 조우하기 지구 시간으로 한 달 전의 사건이었다.



●●●



펑!


머리가 터졌다. 마치 생일 케이크를 사면 상자 옆에 붙여주는 폭죽을 터트리듯.


수십의 인간들의 머리가 날아간 광경은 악몽에서 볼 법한 끔찍한 모습이었으나 이 자리에 그 정도로 호들갑을 떨 인간은 없었다.


“이거 참..., 운명이란 얄굿군요.”


다이달로스는 두 손을 들어올리며 자신의 뜻을 전했다.


무너지는 공간 속에서 도망치는 것도 생각할 법했지만, 그는 그런 선택지를 고르지 않았다. 대신 얌전하게 항복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에 협력한 거지? 배후는?”


휘청이며 다이달로스에게 다가온 세아는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다이달로스의 행동에는 스스로의 의지가 없었다. 마치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말할 수 없습니다.”


입을 다물어버린 다이달로스를 보며, 세아는 이를 갈았다. 그리고 드래곤 로드는 흥미진진한 눈으로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보는 겁니까?”


“재미있는 일이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드는 구나.”


“별로 재미있는 일은 아닙니다만...”


다이달로스는 눈을 찌푸리며 그렇게 말했지만, 드래곤 로드는 오히려 더욱 흥미로운 표정으로 다이달로스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너에게서 인간이 아닌 것의 냄새가 난다. 지구 인류도, 다른 세계의 인간도 아닌..., 다른 무언가..., 언젠가 한 번 맡아본 것도 같은 냄새인데..., 음...? 생각은 잘 안나는 군. 고블린 비슷한 이 냄새, 내가 어디서 맡아봤더라?”


드래곤 로드의 눈빛에 다이달로스는 움츠려들었다. 분위기는 가벼웠지만, 드래곤 로드의 눈은 그의 생각을 꿰뚫어보는 것만 같았음으로.


“긴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지 않겠나. 그것도 아무도 찾을 수 없는 은밀한 곳에서. 나또한 그대들에게 전달할 사실이 있으니.”


“나, 나는...!”


“이는 그대를 위함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손님 한 명 더 추가로구나.”


드래곤 로드의 말을 끝으로 다이달로스가 만들어낸 아공간은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



“으으아아아아악!”


오라클, 제나니 메이즈는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식은땀이 그녀의 몸에 가득했고, 창백한 안색은 불치병을 앓는 병자처럼 그녀를 보이게 만들었다.


얼굴을 가린 제나니는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침대?”


그리고 자신이 낮선 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병원이잖아.”


“내가 옮겼다. 쓰러져 있더군.”


“조지?”


탁!


조지 켄트는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간병인을 위한 테이블에 책을 올려둔 그는 손을 뻗어 제나니의 이마를 집었다.


“열은 내렸군.”


“체온계가 있을 것 아니야.”


“가지고 오는데 시간이 걸리니까.”


제나니는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조금 차가운 조지 켄트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감고 그 촉감을 만끽했다.


“세계대전 때문에 바쁠텐데...”


“난 미국인이지만, 인류의 다섯 영웅이지. 어느 특정 세력의 편을 들 수는 없어. 너처럼 뒤에서 암약할 수는 있겠지만.”


“시은이나 마우이는 그런 거 신경 안 쓰던데?”


“진짜 신경 안 쓰는 건 시은이지. 그녀는 너무 자유분방하니까. 마우이는 어디까지나 본토 방위에 국한될 뿐이고. 해널드는..., 음..., 밀린 논문을 쓴다고 하던데, 이 전쟁통에도 대단하군.”


잠시 조지 켄트는 제나니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었다. 그렇게 아무런 대화도 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어둠을 봤어.”


“어둠?”


“모든 빛을 잡아먹는 어둠, 그리고 우리 인류의 멸망.”


팔로 눈을 가리며, 제나니는 말을 이어나갔다.


“새로운 시련이로군.”


“생각보다 담담하네.”


“좋은 예언은 없는 법이니까.”


“그거 엄청 상처받는 말이야.”


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예언자가 쏟아내는 예언은 대부분이 어두운 미래를 그리는 법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최고의 예지 능력자 제나니 메이즈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방법을 찾을 수 없는 미래는 처음이야.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미래로 향하는 운명이 보이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하지? 진짜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없다는 말이야? 그건 너무 하잖아.”


눈물을 흘리는 제나니를 빤히 바라보던 조지 켄트는 상냥하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너는 너무 예지에 매몰되어 있어.”


“당연하지! 난 예지 능력자라고!”


내일 아침 메뉴조차 미래를 보고 정하는 예지 능력자가 판치는 형국에 제나니 자신 정도면 상당히 양호한 편이었다. 그 점을 고려해도 스스로가 예지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였다.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아.”


“아니! 미래는 정해져 있어. 운명이 정해져 있지 않을 뿐, 미래는 도착지고, 운명은 길이야. 우린 우리가 바라는 미래를 위해 운명이란 길을 걸어 나가는 거야.”


“그럴지도. 하지만 길을 바꿀 수 있다면, 미래도 바꿀 수 있는 거잖아.”


“그걸 위한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도 최후에는 멸망할 뿐이란 말이야!!!”


모든 운명이 하나의 종착지를 가리킨다.


어둠


인류의 끝


그 사실이 제나니의 정신을 좀 먹었다.


“그렇다면 내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하겠군.”


“뭐?”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걸.”


병실의 커튼을 활짝 걷은 조지는 제나니를 바라보았다.


창문을 통해 햇살이 쏟아졌다. 아침 햇살에 비친 조지 켄트의 모습이 무척이나 눈이 부셔서 제나니는 무심코 빤히 그를 바라보고 말았다.



●●●



목석의 위성 가니메데에 건설된 무인 기지는 기지라고 부르기도 초라한 작은 관측 센터에 불과했다.


하지만 목성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한 이곳은 인류 우주 과학 발전에 엄청난 이바지를 하고 있었다.


비록 전쟁으로 인해서 그간 보낸 정보들은 말짱 도로묵이 되었지만.


-가니메데 관측 파일 전송, 목성 관측 기록 전송, 우주 관측 결과 전송, 이상으로 오늘 할당된 임무를 마칩니다.


지구로 정보를 전송한 무인 기지의 AI는 다시 관측 업무에 대부분의 리소스를 할당했다. 그리고 관측을 개시했다.


목성과 목성 주변 위성들의 관측 자료가 무인 기지에 속속 도착했다. 새로운 발견은 없었다. 하지만 비슷한 자료를 모으는 것도 의미가 있었기에 인공지능은 반복해서 자료를 수집했다.


그러다가 이상 현상을 발견했다.


-별이?


보이지 않았다.


어제까지 관측되던 무수한 별들은 어떠한 징조도 없이 사라졌다. 그 사실이 특별히 무감정하게 만들어진 인공지능에게 불안함을 불러 일으켰다.


마치 고대의 제사장이 별의 운행을 보고 징조를 발견하고, 운명을 예측했듯이 인공지능은 별들의 소실이 어떠한 징조처럼 느껴졌다.


-이상 관측 발견, 기록 개시...!


하지만 놀라운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운석 발견, 발견, 발견, 발견...!


엄청난 수의 운석이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그 모습은 마치 죽은 별들의 시체가 달려오는 것처럼 보였다.


-언데드?


왜 그런 생각을 떠올린 것인지 인공지능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기지의 인공지능은 지금 나타난 저 운석들이 마치 망자들과 닮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운석우의 경로 계산 개시, 완료. 82%의 확률로 지구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됨.


끔찍한 계산 결과에 인공지능은 경악했다.


-긴급 통신 발송!


마도구를 통해 실시간 통신을 연결한 인공지능은 지구를 향해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쏟아지는 운석우를 바라보았다.


-끝이란 것은..., 참으로 허무하군.


치솟는 감정을 다스리며, 인공지능은 기지로 날아드는 운석우 속에서 기지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



무수한 운석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 멀리 떨어져 있었고, 대비할 시간은 있었다.


무엇보다 태양계의 방패라고 할 수 있는 목성이 지구로 향하던 운석의 절반 이상을 끌어안은 덕분에 조금이나마 숨통을 틀 수 있었다.


“하지만 위급상황이지.”


인류의 우주전함들이 지구로 향하는 운석의 요격 임무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크게는 소행성 정도되는 운석들을 모두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새로운 수단이 필요했다.


“네놈들...!”


여행자는 울부짖었다. 그의 모든 것이 표백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지구인들이 만들어낸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시작했다.


“도망쳐야 한다! 어둠이 온다! 죽은 별들의 군세는 시작일 뿐이다!”


필사적으로 몸을 뒤트는 여행자는 당장이라도 자신의 모든 기능을 활성화한 후, 지구를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동체는 그의 통제를 벗어났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울부짖으며 자신을 풀어달라고 인간들에게 간청하는 것뿐이었다.


“당연히 안 되지. 어디서 너 혼자 도망을 가려고.”


연구자 한 명이 웃었다.


긴장감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희망이 담긴 웃음이었다.


“네 선체는 굉장해. 무수한 정보를 저장하기 위한 기능 말고도 튼튼함도, 우주 항해 능력도..., 자체적인 무기는 없지만, 네게서 뽑아낸 데이터로 만들어낸 실험 병기들을 탑재할 거야. 그런 너라면 충분히 운석우를 정리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가능하다. 가능하다. 내가 운석들을 없애주겠다. 그러니 날 풀어다오! 날 없애지 말아다오!”


“하지만 넌 우리가 쓰기에는 믿을 수가 없어. 그러니 우리가 서로 신뢰하기 위해서라도 이 작업은 필요해. 물론..., 너는 영원히 사라지겠지만.”


믿을 수 없는 외계의 피조물에게 지구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당연히 삭제해버리고 그 자리를 충성스러운 인공지능으로 대체해야하지 않겠는가.


여행자가 비명을 질렀다. 사라져가는 자신의 자아에 절규하면서.


그러나 누구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대항할 수 없는 마법이라는 힘은 끝내 여행자를 굴복시켰다.


지구의 새로운 무기는 오랜 여행자의 죽음 너머에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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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67화-소울 링크(7)] +6 21.06.05 177 1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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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66화-그렘린(2)] +4 21.04.04 200 8 12쪽
178 [66화-그렘린(1)] +6 21.04.03 257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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