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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아재
작품등록일 :
2020.05.18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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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4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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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발로 걸어 온 행운(2)

DUMMY

데핀은 순순히 대련의 자리에 서 주었다. 저런 호승심은 싫지 않다면서. 오해이기는 했지만 바로 잡지는 않았다.


나는 목검 한 자루를 들고 데핀의 앞에 선다. 어느 새인가 우리 주변에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데핀은 먼저 오라고 손짓을 한다.


온 몸에 오러를 흘린다. 몸 안 쪽이 따스해지는 감각. 숨을 들이 마시고 앞으로 달린다.


목검이 부딪히며 소리가 울린다. 데핀이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치켜 올린다. 서로의 검격이 교차한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치열한 공방이 이어진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감탄의 소리가 멀어진다. 시야는 오직 데핀이 휘두르는 검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먼저 몸이 올바른 길을 찾아 움직인다. 그러던 순간 아직 데핀이 휘두르지도 않은 검로가 보였다.


그걸 보고 본능적으로 데핀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허공을 가르는 데핀의 검. 손잡이를 놓고 오른 손으로 데핀의 턱을 향해 장타를 날린다. 제대로 된 손 맛. 데핀의 고개가 젖혀지며 그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그 모습이 느리게 비추어진다.


데핀이 바닥에 떨어지고 나서도 나는 한참 동안이나 장타를 내지른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잘했다. 막 오러를 다루게 된 녀석치고는 쓸만한 움직임이었어.>


에일린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현실로 되돌아왔다. 주변에서 환호성이 들린다. 이길 생각은 아니었는데. 얼떨떨하게 서 있는 내 등을 칼페가 후려친다. 예상치 못한 충격에 앞으로 나자빠졌다.


“도련님. 강해지셨군요!”

“어. 응.”


몸을 일으킨 다음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경외가 끼어들어 있었다.


본의는 아니었으나 목표한 바는 이루었다. 이걸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망나니 같던 다렌은 잊혀 졌을 것이다. 대신 기사를 이긴 다렌이 거기에 자리를 잡았겠지.


아무리 데핀이 영지의 기사 중에 가장 약하다 한들 기사는 기사. 그를 이긴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리고 장래가 기대되는 무인이라는 인식이 형을 뛰어넘는 괴물이라는 인식으로 바뀌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이제 이들 앞에서 힘을 드러내지 않을테니.


얼마 안 가 정신을 차린 데핀이 몸을 일으키고는 나에게 다가온다.


“설마 오러에 막 발을 들인 도련님에게 지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접대해준 거지?”

“저는 언제나 전력입니다. 도련님.”


다음번엔 이길 거라 말하는 데핀의 투지가 부담스러웠다.


*


1


“도련님. 상태는 어떠십니까?”


몸을 씻고 나서 방으로 돌아가던 중 만난 리트나가 물었다.


“멀쩡하대도. 너 내가 훈련장에서 대련을 했다는 이야기 듣지 않았어?”

“네. 들었죠.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할 말이 많습니다.”


다렌이 막 나가던 시절에도 직언을 멈추지 않던 리트나다. 내가 나아지는 기색이 보여서인지 예전보다 잔소리의 빈도가 늘었다. 내 잘못이 없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그래도 적당히 해야지. 슬슬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아.


“봐봐.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건강해졌어. 활력이 넘친다니까.”

“며칠 전까지 병상에 누워계시던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셔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아파서 병상에 누워있던 게 아니라 너랑 아버님이 강제로 병상에 눕힌 거잖아. 침대에 누워있을 때도 나는 과도할 정도로 멀쩡했어. 얼마나 멀쩡했으면 너나 아버님이 없을 때 혼자서 몸을 움직였겠냐.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변명을 해봐야 쓴소리만 더 들을 게 뻔했으니까.


한참 잔소리를 듣던 나는 방에 도착하고 나서야 잠을 자겠다는 핑계로 리트나를 떠나보낼 수 있었다. 오늘 잠을 안 자고 마환단을 먹을 생각이라는 걸 알면 난리를 부리겠지. 문을 잠가둘까.


<다렌. 평상시대로 행동을 하며 들어라. 다른 사람이 있다.>


문 손잡이를 잡은 손이 움찔거렸다.


<네 뒤에 있는 커튼 뒤에 사람이 하나 숨어있구나. 손에는 비수를 들고 있어. 암살자다.>


암살자? 나를 죽이러 올 이유가 있나?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하기엔 늦었다. 지금 해야 할 것은 암살자에 대한 대처다.


<책상 위의 등불을 키고 책장을 둘러보는 척 하거라. 아직은 널 노릴 생각이 없는 듯하니.>


등불로 어두운 방을 밝힌다. 하지만 창문 곁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저기에 사람이 있다고?


에일린이 거짓을 말했을 리 없다는 걸 알지만 무심코 의심해 버린다. 자그마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으니까.


<지금이다. 맨 오른 쪽 커튼에 꽃병을 집어 던지고 검을 뽑아 들어라.>


꽃병이 부딪히며 커튼이 걷힌다. 거기에는 복면을 쓴 남성이 있었다. 그와 나의 시선이 마주친다. 나는 에일린을 뽑아 들고 그를 향해 내달린다.


팔을 들어 꽃병 조각을 막아낸 남성이 나를 향해 비수를 던진다. 첫 공격은 고개를 틀어 피했지만 두 번째 날이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어느 것도 치명상은 아니야.


<죽이지는 마라! 제압만 해!>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암살자는 도주를 포기하고 무기를 꺼낸다. 내 얼굴을 향해 내질러지는 단검을 피하고 암살자의 머리를 잡아 땅에 처박는다. 일순 움찔거리던 암살자는 다시 한 번 머리를 처박아주자 움직임을 멈췄다.


이걸로 됐..


어라?


시야가 흔들린다.


<다렌! 정신을 붙잡고 오러를 끌어올려라!>


그녀의 말대로 오러를 끌어올리니 희미했던 시야가 선명해진다. 독이구나. 제기랄.


간신히 정신을 붙잡은 나는 해독제를 찾기 위해 암살자의 몸을 뒤적인다. 하지만 그의 품에서 나온 것은 반지 하나뿐이다.


이 반지는.


복면을 벗겨 암살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당장 죽을지 모르는 상황인데 웃음이 새었다.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복이 굴러들어온 셈인데.


쿨럭.


입에서 비릿한 맛이 느껴진다.


<다렌. 잘 들어라.>

“빨리 말해요.”


조금 있으면 정신을 잃을 것 같아.


<마환단을 먹거라. 그 강대한 기운으로 독을 짓눌러 독이 퍼지는 걸 막는게다.>


에일린의 말을 따른다. 아무리 죽는 게 일상인 다렌이라지만 게임의 스토리가 시작되기도 전에 죽고 싶진 않아.


떨리는 손으로 서랍을 열었다. 검은 빛의 마환단.


환단을 입에 넣고 가부좌를 튼다. 하수구에 이틀 정도 절여진 음식을 먹은 것 같은 끔찍한 향과 맛.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몸 안을 관조한다. 물밀 듯 퍼져나가는 오러의 파도가 실낱같던 하천의 길을 강제로 넓힌다. 미칠 듯한 고통에 혀를 씹을 것 같아 이를 꽉 깨물었다. 내가 여기서 죽을까 보냐.


2


암살자는 입을 열지 않는다. 언제든 자결을 할 듯 형형한 눈은 영주가 그 어떤 회유를 꺼내도 달라지지 않았다. 영주는 당장에라도 목을 쳐내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아냈다. 대신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평화에 매몰되어 버린 건가. 암살자가 저택에 들어오는 걸 허락하다니. 영주는 엉망이 되어버린 방 안에서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요 근래 사람이 바뀐 듯 제정신을 차린 다렌이지만 이전까지는 이곳저곳에 원한을 사고 다녔다. 영주가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사과를 하며 어떻게든 수습을 했으나 그것도 한계가 있다. 그러니 지금도 다렌에 대해 악감정을 지닌 이들은 여기저기에 넘쳐나겠지.


암살길드가 요즘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방심의 결과가 지금이었다. 영주의 귀한 아들은 몸에 퍼지는 독을 다스리기 위해 꼬박 반나절에 가까운 시간동안 오러를 운용하고 있다. 당시 다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덕분에 다렌을 괴롭히는 독에 대해 알아볼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다렌의 몸에 섞어 들어간 독은 치명적인 것이다. 다렌이 어떻게든 억누르고 있지만 대처를 잘못했다면 한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해독제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도시의 성직자니 의사니 하는 사람들을 모두 모아 해결책을 연구하고 있지만 성과는 지지부진하다. 영주가 보기에 결과가 나올 때는 다렌이 목숨을 잃고 한참이 지날 때일 것 같았다.


결국 해답은 암살자만이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암살자의 태도가 저 꼴이니. 영주는 골이 아파 눈두덩이를 눌렀다.


그러던 중 리트나가 문을 열어젖히며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상기된 얼굴을 한 채 소리친다.


“도련님이 깨어나셨습니다!”


영주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게 정말인가!”

“예! 영주님을 뵙고 싶다고.”

“바로 가지!”


다렌은 자신의 방에서 가부좌를 한 채로 눈만을 뜨고 있었다. 얼굴은 초췌했으나 눈빛만큼은 이전보다 청명했다.


“아버님. 오셨습니까.”


거친 목소리. 독을 완전히 해독해낸 것이 아니다. 그저 늦추어 두고 있을 뿐. 그게 오래가지 못할 것임을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영주는 그걸 알면서도 아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긍정의 말을 내뱉었다.


“아들아! 걱정마라! 영지의 의사가 해독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분명 곧!”

“아버님. 암살자를 만나게 해주십시오.”


3


영지의 사람들이 제 아무리 노력을 해봐야 제 시간에 해독제를 만들어내지 못할 건 뻔하다. 이건 영지의 사람으로서 냉정하게 계산을 하고서 내린 결론이다.


마환단이 준 오러를 정리해 냄으로서 독이 퍼지는 걸 막고는 있지만 시시각각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에일린은 기껏해야 하루를 버티는 게 한계일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암살자를 설득해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오러에 집중하지 않고 움직이게 되면!”


아버님의 말을 끊어낸다.


“아버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이러나저러나 죽는 건 마찬가지라는 걸.”


반박은 없다.


“방법이 있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이전의 다렌이었다면 모를까 지금의 나는 많은 걸 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니 아버님도 거절의 말을 내뱉지 못하고 고민을 거듭하신다. 그러다 아버님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인다.


옆에 있던 리비아가 고함을 친다. 도련님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환자라고. 움직이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아버님의 결심은, 또한 내 결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가부좌를 풀고 몸을 일으켰다.


<지금부터 세 시간. 그 안에 끝을 봐야 한다.>

“여유롭네요.”


담담히 말을 하는 에일린을 내버려 둔 채 아버님을 따라 방을 나선다. 그러다 발을 헛디뎌 휘청거린 순간 리트나가 내 몸을 붙잡아 주었다.


“정말 방법이 있으신 거죠?”

“그럼. 나를 못 믿어?”

“예. 도련님을 믿을 바에야 개 등에 날개가 달렸단 말을 믿겠습니다.”


나름 독한 말이기는 했지만 에일린의 독설로 달련된 내 말은 그런 걸로 흔들리지 않아.


아버님이 나를 데려다 준 곳은 저택 지하에 있는 감옥이었다. 다렌이 미친 짓을 저질렀을 때 이따금 여기에 갇혀 반성을 하게 된 적이 있었지. 정작 다렌은 조금도 정신을 차리지 않았지만.


감옥의 가장 깊숙한 곳에 온몸이 묶인 암살자가 있었다. 그는 철창을 지키는 병사들을 넘어 베일 듯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저랑 이 녀석만 있게 해 주실래요?”

“다렌!”

“도련님!”


걱정 어린 그들의 소리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믿어 주십시오.”

“..너. 만일 일이 잘못되면 땅에 묻힐 생각은 말거라.”


아버님은 으름장을 놓으시고는 이대로 갈 수 없다 발버둥치는 리트나를 데리고 병사들과 떠나가셨다. 그나저나 아버님. 저희 가문의 전통은 화장이니 땅에 묻히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닙니까?


홀로 남겨진 걸 확인한 나는 암살자의 앞에 반지를 던졌다.


“당신. 암살길드. 에드의 일원이지?”


작가의말

내일 9시에 예약을 해둘 생각이었습니다만 엔터키가 절로 눌려져서..

네. 제가 이렇게 부주의 합니다.
부디 재밌게 봐주시면 좋겠네요.

※ 일부 묘사의 수정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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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연기력(2) +2 20.06.08 417 13 11쪽
23 연기력(1) +2 20.06.07 465 20 12쪽
22 던전 탐색(4) +3 20.06.06 473 2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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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던전 탐색(2) +2 20.06.04 500 21 12쪽
19 던전 탐색(1) +5 20.06.03 519 21 12쪽
18 계획대로(4) 20.06.02 536 23 11쪽
17 계획대로(3) +1 20.06.01 534 27 11쪽
16 계획대로(2) +1 20.05.31 581 28 12쪽
15 계획대로(1) 20.05.30 592 23 12쪽
14 에드(3) 20.05.29 610 22 11쪽
13 에드(2) +3 20.05.28 609 24 11쪽
12 에드(1) +3 20.05.27 667 26 12쪽
11 범인 수색(2) +4 20.05.26 726 25 12쪽
10 범인 수색(1) +3 20.05.25 725 27 11쪽
9 제 발로 걸어 온 행운(3) +4 20.05.24 814 24 13쪽
» 제 발로 걸어 온 행운(2) +2 20.05.24 831 24 12쪽
7 제 발로 걸어 온 행운(1) +3 20.05.23 886 31 12쪽
6 보여줄게. 달라진 나(3) +3 20.05.20 916 29 12쪽
5 보여줄게. 달라진 나(2) +2 20.05.20 953 2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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