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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아재
작품등록일 :
2020.05.18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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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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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수색(1)

DUMMY

6


“훈련을 하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검만 휘두를 수는 없어요.”


이제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점차적으로 늘어날 거다. 그러니 수련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게 되겠지. 지금처럼 하루 종일 구르다 쓰러지는 생활을 반복할 수 없다. 훈련을 하되 짧고 굵게. 해야 하는 것만.


<네가 바란다면 그리 해주마.>


에일린은 생각보다 간단히 내 제안을 받아들여주었다. 그게 무서웠다.


내 부탁을 들어주었으니 기뻐해야 할 텐데 어째서 뒷골이 쌔 한 걸까. 나는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꺼낸 걸지도 모르겠다.


불길한 예감을 뒤로 한 채 옷을 갈아입는다. 평소 다렌이라면 입지 않을 단정한 옷으로. 거기에 더해 중절모를 걸치고 안경을 쓴다.


여느 게임에서 그러하듯 크로노스 테이블에서도 안경은 최고의 변장아이템이다. 개그성 에피소드가 많기는 했지만 안경의 효용성은 여기저기에서 증명되었다. 그러니 나도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변장을 끝내고 거울을 바라본다. 거기에는 한껏 멋을 낸 다렌이 있었다. 역시 안경을 쓴다고 못 알아보는 건 게임 속의 이야기지.


<옷의 날개구나. 너인지 못 알아 볼 지경이다.>

“그런가요? 제가 보기엔 별 다를 것 없어 보이는데.”

<느낌이 달라. 만약 옷을 갈아입는 걸 못 봤다면 너인지 몰랐을 게다.>


과장하시기는. 헛웃음과 함께 안경을 벗으려던 순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리트나다. 기왕 꾸민 거 리트나에게도 어떤지 물어볼까.


“들어와.”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등을 돌렸다.


리트나는 무난한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눈에 띄지 않고 수수한 옷이었으나 그녀에게 잘 어울렸다. 기왕이면 악세사리 몇 개로 포인트를 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나가는 김에 몇 개 사줄까.


“..도련님?”


그녀는 눈을 껌뻑이다가 망설이듯 말했다. 그렇게 달라 보이는 건가. 나는 전혀 모르겠는데.


<안경이 네 굶주린 늑대처럼 사나운 눈을 가려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평생 안경을 쓰고 다니는 걸 추천하마.>


에일린. 쓰잘데기 없는 조언을 해달라고 한 적 없어요.


“그럼. 나지. 리트나. 설마 모시는 주인도 못 알아보는 거야?”

“실례했습니다. 어째선지 도련님이 순한 양처럼 보여 무슨 마법을 부리신걸까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야?”

“예. 저니까 알아본 거지 다른 사람이라면 도련님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겁니다.”


역시 갓경인가! 게임적 과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효과를 발휘할 줄이야. 안경을 벗어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으려니 에일린이 끼어들었다.


<안경이 대단한 게 아니라 네 눈매가 하도 더러워 그걸 가리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변하는 게야.>


안 들려요. 안 들립니다. 팩트 따위 듣지 않을 거에요.


“그럼 가볼까?”

“상태가 안 좋아 지시면 바로 돌아오시는 겁니다.”

“알았어. 걱정 하지 마.”


한 낮의 영지는 사람들의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막 들여온 신선한 과일이 있다고 소리치는 상인. 음식 냄새로 군침을 돌게 만드는 노점. 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 그 풍경을 구경하며 걷다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발견했다. 거기는 영지의 공고가 붙는 장소였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공고의 내용을 확인해본다.


[다렌 H 시데이나님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 상처의 치유를 위해 삼사란초나 진전초가 필요합니다. 만일 이 약초를 구했을 경우에 저택으로 가져다주시기 바랍니다. 영주가 직접 값을 치르고 구입하겠습니다.]


“솔직히 말해 지금도 도련님이 이 공고를 내라고 하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진전초는 그렇다 치고 삼사란초는 독초지 않느냐. 혹여 내가 갇혀있던 시간 동안 새로운 활용법이 발견된 게냐?>


두 사람의 의문은 당연했다. 삼사란초나 진전초가 지금은 잡초 같은 취급을 받는 풀 들이다. 이걸 값을 주고 사들인다고? 지금 당장은 멍청한 행동처럼 보일 것이다. 지금은 말이야.


“이유는 간단해요. 제가 다쳐 쓰러졌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죠.”


그래서 두 사람에게 다른 이유를 설명했다.


“봐. 삼사란초나 진전초나 길을 다니다보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잡초잖아. 그런 풀을 가져다주면 돈을 준다니 소문이 금세 퍼질걸.”

“그러니까 소문을 퍼트리기 위해 삼사란초와 진전초를 구입하신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렇지. 어차피 그 풀을 다 사들여봐야 금화 한 개가 안 될걸?”


지금쯤이면 영지 내 어지간한 곳에는 이 공고의 내용이 퍼져있을 것이다. 내가 중상을 입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이들도 있겠지. 암살의뢰를 내건 이라면 꼴좋다며 웃고 있지 않을까.


그런 사람 앞에 멀쩡한 내가 얼굴을 보이면 반응이 나온다. 아무리 포커페이스에 익숙한 이라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는 당황하기 마련이니까.


제일 먼저 가볼 곳은 영지에서 가장 유명했던 레스토랑이다.


“여기인가요. 이 곳의 주인 분께선 도련님께 별다른 감정이 없을 텐데요.”


가세가 기운 레스토랑 앞에 선 리트나가 말한다.


“리트나. 네가 몰라서 그래.”


이 곳은 한 때 영지를 대표하는 식당이었다. 이 곳의 음식을 먹기 위해 타 영지의 귀족들이 찾아오는 곳이었지.


지금은 그렇지 않다. 다렌이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식당의 음식을 비난했기 때문에.


사교계에서 악명이 자자한 다렌이다. 그런 망나니조차 비난한 식당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다렌이 욕한 식당이라는 소문은 이전까지 잔잔히 퍼지던 식당의 명성을 잡아먹어 버렸다. 그 일 이후로 돈을 마구 쓰는 귀족들의 발길이 끊겼다.


단골들이야 계속 식당을 방문해 주었지만 그걸로는 레스토랑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했다. 경영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직원의 수가 줄고, 건물의 크기가 줄고, 음식의 질까지 낮아져 어느 샌가 주인 혼자 일하는 식당으로 바뀌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수도의 식당으로, 혹여 왕성으로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몰랐던 주인의 미래를 꺾은 건 다렌이다. 그런 주인이라면 분명 다렌을 죽이고 싶다 생각할 법 했다.


문을 열고서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한산한 가게의 모습에선 과거의 영광을 찾기 어려웠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주인이 주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초췌해진 그의 얼굴에 가슴 한켠이 시렸다.


“죄송하지만 이 곳은 더 이상 영업하지 않습니다. 식사를 하고 싶으시다면 여기서 오른 쪽으로 가십쇼. 거기에 썩 괜찮은 가게가 있습니다.”


주인장은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이대로 들이대 봐야 들여보내주지 않을 것 같아 안경을 벗었다.


놀람은 없다. 그저 살짝 눈썹이 들어 올려 졌을 뿐. 증오하는 상대를 앞에 둔 것치고는 담백한 반응이다.


“도련님이었어요? 아프다고 하시더만.”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돌아다니고 싶었거든.”

“겨우 그런 것 때문에 공고를 내신 겁니까. 정말 바뀌시질 않네요.”


한심하다는 듯한 주인장의 눈빛이 아프다. 차라리 내가 예상했던 대로 증오 가득한 눈으로 욕지거리를 했다면 당연한 반응이라 생각했을 텐데. 그저 뭔 짓을 하냐는 듯이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지.


“당신. 날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제가요? 구두쇠 영감님이라면 모를까. 저는 도련님께 별 감정 없습니다.”


어라?


“하지만 내가.”

“영주님께서 설명 안 해 주셨습니까?”


진상을 이러했다. 당시 다렌은 주인이 내놓은 음식의 맛이 이상하다며 불평을 표했다. 당시의 주인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맛있기만 한데 왜 그러냐면서. 대립은 이어졌고 그건 커다란 소란으로 번졌다.


“도련님이 먹으신 음식. 정말 맛이 이상했습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거지만 제 미각에 이상이 생겼지 뭡니까.”


뭐?

“그래서 가게의 규모를 줄이고,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미각에 의지하지 않고서 요리를 하기 위해서.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음식의 질이 일정하지가 못해서. 가게를 도저히 유지할 수가 없더군요.”


그러면.


“도련님과 제 가게가 망한 데는 별 관련이 없다. 이 말이죠.”

“나는 그런 말 들은 적 없어.”


당혹스러운 나머지 절로 말이 새어나왔다.


“아마 영주님께서 일부러 말을 안 하신 게 아닐까요. 너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이 망할 수도 있다. 좀 정신을 차려라. 하고.”


리트나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죄책감을 가지고서 정신을 차렸으면 하는 아버님의 바람이 숨어있었던 거겠지. 정작 다렌은 맛없는 걸 없다고 말한 게 무슨 죄냐며 억울해했지만. 생각해보면 이건 딱히 다렌의 잘못은 아니잖아.


“어쨌건 저는 도련님께 감사했으면 감사했지 도련님을 미워하진 않습니다. 도련님 덕택에 제 미각에 이상이 생긴 걸 알게 되었고, 도련님 덕분에 영주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니까요.”


내가 소동을 피운 덕에 아버님을 만났고, 아버님과 이야기를 나눔으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게 되었다고. 덕분에 좌절을 딛고 더 높은 곳으로 향할 수 있었다며 너스레를 떠는 주인에게서 악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첫 번째 용의자부터 이렇다니. 나머지 사람들도 다 내 착각이고 오해인 건 아니겠지.


적어도 영지의 두 명. 그리고 영지 밖의 두 명은 분명 다렌을 미워한다. 크로노스 테이블의 스토리에서도 그랬으니까. 이 세계에서도 다르지는 않을 거야.


“오신 김에 제 음식이나 먹고 가시죠. 제대로 완성했다 자부하는 음식입니다. 이번에는 입맛 까다로우신 도련님도 먹고 감탄 하실 걸요.”

“..그럴게.”


주인이 주방에 들어가고 난 뒤 테이블에 엎어졌다. 의욕이 싹 달아나 버렸어.


“그러게 제가 아닐 거라고 했잖아요. 도련님.”

“나는 몰랐잖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용의자의 수가 줄어든 거잖아. 게다가 주인이 나를 싫어하지 않는단 사실도 알게 되었어. 충분히 좋게 생각할 여지는 많아.


이십 여분이 지났을 즈음 주인장이 접시 두 개를 들고 나왔다. 그가 들고 온 음식은 크림 파스타였다.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였지만 음식에서 나는 향은 절로 침을 삼키게 될 정도로 폭력적이었다. 리트나와 내 시선이 음식에 고정된다.


그 모습을 본 주인이 어서 먹어보라며 우리를 재촉한다. 우리 둘을 못 이기는 척 크림파스타에 손을 뻗었다.


적당히 탄력 있는 면. 입 안을 부드럽게 감싸는 크림의 고소함. 그 끝에 느껴지는 알싸한 매운 맛. 저택의 조리장에게는 미안하지만 그가 만들어준 파스타보다 훨씬 맛있다.


무엇보다 음식을 먹고 있으면 몸 안의 무언가가 채워지는 듯한 이 느낌이 정말.


잠깐.


“주인. 당신 이름이 뭐였지?!”

“갑자기 말입니까?”

“빨리 말해줘.”

“어. 제 이름은 가르진입니다.”


가르진. 나는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게임의 스토리가 중반 부에 달해 주인공이 수도로 갈 즈음 만나게 되는 인물. 왕국 최고의 요리사라며 칭송받는 남자.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바로 버프 요리의 선두자라는 것이다.


이 사람을 붙잡아야 해!


작가의말

저번 화 내용이 대폭 수정되었습니다.

당장은 스토리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겠지만 나중에는 분명 영향이 있을 겁니다.


이게 다 고민없이 글을 쓴 작가의 잘못입니다. 다음엔 이런 일이 없게 주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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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에드(1) +3 20.05.27 667 2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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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인 수색(1) +3 20.05.25 725 2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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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제 발로 걸어 온 행운(2) +2 20.05.24 830 24 12쪽
7 제 발로 걸어 온 행운(1) +3 20.05.23 886 31 12쪽
6 보여줄게. 달라진 나(3) +3 20.05.20 916 29 12쪽
5 보여줄게. 달라진 나(2) +2 20.05.20 953 2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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