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 제작
로베르타가 일찍 떠난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며 프로스트는 밥상에 똥 씹은 얼굴로 앉을 수밖에 없었다.
앨리스의 요리 실력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직접 보고 먹어야하는 상황이 닥쳐오자 표정이 찡그려지는 것은 당연했다. 심지어 이자벨라에게 맞은 터라 오른쪽 눈 두덩이가 퍼렇게 멍들은 모습.
“식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 건가요? 흑....”
한쪽 눈만이라도 초롱초롱한 시선으로 프로스트를 바라보는 앨리스. 그녀가 지은 밥은 물을 얼마나 많이 넣었는지 떡져있었고, 콩나물국이라며 담아준 국은 콩나물 특유의 비린내가 남아있는데다 색깔도 왠지 모르게 주황색이었다.
“저기 앨리스?”
“네?”
“밥은 그렇다쳐도 콩나물국인데 왜 누런빛도 아니고 진한 주황색이야?”
콩나물국에 들어가야할 재료를 순서 상관없이 넣고 끓여도 주황빛은 나오지 않을 터였다. 그렇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자리 잡은 국은 주황색. 호기심보다는 거부감이 숟가락을 들기를 거부했다.
“저번에 칼국수처럼 육수를 내보려고 주방에서 이것저것 꺼내 넣어봤어요.”
이것저것. 할망구의 조미료는 자신조차 모르는 것들이 수북하게 쌓여있었기 때문에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렇구나......”
그녀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는지라 옆을 힐끔 봐라봤지만 희령 또한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한참 모자란 능력치건만 자신을 조롱한 이자벨라에게 아직도 울분이 쌓인 듯 아직까지 손에 검을 쥐고 있었다.
‘본의가 아니라는 것을 들어도 희령님 성격상 뭐라도 베고 싶겠지......’
이자벨라의 성욕이 폭주하고, 힘이 강해진 덕에 벌어진 참사. 프로스트는 희령이 앞뒤 가리지 않고 주변을 헤집어 놓더라도 방관할 생각이었지만 실제로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아닌 척 애쓰고는 있지만 외양간에 자리 잡은 존재들 덕분이었다.
“그럼 한 번 먹어볼까?”
“네.”
“우선 앨리스부터.”
“저...부터요?”
“물론.”
앨리스를 먼저 먹게 한 다음 안전을 확인하려는 속셈이었다.
“아, 참! 옷 갈아입혀드리려 했는데. 금방 하고 올게요.”
본인이 만든 음식이건만 적절히 핑계를 대며, 상에서 빠져나갔다.
“나도 여자였으면....!”
짠 눈물과 함께 밥을 우선 크게 한 입 떠먹어보자, 생각 외의 맛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생각보다 나쁘지 않잖아?”
그렇기에 그 느낌 그대로 불안한 감정을 애써 무시하고 국을 떠먹어 보지만 그대로 프로스트의 의식이 꺼졌다.
음머어어어어어
요란한 누렁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프로스트의 눈이 자연스럽게 떠졌다.
“아이고 두야......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자심이 침대에서 잠든 기억도 없건만 일어나자마자 찾아온 두통에 기억을 더듬더듬 짚어본다. 그리고 떠오르는 지옥의 콩나물국.
“......역시 무리였나?”
맛 좋은 밥에 현혹된 나머지. 자신이 담근 안전한 김치가 아닌 콩나물국에 무심코 손을 뻗어 그 후로 의식이 끊겼다는 사실까지 떠올렸다.
이 시간에 앨리스에게 어제 일에 대해 물어볼 수도 없고, 누렁이와 짹짹이가 배가 고픈 것도 같아 서둘러 프로스트는 외양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머어어
끼어어오오
분명 이른 시각. 짹짹이만 일어났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누렁이까지 빨리 밥을 달라고 울어대는 모습에 프로스트는 재빨리 볏짚과 모이를 안쪽으로 뿌려주었다.
“어째 조용할 날이 없는 거지. 위대하신 누렁님과 짹짹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심결에 나온 본심이었고 반응이라고는 저번처럼 침을 뱉으며 쫓아낼 것이라 생각했지만 전혀 다른 일이 벌어졌다.
『하던 대로 해.』
“에?”
무언가 중후한 목소리. 갑작스레 머릿속에 들려온 말에 프로스트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이곳에는 누렁이와 짹짹이 무리밖에 없었다.
“설마......”
푸르르르 투!
누렁이에게 가졌던 트라우마조차 잊고 무방비하게 다가갔다가 뱉어진 침에 당해버린다.
“우욱...... 그럴 리가 없지.”
역한 냄새에 올라오는 구토감을 애써 참으며, 프로스트는 씻기 위해 외양간 밖으로 나갔다.
『요번 녀석은 이성한테 참말로 인기가 많네.』
『저번에 갑자기 사라진 녀석도 젊을 적에는 인기 많았어.』
『그려그려.』
『저 놈 옛날에 겁나게 예의 없던 투지(鬪志)꼬맹이도 가지고 있구먼.』
『쉰내 난다. 영감.』
“야 싹바가지. 냄새난다.”
“압니다......”
외양간을 나오자 마루에는 희령이 배를 벅벅 긁으며 잔소리를 했다.
“알긴 개뿔이 밥이나 잘 챙겨주면 침 맞을 일도 없었겠지.”
“희령님이 대신 해주시잖아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임마!”
툴툴대는 프로스트의 말뽄새가 마음에 안들었던 희령은 화를 버럭 내며 어제 제작한 따끈따끈한 검을 내던졌다.
“우와아앗!”
“밭으로 와라. 싹바가지.”
빠르게 냇가로 도망치는 프로스트의 뒷통수에 희령이 그리 소리쳤다. 그리고 내딛는 단 한걸음. 허나, 그 한걸음이 곧장 매직 시드를 심어놓은 밭으로 축지가 발동되었다.
“신령님이 어인일로 밭까지 행차하셨습니까?”
“아. 밭 일 좀 구경하다가 바로 수업 들어가려고.”
“그렇습니까? 그럼 제 식사는......”
“어제 주먹밥 줬잖아. 귀찮다고.”
“저녁부터는 쫄쫄 굶었습니다만.”
주먹밥 요리사의 진실이 밝혀진 충격보다는 배에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 때문에 폴른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자리에서 쓰러졌다.
“저 왔습니다. 뭐야? 폴른. 일 하라니까 자고 있네.”
“내비 두고. 내가 왜 오늘 여기까지 온 것 같으냐?”
“음...... 모르겠네요. 아뇨아뇨 생각났습니다.”
프로스트의 자동 반사적인 대답에 희령의 주먹이 올라가자 급히 생각난 듯이 손사레를 친다.
“어제 못한 부적 제작법에 대한 수업 아닙니까?”
“진작 대답하면 얼마나 좋아. 싹바가지. 맞아. 오늘은 쉬는 틈틈이 부적 제작이다.”
본래 어제 저녁에 해야할 일이었으나, 이자벨라가 폭주하는 바람에 일정이 꼬여버렸다. 그렇기에 매직 시드를 기르는 작업을 하며, 동시에 부적 제작법까지 배워야만 했다.
“대충 어제 과학국 철조망 너머까지 갔다 왔는데......”
“거기까지요?”
“닥치고 들어라.”
“넵.”
“소음이 끊이질 않고 있었거든. 병기란 병기는 죄다 국경지 쪽으로 몰아넣은 모양이더라고.”
가장 기본이 되는 전차부터 그 외의 특수한 병기들까지 대충 훑어본 희령이었다. 마력 탐지기까지 국경 부근에 설치했기 때문에 희령 또한 그 탐지망에 걸렸으나, 그들이 희령의 축지를 따라잡기란 요원했고, 심지어 각국의 정세야 뻔했기에 추적자를 따로 보내지 않았다.
“당장에 어디든 기습을 가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군요.”
딱히 별 대꾸를 하지 못했다. 희령이 이렇게 나서는 이유도 자신이 매직 시드에 매일 같이 시달리는 이유도 결국 자신이 약하기 때문에.
“일단 저 정도 자란 걸 보면 수확이 머지 않은 것 같은데. 맞지?”
“우선 제일 먼젓번에 심어놓은 5개 중에 4개는 플랜트 몬스터가 아니라면 오후쯤에 수확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놈이 몬스터일 확률이 높아서 수확 시기가 꽤나 늦어질 것 같아요.”
실제로 유독 높게 자라난 녀석의 열매는 크기는 작지만 모양만큼은 일반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어보였다.
“그런데 매일 양분, 수분, 마력 보급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이해하는데 그렇게 저녁직전까지 해야 할 작업인거냐?”
매일 들었던 의문이었다. 공급해주는 것이야. 축지를 익힌 프로스트의 입장에서 일정 시간을 주기로 왕복을 하면 되었던 부분이지만 항상 그가 돌아오는 시간은 저녁밥을 지을 때 쯤이었다.
“생각보다 주변 동물들한테 반응이 심합니다.”
“아...... 그럴만 하겠어.”
프로스트의 말에 주변을 순간 파악한 희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강하지 않은 존재들이 이곳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동물이랑 요괴 아니 마법제국하고 과학국은 몬스터였지. 암튼 꽤나 많이 노리고 있네?”
“그러니 폴른하고 교대로 이곳에 있잖습니까.”
저번의 저녁 이후로 폴른은 딱히 저들과 교전을 치르지 않았지만 그들이 그런 태도를 보였다는 것만으로도 경계의 의미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럼 나는 이 녀석을 바로 집에 던져놓고 올 테니까. 빨리 정리 끝내 놔라.”
희령이 폴른을 어깨에 매고 축지를 밟아 자리에서 사라지자, 프로스트는 곧바로 양분과 수분이 단 하루 만에 고갈되기 직전인 땅에 도술을 사용했다.
매일 같은 작업에 질리기도 하건만. 강해진다는 목표의식이 뚜렷해진 현 시점에서 그런 투덜거림은 희령에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각 작물마다 요구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중간점이었고 매직 시드를 심어놓은 이 지역은 풍수(風水)를 최대한 맞춰 놓은 지역이었다.
풍은 기후와 풍토를 수는 물과 관련된 전반된 환경에 영향을 미치기에 음양오행에서 비롯된 풍수는 농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오행부와 땅에 불어넣을 마력까지.”
땅에 심어놓은 수와 토의 오행부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수분과 양분, 마력까지 땅에 풍부해지며 일대의 작물이 확연히 눈에 보일 정도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마력을 넣는 양?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최소의 양만을 남겨두고 전부 불어넣는다.
‘한 번 성공해서 얻을 능력치를 생각하면.....’
보다 높아진 능력치를 기반으로 탄력이 붙어 하루 5작물이었던 패턴이 6, 7, 8로 늘어난다면 지금까지 날린 시간을 충분히 메우고도 남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 작가의말
강해지는 장면이 생각 외로 길어졌습니다....... 싸우면서 강해지는 타입이 아니다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곧바로 전쟁에 들어가기 전에 앞선 화들에서처럼 혼자 머릿속에서만 정리하여 빠른진행만을 고수하다 독자님들이 이해하기 불편하실 부분들을 좀 줄이고 싶었습니다.(솜씨가 아직 부족하지만요)
아직까지 업로드 시간에 대해서 언급해주시는 분이 없어서 월~금 15 or 16시 업로드는 계속 진행할까 합니다.
매번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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