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란
프로스트라는 인물에 대해서 코메트는 알 수 있는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아는 것이라고는 자신보다 먼저 태어난 블레이즈라는 쓰레기를 이제는 재활용도 할 수 없게끔 만들어버린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을 지켜주는 그리즈만이라는 아이와 똑같은 유저라는 사실 정도.
검황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그를 죽일 목적이었으나 수치스럽게도 그 어떠한 성과도 내지 못한 채 코메트는 로베르타에게 당해버렸고, 그리즈만이 겨우 구해주었기에 살아남았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그 로베르타가 따라다니는 거죠?’
그녀가 프로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가장 생각난 사람이 로베르타라는 사실이 참 웃겼지만 이제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는 너무 약합니다.”
“네?”
타이밍 맞게 그녀의 부름에 방으로 들어서던 그리즈만이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고민 있어요?”
“저랑 같이 과학국에 갔다 오지 않겠어요?”
“그곳은 왜......”
“저랑 평생을 약속할.......아니 하게 될 사람이 그곳에 있답니다. 궁금해서 꼭 가 봐야겠어요.”
자신은 한 없이 약하다. 소년이 순수하다는 것, 그리고 이 세상에서의 싸움을 적당한 놀이로 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점 때문에 아무리 어리다고 한들, 이 소년을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과학국으로 향하겠다고 코메트가 말한 것은 현재의 시점이 소년에게는 최고의 상황이었다. 그도 프로스트가 올린 글을 본 랭커였으니까.
“시간만큼은 넉넉하네.”
프로스트는 앨리스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최단 거리로 약속한 장소로 향하지는 않았다. 마법제국의 마법사들, 특히나 퀘이사라는 자의 추격이 걱정되기 때문이었고,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과학국의 병력들 때문이었다.
“갈수록 빡센 느낌도 들고.”
또한 수도를 향해 향하면 향할수록 병력의 규모는 커졌고, 간격은 더욱 좁아졌으니 섣불리 움직이기도 애매한 상황. 충돌이 불가피하다면 남은 선택지는 충돌뿐이기에 품에서 오행부를 꺼내든 프로스트가 이동하려는 순간이었다.
끼리리릭
대기중이던 과학국의 전차들이 포신을 회전시켜 어딘가를 향해 조준을 하기 시작한 것. 그 포신이 향하는 끝에는 검을 쥔 자들이 100여명 흙먼지를 휘날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검사? 그렇지만 분명 검황국은 오지 못할 텐데?”
특전으로 열린 챗창으로 들은 이야기로는 검황국으로 보내진 과학국의 대병력에 의해 발이 묶여 있어야할 시간이었다.
때문에 고려하지 않은 자들이었지만 그들은 결국 전장에 나타났다. 심지어 실력 또한 출중한 듯 포탄의 비를 뚫으며 순식간에 근접전투의 양상으로 만들어버렸다.
전방에 배치된 부대의 이상을 보고받아 주변의 과학국 병력들 또한 합류하자 일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다.
“지금이 기회다.”
작금의 시기를 놓쳤다가는 몇 시간이고 발이 묶일 것은 안 봐도 뻔했다. 축지를 밟아 시끄러워진 전장을 최고속도로 주파해 나간다.
그가 지나가는 곳은 이미 사람의 온기가 떠난 도시였고, 공장이었으며, 양식장이었다. 검황국이 과거 동양의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듯한 풍경이었다면 과학국은 현대 지구의 인위적이고 생산적인 풍경만을 가득 채워놓은 모양새였다.
“팍팍하군.”
[그래도 과학국의 국민들은 다 만족해.]
“......!”
잠시간 마력의 회복을 위해 버려진 도시에서 발걸음을 멈추었건만 누군가 있었던 모양. 공원 옆에 세워진 스피커로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습을 드러내고는 싶지만 내가 너한테 대항할 능력이 없어서 말이야.]
“딱히 적대하지 않는다면 해칠 생각은 없는데.”
[우리쪽에서 너는 위험인물로 지정된 지도 오래라고. 군 데이터베이스에는 네 업적이 적나라하게 적혀있어. 읊어줄까?]
어떤식으로 적혀있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자신의 족적이야 자신이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괜히 듣지는 않기로 결정한 프로스트가 입을 열었다.
“유저인가?”
[딩동댕. 정답이야. 유저 중에서도 거의 최하에 속하는 편이지.]
“능력치를 올리기는 쉬울 텐데?”
그가 만나온 유저들은 현 시점에서 대부분 랭커였고, 그렇게 약하던 앨리스마저도 최소 능력치가 후에는 30에 가까웠다. 이곳의 평범한 주민들보다는 강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
[적응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못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야. 그런 의미에서 과학국은 우리가 살던 곳과 크게 다르지 않아. 오히려 편의는 좋다고 봐야할 수준이지.]
마력을 이용한 농법도, 뛰어난 신체를 사용한 사냥도 불가능한 이들이 선택한 길은 양산과 생산이었다. 육류와 어류 그리고 작물 등을 연구, 개발, 번식시켜 시설을 통해 무수히 생산해내는 것.
심지어 기계의 도움이 있으니 힘과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유저든 원래의 주민이든 너나할 것 없이 과학국으로 오는 선택지를 골랐다.
“아직 시간은 넉넉하니 물어보지. 내게 접근한 이유는 설득인가?”
[맞아. 대륙의 패권은 과학국이 잡아야함이 옳다고 생각하거든. 이곳에서 약자의 비율은 70%는 족히 넘길 거야. 과장해서 말하자면 검황국과 마법제국의 괴물들을 기준으로 잡는다면 95%가 일반인 수준이겠지.]
“......하지만 방법이 잘못됐어. 그리고 약자들은 결국 어딜 가나 희생된다. 너희는 그런 약자들은 외면하는 건가?”
앨리스와 그녀의 친구들이 그러했다. 저들이 편하게 지내온 그 시간동안 그들은 어딘가에 갇혀서 실험을 당했고, 하나둘 죽어나갔다. 자신들만이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좋은 세상이라면 분명한 모순이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아주 잘 알고 있어. 그러니까 난 그것이 약자라고 하는 거야. 저항할 힘조차도 없고, 외면해야만 하니까 약자인거지.]
“그렇다면, 그 현실을 안다면, 과학국을 딱히 편 들어줄 입장까지는 아닐 텐데?”
[하지만 약자들의 편의가 가장 보장되는 것도 과학국이다. 대륙 인구 밀집만 보더라도 과학국이 앞서고 있어. 그게 증명이지.]
대다수의 약자들이 선택한 곳은 그의 말마따나 과학국이었다. 마력과 체술 그 어떤 재능의 눈꼽만큼이라도 존재하지 않는 이들이나 진정한 재능의 벽에 가로막혀 좌절한 이들이 선택한 곳.
“어차피 전쟁은 벌어졌고, 나는 구해야할 사람이 있으니 네 설득은 실패야.”
[그런 것 같네. 그래도 랭커 중 한 명인 네가 알아줬으면 했어. 과학국이 약자들에게 어떤 울타리인지.]
마력수치가 20만 되어도 시엘 타운에서는 뛰어난 편이었다. 한데 그조차도 채우지 못한 이들은 불량배나 권력자에게 휘둘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과학국은 그렇지 않았다.
평등했고, 편했으며, 자진해서 병에 지원할 정도로 이들 모두가 그 인프라와 시스템을 따랐다.
“기분을 더럽게 만드는 것에는 성공했네.”
화르르륵
염무로 확성기가 달린 철기둥을 잘라낸 프로스트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에도 그는 앨리스를 구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대다수의 사람? 알게 뭐야.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챙기는 거다. 꼬우면 나처럼 시골에서 혼자 잘 지내던가. 결국 말려들었지만.’
생판 모르는 대다수의 남을 위해 소수인 자신과 앨리스가 포기해야한다면 자신이 약자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지구가 아니다. 힘이 있다면 챙기는 것이 옳았다.
“이것만은 말해두지. 난 어느 특정 국가의 승리를 바라지는 않아.”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시 굳히기 위해서였고, 자신도 어떠한 국가든 망하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기에 읊조린 말이었다.
예정된 시각까지 7시간.
“아이언블러드의 상태는 괜찮나?”
“그게....... 분명 강력한 생명력을 지닌 분이셔서 버티고는 계시지만 근원적 문제인 독의 해독에 대해서는 저희도 아직까지 해독제가 없다고 합니다.”
“독이라......”
아이언블러드가 대군을 이끌고 검황국을 공격했지만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검황국의 황궁과 수도도 물론 멀쩡하지는 못했지만 가장 큰 타격은 3명밖에 없는 대장 중 한 명인 아이언블러드가 당했다는 것.
“예상치 못한 변수로군. 생존한 자들에게서 받은 정보는?”
“병력은 마찬가지로 소수지만 기존에 존재하던 황실 부대가 아닌 것 같았다고 합니다.”
기존에 있던 쉔롱 휘하에 있던 황실 병력들은 1차 저지를 위해 나서던 중 전부 죽어버린 후였고, 새롭게 육성한 랭커들을 중심으로한 병력이 주였으니 강한 것은 당연했다.
“하.......이제 마지막 보루는 나랑 펜타곤인가.”
“내가 그리도 못 미더운 사람이던가?”
“꽤 큰 손해라 한숨이 나오는군. 너도 아마 퀘이사 공작을 저지하는 데에 모든 힘을 쏟겠지. 나마저도 전선에 있다면 지휘할 인원이 남지 않는다.”
“나 혼자 전부 막을 수 있으니 걱정 마.”
펜타곤의 자신감이 어디서부터 나오는지 로스앨러모스 또한 모르지는 않았다. 과학국에서 예산을 쏟아 만든 그 거대한 기계를 꺼내면 분명 저지할 수 있을 것이나 결국 제국의 공작과 황국의 파악되지 않았던 강자가 나타난다면 확신할 수 없었다.
“핵부터 외곽 최전선을 향해서 쏴봐.”
“진심인가? 그건 거점파괴의 용도로서 최적화된 병기야. 아군과 영토의 피해를 감당해야한다.”
저지선을 만들고 있는 다수의 병력들과 방사능으로 인해 오염될 토지까지 돈으로 환산해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소모될 것이 분명했다.
“돌아갈 곳을 없앤다면 죽기살기로 덤비겠지만 병력이 죽는다면 차라리 다음을 도모하겠지. 그 사이에 우리는 코어를 사용해 전쟁을 끝내면 되는 거야.”
“자네가 아이언블러드같은 말을 할 줄은 몰랐군.”
“저번에 간만에 셋이 모였을 때.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
“.......?”
“아니. 괜히 이야기를 꺼냈군.”
순간 진심어린 살기가 로스앨러모스를 훑었다.
“하하하하. 뭐, 안 그랬으면 좋겠네. 오래 지낸 사이니까.”
그러나 낌새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평소의 쾌활한 웃음을 지으며 펜타곤은 방을 나갔다.
“대장이라고 자리 잡은 셋의 꼴이 정말 말이 아니군.”
그가 평소에 짓던 사무적인 표정이 얼굴을 가린 손바닥 뒤에서 말끔하게 지워졌다.
- 작가의말
슬슬 과제에 치이며 살고 있습니다. ㅜㅜ
독자님께서 제게 응원의 한 마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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