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M: 신의 쇼핑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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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요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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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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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8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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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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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WOM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DUMMY



발로 찬 깡통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날았다. 둔탁하게 먼 곳에서 탁, 소리가 났다.


“제길! 제길!”


요 며칠, 운수가 없다.


어제는 하피 한 마리가 날아들어 살고 있던 집 뚜껑을 날려 먹었다.


거기에 하나밖에 없던 내 친구는 오늘 몬스터와 싸우다 죽어버렸다.


“던전에 들어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술을 마셔서 혓바닥이 꼬여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팔다리가 뽑힌 채, 눈에 피를 흘리며 나를 바라보던 친구의 마지막이 어른거린다.


밑바닥 인생이던 우리가 횡재할 방법을 찾았다고 기뻐하던 녀석이었는데, 죽어버렸다.


애초부터 잘못된 거였다.


어제 의뢰비가 빵빵하게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술집에서 기분을 낸답시고 앉아 있지 않았다면.


던전이 하루 정도 관리자 없이 붕 뜬다는 이야기만 듣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 던전이 가깝지만 않았다면.


그랬다면 녀석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녀석이 죽은 건 나 때문이었다.


주인 없는 던전에서 몬스터를 피해 다니면서 보물상자 몇 개만 털어 나오면 된다고 그 녀석을 꼬드긴 건 나였다.


여차하면 데리고 튈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호기롭게 말한 것도 나였다.


‘가노, 빨리 도망가!’


녀석의 단말마가 귓가에 맴돈다.


내 유일한 스킬, 질풍은 나를 던전 밖으로 이끌었다. 무의식적으로 한 일이었다.


당당하게 말했던 것처럼 녀석을 데리고 튀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나왔는지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얼굴에 말라붙은 눈물 위로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으스러진 냉장고에서 소주를 하나 더 꺼내 입에 꽂아 넣었다. 미지근했다.


바닥에는 안주로 먹던 싸구려 옥수수 캔이 굴러다녔다.


반쯤 따인 옥수수 캔에서 슬라임이 튀어나왔다. 옥수수를 먹었던 모양인지 슬라임 안에 옥수수가 차 있었다.


역겨웠다.


나는 캔을 뒤집어 슬라임을 가두었다. 몇 없는 식량이 이렇게 하나 또 없어졌다.


암담한 기분이 들었다.


비틀거리며 구석에 놓인 침대에 걸터앉아 손에 든 술을 마저 들이켰다. 녀석의 옷가지가 침대에 뭉쳐 있었다.


갑자기 어제 하피가 급습했을 때가 떠올랐다.


집이 반이나 날아갔지만, ‘반지하라 목숨을 구한 게 어디야.’라고 녀석은 밝게 웃었다. ‘살아 있어야 뭐든 할 수 있어.’ 덧붙이는 모습까지 눈앞에 서렸다.


입을 막았다. 눈물이 쉴새 없이 흘렀다.


막은 입 사이로 히끅거리는 소리가 비집고 나왔다.


우리가 조금 더 그럴듯한 스킬을 갖고 있었다면.


그랬다면 고아원에서 나와서 사는 곳이 몬스터 출몰지역 반지하가 아니라 펜트하우스였을 거다.


이건, 다 우리가 F급 헌터여서, 스킬이 이것밖에 없어서였다. 나는 질풍, 녀석은···. 아니,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녀석은 이제 없다.


가슴에 들어있는, 녀석의 목숨과 맞바꾼 종잇조각이 무겁다.


문제의 보물상자를 열었을 때 ‘WOM’이라 쓰인 종잇조각 하나만 들어있었을 때, 얼마나 허탈했던가.


그리고 바로 녀석은 죽었다. 처참하게.


“이깟 종이 때문에!”


나는 가슴팍에서 종이를 꺼내 바닥에 팽개쳤다.


떠다니는 먼지 사이로 종이가 팔랑거리며 떨어졌다.


“아오, 취해서 그런가.”


종이가 떨어지며 자동으로 펼쳐지자, 나는 두 눈을 비볐다. 종이에 글자가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알아볼 수 없는 문자였지만, 붉은 잉크로 쓰여 있어서 불길해 보였다.


녀석을 죽인 종이라서 그런가.


저주받은 물건 같으니, 나는 쪼그리고 앉아 종이를 집어 들었다.


종이가 생각보다 얇고 날카로워 손끝이 베였다.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손가락에서 피가 방울방울 맺혀 종이로 스며들자, 붉은 글씨가 점점 더 빼곡해졌다.


눈앞이 휘청였다.


술을 먹어서 그런가, 글자가 울렁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짜증 나네.”


나는 중얼거리고는 양손으로 종이를 잡고 비틀어 찢었다. 큰 조각을 모아서, 작은 조각으로, 작은 조각을 모아서, 먼지로.


작디작은 조각이 될 때까지 종이를 찢었다.


허리춤을 더듬거렸다. 주머니에 다행히 라이터가 있었다. 담배를 피우는 녀석이 가끔 라이터를 까먹어서, 하나씩 챙겨 다니곤 했다.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되겠지.


라이터에 불을 댕겨 작은 조각이 된 종이에 붙이며, 나는 상념에 잠겼다.


술을 먹어서 눈앞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어? 어어?”


바닥에서 몸이 떠오른다. 1센티, 5센티, 30센티, 그리고 조금 더.


몸이 떠오르면서 균형을 잡을 수 없어 휘청거렸다.


휘청이던 나는 나도 모르게 털썩 드러누웠다.


지금 내가 환각을 보는 건가?


술을 너무 많이 먹었나?


아니면 새로운 몬스터인가?


아니면 녀석이 죽은 게 꿈인가?


‘어떻게 된 것이든 상관없어.’


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눈을 감았다. 주변에 바람이 휘돌아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러다가 비행 스킬 얻는 거 아냐? 속으로 나는 조소했다.


이제 무슨 소용이 있어,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 나왔다.


갑자기 감은 눈앞에, 강렬한 빛이 쏘아졌다. 눈이 부셨다. 태양 가까이 온 모양이었다.


“악!”


갑자기 중력이 나를 끌어당겼다. 귓가에 세찬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부드럽게 감싸던 바람이 아닌, 공기 저항으로 인한 강렬한 바람이 몸을 세차게 때렸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등에 강한 통증이 와닿았다.




나는 눈을 떴다. 구멍이 뚫린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좌우에 흩어진 피도. 누군가가 흩뿌린 것처럼 천장에도 피가 튀어 있었다.


천장에 튄 피가 똑똑, 빗방울처럼 바닥에 떨어졌다.


“추락사한 건가.”


이렇게 피를 많이 흘렸으니 죽어도 이상하지 않지.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짧은 인생이었다, 생각하며 몸의 상처를 살피기 위해 손으로 몸 여기저기를 짚었다. 하지만.


‘다친 데가 전혀 없잖아.’


높은 데서 떨어졌지만 다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지붕까지 뚫었는데도 말이다.


그냥 허리가 화끈할 뿐이었다.


‘그럼 이 피는 뭐지?’


나는 팔을 들어 붉게 물든 옷을 바라보았다.


비릿한 철분 냄새. 진한 피가 잔뜩 몸에 묻어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바닥에 흥건한 핏물이 고여있었다.


이상한 일이라 생각하며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내 몸에 깔려 있던 사람을 발견했다.


두개골이 무참히 깨져 있었다. 피는 이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틀림없었다.


창고 같은 이곳에서, 그는 목공 일을 하는 중이었던 것 같았다. 손에 톱이 쥐어져 있었고, 작은 나뭇조각과 끈이 다른 손에 쥐어져 있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사람을 죽인 건가.”


녀석이 죽은 모습이 이 사람과 겹쳐 보였다. 아무리 사고 같아 보일지라도, 내가 그를 죽인 것은 거의 확실해 보였다.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붉은 머리칼이 한 움큼 뽑혀 나왔다. 아픔에 정신이 조금 들었다.


“어떻게 하지.”


싸움을 먼저 걸지 않은 사람을 죽인 건 중죄다. 고의든 아니든. 내가 잘못한 것이다.


여긴 죽은 사람과 나밖에 없다. 정황상 내가 죽인 게 맞다.


“자수할까.”


이제 나의 선택지는 2개였다. 30년 정도 감방살이를 하거나 이 사람의 가족에게 돈을 물어주고 노예로 살거나.


어떤 걸 선택하든 내 인생은 끝났다. 운수가 지지리도 없더라니.


질풍이라는 최하급 스킬 하나만으로 버텨온 27년 인생이었다. F급 헌터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인생이었다.


그러나 길지도, 짧지도 않았지만 조금 더 잘 살고 싶긴 했다.


이렇게 사람을 죽인 것으로 마침표를 찍는 것은 인생 계획에 조금도 들어있지 않았다.


[희대의 살인마 ‘셀’을 살해했습니다.]


순간 내 눈앞에 한 문장이 떠올랐다.


‘살인마 셀?’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사람을 바라보았다. 머리가 으스러져, 눈알이 튀어나와 있었다.


나는 끔찍함에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쪽에는 물속에 절여져 있는 안구들이 보였다.


옆에는 피 묻은 메스와 정체 모를 고깃덩이가 나뒹굴고 있었다. 역겨운 냄새가 풍겼다.


“으악!”


소스라치게 놀라 문을 비틀어 열고는 밖으로 튀어나왔다.


머리카락에서 핏방울이 떨어져 얼굴을 적셨다. 눈앞이 붉어져 팔로 문질러 닦았다.


술은 이미 깬 지 오래였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살인마 셀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었다.


살인마라면 정부에서 수배했을 텐데.


현상금 헌터 최신판에도 방영되지 않았던 이름이었다. 매번 챙겨보던 프로여서, 나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뿀쎠쨰헤벼퉁”


문 앞은 숲이었다. 작은 공터에 사람들이 괭이와 칼을 들고 모여있었다.


이상한 말들이 들려왔다. 왜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작은 여자애가 나를 가리키며 무어라고 하자, 사람들이 일제히 내게 달려들었다.


우락부락하고 얼굴이 제법 험악한 사람들이었다.


“꿈 한번 기괴하네.”


눈앞이 다시 한번 새하얘졌다.


그것이 그날 내 의식의 마지막이었다.


***


눈을 떴다.


또 처음 보는 천장이었다. 지푸라기로 만들어진 소박한 천장.


피는 전혀 없었다. 아까의 일이 꿈결처럼 느껴졌다.


‘여긴 어디지.’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살아 있는 것 같다.


나는 눈을 좌우로 굴렸다. 누워 있는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양손을 꼼지락거려보았다. 잘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자 그다음에는 팔을, 그다음에는 다리를 움직여보았다.


낡지만 깨끗한 옷가지로 갈아 입혀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묶여있지는 않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자, 돌로 된 벽이 보였다.


팔을 살짝 꼬집었다. 따끔거리며 아픔이 전해왔다.


꿈은 아니었다.


“상태창”


나는 소리를 죽여 중얼거렸다. 다행히 묶어두진 않았지만,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셈이었다.


기억을 잃기 전에 보았던 무시무시한 사람들의 면면을 생각하면 무서움에 몸이 떨렸다.


언제든지 대응할 수 있도록, 스킬을 세팅해둬야 했다. 그것이 질풍 하나밖에 없더라도.


최선의 공격은 도망이라고 하지 않던가.


“어?”


상태창 우측 상단부에 작은 버튼이 생겨 있었다.


붉은 글씨로 WOM이라고 박힌 글씨가 버튼 위에 선명히 나타났다. 나는 홀린 듯이 그 버튼에 시선을 가져다 놓았다.


몇 초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버튼이 부드럽게 눌러지더니 알록 달록 조각난 작은 입술이 떠올랐다. 나는 황당하게 입술을 쳐다보았다.


입술은 오물거리며 글자를 내뱉었다.


[시스템 동기화]


[사용자 확인, 가노 엘]


[WOM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질풍을 이용하여 ‘살인마 셀’을 처단하였습니다.]


[질풍의 후기를 작성하시겠습니까?]


“...뭐?”


작가의말

WOM, 신의 쇼핑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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