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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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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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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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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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화

DUMMY

도둑맞은 책에 덩달아 놀란 나나가 아직도 안수가 백면의 내생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그 무렵에 태강은 품 안에서 꺼낸 책을 돌려가며 구경하더니 감탄조의 말을 뱉었다.


“이런 걸 선견지명이라고 하나?”

“틀렸습니다.”


달목이 꼬투리를 잡았다.


“우연입니다.”

“우연 치고는 뭔가 더 끈끈한 인연의 미래가 감지된단 말이야.”


하지만 이를 단순한 참견 정도로만 여긴 태강은 끄떡없이 맞받아쳤다. 야담은 두 사람보다 네 걸음 정도 뒤에서 뒤를 조용히 따라 걷는 중이다.


“내놔.”


그러다가 이들을 앞지른 그는 길의 앞을 막으며 오른팔을 당당히 내밀었다. 책을 돌려달라는 의미로 태강에게 내뻗는 손길이었던 것이다. 관심이 없는 척 그쪽으로 눈길을 두지 않다가도 결국은 흘깃 야담을 바라본 태강은 못미더운 얼굴을 한다. 그리고 최대한 그에게서 멀어지도록 들고 있던 책을 뒤로 밀어버렸다.


“야담,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혼자 해결하려고 했던 거야?”


태강이 묻자 야담은 묵묵부답으로 천천히 시선을 서늘하게 바꿀 뿐이다.


“더 이상은 개입하지 말도록 해. 아직은 말이야.”

“그럴 순 없습니다.”


상황을 잠자코 지켜만 보던 달목이 대화에 개입해 야담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야담의 추리가 정말로 사실이라면 야담 홀로 맞선다는 건 무리일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황호 또한 원하지 않은 상황에 휘말린 것 같으니 더욱이 단독으로 움직이는 건은 삼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 그랬다가는 더 빨리 들켜버리고 말 거다.”


서로의 주장은 각각 일리가 있었기 때문에 둘은 상대방을 선뜻 겨누지 못했다.


“혹시 죄책감 때문에 그래?”


『거울나라』가 행여나 달아나지 못하도록 아예 야담에게 등을 보인 태강은 이 자세로 야담의 심기를 자극했다. 야담은 올라오는 화를 참기 위해 두 주먹을 꽉 쥐며 먼저 긴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 사이에도 태강은 이기적대며 책을 펼쳐보는 통에 화를 돋우었지만.


“무슨 죄책감을 이야기하는지 모르겠군.”

“왜? 잘 알 거 아니야. 그렇지 않아 달목?”


달목은 제 속생각을 가감없이 털어놓는 태강의 용기에 대답을 망설였다.


“그리고 이 책을 찾은 공로는 야담의 것으로 인정해줄게. 하지만 그전에 할 일이 있다는 걸 야담도 모르진 않을 거야.”

“뭘 말이지? 그리고 너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일을 꾸민 게 아니다.”

“녹수가 『거울나라』의 원본과 판본은 물론이고, 주석본까지 찾아다닐 정도로 이 책에 혈안이 되었다는 것까지는 알려줘서 고마워. 그것도 우리가 닦달해서 알아낸 거지만.”


하늘 위로 책을 들어 올린 태강은 덤덤하게 인사를 전했다.


“하지만 말이야. 우린 야담이 이렇게 하라고 하면 이렇게 하면 되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잖아. 손놓고 구경할 처지가 아니라니까? 게다가 나는 내 동생까지 먼저 보내야 했던 처지가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가만히 놀고 있을 수가 없어. 야담이 얼마나 간절하길래 이렇게까지 혼자 행동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이제는 그 정도로 간절하다고 말할 수 있다구.”


기회를 노리는 매서운 눈초리로 그 허공을 노려보면서도 야담은 바로 달려들지 않았다. 그저 태강의 잔사설을 들으며 지금의 기회 이후에도 기회가 더 있기를 기다리는 듯이 보였다.


“그러니까 도대체 황호를 찾으러 간 네가 왜 녹수를 쫓게 되었는지, 그리고 황호랑 녹수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있던 건지 알려 줘.”


태강이 꺼낸 본론은 모두가 두려워하는 가운데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라고 예상했던 이야기였다.


“제가 이렇게 태강의 뜻에 동의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나, 야담,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되도록 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왜 독단적으로 황호와 녹수를 찾으려고 했던 것인지.”


잠시 침묵을 지키며 대답을 미루던 야담은 어느 순간이 되자 바로 태강의 손에 들린 책을 낚아챘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이 등을 돌려 그들을 외면했다.


“아마 알고 싶지 않을 거다.”


야담의 목소리는 확연히 가라앉아 침울한 분위기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달목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도 않은 건너편에게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알고 싶지 않아도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자는 없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 그런 게 아니다.”


뒤이어 고개를 바닥으로 떨군 야담은 침통한 심정을 감추려는 것처럼 아예 어깨까지 움츠리며 말을 살짝 흐렸다.


“왜 그러는데?”


태강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정말 알고 싶지 않을 거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우리 중에 누구도 말이야. 어느 누구도.”

“야담. 솔직한 심정으로 알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알아야 하는 거잖아. 그래서 난 알고 싶다니까.”


그리고 투덜거리는 투로 회유하였으나 원하는 말은 바로 들을 수 없었다. 대신에 야담은 이들의 호기심을 더 자극할 법한 말을 꺼냈다.


“틀렸어. 너희는 알고 싶지 않아 할 거야. 태강, 네가 지금 아무리 진심이라고 해도 말이다. 왜 내가 너희 질문을 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나는 묻는 말에 답을 한 거다. 억울하게도.”

“어째서?”

“그야 너희 모두 이미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알아야 할 필요 같은 건 없는 거야. 우습군. 나 역시 지금의 너희처럼 뭔가 다른 게 있을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오히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 때문에 나는 그 고생을 했던 것이니. 또 알 수 있었지. 내가 이 문제에 관해 이미 알아버린 끝에 마침내 나는 이 문제에 관해서 조금도 알고 싶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야담이 드디어 몸을 움직여 달목과 태강을 마주했다. 약간의 실망과 적잖은 후회도 담긴 것 같은 눈길은 대체적으로 슬퍼 보였다.


“······설마 백면에 관한 것입니까?”


이대로 대화가 끊어지려던 찰나에 달목이 조심스럽게 던진 질문이었다.


“그래.” 야담은 이 순간만을 기다린 것처럼 곧바로 대답했다. “너희가 발견한 쪽지와도 관련이 있겠지. 그건 나도 고마워하고 있다. 이제 난연에는 볼일이 없다고 생각해서 돌아가지 않을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러던 와중에 아주 중요한 걸 놓칠 뻔했어.”


지금까지의 대화를 머릿속으로 정리한 태강이 땅을 쳐다보다가 또 하늘을 쳐다본 후에 마침내 야담과 눈을 맞추었다.


“그럼 녹수랑 황호, 그러니까 적어도 녹수는 지금 백면과 관련해서 어떤 일을 벌이고 있다는 말이야?”

“그렇다고 봐야지. 나 역시 추측으로만 두려던 것이었는데 황호가 남긴 쪽지 덕분에 확실시되었어. 이제는 틀림없는 일이 되었고.”


야담은 태강으로부터 빼앗은 책의 표지를 괜히 엄지로 쓸어 매만졌다.


“왜? 백면은 죽었잖아. 그리고 백면을 찾을 거면 이쪽으로 와서 우리랑 같이 백면의 영혼을 찾아나서는 게 빠르고 쉬운 거 아니야?”


태강은 이해가 되지 않아 잔뜩 고조된 목소리로 연신 묻고 또 물었다.


“진짜로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래. 녹수가 백면 생전에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도 아니잖아. 왜 백면이 위험해지는 건데?”

“오히려 사이가 좋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 많은 질문 중에 하나에 달목이 답했다.


“맞다. 사이가 좋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 끝까지 좋았을지는 둘만이 알겠지만. 녹수가 백면의 죽음을 아직 정리하지 못한 것만은 확실해.”


태강이 팔짱을 끼며 인상을 쓰는 동안에 뒤에서 도진이 그들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야담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그리고 이때는 나나가 드디어 안수의 정체를 스스로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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