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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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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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5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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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화

DUMMY

도진은 이내 안수가 그러한 것처럼 엄숙한 얼굴을 하더니 입술 아래로 주름이 잡힐 만큼 인상을 굳히다가 생긋이 웃어 보였다. 찰나의 변화는 기분의 전환을 기묘하게 일으켰다. 가면을 바꾸는 것처럼 이질적인 순간에 도진은 자신의 실수를 떳떳하게 인정했다.


“그렇겠군요. 제가 처음에 드린 말씀으로부터 더 나아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 도진 군에게 부탁을 드리고는 싶습니다. 이렇게 또다시 부탁하게 되어서 유감입니다만.”

“무엇인가요, 교수님?”


안수는 자신도 어느새 표정을 풀며 도진을 대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는 부단히도 눈가에 힘을 주어 상대방을 쳐다보고 있었다.


“먼저 이 질문부터 해야겠지요. 그 시집을 되찾을 수는 있을는지요?”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확답을 드릴 수 없는 사항이거든요. 하지만 찾으려고 모두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안수는 아쉬운 듯이 짧은 한숨을 고민에 빠진 눈짓과 함께 흘렸다. 그러다가 그는 보다 메마른 목소리로 간신히 속마음을 꺼내놓았다.


“나는 그 책을 꼭 찾았으면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도진과 나나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다면, 그래요. 도진 군의 말대로 어쩌면 내가 이 문제에 개입할 수밖에 없게 되겠군요. 도진 군의 말을 들으니 어떻게든 원본을 되찾고 싶단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하지만 죽은 성인이든 사라진 성인이든 12성인과의 마찰은 없이 원본을 되찾는 길로 말이지요. 만약에 두 사람이 내가 이 문제에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끼어들기를 원했다면 그럴 수는 없을 겁니다.”


도진이 입술을 앙 다물고는 잠시 고민하더니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안수는 한 술 더 떠서 아예 이들이 더는 백면을 언급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아버렸다.


“특히 백면에 관해서는 말이지요.”


나나까지 표정이 딱딱해진 탓에 분위기는 이전보다 더 가라앉았다. 입꼬리를 양옆으로 몇 번 옮겨가며 움직인 도진이 한 손으로 다른 손을 덮으며 자신의 온도를 확인했다. 그런 다음에 옆으로 고개를 돌려 나나를 쳐다보았다.


“아마 그럴 겁니다. 교수님께서 그러기를 원하신다면요. 어차피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알게 되기를 원치 않은 데에는 많은 분들이 찬성할 겁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정방향으로 안수를 바라보았다. 포개진 두 손은 제각각 그의 무릎 위에 하나씩 놓여진 후였다.


“저희도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지요.”

“교수님께서는 백면에 관한 것은 믿고 싶지 않으신 것 같지만, 그래도 인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교수님께서 백면의 내생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모두가 좌불안석해서 분위기는 지나치도록 더욱 인색해졌다. 하지만 금방 안수의 얼굴에서 냉기가 사라진 것은 그중에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그 표정을 부여잡고 시간에 끌려가는 것을 버티던 앞의 두 사람은 계속 기다렸지만, 안수는 쉽게 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군요.”

“믿으시면 될 텐데 어째서죠? 저희가 교수님께 거짓을 고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도진의 물음에 안수는 곰곰이 자신을 돌아보는, 일상적인 깊이의 반성의 눈길로 닫힌 문을 응시했다.


“그렇다고 해서 진실을 고하고 있는 것도 아닐 테니 말입니다. 오히려 나나 양과 도진 군이 거짓말을 했다면, 나는 진실이 무언지 쉽게 가려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 반대로 두 사람이 내게 진실을 고한다고 주장을 하니 나는 무엇이 거짓인지 알아내고 그것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한 겁니다.”


안수가 측면에 걸린 시계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너무 늦었군요. 나도 많이 지쳤고, 대화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배가 고프면 알게 되는 법이지요. 두 사람도 이만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이런 이야기는 밤이 깊어져서 해서는 안 될 종류의 내용을 담고 있으니까요.”


***


“그럼 소득이 없었던 거네?”


아이를 유모차에 눕히며 주위의 신선한 아침 공기를 깊게 들이마신 조이가 발랄한 어조로 말했다. 도진은 그 산뜻한 말이 꽤 날카로운 것을 두고 지레 눈을 찡그렸으나 이내 원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어.”

“어째서? 그 원본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히 환심을 사려고 한 거였다며. 그런데 환심을 사긴 했어도 결국에 백면의 내생이라는 걸 인정하지는 않으셨잖아.”


도진이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그럼 헛수고였던 거 아니야?”

“꼭 그렇지도 않다니까.”

“그래서 어째서 그러냐고 물었잖아. 도와주지 않을 거면서 뭘 그렇게 말을 장황하게 해?”


가방에 물건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확인하던 조이가 따끔한 언질을 주었다. 눈을 돌리니 아기가 옆으로 누워 장난스러운 손짓으로 허공을 어지럽히며 도진을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에 바로 반응한 도진이 아이를 똑바로 눕혔다. 아이를 가누느라 굽힌 허리를 바르게 펴며 그가 다소 기운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첫째로, 교수님께서는 우선 자신이 백면의 내생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실 생각인 것 같아. 그러니까 이건 시간 문제라는 거지. 둘째는,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예감에 불과하기는 해도 그 시집이 백면과 관련이 있다는 게 틀림없어진 이상 교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래서 미리 부탁을 드려놓은 거야. 나중에 무슨 일이 있어도 거절하시지 못하도록.”


조이는 약간 뚱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미심쩍은 눈치를 주었다.


“부탁은 내생에 관한 점만 드린 거 아니야? 믿어달라고.”

“그랬지.”

“그런데 어떻게 이후에 거절하기 어렵게 되는 거야? 백면에 관한 건 웬만하면 빠지고 싶다고 하신 거였잖아. 나도진,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


나름 웃으며 말해보았지만, 조이는 진심을 가지고 꽤 신중하게 도진을 걱정하고 있었다. 도진은 자신은 괜찮다는 뜻으로 눈을 느리게 감아 뜨며 그녀에게 답했다.


“아니, 아직은 아무도 착각하고 있지 않아.”

“무슨 소리야?”

“모든 걸 기억하기 쉬운 사람은 그 바람에 기억하고 있는 것 하나 정도는 착각하기 쉽거든. 특히 당시의 기분이라든가 마음을 말이야.”


조이가 턱을 들어올리더니 그의 말을 곰곰이 더듬으며 느리게 내렸다.


“감정 말하는 거구나?”

“응.”


조이가 가방을 도로 잠그며 유모차를 밀기 시작했다.


“뜻대로 될지 모르겠지만, 잘 되기를 바랄게. 참. 그럼 오늘부터는 어떻게 하려고 그래? 나나 양에 대해서도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잖아. 위험하다며. 나나 양은 아직까지 평온하게 지내는 것 같긴 하지만, 나도 나름 걱정이거든.”


도진이 그녀와 동행하며 어느 순간에 걸음을 빨리하여 앞서더니 대문을 열어주었다. 이에 바깥에서 대담하면서도 장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너무 걱정하지 마. 일단 내가 있으니까.”


이에 서로를 마주보고 있던 도진과 조이가 앞을 보았다. 태강이 두 손을 들어올리며 반가운 얼굴로 그들에게 인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로는 덤덤한 얼굴을 한 야담과 달목, 새초롬하게 미소를 짓는 초영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간단한 인사를 건네며 자신들이 환영(幻影)이 아니라는 점을 각인시켰다.


“나도진, 오늘은 있잖아.”


등 뒤에서는 현관문을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나가 캔버스를 들고 밖으로 나오는 것이 보이자 모든 이목이 그쪽으로 집중되었다.


“뭐야 이 상황은?”

영문을 모르고 나온 나나는 휘어지도록 눈썹을 구부리며 오던 걸음을 멈추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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