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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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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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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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04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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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화

DUMMY

“결국에는 이렇게 되고 마는군.”


영월은 억겁의 세월을 찰나로 여기듯이 악독하면서도 황당무계한 사건을 두고 아주 무심하게 반응했다. 혹은 이번 일에 아예 관심이 없어 보이기도 할 정도로 정색한 목소리로 대꾸한 것이다.


“영월 님은 놀라지 않으시는군요.”


오히려 심연도로 찾아와 이 모든 사실을 고한 도진이 다시금 놀라며 물었다.


“놀랄 것도 없지. 죄수에게는 언제나 옥을 탈출하고 싶어 하는 것이 본능일 것이니 말이다.”

“이곳이 감옥이란 말씀이신가요?”

“누군가에게는 그럴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함부로 재단하지 말아야 하기도 하지. 너의 옷이 백나나에게는 맞지 않고, 백나나의 옷이 너에게는 맞지 않듯이.”


작은 글씨를 읽으려는 모양새와 비슷하게 영월은 눈을 찌푸렸다. 그러나 맞은편에 서 있는 하얀 문은 그와 대적하기 위해서 버티는 것인 양 읽을 만한 것은 그 무엇도 내어주지 않았다. 그저 군데군데 더렵허진 흔적만이 그의 노력을 조롱하고 있었을 뿐이다.


“저희의 옷이 서로에게 맞지 않는다는 말씀에는 다른 의미가 숨겨 있는 것인가요?”


같은 곳을 바라보며 도진이 물었다.


“바른대로 말한 것이다. 꿈은 어디까지나 상징적이라고들 하지만, 나야말로 가장 상징을 거부하는 편이지.”

“상징을 거부한다면 있는 모든 것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건가요?”

“그렇지. 다만 인간은 자신이 단번에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모든 인간이 직관력의 한계를 느끼는 그 지점에서 꿈을 상징이라고 여기더군. 너의 옷과 백나나의 옷이 맞지 않는다는 건 너 역시 눈으로 봐도 느낄 수 있는 게 아니었나?”

“저는 다른 의미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 줄 알았습니다.”


먼젓번보다 더 경탄하며 도진은 목을 가다듬었다.


“다른 의미란 없다. 만약 그런 게 있다면 모두 말장난에 지나지 않으며, 그건 나의 소관이 아니지.”


슬며시 바라본 영월의 얼굴은 제대로 드러난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외알 안경 덕에 그의 눈빛이 어떤지도 짐작해야지만 겨우 파악할 수 있을 듯했다. 그런 반면에 그의 목소리는 가장 선명했다. 그리고 혹여 제대로 듣지 못해서 불편할 일은 없을 것처럼 그의 이야기는 귀를 뚜렷하게 파고들었다.


“하지만 저희는 하나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백면, 아니 그 화가의 얼굴을 떠올리며 도진이 질문을 던졌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차피 자신들은 모두 백면이라는 자의 일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각각의 옷이 서로 다르다고 한들 옷의 주인은 결국에 한 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럴지도 모르지.”


변하지 않은 자세의 영월이 흘깃 도진에게 시선만을 던졌다.


“그럴지도 모른다니요? 확실한 것 아닌가요?”


모호한 대답을 이해할 수 없어진 도진이 불안해진 투로 따졌다.


“그렇다고 한들 백면은 제 영혼을 포기했고, 너희는 삶을 얻었다. 하나의 삶은 끝났으나 여럿의 삶이 시작되었다는 뜻이지.”

“지금까지 저희를 백면의 일부로 대하신 것을 생각하면 잘 모르겠습니다.”

“그땐 백면의 뜻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지금은요? 제가 이런 것까지 언급하고 싶지는 않지만, 영월 님은 지금도 불확실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천 너머로 그가 어떤 웃음을 지은 것 같았다. 어렴풋한 소리가 무던하던 신경을 날카롭게 건드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조소였는지, 희소였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어 보였다. 적어도 그의 앞에 놓인 흰색의 문이 열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모든 것이 분명해지기 위해서는 조건이 하나 있다.”


그런데 영월은 언뜻 보이게 화제를 돌리는 것처럼 도진이 알아듣기에는 엉뚱한 소리를 꺼내는 것이었다. 정말로 길은 하나인 듯이 보였기에 도진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에 따라가야만 했다.


“그게 뭐죠?”

“꿈에서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법이지.”

“그럼 아직은 꿈에서 깨어나지 않았다는 뜻인가요?”

“꿈은 끝났지.”

“그렇다면 모든 게 분명해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모두의 행방을 찾아냈기도 했고······ 여러모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으니까요.”


도진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은 영월은 선무가 있는 것처럼 발걸음을 먼저 앞으로 내딛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다리를 쭉 뻗으려다가 말고, 뒤를 돌아 바닥을 바라보았다.


“제자리를 찾아가려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 줄 아나?”

“예?”


자신에게 질문이 돌아올 줄 몰랐던 도진이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이에 영월은 도진 곁으로 다가왔다. 그다음에는 그가 무어라 자신의 생각을 내비칠 새도 없이 곧바로 그의 등을 떠밀었다. 아마 아무것도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지 않았더라면 도진은 필시 그대로 고꾸라졌으리라.

다행히도 도진은 두 손으로 먼저 문을 짚었고, 그렇게 간신히 문에 몸을 기댈 수 있었다. 단말마적 비명이 잠시 스쳐갔으나, 반항하기에는 어려운 존재였던 영월에게 있어 바로 대꾸도 하지 못한 채 그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생뚱맞은 얼굴로 영월을 바라보았다.


“먼저 눈을 떠야지. 눈을 뜨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저는 눈을 뜨고 있었는데요.”


영월이 가르치려는 것을 직접 시범을 보여가며 자신에게 말했다는 것을 파악한 도진이 억울한 감정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은 버젓이 눈을 뜨고 있었으며, 모든 것을 관찰하고 있었기에 그와 관련한 잘못은 전혀 없어 보였다.


“눈을 뜬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 줄 모르는군.”

“눈앞에 놓인 것을 바라보는 것 아닐까요?”


난데없이 들이닥친 수수께끼는 뭔가를 상징하고 있는 듯싶었지, 있는 그대로의 사물이나 현상을 표현해내고 있을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도진은 우선 문에서 떨어지며 옷매무새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아니, 틀렸다.”

“왜죠?”

“눈을 떴으면 보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영월의 눈초리는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바닥으로 닿아 있었다. 도진 역시 그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수그리니, 눈에 보이는 것은 자신의 두 다리였다.


“걸어야 하는 것이야. 넌 그걸 이전에 배운 적이 있을 텐데, 여전히 모르는군. 하긴, 배운다고 해서 아는 것은 결코 아니며 느낀다고 해서 깨우친 것은 더더욱 아니지.”


영월의 눈꼬리가 더욱 가늘어진 것으로 보아 하니, 그가 지금 자신을 한심스럽게 쳐다보고 있다고 도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자의 죽음은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눈 깜짝할 사이에 영월은 홀로 본론으로 돌아가 있었다.


“해결을 해야 하는데요.”

“그것은 해결될 것이야.”

“어떻게 말이죠?”

“그건 지켜볼 일이지.”


도진이 자신의 말을 곱씹어볼 틈도 주지 않고 그는 다시 도진을 앞으로 밀었다.


“왜 그러시는 건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네가 직접 열어봐라. 이 문을 말이지.”


그리고 도진의 우스꽝스러워진 얼굴은 관심 밖에 두며 오로지 땅을 쳐다본 영월이 손가락으로 정확히 어딘가를 가리켰다.


“이 물건이라면 또 모르지.”


그건 백면의 유품으로 늘 도진이 신고 다녔던 구두였다. 도진은 상상조차도 할 수 없던 대답에 한동안 황망히 서 있기만을 반복했다. 그러다가 문득 마주친 영월의 눈빛이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아니, 발로 밀어봐라.”

“그건 너무 무례하지 않나요?”

“백면과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이군. 그러니 더욱 발로 밀어봐라.”


자신의 행동에 자신이 없는 도진은 결국에 영월이 하라는 대로 행동해야만 했다. 팔은 뒤로 물러났고, 오로지 오른쪽 다리만을 먼저 내밀어 도진은 문을 열고자 시도했다.


“역시나 그렇군.”


문이 열리고 말았다. 이번에도 영월은 놀라지 않으며 안으로 들어서려고 걸음을 뗐다.


“기다림 끝에 얻게 되는 정답만큼 꿈다운 것도 없을 것이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차마 영월을 따라나서지 못한 도진이 바깥에 비석처럼 서서 물었다.


“꿈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꿈은 꿈다운 것이지.”


그런 그를 움직일 요령으로 영월은 감정이 묘하게 드러나지 않는 대답을 내놓았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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