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뚜루 뚜루룻~ 짜잔2
순도 100% 픽션입니다
이 단순 반복 노동의 극치를 쉽게 만드는 것이 방직, 방적기계다.
19세기 산업혁명 전까지 서양의 교역 방식은 살인 약탈이었다.
페루에서 황제를 인질로 금을 빼앗고 아르헨티나에서 원주민을 노예로 만들어 은을 캤다.
남아공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자 대학살을 일으켜 광산을 차지한다.
부피가 작은 귀금속 위주의 약탈경제였다.
이랬던 서양이 방직, 방적기계를 통해 교역문화로 바뀌게 되었다.
한 달 꼬박 일해야 겨우 한필 얻는 포목을 기계장치로 쉽게 만들게 되었다. 이제 재료만 충분하면 무한히 만들 수 있다.
싼 가격의 포목 덕에 제 3세계와의 무역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무역 방식이 살인 약탈이 아닌 교역으로 바뀌면서, 금과 은을 빼앗던 식민지 약탈이 원자재를 뽑아내는 식민지 경영으로 바뀌었고, 더 쉽게 더 큰 재산을 얻게 되었다.
그 압도적 우위를 서양보다 150년 빠르게 조선이 갖게 되었다.
“우린 서양보다 150년 앞서게 되었다고. 이 방직, 방적 기계 덕에.”
“어. 어어. 그래. 침은 튀기지 말고.”
“미안. 어쨌든 이게 대단하다는 것은 알겠지? 백관들에게 지방에 목화농사를 늘리게 했으니까 내년엔 더 늘어날 거야.”
모현성의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하다.
과거로 이동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일이라더니 결국 해냈네.
치르르릉. 철컥.
치르르릉. 철컥.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기관이 톱니바퀴와 기어를 따라 철컹철컹 움직인다.
베틀이 춤추듯 흔들리면 사이사이 씨줄이 춤추며 누빈다.
길고 넓은 천이 조금씩 뽑혀 나온다.
“무엇보다 기계로 뽑기 때문에 재질이 우수해.”
“응? 사람들은 제대로 하지 않는단 말이야?”
“실을 물레로 뽑으면 아무래도 두께가 일정하지 않지. 털실처럼 두꺼운 부분도 있고, 가끔 가늘고 약한 부분도 나와. 계속 잘 꼬다가도 한군데라도 잘 못 꼬면 옷감에는 치명적이야. 씨줄 날줄이 교차해 있는데 딱 한군데 실이 끊어져도 옷감이 다 흐트러지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다. 이게 훨씬 좋으니 비싸게 팔아도 된다는 말이네.”
“그렇지. 그리고 면포는 민간의 중요한 부업이야. 집에서 성실하게 베를 짜는 것이 여인의 덕목으로 불리는 시대고. 자기 땅이 없는 가난한 농가에서 면포 짜서 파는 것이 수익의 주를 차지하기도 해. 그런데 우리가 싸게 팔면 그들이 굶주리게 되거든. 기반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비싸게 팔아야지.”
“기반산업 보호. 참. 별걸 다 생각하네.”
산업이 무너지면 어떻게든 살 방도를 찾아 노력하는 게 인간이다.
광해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별만 하지 않았다.
방적기에서 실이 줄줄 뽑히면 일꾼이 옮겨 방직기에 연결한다.
방직기에서 천이 나오면 수레에 실어 밖으로 옮긴다.
이제 일꾼의 아내들이 붙는다.
면포를 적당한 크기로 가르고 마무리 바느질을 하고, 구석에 광해면포라고 수를 놓는다.
“광해면포?”
“어. 형 이름을 딴 프렌차이즈 상표.”
“아씨. 또. 이 새끼가 헛짓거리 하네.”
“왕이 만든 상품. 왕이 보증하는 상품. 어때? 믿음직하지 않아? 게다가 우리 상품은 대부분 해외 교역품이 될 거야. 조선 국왕이 보증하는 신의 기술로 만든 상품. 외국에서 느끼기에 우리의 상품은 기적일 수밖에 없어. 페니실린, 비료 등 시대를 앞서간 물품들이 나오니까. 그래서 이 브랜드 작업을 해두면 편하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잖아.”
“음. 확실히 효과는 좋겠군.”
“그렇다니까. 사실 내 이름을 딴 기업도 생각해봤는데, 그랬다간 내 인기가 너무 높아져서 형의 자리를 뺏게 되니까 참기로 했어. 원래 주인공은 힘을 숨기고 뒤에서 조종만 하는 거니까.”
모현성이 코를 쓱 훔치며 웃는다.
얼토당토하지 않은 주인공병에 광해는 할 말을 잃었다.
“어.”
“광해산업이라는 모기업 밑에 광해포목이 자회사로 소속돼. 같은 식으로, 광해약품, 광해제철, 광해토목, 광해건설 등이 줄지어 설립되고. 이 방식은 조선의 기존 상단들도 따라하게 될 거야. 주먹구구식 운영이 아니라 우리의 운영법을 보고 선진 경영을 따라하게 되는 거지. 결과적으로 조선 전체에 도움이 될 거야.”
아낙들이 일하는 곳은 1구역과 2구역의 경계 부근이다.
1구역의 기밀 기술들을 막기 위해 여기 세운 듯 하다.
그들이 만드는 제품을 보니 넓은 천에 검은 실로 그림을 새겨 넣고 있다.
“짜잔. 우리나라 국기야.”
날개를 벌린...
“새? 고추 엄청 큰 새?”
“으이구. 삼족오잖아.”
“들어본 것 같다. 고구려의 상징인가.”
“아니. 딱히 우리가 최초는 아니야. 사실 중국에서 더 오래된 게 발견됐고, 일본에서도 발견되었지. 그래도 우리의 상징은 이거다.”
“태극기는?”
“우리가 도교문화권도 아니고 전통적으로 늘상 쓰던 것도 아니고, 그냥 ‘문양 예쁘네.’ 해서 도교와 주역에서 짜집기해서 쓴 걸 굳이 국가의 상징으로 정할 필요는 없지. 형 혹시 태극기 아니면 안 될 추억 같은 거 있어?”
“태극기라...... 월드컵 땐 좋았고, 할아버지들이 정치이불로 쓰는 걸 볼 땐 별로였고. 딱히 없다.”
“그럼 삼족오로 가자. 이게 북만주 중심으로 여기저기서 쓰이니까 통합의 의미로도 좋아. 신께서 타고 다니는 애완동물로 삼을까? 교리서에도 슬쩍 넣어야겠다.”
“그래라. 벌써 이만큼이나 만들었는데 맘대로 하든가.”
모현성은 설명을 하며 다음 공장으로 안내했다.
쿵. 쿵. 쿵.
방직공장 옆에서는 물에 불린 나무를 쇠기둥이 내리찍어 곤죽을 만들고 있었다.
제지공장이다.
나무를 죽으로 만들어 얇게 펴 말리면 한지보다 못한 저질의 종이가 나온다.
잘 부스러지고, 색깔도 갈색이다.
“아직 첨가물을 못 구해서 그래. 나무도 펄프용이 아니라서 섬유가 부족하고. 그래도 일단은 이정도로 참아야지. 점점 좋아질 거야.”
제지공장 옆에는 인쇄소가 있었다.
금속활자에 롤러가 돌아다니며 짙은 먹물을 묻히고, 종이가 들러붙었다 떨어진다. 전부 광해소망교 교리서가 인쇄되고 있다.
“금속활자를 써먹네.”
“원래 서양의 금속활자도 처음에는 성경 인쇄부터 시작했어. 야만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책이 교리서니까.”
“그러고 보니. 조선이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라 들은 거 같은데 왜 안 써먹었지?”
광해는 문득 의문이 들어 물어봤다.
“한자 때문이지 뭐.”
“한자?”
“응. 금속활자의 장점이 ‘문장에 맞춰 금속활자를 조합해 찍는다.’잖아. 그런데 한자는 그림문자라서 뜻에 따라 전부 독립된 문자를 갖고 있으니 조합하는 의미가 없지. 모든 한자를 금속활자로 만들고, 거기에 자주 쓰이는 한자는 두세 개 더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느니 그냥 손으로 쓰는 게 값이 싸지. 자연히 고려에서 만든 금속활자도 의미가 없어졌고.”
“음. 한자가 참 여기저기 똥을 많이 싸질러 놨군.”
“크큭큭. 모든 게 다 한자 때문이지. 그놈의 그림문자가 뭐 좋다고 헭헭대기는.”
인쇄소를 나오자 더 이상 가동 중인 공장은 없었다.
이십여 개의 공장터에 복잡한 설비가 설치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자 새삼 모현성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너. 정말 열심히 일했구나.”
고작 반년 만에 인력만으로 이정도 시설을 갖추다니.
그 와중에 기술보호를 위해 인원까지 나누고.
게다가 백관이 계획대로 진행되는지 수시로 컨트롤하고 다양한 교본들, 교리서나 학습서, 육전교본, 해전교본 등등 저술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원래 주인공은 바쁜 법이야. 하루 22시간씩 일해도 모자라.”
저놈의 주인공 병.
“그래 너 주인공 해라.”
“오오오. 드디어 선양인가. 좋았어. 이제 형은 신이야. 난 종교의 황제, 교황이 될게.”
“시끄러 닥쳐. 일해.”
“넵. 사실 최명길이 없었으면 못했지. 딱 한 번씩만 설명하면 좌라락 일을 진행하거든. 나보다 많이 일했을 걸.”
어쩐지 최명길이 전보다 더 왜소해진 것 같더만.
키 작은 모현성의 비서 키 작은 최명길.
좋은 콤비다.
“자 이제 마지막 견학입니다.”
높은 담에 둘러싸인 공장이 보인다.
1구역 안에서도 한 번 더 보안이 유지되는 곳.
“뚜루 뚜루루루~ 짜잔~”
모현성이 자랑하며 팔을 활짝 펼친다.
“어? 너 시발. 뭘 만드는 거냐.”
광해가 입을 벌렸다.
견학을 마치고 모현성이 요구하는 몇 가지 일을 해줬다.
꼭 필요하지만, 광해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한 일.
열심히 일했으니 쉬어야지.
1구역에 광해를 위해 지어진 별장이 있다.
넓고 아늑한 현대식 가옥.
그 곁에 약간 작은 모현성의 집도 있다.
정충신, 박승종, 최명길 등 간부들을 불러 술을 마셨다.
멧돼지와 사슴 통구이를 구워 먹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계도 마법도 없던 곳에서 솔직히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잘 해놨다.
“앞으로 잘 해봐. 이곳은 조선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될 테니까. 모현성은 한성으로 가야 하니 이제 너희에게 맡긴다.”
믿고 맡긴다.
세 명은 믿어도 될 인재다.
광해가 덕담을 하자 최명길이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송구하오나 전하. 소망이 있습니다.”
“소망?”
소망 들어주는 광해님.
고관이 소망을 말하는 건 처음인 것 같네.
“예. 전하. 소신이 무산공을 따라다니는 것을 허가해 주옵소서.”
모현성을 따라다닌다라......
최명길의 소망을 확인했다.
지식의 끝을 보고 싶다 - 241543
소망이 바뀌었다.
원래 소망은 입신양명이었는데.
사람의 꿈은 바뀐다.
“왜 모현성을 따라다니고 싶지?”
“제게 새로운 지식의 바다를 보여주신 분입니다. 좀 더 따라다니며 더욱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곁에서 모현성이 봤지? 봤지? 마! 내가 이정도야! 하는 표정으로 으스대는 게 참 못생겼다.
“모현성을 따라다닌 다라...... 모현성. 최명길이 하는 일을 대체할 사람이 있나?”
“당장은 어렵죠. 앞으로 무산 전체를 맡길 생각으로 전부 알려줬는데. 백관 중 누구라도 몇 달 지식을 전수받고, 인수인계 받아야 가능할 것입니다.”
모현성은 간부들의 눈치를 봐 말을 올렸다.
“최명길을 데리고 다니면 도움이 되나?”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
모현성의 말에 최명길의 표정이 펴진다.
키 작은 것 둘이 브로맨스 찍고 있네.
“음. 누구에게 맡기지......”
“전하. 제가 해도 되겠습니까?”
예서가 나섰다. 의외다.
“네가?”
“예. 저도 백관 소속이니 가능하오며 한성에서 광해님의 전령 외에 맡고 있는 큰 역할이 없습니다.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네가 역할이 왜 없어?
여자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는데.
한성의 많은 여자 중 가장 마음에 드는데.
라고 생각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충동적인 것 같은데? 힘들 거야.”
“아닙니다. 광해님께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해내겠습니다.”
“다음 일정에 데려가려 했는데.”
“소첩 그곳에서 전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 없습니다. 하오나 이곳에선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존재를 위해 노력한다.
잘 할 수 있는 일을 반복하는 대신 한성으로 가서 새로운 지식을 얻고자 하는 최명길.
궁에서 여자가 해야 하는 제한적 일을 하는 대신 무산에서 복잡하고 힘들지만 중요한 일을 하고자 하는 예서.
스스로 나서는데 막고 싶지 않다.
“그래. 해봐라. 최명길은 예서에게 인수인계 제대로 해주고. 모현성 괜찮겠지?”
“예서도 백관 교육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니 잘 해낼 겁니다.”
“그래. 최명길은 인수인계 끝내고 한성으로 가라. 예서의 거처는 3구역에 잡고, 데려온 궁녀와 호위병 전부 예서 호위 임무에 붙도록 해라. 음. 임경업이만 데리고 간다.”
“예. 전하.”
광해는 역할을 정리해주었다.
그날 밤, 광해는 예서를 평소보다 공들여 안아주었다.
- 작가의말
태극기를 계승하지 않았다 해서 제가 매국노라고 생각하시면 경기도오산입니다
전 애국자일겁니다 막 마티즈로 잡아가시면 안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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