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이간계
순도 100% 픽션입니다
광해가 조선으로 귀환한 후에도 조선 수군은 일본에 남았다.
일본 해안을 돌며 어선을 나포하고, 해안가에 만들어지고 있는 함선을 포격하고 불태웠다.
배가 없는 일본의 육상병력이 졸졸 따라다니며 ‘상륙만 해봐라.’ 하며 칼을 갈았지만 조선군은 절대 배에서 내리지 않았다.
일본은 바다에 나올 수 없다.
판옥선급인 안택선을 최소한 백 척 이상 모아야 정면 승부가 가능할 텐데 지금부터 만든다 해도 2년은 걸릴 것이다.
조선군은 일본해를 앞바다처럼 누비고 다녔다.
모병제가 선포되었다.
모든 병사는 봉급을 받게 되었고, 3년 이상 군 생활을 한 자 중 전역을 원한다면 전역을 허가했다.
4만 해군 중 2만 가량이 전역했고, 그 자리는 신병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육상병력 3만명이 추가되었다.
모은 지 한 달도 안 된 병사들로 군 생활이 처음인 신병들이다.
창조차 처음 잡아보는 이가 대부분인데 모이자마자 바로 전선에 투입되었다.
개떡이가 병사들을 둘러보며 한숨 쉬었다.
“언제 훈련시킨답니까? 이 병사들로 이길 수 있겠습니까?”
곽재우가 웃었다.
“내 병사들의 전투력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하지. 이 병사들로 어찌 싸우겠나? 전투는 없다. 점령만 있을 것이다.”
모든 판옥선이 병사들을 싣고 대마도와 규슈 사이에 있는 이키섬으로 향했다.
대마도의 1/5크기인 이키 섬엔 인구 이천 명이 살고 있었다.
조직된 군대도 없고, 본토에서 지원 오려 해도 넘어올 배가 없다.
상륙군을 지휘한 곽재우가 소리쳤다.
“배에 내려 도열한다. 자기 백인대를 찾아가라.”
“어이. 너. 이쪽이 이칠 백인대다.”
“안 뛰어? 장난 하냐? 뛰어.”
“5열 종대. 안 들려? 5열 종대!”
훈련 안 된 군대는 걷지도 못한다.
상륙 후 백인대별로 모이기까지 무려 세 시간이나 걸렸다.
“백인대별로 이동한다. 이동 중 군가는 광해님의 은혜. 하나 둘 셋 넷.”
“영광 영광 광해 전하~”
“발 틀리지. 왼발. 왼발. 왼발.”
“영광 영광 광해 전하~”
적이 눈앞에 있지만, 전투가 벌어질 리 없다.
조선군은 적을 앞에 두고 훈련을 진행했다.
산으로 도망간 이들, 저항을 결심한 이들, 포기하고 집에 남은 이들.
10여명의 용감한 저항을 가볍게 죽이고 마을을 장악했다.
마을 사람들을 모은 자리에서 대마도 출신 항병이 소리쳤다.
“우리는 조선군이다. 항복하면 아무도 죽이지 않겠다. 너희 모두 왜국 최고의 도시 에도에 풀어주겠다. 믿고 항복하라. 모두 흩어져 도망친 이를 데려와라. 내일까지 모두 데려오면 전원 풀어준다. 혹시 한명이라도 섬에 숨어 있다면 이 섬의 인구 전원을 죽이겠다. 가서 데려와라.”
섬 주위엔 조선군 함선이 떠있고, 육군 삼만 명이 상륙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다.
마을 사람은 사방으로 달려 도망친 이들을 데려왔다.
저항하면 죽을게 확실하니 조선군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다음날 이천 명의 포로를 얻었다.
수송선은 즉각 포로를 싣고 에도로 떠났다.
에도로 향하는 배 안에서 끊임없는 종교 활동이 이어졌다.
“광해님께서는 나병을 고치신다. 천연두를 고치신다. 하늘을 날 수 있고, 숟가락도 구부릴 수 있다.”
어쩌라고?
“광해님은 신내림을 받았고, 신의 나라를 만들고 있다. 조선의 백성이 아닌 신의 백성이 될 수 있다. 신의 백성이 되면 생산량의 삼할 만 내고 다른 어떤 것도 뺏기지 않는다. 국가에서 병사가 필요해 부르거나 관아의 일을 시키면 반드시 노임을 준다. 또한 살 집터를 주고, 농사지을 땅을 준다. 그 땅은 신께서 인정한 너희들을 땅이다. 이건 신의 뜻이기에 광해님도 꼭 지키는 사항이다.”
함부로 재산을 뺏지 않고 땅도 무료로 준단다.
이건 유토피아다.
“저요. 귀순하고 싶습니다.”
“광해님을 따르고 싶습니다.”
백성들 중 신청자가 나왔지만, 문관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신실하지 못하다. 광해소망교 교리를 열심히 공부하고 조선어를 공부해서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신의 백성이 되려면 시험을 준비하라.”
일본군 포로에게 했듯이 백성들에게도 씨앗을 심어주고 에도에 풀어줬다.
다음 섬.
다음 섬.
거제도 수준의 섬들은 병사들이 거의 없었고, 성과 영주가 있다 해도 병사 수가 천명을 넘지 못했다.
앞선 섬들에서 증인을 몇씩 뽑아 먼저 보냈다.
3만 명이란 숫자에 질린 일본인은 저항대신 항복을 선택했다.
영주조차 항복해 다들 에도 해안가에 풀려났다.
뽑히자마자 전장에 투입된 신병들은 처음엔 겁에 질렸으나 전투가 벌어지지 않자 점차 적응했다.
걷고 도열하고 창술 훈련하고.
적진에서 훈련하다보면 적이 항복하고 포로가 생긴다.
풍토병으로 10여명이 죽고, 강간, 포로살해 등 군율 위반으로 처형된 50여명이 피해의 전부다.
삼십여 개의 섬을 점령했을 즈음 광해의 전갈이 왔다.
서신을 받아든 곽재우가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개떡이에게 말했다.
“북방의 상황이 심상찮다고 하는구나. 주상께선 내가 평안도로 가서 대군을 막길 바라신다. 왜구 전선은 믿을만한 자에게 맡기라 하니 네게 맡기마.”
“예? 어찌 제가 할 수 있겠습니까?”
“말과 글로 가르칠 것은 끝났다. 나머지는 경험과 냉철한 심장만 필요하다. 넌 할 수 있다. 해라.”
“...... 예. 알겠습니다.”
“이기는 상황을 만들고 나서 승리한다. 주상께서 바라는 전쟁이지. 조선군은 전투로 한명도 죽지 않게 하라.”
“명심하겠습니다.”
곽재우가 북방전선으로 떠난 후 개떡이가 왜군 정벌군 총군사가 되었다.
나이 열아홉 살이다.
일본에서 광해님의 은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쇼군. 부디 약 한 알 만 팔아주십시오. 저희 아버지가 죽기 직전입니다.”
“없다.”
“제발. 쇼군. 쇼군께 있다고 듣고 왔습니다. 무엇이든 바치겠습니다.”
“없다니까. 에잇. 이 자를 내보내라.”
도쿠가와 히데타다에게 다이묘들이 몰려들었다.
광해님의 은혜 한 알만이라도 얻기 위해서.
조선의 왕에게 받은 선물.
처음엔 그냥 줬다.
그리고 죽기 직전의 환자들이 살아났다.
공짜로 받은 선물 덕에 다이묘들의 칭송을 받게 되자 기분이 좋아졌다.
문제는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는 것.
약이 다 떨어졌는데도 다이묘들이 계속 몰려왔다.
이젠 진짜 비상용 세 알만 제외하곤 전부 내줬다.
“없어! 진짜 없다고! 앞으로 이 용건으로 오는 자는 전부 쫓아내거라!”
쇼군이 화를 내며 손님을 막았다.
그 즈음 묘한 소문이 돌았다.
오사카에 광해상회라는 게 있다더라. 거기 모든 게 있다고 하더라.
사람들이 오사카로 몰려들었다.
오사카 해안 근처에 진짜로 상회가 있었다.
일하는 이는 전부 오사카 백성들.
조선의 판옥선은 세토내해를 지나가다가 해안가에 물건만 내려놓고 판매대금을 챙겨 떠났다.
그러면 오사카 번에서 물건을 팔았다.
“광해님의 은혜 있느냐?”
“쌀 100석인데 소속 영지가 태백께 충성해야만 팔 수 있습니다.”
“뭐? 뭐얏!”
“여기 연판장에 가입한 영지출신만 살 수 있습니다. 어디 출신이십니까?”
백관 윤성준은 상회를 여는 조건으로 친 도쿠가와 파에 팔지 못하게 했다.
세가 많이 밀리는 도요토미 번 입장에선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제......엔장.”
다이묘의 신분이기에 가문의 문장이 여기저기 붙어있다.
속일 방법이 없다.
뺏는 생각도 해 봤지만, 상회 주변엔 병영이 만들어져 주둔하고 있다. 전쟁을 각오하고 전 병력을 몰고 와야 그나마 싸울만하다.
“줘봐. 가입할게.”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가 죽을 병에 걸렸다.
살리지 못해 양자를 들이면 영지의 절반을 빼앗기고 만다.
어쩔 수 없이 도요토미 파에 가입할 수 밖에 없었다.
“이왕 가입한 거...... 오. 면포가 좋은데?”
임란 때 조선에서 목화와 물레, 베틀 등을 빼앗아 왔고 곳곳에서 면포를 만들고 있다.
그래도 아직 조선의 면포는 못 따라간다.
균일한 두께, 균일한 강도.
정말 깔끔한 면포다.
면포 좀 사고.
“서책? 저 책들은 뭐냐?”
“명나라의 유교서적이라 합니다.”
조선 양반들의 재산을 몰수하면서 쓸데없는 유교경전을 너무 많이 얻었다.
쓸모없는 것, 버리느니 일본에 판다.
“저 책도 몇 권 줘봐라.”
고풍스런 도자기, 투명한 유리, 진한 홍차까지.
탐나는 물건이 너무 많다.
영주는 순식간에 가진 돈을 다 쓰고 상회를 나왔다.
“어? 저건 전시용이냐?”
“아닙니다. 조선의 다른 상단에서 파는 것입니다. 쌀 3000석입니다.”
“뭣! 판다고?”
“예. 화약과 포알도 함께 팝니다.”
일본을 공포에 질리게 한 조선화포가 떡하니 전시되어 있다.
“불랑기포라고 후장식 화포입니다. 이곳에 미리 화포를 장전했다가 포신과 결합해 사용합니다. 이리하면 화포를 쏘고 후미만 교체해 바로 또 쏠 수 있습니다.”
점원의 설명에 눈이 돌아갔다.
화포를 조총보다 빠르게 쏠 수 있다니.
저거 백문만 있으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을 텐데.
“그런데 좀 비싼 감이...”
“총 500문 중 118문이 삼일 만에 팔렸습니다. 다들 영지로 달려가서 쌀을 구하고 있죠.”
“산다. 당장 살게 100개 예약.”
“쌀을 가져 오십시오. 먼저 가져오는 분께 팔 수 밖에 없습니다.”
난데없이 일본 영주들의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일본의 오고슈,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성 5층 천수각에 서서 평아를 바라보았다.
거지촌.
헝겁과 풀때기로 대충 만든 천막촌에 난민이 끝없이 보인다.
“무슨 생각일까?”
한 달 전부터 조선수군이 오더니 일본 백성을 내려줬다.
비상을 걸고 육군을 해안에 배치했건만, 조선군은 한명도 내리지 않고 일본 백성만 계속 내려줬다.
군대가 대기한 장소에서 멀리 내려주니 달려들기도 힘들고, 화포 수백문을 향해 헤엄쳐서 공격할 수도 없다.
이제는 그저 포로가 내리는 걸 바라볼 따름이다.
“조사 결과 규슈와 시코쿠 인근 섬의 백성들입니다.”
불과 24세 나이에 쇼군의 스승이자 후계자의 스승이 된 천재 하야시 라잔이 곁에서 대답했다.
“왜 저들을 에도에 내려주는 걸까?”
“식량을 축내기 위함이죠.”
“어차피 에도평야는 넓다. 절반도 개간하지 못했어. 저들로 개간하면 에도의 힘은 더 강해진다.”
“과실은 내후년에나 딸 수 있습니다. 그 전까진 궁핍해질 것입니다. 당장 십만에 달하는 저들이 머물 집을 만드느라 온 힘을 쏟고 있지 않습니까?”
“여차하면 저 인원을 방어에 쓸 수 있다. 우리의 힘이 더 강해지는 거야.”
“굳이 이유를 하나 더 찾는다면 첩자를 심을 의도겠죠. 조사결과 저들 사이에 광해소망교라는 종교가 무섭게 퍼지고 있답니다.”
“광해소망교?”
“예. 조선왕이 신내림을 받았다며 만든 종교인데 온갖 기적을 행한다는 허황되기 짝이 없는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저들이 믿는 다는 것이죠. 자기 집을 뺏기고 맨몸으로 쫓겨났는데 그런 적을 믿는다는 것 자체가 우매한 것들의 한계겠지요.”
“...... 그런데 왜 여기일까? 전투로 잡은 포로들은 오사카에 떨궜잖아.”
“그건...... 민감한 말이오나 포로의 성격이 다릅니다.”
“성격?”
“오사카에 내린 병사들은 각 영주의 정예병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각자 영주에게 돌아갔고 결과적으로 오사카 번의 영향력은 커졌습니다. 한편 이들은 아무 쓸데없는 무지렁이 입니다. 쓸모없이 쌀만 축내는 존재들이죠.”
“오사카의 영향력을 키우고, 에도의 힘은 약화시킨다? 겸사겸사 첩자도 심고?”
“그렇습니다. 그게 조선의 목적입니다.”
“이간책이네. 그럼 난 조선이 원하는 대로 끌려가선 안 되고.”
“하지만 계속 침묵하면 도요토미가의 영향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이제 성인이 되었습니다. 자칫하면 그를 중심으로 영주들이 뭉칠 수도 있습니다.”
“하긴. 지난 해전에서 에도번의 체면이 많이 손상되었지.”
“게다가 최근 오사카에 조선이 상회를 열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 만병통치약과 온갖 물건을 팔고, 소문으로는 조선의 화포도 판다 합니다.”
“허허. 허허허. 독사과군. 독사과야. 아는데 먹을 수밖에 없는 독사과.”
“그렇습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거지들 전부 징병해. 선봉으로 써먹는다. 소망교? 그거 믿는 놈들은 전부 죽이고. 아. 해전 때 총대장이었던 놈. 그놈 살아있나?”
“나오에 카네츠구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오사카에서 포로로 내려졌다고 합니다.”
“우에스기 가에 연락해서 잡아와. 할복하는 것 좀 보자.”
“이미 전갈을 했으나 복귀하지 않았다 합니다. 살기 위해 오사카 번에 숨은 걸로 추측됩니다.”
“결국 공격할 명분이 하나 더 생겼네.”
“그렇습니다.”
“음... 아와지를 쳐보자. 모두 모이라고 해봐. 오사카번 잘 감시하고.”
“예.”
모현성은 대놓고 뻔 한 이간계를 시도했는데 보기 좋게 성공했다.
본래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계략이 가장 좋은 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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