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광해농축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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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포가 터졌다.
이운룡이 이끄는 열 척의 판옥선이 이제야 도착했다.
각자 수백발의 좁쌀탄을 날리는 천자총통 80문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좁쌀 수만발이 해안가를 휩쓸었다.
해안가로 접근하며 선회하는 판옥선.
길이 30보인 판옥선은 거대한 성체 같았다.
콰콰콰쾅!
다시 수만 발의 좁쌀이 해안가를 휩쓴다.
파도가 끝나는 곳에 탈진해 쓰러져있던 천여 명의 일본군이 피보라를 뿜으며 비명을 지른다.
“항복해라! 무기를 버리고 엎드리면 살려준다.”
오천여명의 병사들이 하나 둘 무기를 던지며 엎드렸다.
판옥선은 등장만으로 일본군을 압박해 엎드리게 했다.
입수한 5만 명 중 절반가량만 상륙에 성공했다.
나머지는 조류에 쓸려 동쪽 넓은 바다로 흘러갔다.
개떡이는 이시언에게 일부 병력을 주어 전장 정리와 뒤늦게 상륙하는 적을 포박하게 만들고 남쪽으로 달렸다.
천명의 보병은 뒤쳐져왔고 말을 탄 백여 기만 앞서 달렸다.
25km에 이르는 긴 거리를 달려 도착하니 남쪽 전투도 끝나 있었다.
나루토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시코쿠군은 고작 삼천여명만 상륙에 성공했고, 그들조차 물을 잔뜩 먹어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일부는 죽고 대부분은 상륙과 동시에 제발 살려달라고 간청했다.
“저희가 본 바로는 삼만 명 이상이었습니다만... 대부분 동쪽 큰 바다로 휩쓸려갔고, 일부는 왔던 곳으로, 일부는 이곳으로 왔습니다.”
우진춘의 보고를 받으며 개떡이는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 위 곳곳엔 익사한 적병이 나무판자의 부력 덕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8만 이상의 적병이 쳐들어왔건만, 조선군은 거의 피해 없이 승리했다.
실제 싸워서 죽인 적병보다 스스로 죽은 적병이 수십 배 많았다.
“전투는 내가 잘한다고 이기는 게 아니다.”
곽재우 스승님은 말씀하셨지.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의 준비를 한다. 그 후 적이 바보짓 하기를 기다리면 된다. 조급한 마음만 버리면 승리를 거둘 것이다.”
내가 잘한다고 해서 반드시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적이 못해야 이길 수 있다.
적의 바보짓을 실제로 보니 더할 나위 없이 한심해 보였다.
본부로 돌아간 개떡이는 이운룡에게 파발을 보내 해상에 살아있는 적병을 구조하게 했다.
적병이 너무 불쌍했다.
광해는 오산에서 하루 숙박한 후 종교 활동을 개최했다.
광해 농축산업 일꾼들 만오천명에 주변지역 백성 사만명이 모여 성대한 축제가 열렸다.
병자를 치료하고, 소망을 이뤄주고, 죄인을 잡아주고, 노래하고 찬양하고 절하는 축제.
공식행사가 끝나고 광해는 다시 단상 위로 나아갔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 옳은 말이다.”
운을 띄운 광해는 머리 위의 왕관을 벗고, 머리카락을 감싼 망건을 벗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길게 늘어졌다.
“하지만, 손톱을 자르는 것은 불효가 아니다. 수염을 다듬는 것도 불효가 아니고, 여자가 겨드랑이 털을 미는 것도 불효는 아니다.”
관습을 빠르게 바꾸려면 약간의 쇼가 필요하다.
빨리 좀 바뀌자. 특히 겨털.
광해는 아공간에서 미리 뚝딱 만들어둔 가위를 꺼냈다.
서걱. 서걱. 서걱.
광해의 현란한 가위질에 삼단 같은 머리가 잘려나갔다.
“허억.”
“세상에나.”
“말세야. 말세. 쯧쯧.”
놀라거나 혀를 차는 백성들의 앞에서 광해는 예쁜 귀두컷을 완성했다.
“머리카락을 잘랐다. 이제 나는 불효자인가?”
광해가 둘러보며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라고 말하기엔 효사상이 뿌리 깊게 박혀있고, 왕을 불효자라고 부르기엔 목숨이 아까웠다.
“머리카락이 길면 빈대나 이, 진드기가 많이 살게 된다. 긴 머리를 상투로 묶어두면 탈모도 온다. 이러면 건강이 나빠지고 쉽게 죽는다. 머리카락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면 이야말로 불효다. 효를 행하라. 부모님께 받은 생명을 건강히 지켜라. 그러기 위해 필요하다면 머리카락을 잘라도 된다.”
유교가 효사상을 이용하다보니 복잡한 헛짓거리가 생겼다.
광해는 효를 막는 게 아니라 유교가 이용한 헛된 효를 고치는 것이다.
곧이어 허균이 나와 삼년상의 문제점과 금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양반의 구할이 잡혀 노역수가 된 지금 대다수 백성들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우릴 막으려고 만든 거였구나.”
“부자만 효자고 우리는 불효자로 만들려고 그런 짓을 했다고?”
“우린 먹고 살려면 할 수가 없어. 그러니 무조건 불효를 하게 되는 거고.”
양반들의 수작이라는 것은 알게 된 백성들은 양반들에 대한 분노를 터트렸다.
그리고 이는 광해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다.
“역시 광해님.”
“광해님. 천세! 천세!”
“저도 자르겠습니다. 저도.”
광해에 대한 찬양이 관습의 변화로 이어진다.
목이 잘리는 한이 있어도 머리카락은 못 자르겠다는 늙은 유학자를 설득할 마음은 없다.
그렇게 살다 죽으라지.
짧게 자른 머리가 신세계의 상징처럼 유행하게 되면 관습은 자연스레 바뀔 것이다.
광해는 소란스러운 단상아래를 조용히 둘러봤다.
도열한 병사들.
광해농업에 소속된 농부들.
노역수로 끌려온 양반가 출신 아낙들.
가족단위로 행사에 놀러온 인근 백성들.
광해축산에 소속된 패랭이를 눌러쓴 백정들.
광해는 백정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고기를 좋아한다. 매 끼니마다 고기가 상에 올라오지. 너희들은 쉽게 먹기 힘들겠지만, 고기를 싫어하지는 않겠지.”
그렇습니다. 예. 먹고 싶어요. 소망입니다.
이런 말들이 들려온다.
“왕이 먹는 고기를 기르고, 도축하고 해체하고 가죽으로 신이나 갑주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반촌의 백성들아. 고맙다.”
왕의 말에 모두가 놀랐다.
양반을 욕하면 양반이 아닌 모두가 공감하며 기뻐하고 칭송한다.
하지만 백정을 칭찬하면?
백정을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젓는다.
이건 인간의 본성이다.
광해의 파격에 분위기가 급격히 나빠졌다.
“소를 잡아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부위별로 해체하는 일. 힘들고 위험하고 냄새도 난다. 가죽이 썩지 않게 가공하는 일 또한 힘들고 냄새난다. 게다가 많이 알아야 하고 제대로 알아야 한다. 양반이 사서오경을 외우는 것보다 쓸모있는 지식, 진정 살아있는 지식을 갖고 제대로 행해야만 할 수 있는 위대한 일이다. 반촌의 백성들아 너희는 이 시대에 너희만의 기술을 갖고 있는 기술자이며,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선구자다. 그러니 고개를 들어라. 패랭이를 벗어라. 너희는 내 백성들이다.”
광해의 말에 삼천여명의 백정과 그 가족들이 눈치를 봤다.
신분상으론 분명 평민이지만, 노비보다 낮은 대우를 받고, 길 위에 평민들이 다가오면 길 밖으로 물러나 기다려야 하고, 가끔 노비가 같은 길을 걷는다고 구타해도 그저 참아야만 하는 백정.
광해축산을 설립하면서 전국의 모든 백정을 모았다.
사회의 인식을 한순간에 바꾸긴 힘들겠지만, 그래서 더 좋다.
차별 받을수록 광해에게 더욱 고마워하고 충성할 테니.
“너희는 나의 식탁에 고기를 올려주는 고마운 친우들이며 앞으로 지금보다 만 배 많은 짐승을 길러 모든 백성이 맛있는 고기를 먹게 해줄 은인이다. 패랭이를 벗고 당당히 해를 봐라.”
북미 대륙에 주인 없는 들소 일억 마리가 너흴 기다리고 있다.
카오보이란 말이 뭐 별거겠어요.
대충 울타리 만들어서 들소를 모아 가두면 카우보이지.
너흰 카우보이가 된다.
각자 소 만 마리씩만 키워라.
백정들이 하나 둘 패랭이를 벗었다.
그들은 모두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정말... 정말 태양을 봐도 되옵니까?”
선두에 선 노인이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성균관 반촌의 촌장으로 광해와 세자시절 만났던 노인이다.
물론 광해는 기억하지 못 했다.
“차별하면. 죽여주마. 관아에 고해 차별한 자를 처벌할 수 있게 하라. 관아에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한성으로 와라. 내가 차별한 백성과 무마한 관원까지 죽여주마.”
무서운 말을 한 광해가 고개를 돌려 백성들을 봤다.
“백정을 괴롭힌다. 왜구에 끌려갔다가 구출 받아 돌아온 여인을 괴롭힌다. 몸이 약한 장애인을 괴롭힌다. 괴롭힘으로써 얻는 게 없다 해도 괴롭힌다. 즐거움을 느끼고 우월감을 느끼고 잘났다고 느끼기 위해 괴롭히고 차별한다. 이 또한 인간의 본성이니 아예 없앨 순 없겠지.
하지만 신의 백성은 모두 평등하다. 백정은 짐승을 기르고 도축하는 기술자고, 장애인은 몸이 불편할 뿐 같은 백성이며, 노역수는 일을 해서 죗값을 치를 뿐 노역이 끝나면 나의 백성이 될 자들이다. 누구도 다른 이를 차별할 수 없다. 일을 시켜야 한다면 정당히 시킬 뿐, 차별하거나 괴롭히는 일을 금하겠다.
차별은 범죄다. 내가 니들 마음까지 바꾸진 못하겠지. 마음에 안 들어도 속으로 삭혀라. 권리 이상으로 차별하거나 괴롭히고, 가혹행위를 한다면 그건 나의 백성이 아니다. 전 재산을 빼앗고 죽이겠다.”
사랑과 평화의 말씀으로는 오래오래 걸린다.
왕의 권한으로 쉽게 갈 따름이다.
조선 주위의 섬 중 규모가 큰 무인도를 선정했다.
사람이 살지 않고 야생풀이 자라는 섬에 이른 봄부터 준비를 해 왔다.
“염소 다섯 쌍을 내려라.”
“예이~”
축구장 열개 크기의 섬에 염소 열 마리가 제멋대로 뛰어다니며 번식할 것이다.
섬 중앙에 지붕만 얹은 축사를 만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겨울에 풀이 없어 굶어죽을 지경이 된다면 그때 먹이를 공급할 계획이다.
“콩 섬. 염소 열 마리.”
“예이~”
비슷한 규모의 섬에 봄부터 콩을 잔뜩 심었다.
콩이 있으면 야생풀만 있는 섬과 번식에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식으로 조, 피, 보리 등을 심은 섬들에 염소를 내려줬다.
통제된 환경 하에서 염소가 번식하기 가장 좋은 환경을 찾는 것이다.
비슷하게 양과 토끼, 돼지와 개와 고양이를 풀었다.
통제된 환경 하에 최적의 환경을 찾고 그 중 우성번식이 일어나면 따로 모아 우성교배를 진행한다.
10년이면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아직 대규모 목장을 육지에 지을 수 없다.
짐승의 배설물이 비료로 쓰일 순 있겠지만, 전염병을 막을 수 없다.
짐승 뿐 아니라 인간들까지도 떼죽음을 당할 수 있다.
아직 목장은 섬에 만들어야 한다.
차별받던 백정들은 조선 서해를 누비고 다니며 짐승을 배분하고 관리했다.
당장은 이백여개 섬만 쓰지만, 짐승이 늘고, 개량종이 나올 때마다 관리하는 섬도 늘어날 것이다.
이 복잡한 동선을 관리하고 사료를 미리 준비하는 책임자는 윤선도다.
광해 농업과 축산의 수백 개 보고서를 받아 정리하고 변화점과 특이점을 살펴 보고하고 사료나 비료 등 그 외의 것을 준비해야 한다.
농법 정착과 농기구 개발, 축산도구와 사료개발까지 복잡하고 할 일이 많다.
서해를 한 바퀴 돌고 해남에서 상을 치르고 돌아오는 길.
왜국에서 나포한 안택선에 올라탄 윤선도가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읊조렸다.
앞 갯벌에 안개 걷히고 뒷 뫼에 해 비친다
배 떠라 배 떠라
밤물은 거의 지고 낮물이 밀려온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강촌에 온갖 꽃이 먼 빛이 더욱 좋다
날이 덥도다 물 위에 고기 떴다
닻 들어라 닻 들어라
갈매기 둘씩 셋씩 오락가락 하는구나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낚싯대는 쥐여 있다 탁주병은 실었느냐
바다를 보며 멍 때리다보면 사람은 시인이 된다.
윤선도는 왕의 정책을 지지한다.
국왕의 전수조사를 알고 가장 먼저 지지했으며 조선 최고의 갑부인 자신의 집안부터 손봤다.
집안사람들에게 욕도 많이 먹었지만 옳은 변화이기에 추진했고, 양반의 난에서 집안을 구했다.
그랬던 자신조차 제대로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구나.
토지개혁이 옳다면 삼년상 폐지도 옳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바다를 보는 윤선도의 눈이 촉촉이 젖어들었다.
- 작가의말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저게 사람인가 싶은 전투가 거의 대부분...
윤선도캐릭터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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