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에도성 전투3
순도 100% 픽션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성 천수각 5층에서 남쪽을 바라봤다.
콰아앙. 쾅쾅쾅.
대포를 쏜다.
치이익.
달구어진 포신에 물을 붓는다.
쇠꼬챙이로 포신 내부를 긁는다.
젖은 포목으로 포신 내부를 박박 닦는다.
마른 포목으로 포신 내부를 닦는다.
화약을 많이 넣는다.
꾹꾹 눌러 다진다.
화포 알을 넣는다.
심지에 불을 붙인다.
콰아앙.
포를 쏜 병사들이 눈썹위에 손을 올려 화포가 떨어진 자리를 확인한다.
상급자로 보이는 장수가 포수들을 불러놓고 한참 뭐라 떠든다.
이내 다른 병사들이 나와 포를 쏠 준비를 한다.
아무리 봐도 저건 포격 훈련이다.
이것들이 전쟁하러 와서 포격훈련을 하고 있다.
이 성이 어떤 성인데.
내 평생이 담긴 소중한 성이 포격 훈련용 표적지라니.
자그만한 일본화포와 달리 저 화포는 머리통만하다.
닿는 것은 모조리 파괴한다.
이미 성벽도 무너졌고, 그 뒤 시가지도 전부 박살났다.
그런데도 쳐들어오지 않는다.
포병들끼리 교대로 상의하고 혼내면서 포격훈련을 하고 있다.
이에야스는 분노로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다.
“하야시! 하야시 라잔!”
“예. 주군.”
“저건 대체 뭔가. 어떻게 저리 길게 날아올 수가 있지?”
“허어. 글쎄요.”
불과 24세 나이에 쇼군의 스승이자 후계자의 스승이 된 천재, 하야시 라잔이라도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다.
“조선에 저런 무기가 있었다니! 있었다면 몰랐을 리 없다.”
“새로 개발되었을 겁니다. 저 거대한 배와 함께. 거대한 배에 어울리는 거대한 화포를 만들었겠죠. 허나 금방 폭발할겁니다. 저리 꾸준히 쏴대면 화포는 폭발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겠지? 그럼 저 평야의 불은 뭔가?”
천수각에서 보이는 남쪽 멀리 거대한 화염이 보인다. 검은 구름을 뭉게뭉게 만드는 화염은 해안가를 중심으로 부채꼴로 넓어지고 있다.
“미개한 조선인들이 약탈 방화를 하고 있는 겁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에도 인근 모든 사람을 몰살 하겠다 했습니다.”
“그럼 큰일 아닌가?”
“어차피 모두 죽일 수 없습니다. 군대는 백성보다 느립니다. 군대보다 느린 백성은 전투에 쓸모없으니 죽어도 상관없죠. 오히려 식량 소모가 줄겠죠. 도망친 건장한 자들은 원한을 갖고 조선과 악착같이 싸우게 될 것입니다.”
하야시 라잔의 잔인한 설명에 이에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쪽 성벽이 무너졌는데 저건 어찌 막는가. 적의 수가 우리보다 두 배는 많은데 말이지.”
“군사적인 건 장수들과 상의하심이 옳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걱정할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적은 에도성 내 모든 이를 죽인다 했습니다. 그 말은 백성들도 필사적으로 싸우게 될 거란 뜻이죠. 에도에 숨은 백성의 수가 20만입니다. 적들이 병사를 밀어 넣는 순간 세배 넘는 인원에게 악착같이 공격받을 것입니다. 필사적으로 싸우는 백성은 생각보다 무섭습니다.”
하야시 라잔의 장담을 받았음에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근심어린 눈으로 적진을 바라봤다.
“그런 의도가 아닌 것 같은데......”
“입부. 너라면 어찌 싸울래?”
광해는 등 뒤에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는 입부 이순신에게 물었다.
“방어를 단단히 하고 돌진하겠습니다. 압도적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쯧쯧. 아직 내 전쟁을 이해 못했군.”
광해는 고개를 저었다.
하야시 라잔의 장담대로 조선군은 쳐들어오지 못했다.
대신 매일 아침 포대의 위치를 옮겨가며 포격만 했다.
하루 종일.
콰르릉!
“내보내줘!”
밤새도록.
쾅쾅!
“여기 있으면 다 죽어.”
콰아아앙!
“탈출해야 해!”
일주일 내내 포격이 이어졌다.
그리고 에도평야 전체가 약탈당했다.
첫날 5천여 명이 무방비로 죽었지만, 둘째 날부터 살육은 거의 없었다.
소문이 퍼지며 부랴부랴 도망친 덕분이다.
조선군은 마을의 모든 것을 약탈하고 불을 질렀다.
100만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드넓은 에도 평원에 멀쩡한 곳은 에도성밖에 남지 않았다.
에도성도 만신창이가 되긴 마찬가지였다.
남문, 동문, 서문 모두 파괴되었고, 성벽 곳곳이 허물어졌다.
성벽이 무너지면서 외성 밖 해자 곳곳이 메워졌다.
쇼군의 거처인 내성은 멀쩡했지만, 외성 시가지는 대부분 파괴되었다.
콰아앙!
포성.
저 포성이 문제다.
인명피해는 없다.
대포가 이동하고 설치되는 사이 사정거리 내의 모든 인원을 대피시키면 된다.
첫날 이후로 사망자는 단 한명도 없다.
대포는 치명적이지 않다.
저 소리만 아니라면.
쿠웅. 쿠웅.
멈추지 않는 심장처럼 저 소리가 일주일 내내 울렸다.
그 소리에 맞춰 에도 백성의 심장에 공포가 새겨졌다.
무너지는 성벽. 파괴된 시가지. 흉흉한 소문.
“나갈래. 나가야해!”
“비켜라. 나가는 건 허락되지 않았다.”
“나가야해. 에치고에 내 친척이 기다리고 있어.”
“안 된다. 누구도 나갈 수 없다.”
조선군은 대포를 방열한 곳에 뭉쳐서 주둔하고 있다.
에도군의 기습공격을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
즉, 다른 방향은 비어 있다는 뜻이다.
성벽 곳곳이 무너졌고, 헤자도 메워졌다. 그 뒤는 비어있다.
백성들의 눈으로도 그게 보인다.
저리 달려 나가면 살 수 있다.
“으아아아아!”
청년 수십이 동시에 달렸다. 대부분 병사들에게 살해당했지만, 운 좋은 몇은 성벽을 지나 평원에 나갔다.
근처에 있던 조선군은 대열을 갖춘 채 멀뚱히 쳐다봤다.
탈출한 청년은 그대로 평원을 달려 사라졌다.
“살려줘! 우리도 내보내줘!”
“제발! 같이 나가자! 나가면 살 수 있다고!”
민중의 말에 병사들마저 흔들렸다.
“안 된다! 모두 물러나라! 접근하면 죽인다!”
결국 지휘관인 사무라이까지 무너진 성벽에 배치돼 백성들의 탈출을 막았다.
20만 백성이 탈출하면 3만 안 되는 병력으로 조선군을 상대해야 한다.
백성의 탈출은 절대 막아야 했다.
그날 밤. 서문으로 2천명이 탈출했다.
포격을 시작한지 7일째 되는 밤이었다.
“입부. 지금은 어찌 할까?”
“진을 세 개로 나눠 돌진하겠습니다.”
충무공의 돌격대장.
용맹하고 자신의 목숨을 사리지 않고 돌격하며 충성심도 깊다.
한산도에서 군사교육을 받았음에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병사 한명도 죽지 않는 작전을 짜야한다. 싸우다 보면 사망자가 생기겠지만, 내 병사 한명도 죽지 않을 작전을 토대로 전투해야 한다. 이것이 나의 전장이다.”
다음날 아침부터 포성이 멈추고 6만 병력 전체가 밀집했다.
돌격진형을 갖춘 조선군은 함성을 지르며 전진했다.
“우워워워!”
6만명이 일제히 고함을 지른다.
그리곤 천천히 걸어온다.
긴 줄을 메고 무거운 포를 끌며 걸어온다.
일본군은 포성이 멈췄을 때부터 난리가 났다.
부랴부랴 병력을 모아 정렬했다.
무너진 성벽 백보 앞까지 온 조선군은 멈춰 섰다. 그리곤 가져온 통나무들로 목책을 쌓았다.
그 뒤에 대포가 방열하기 시작했다.
“이건 아니잖아!”
하야시 라잔이 비명을 질렀다.
성내로 쳐들어오면 백성을 밀어 넣어서 싸우게 할 수 있다.
그러면 이길 자신이 있다.
그런데 적이 안 들어온다.
저 무너진 성벽으로 백성을 밀어 넣어봤자 무의미하게 녹을 것이다.
쾅! 콰르르릉!
“성벽. 성벽위로 조총병을 보내!”
“조총의 사거리는 50보입니다. 닿지 않습니다.”
콰아아! 콰앙!
멀쩡하던 곳이 포탄에 맞아 파괴되고 있다.
이제 포탄은 내성 인근까지 날아온다.
적이 접근했으니 난입에 대비한 병사들을 대기시켜야 한다.
덕분에 백성들의 통제병력이 줄어들었다.
“탈출이다!”
“탈출해야해!”
“살 수 있다! 도망쳐!”
곳곳에서 백성들이 단체로 탈출을 시도했다.
막으려는 병사와 백성들의 전투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쓰다! 네 아비도 여기 있다! 같이 나가자!”
“산조! 이리와라!”
병사들 대부분이 에도 인근의 청년들이다.
일반 병사들로 백성들을 통제하는 건 무리가 있다.
이내 병사들의 합류가 이어졌고, 통제하는 사무라이를 베며 탈출이 이어졌다.
동문, 서문, 북문으로 탈주병사와 백성들의 도주가 시작되었다.
십만 명이 넘는 인파가 평야로 쏟아져 나왔다.
“저들이 사방에서 일제히 공격해오면 피곤하겠어.”
“사망자 없이 제압할 수 있습니다.”
“저 많은 인간을 다 죽일 생각을 해봐. 얼마나 피곤할까. 죽이고 나면 정신병 걸린 병사도 잔뜩 생기겠지.”
다행히 도주한 백성이 조선군에 달려드는 일은 없었다.
7일간의 포격.
그리고 전진.
에도성 전투는 전투 없이 끝났다.
백성들이 탈출한 순간 전투는 끝났다.
“오고슈. 퇴각해야 합니다.”
장수들이 달려와 패배를 알렸다.
“그래야겠지. 짐은 다 쌌냐?”
“예. 떠나시면 됩니다.”
패배를 가정해 미리 짐을 챙겨 놨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준비된 마차에 오르며 뒤를 돌아봤다.
6만의 조선군.
힘들 거라 여겼지만, 이렇게 싸울 줄 몰랐다.
“병사의 목숨을 아끼기 위해 화약을 버린 건가. 조선의 왕은 생각보다 더 무섭군.”
귀하디귀한 화약을 싸구려인 징집병 목숨과 바꾸다니.
전쟁의 상례에 어긋난 짓이다.
“천천히 가자. 저들은 하루정도 더 포격만 할 거야.”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천천히 북문을 빠져나갔다.
조선군 첩보병이 그 모습을 포착하고 보고했다.
“입부. 추격하고 싶지?”
“예. 병사들을 몰아쳐서 적을 부수고 싶습니다.”
“아니야. 아직 나의 전쟁을 이해하지 못했구나. 에휴.”
포격은 하루 더 이어졌다.
“포각 정리한 거 가져와봐.”
“예. 전하.”
광해의 지시에 전군 포병 대장으로 임명된 백관 기승진이 자료를 가져왔다.
8일간 아무 생각 없이 포를 쏜 게 아니다.
각을 달리하고, 화약의 양을 달리 하면서 최적의 화약 양과 발사거리, 파괴력 등을 시험했다.
매 순간 곁에 붙어서 기록하고 분석한 기승진.
착호갑사 출신인 기승진은 백관 교육 때부터 수학에 강점을 보였고, 병기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포병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자료의 값어치는 잘 알겠지?”
“물론입니다. 전하.”
“그래. 표준을 잡고 훈련까지 맡아서 하도록.”
“알겠습니다.”
포병대장 기승진.
포병이 대포를 배로 옮길 때 부대는 에도성으로 진입했다.
끝내 남았던 백성들도 도쿠가와가 성을 버리고 퇴각하자 다들 함께 도망쳤다.
성은 비어있었다.
거의.
“주상 전하. 이들은 움직일 수 없는 이들이옵니다. 부디 살육을 멈춰주십시오.”
성내 공터에 2천여명의 양민이 모여 있고, 그 앞에 유정이 엎드려 간청했다.
다리 없는 이. 중병을 앓고 있는 이. 부모에게 버려진 갓난아기. 고아. 만삭 임산부.
충분히 시간을 줬음에도 도망갈 수 없던 이유는 다양했다.
“미리 도망치지 않으면 전부 죽이겠다고 약속했다. 헌데 이들 때문에 내 약속을 져버릴 수 없다.”
“전하. 이들은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나이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한숨이 나온다.
죽여야 하는데, 죽이기 힘들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시언 개떡이 김충선 등 장군들이 전부 광해를 쳐다보고 있다.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면 앞으로 열배의 피가 흘러야 할 것이야. 마주치면 무조건 죽인다는 소문이 나야 적들이 도망치게 되고 원망의 방향이 우리가 아닌 자신들의 성주에게 향하게 된다고. 예외를 두어선 안 돼.”
개떡이가 용감하게 말했다.
“군인은 싸워야 하는 존재입니다. 주상께서는 저희의 생명을 너무 아끼십니다. 저런 약자를 죽이면 부대의 사기가 오히려 떨어질 것입니다.”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장군들이 일제히 부복했다.
주위 병사들의 얼굴을 봤다.
왜란 때 큰 피해를 입고 복수심에 자원한 병사들.
그들조차도 내키지 않는 표정이다.
병사들 중 우진춘이 대표로 소리쳤다.
“적과 싸우면 흥분해서 적을 죽이고 싶고, 강간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저런 저항할 수 없는 생명을 죽이다보면 자살하고 싶어집니다. 우릴 살려주소서!”
왜구에게 복수한다는 소망을 달고 있는 병사들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광해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사명당. 이들에게 살려주는 이유를 잘 설명하고 전쟁의 의의를 알려라 그리고 너는 조선으로 간다. 이건 명령이다.”
“감당하겠습니다.”
“나한테 빚진 거 잊지 말고.”
“감사합니다. 주상의 은덕에 감사드립니다.”
사명대사는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절을 했다.
쏴아아.
사명당에게서 마력 95만이 들어왔다.
“모든 것을 파괴하라.”
단군력 2년(1609년) 12월 2일. 에도성이 무너졌다.
광해는 배에 오르며 폐허가 된 에도를 바라봤다.
점령은 쉽다.
정복은 어렵다.
지금 깃발을 꽂아봤자 지킬 수 없다.
“오래 걸리겠군.”
조선군은 에도성의 모든 것을 불태우고 홋카이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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