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유구국 정복
순도 100% 픽션입니다
나하항 앞바다엔 서양갑의 함대가 떠 있었다.
관선 40척으로 무장한 소규모 함대.
서양갑은 기다리던 광해함이 도착하자 넘어와 인사를 올렸다.
“송구하옵니다. 전하. 제 탓입니다.”
“그걸 어떻게 미리 알 수 있겠어. 언어도 통하지 않는데. 적의 상황은 어때?”
“백기를 올렸고, 수백명이 포박되어 항구에 묶여 있습니다. 그 중엔 유구국 재상 쟈나 리잔도 있습니다. 함정일 가능성도 있기에 상륙하지는 않았습니다.”
전투 병력이 이천 명밖에 없으니 몸을 사리는 게 옳다.
“잘했다. 이제 전 병력 상륙하자. 함정일지라도 한명의 피해도 없이 막아주마.”
“예. 전하.”
광해함을 선두로 나하항에 입항했다.
전투는 없었다.
항구에는 슈네이왕이 병력 2000천명을 이끌고 도열해 있었다.
모든 병사들은 비무장 상태였고 창칼활 등 무기를 모아 항구 앞에 쌓아둔 상태였다.
그들 앞엔 쟈나 리잔과 병사 300명이 묶여 있었다.
광해가 당당히 상륙하자 슈네이왕이 달려와 변명했다.
“전하. 이건 이 미친자가 독단으로 벌인 일입니다. 저희 유구국은 이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내 백성들은?”
“무도한 침입자들에게 고통 받는 이를 일부 구했습니다.”
슈네이왕이 손짓하자 병사들이 십여명의 환자를 들것에 싣고 왔다.
고문의 흔적이 역력하다.
정보를 빼내기 위해 각 국이 나눠가진 포로 중 유구국에 할당된 인원이다.
“전화 저희는...”
“쉿.”
간삼이 앞으로 나서 입을 막았다.
광해가 말없이 환자들을 치료하는 사이에 조선군이 속속 내려 이천 명이 되었다.
조유 양군은 마주보고 길게 도열해있고, 멀리 백성들이 근심 속에 구경하고 있다.
“흐어. 광해님.”
“광해님. 죄송. 죄송합니다.”
“됐다. 너희 말고는 없느냐?”
“예. 포로로 잡힌 건 저희밖에.”
“그래. 쉬어라. 복수는 걱정 말고.”
구출한 조선인을 뒤로 뺀 후 광해는 슈네이 왕을 마주봤다.
눈치를 보던 슈네이왕이 손짓하자 나무로 짜인 관 수백개가 들어왔다.
하나씩 뚜껑을 열어보니 불에 탄 시체들이 하나씩 들어있었다.
“간악학 말코놈들이 불태웠습니다. 매국노 쟈나 리잔이 병사들을 지휘했기에 막을 수도 없었습니다.”
과연 그럴까.
뒤늦게 상황을 눈치 챘어도 가만히 있다가 믿었던 서양 세력이 물러나자 그제야 조선이 두려워 수습하려 했겠지.
정치란 그런 거니까.
“조선을 공격한 이유가 궁금하군.”
유구어를 아는 광해는 한국어로 말했다.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눈치 챈 슈네이 왕이 몸을 떨었다.
광해의 말은 서양갑이 일어로 통역했고, 슈네이왕은 일어로 떠듬떠듬 대답했다.
“저 놈이 타국과 결탁해 제멋대로 군을 움직였습니다. 저희는 수습할 수 없었습니다.”
계속 결박되어 있는 쟈나 리잔에게 책임을 돌리는 슈네이.
광해는 쟈나를 봤다.
온몸이 묶여 있으면서도 눈을 부릅뜨고 광해를 노려보고 있었다.
“왜 조선을 배신했지? 왜국에 정복당할 걸 구해주지 않았나?”
“흥! 그 시커먼 속셈을 모를 것 같소? 조국의 식량을 빼앗아 백성을 굶주리게 하고 그 식량을 무기로 조국을 무너뜨릴 생각 아니었소? 이대로 가면 아국은 식량이 부족해 조선에게 모든 산물을 바치고 목숨을 연명해야 하니 그건 왜국의 지배보다 못하오.”
똑똑하네.
미국이 쿠바를 뽑아먹던 방식으로 유구를 다루려 했는데 겨우 1년 만에 핵심을 깨닫고 움직이다니.
그래도 일본의 지배보다는 수십배 나은데.
인간은 자기중심적으로 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존재니 어쩔 수 없나.
뒤에서 모현성이 눈을 반짝이며 다가와 귓속말했다.
“형 쟤 나줘. 내가 쓸게.”
이놈의 인재욕심은 진짜.
“대단한 놈이야?”
“수첩에 적지는 않았는데 읽어본 적은 있어. 유구가 사쓰마에 정복당한 후 왕과 대신들이 도쿄로 불려가 신종문서에 서명했을 때 저놈 혼자 끝까지 반대했어. 왕과 대신들은 돌아와 사치스럽게 여생을 보냈고 신종에 반대한 쟈나 리잔은 끓는 물에 삶아져 죽었지. 똑똑하고 애국심도 훌륭해.”
유구국의 마지막 충신인가.
광해는 다른 눈으로 쟈나 리잔을 보았다.
“조선의 속셈이 혹여 그러하다 치자. 어쩌려고 일을 저질렀나? 조선의 응징은 두렵지 않았더냐?”
“크흑. 서양 삼국이 함께 조선군을 막기로 했는데 그자들이 배신하고 철수해버렸소.”
김옥균 같은 놈이었군.
조선을 몰아내겠다고 또 다른 나라를 불러오다니.
이래서 어설프게 똑똑한 놈은 위험하다.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베스트 시나리오로 흘러갈 거라 믿고 저질러버린다.
대체 뭘 믿고 서양인을 믿은 거지.
광해는 쟈나 리잔과 그 뒤에 묶여 있는 병사들을 보며 고민했다.
구타와 고문을 당했는지 다들 상태가 좋지 않다.
‘어떻게 죽이지.’
살릴 생각은 없다.
죽이긴 할 건데 그 방식도 중요하다.
병사들에게도 가족이 있다.
조선군에게 가족을 잃으면 이유가 뭐가 됐든 원한을 가슴에 새긴다.
조선군이 죽이면 어떻게든 정치에 이용된다.
저들을 유구국의 충신으로 포장하고 숭고한 순교로 포장해 독립 운동의 상징이 될 수 있다.
마치 죽은 임경업이 솜사탕처럼 부풀려지듯이.
광해는 팔짱을 끼고 주의를 둘러봤다.
수군대며 구경하고 있던 백성들이 슬며시 눈을 돌린다.
“이들의 죄를 너희가 인정한다면 죽여라.”
광해가 유구어로 외쳤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슈네이왕이 병사들에게 명령하려 하자 광해가 막았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라.”
유구 병사도 안 된다.
그들이 죽여도 부패한 권력으로 매도해 정치적으로 이용된다.
불특정 다수가 스스로 죽여야 한다.
“없나? 그렇다면 여기 모인 백성들 모두 쟈나 리잔과 뜻이 같아 조선을 적대한다고 봐도 되나?”
광해의 말에 나하의 모든 백성이 충격을 받았다.
애초에 쟈나 리잔이 조선의 속셈을 설파했지만 그 뜻을 이해한 자는 아무도 없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들은 천명 중 천명이 이해 못하는 것과 같다.
“우린. 우린 아닙니다.”
살기 위해 백성들이 나섰다.
하나 둘 나선 백성들이 무기를 잡았다.
“크윽. 미안해.”
“이 나쁜 놈들.”
“나라를 망친 매국노들.”
살인 경험이 없는 백성들이 가족을 살리기 위해 나섰다.
잔인하지만 이 방법이 두 번째로 효율적이다.
“이럴 거면 차라리 영국처럼 다 죽이지. 그게 가장 싼데.”
모현성의 귓속말이 첫 번째고.
재상 쟈나 리잔을 비롯해 삼백여명이 죽임을 당했다.
끔찍한 현장을 보던 슈네이왕이 조심히 다가왔다.
“조선의 왕이시어. 궁으로...”
“이들 뿐이냐!”
광해가 말을 끊고 소리쳤다.
“조선인은 숨지도 못하고 몰살당했다. 고작 삼백 명으로 포위가 가능했느냐? 나하의 병사 이천은 저 삼백 명이 배신할 때 구경만 했느냐? 이들 말고는 없느냐?”
이왕 내친걸음.
“저놈! 저놈도 그때 조선을 공격했습니다.”
“저... 저 장군이 그때 포위를 지시했습니다.”
백성들이 병사들을 지목했다.
“죽여라!”
무장해제를 하고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
그들에게 무기 든 백성이 달려든다. 처음보다 많은 백성들이 ‘정화’에 가담한다.
조선의 분노를 잠재우고 최대한 피해를 줄이려던 슈네이는 이마를 짚었다.
도열한 병사 중 천 오백이 끔찍히 살해당했다.
항구 앞 넓은 광장이 피와 시체로 가득 찼다.
살인의 충격에 헐떡거리던 백성들이 몸에 묻은 피를 보며 천천히 물러섰다.
이렇게 처리했으니 원성은 조선을 향하지 않고 죽은 병사에게 향하겠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나선 불특정 다수를 욕하느니 죄 지은 병사를 욕하는 게 간단하니까.
서서히 정돈되는 모습을 보며 광해가 말했다.
“내 유구국을 형제의 나라로 보고 많은 편의를 봐 주었다. 외적으로부터 구출하고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았으며 많은 산물을 가져와 너희가 좀 더 잘 살게 해 주었다.”
이 말도 사실이다.
슈네이 왕과 백성들이 보기에 조선은 천사 그 자체였다.
그런 조선을 공격하다니.
“내 마음 같아선 너희를 모두 죽이고 싶다. 하지만 신이 원하지 않는구나. 신께서 너희조차 품으라 하신다.”
와아아아~
이미 광해소망교가 널리 퍼진 유구국의 백성들이 안도의 함성을 외쳤다.
“하지만 저런 부패한 자가 권력을 탐해 신의 백성이 죽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 이대로라면 같은 일이 계속 발생할 수 있다.”
광해는 처참하게 죽은 쟈나 리잔을 가리키며 말했다.
똑똑한 애국자 쟈나 리잔은 권력을 탐하는 부패한 자가 되었다.
“왕의 백성이 되어라. 그리하면 너희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마. 슈네이 왕은 백성들 스스로 내게 신종함을 막지 마라.”
광해는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
뒷처리는 서양갑이 할 것이다.
“흐어어엉.”
풀려난 포로가 광해함에서 먼저 풀려난 이와 만나 울며 껴안았다.
이괄의 이가상단 선장도 다른 선장과 조우해 서로 안고 울었다.
동료를 못 찾은 이는 광해함에 실린 불타죽은 시신을 안고 울었다.
오직 이괄만 멀미로 고생하며 뻗어있었다.
뱃전의 울음바다를 보던 광해는 남쪽 나하항을 봤다.
서양갑의 호령에 유구국 백성들이 벌벌 떨며 시체를 수습하고 있다.
김옥균같은 쟈나 리잔의 일탈로 비극이 일어났다.
씁쓸한 현장을 보고 있는데 모현성이 다가왔다.
“영국식으로 할 게 아니면 이게 최선이야.”
“... 그래.”
“1609년 사쓰마에 항복한 오키나와는 400년이 지난 21세기에도 독립운동을 일어나. 400년간 저항운동을 막아낼 비용을 생각하면 이게 저렴해.”
물론 50만 인구를 죽이고 자국민으로 교체하는 게 가장 싸다.
악마의 민족 영국.
“그래도 좀 불쌍하군.”
유구국은 사라진다.
뿌리까지 사라질 것이다.
일본의 오키나와 지배보다 더 강력한 민족의식 말살이 진행될 것이다.
어차피 현 시대의 유구국은 귀족들만 잘 먹고 잘 사는 수탈의 국가다.
향후 영원히 저항운동을 막을 비용을 생각하면 처음부터 하나의 민족으로 만들어야 한다.
“언더도그마. 약자는 착하고 강자는 나쁘다. 재벌은 나쁘고 재벌 2세는 더 나쁘고 가난한 농민은 천사다. 이런 논리 함정에 빠지면 안 돼. 일본에 지배당한 오키나와는 불쌍했지만, 오키나와에 지배당한 아마미 군도는 더 불쌍했어. 일본의 오키나와 수탈도 가혹했지만, 오키나와의 아마미 군도 수탈은 훨씬 심했어. 무조건 약자가 착한 건 아니야.”
“... 들은 거 같다.”
“저들은 스스로 선택할 거야. 조선의 제안을 받아들여 조선민이 되거나 유구국 중산정왕에게 충성해 유구민으로 남거나. 당연히 가난하고 수탈당하던 이는 조선민이 될 테고 1~2% 귀족만이 유구인으로 남겠지.”
“그래. 조선 성리학자보다 가혹한 수탈이 이어지던 땅이었으니.”
“자업자득이지.”
“자업자득 맞아. 만약 제대로 다스렸다면 분열되지 않겠지.”
유구국이 사라진다면.
그건 지배층의 잘못이다.
조선은 인본주의 정치를 행할 뿐이다.
광해가 멀어지는 우치나를 보는 동안 광해함은 돛을 펴고 한성을 향해 나아갔다.
“광해소망교 교인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요. 서명하시오.”
서양갑이 문서를 들이밀자 슈네이왕은 사색이 되었다.
백성 스스로 원하는 나라를 선택하라니.
이건 어디서도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게다가 조선을 선택한 이가 절반 이상이면 그들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그 지역을 조선 땅으로 하겠다니.
백성에게 세금을 걷지 않으면 왕과 귀족의 삶을 유지할 수 없다.
그 백성을 몽땅 뺏기게 생겼다.
“받아들일 수 없소. 차라리 보상금을 내겠네.”
“이보시오. 중산정왕. 지금 협상자리로 보이시오? 이건 광해님의 은혜로운 자비요. 거부한다면 이만 대군을 이끌고 와 피의 복수를 할 것이오.”
“이... 이미 반역자들을 처단했는데......”
“어느 나라든 반역자는 구족을 죽이지요. 죽은 천팔백명의 구족을 죽인다면 유구국에 남는 인원이 몇이나 되겠소?”
“그...... 크흑.”
외통수다.
슈네이 왕은 눈물을 흘리며 서명했다.
본래 이 문서는 2년 후 시작될 작전이었다.
식량부족으로 유구국에 폭동이 일어나고 광해 상회에 티끌이라도 피해가 나면 조선이 등장하는 계획.
하지만 똑똑한 쟈나 리잔 때문에 시간이 당겨졌고 명분은 더 좋아졌다.
다음날 유구국 전역에 방이 붙었다.
-광해소망교 교인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
조선인이 되길 선택한다면 받아들이겠다.
조선어를 익히고 광해소망교를 공부해 시험에 통과하면 아무 차별 없이 광해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
모두가 광해님이 태어나신 한반도에 살 수 있게 해 주며, 온돌이 있는 고급스런 집과 농사지을 땅을 줄 것이다.
차별금지법에 의해 너희의 태어난 곳이 달라도 절대 차별받지 않게 보호할 것이며 누군가 차별한다면 그 자를 처벌하겠다.
광해님을 믿는다면 이민을 신청해라.
유구국 전체가 불처럼 들끓었다.
우치나에 정복당해 노예의 삶을 살던 아마미 군도 전체가 이민을 신청했고, 마찬가지로 중산정왕에게 정복당했던 우치나 북부 지역에서 이민자가 속출했다.
나하를 비롯한 우치나 중심지역에서도 귀족들의 토지에서 소작농으로 살던 가난한 농부와 어부들이 앞 다투어 이민을 신청했다.
조선은 그들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귀족들의 대토지를 빼앗았고, 이민을 신청한 자는 본래 살던 생업을 하면서 조선어와 조선의 법규를 공부했다.
이들이 시험에 통과해 조선 땅으로 이주해 흩어지고 조선의 농민들이 유구국으로 이주하고 나면 유구국 정복이 끝난다.
유구국 왕족과 귀족들은 천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직접 자급자족 하다가 끝내 조선에 흡수될 것이다.
이게 독립운동과 저항을 막는 가장 효율적인 절차다.
- 작가의말
이 글의 목적은 ‘정복’입니다
그래서 일반 소설과 흐름이 조금 다릅니다
유쾌상쾌통쾌한 ‘승리’로 끝나는 건 결혼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고 끝내는 ‘동화’
완벽히 ‘정복’하는 건 매일전쟁을 겪는 결혼한 ‘부부의 삶’
이정도의 차이가 있죠
평원을 지배한 몽골은 100년만에 모든 점령지를 빼앗겼고
세계를 정복한 영국은 포틀랜드, 지블로터 등 극히 일부만 제외하곤 전부 독립당했죠
모현성의(저의) 설계는 광해가 사라진 후에도 1000년 이상 조선의 영토로 남게 될 대제국입니다
글의 목표가 이렇다보니 고작 인구50만에 제주도보다 작은 유구국 하나를 정복하는데도 139화나 걸렸습니다
영구히 정복하기 위해 다른 소설엔 필요없는 귀찮고, 즐겁지않은 과정 몇개를 추가해야 했거든요
생각해 보니 처음 제목, 완전정복이 더 어울리네요. 고쳐야지.
지루하지 않게 봐주셨으면 합니다요
지루하시면.... 제가글못써서그런거니 ㅈㅅ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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