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기술유출
순도 100% 픽션입니다
“좀 한가하군.”
“올. 형이 이런 소리를 하다니.”
“뭔가 진행되는 건 많은데 오히려 할 일이 줄었네.”
삼로 원정대가 칸국의 영토를 무지막지하게 늘리고 있다.
그런데 한성의 광해는 오히려 할 일이 줄었다.
“원래 시뮬레이션이 그렇지. 삼국지나 문명 같은 게임을 해도 초반엔 더럽게 할 일이 많은데 후반가면 그냥 오토 돌려도 알아서 확장하잖아. 기반 닦았으니 이제 기다리는 게 일이야.”
인도방면군은 백칠해적단이 선두에서 적선을 전부 나포하거나 쓸고 나면 개떡이의 주력이 뒤따르며 명나라 해적(?)을 쫓아내는 호의를 보이고 있다.
매우 단순한 전략이지만 매우 잘 먹힌다.
무굴제국은 아직 인도 북부에 있고 역삼각형 아래쪽은 수많은 나라가 난립해 있다.
덕분에 남서원정군은 압도적인 해군 전력으로 압박해 유리한 동맹을 맺을 수 있었다.
개떡이의 군세는 인도 서쪽 고아까지 진출해 포르투갈 군을 무너뜨렸고, 인도지역 각 부족과 동맹을 맺었다.
1차 세계대전 전까지 훈련에 실제 화약을 사용한 건 영국뿐이었다.
영국만이 유일하게 실사격 훈련을 할 수 있었던 건 식민지 인도에서 나는 초석 덕분이었다.
인도 진출로 얻은 가장 큰 수확 초석.
인도에서 수입하는 이 초석은 흙가마솥으로 생산하는 염초의 부담을 줄여준다.
인도 지역 부족들과 동맹을 맺고 무한히 구매하는 초석 덕에 확장하는 제국군은 화약을 자체보급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화약으로만 쓰는 게 아니라 곱게 갈아 비료로 뿌려도 좋다.
흙가마솥이 없는 구름표범섬이나 규슈 등지엔 인도의 초석을 가져와 비료로 만드는 비료공장이 세워졌다.
한편 동방개척단은 샌프란시스코에 첫 마을을 건설했고, 원정대는 빠르게 남하해 스페인의 위성도시를 파괴했다.
파나마에 두 번째 거점을 건설했고, 칠레 북부, 우유니 사막 근처에 세 번째 거점을 건설했다.
세계에서 초석매장량이 가장 많은 곳.
세 번째 거점 덕에 동방원정대도 화약걱정을 덜 수 있게 되었다.
복귀하던 천톤급 수송대는 바람 고리를 따라 적도로 돌아오며 하와이의 스페인 기지를 무너뜨렸고.
초원원정대는 차분히 철로를 깔며 전진하고 있다.
속도는 느리지만 꾸준하다.
편하고 느긋하게 발전하는 칸국에서 노닥거릴 때 새 소식이 들어왔다.
“기관차 습격당함. 기병은 퇴각. 기차의 모든 인원 전멸. 기관실 자폭. 적 추정 만 명 이상 사살.”
모현성이 서신을 읽으며 눈쌀을 찌푸렸다.
기관차가 습격당하고 하루 뒤에 기차 다섯 대과 정충신의 기병 삼만 기가 덮쳤다.
그땐 이미 시체만 남겨두고 적이 후퇴하는 중.
기마 사만기와 보병 이만기가 후퇴하고 있었는데 정충신은 감히 공격하지 못했고, 적도 싸울 의사가 없었다.
“차하르 부 기병과 요서군이 손을 합쳤다라......”
개방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 예상되는 피해는?”
광해가 눈쌀을 찌푸리며 말하자 모현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삼백명이겠지. 기차 하나당 호위 보병이 삼백명이니까.”
“그거 말고 기술.”
삼백 명으로 만 명 이상 사살한 건 의미가 없다.
기술을 뺏겼으니 패배다.
“음...... 광해이포는 확실히 뺏겨. 단순하니까 만들기도 쉽고. 적이 화약을 물 쓰듯 쓰진 못해도 우리와 싸울 때 충분히 위협적일 거야.”
심플 이즈 베스트.
심플해야 만들기 쉽고 고장 나지도 않는다.
대신 쉽게 뺏긴다.
적국은 강철을 만들 수 없으니 베껴 만든 포가 폭발할 일은 많겠지만, 그래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어차피 다른 나라들도 소형포를 산탄총으로 쓰는 나라 많아. 큰 차이는 없을 거야. 대신 우리도 적과 개활지에서 싸우는 건 주의해야겠지. 그리고...... 증기기관과 기관총은 모르겠네.”
기관실 바닥에 화약을 잔뜩 심었지만 완벽히 폭발했다고 자신할 수 없다.
불을 때야 하는 증기기관의 특성 상 화약을 너무 가까이 심어놨다가 사고로 다 죽을 위험이 있다.
확실히 밀봉하고 기관실 전체에 심었지만, 증기기관이 완벽히 파괴되었다고 자신할 수 없다.
“일단 탄피. 탄피를 회수하지 못했으니 적도 탄피의 효과를 알게 될 거야. 뇌관에 넣을 뇌홍까진 베끼지 못해도 몇 년 고생하면 금방 발견할 거야.”
스페인에서 서쪽으로 쭉 가면 아메리카 대륙이 나온다.
모를 땐 시도 할 상상조차 못했지만 알고 나면 따라 하기 매우 쉽다.
탄피와 자동장전 기술이 그러하다.
탄피는 화약의 폭발력을 한곳으로 투사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미리 완성해 놓기에 재장전 시간이 줄어든다.
특히 기관총은 생성된 가스를 이용해 탄피를 자동으로 배출하고 반동을 이용해 다음 탄을 자동으로 장전한다.
기관총의 핵심부이며 단단한 부분이기에 폭발해도 원형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야금술이 부족해 탄피를 완벽히 만들진 못 할 거야. 하지만 무기의 효과를 확인한 적은 전력을 다해 베끼려 하겠지. 폭발하는 모든 물질을 탄피에 넣고 뇌관을 때려 폭발하는 뇌홍을 발견하게 된다면...... 무기 상으로 우리의 장점은 사라지게 돼. 내 생각엔 5년 안에 카피본이 나올 거야.”
언젠가 기술을 뺏기게 될 줄은 알고 있었다.
내부유출, 혹은 전투 실패로 인한 유출.
증기기관차가 외부로 돌면서 어쩔 수 없이 증기기관의 힘도 알려지게 될 것이다.
기관실에 허가 없이 접근하거나 이것저것 묻는다면 곧장 사형당하지만 멀리서 꾸준히 관찰하면 석탄과 물로 운행한다는 것은 들킬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전자기술을 일본이 카피하고, 일본의 전자기술을 한국이 카피하고, 한국의 기술을 중국이 카피하듯 앞선 기술은 카피당할 수밖에 없다.
“내가 다 죽이면 될까?”
“전투는 닷새 전이었어. 몽골과 요서로 흩어졌겠지. 지휘부만 알고 있겠지만, 대체 몇 명이나 알게 되었는지 확신할 수 없어.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기술자들에게 공개 했을 텐데 그걸 다 죽일 수 있겠어?”
“무리. 죽이다보면 마력이 떨어져서 내가 죽겠지.”
“그래. 버리자. 대신 적이 발전한다 치고 우리 제식을 바꾸자.”
“k2?"
“어. 광해소총. 일부러 설계도도 가져왔으니 그걸로 만들어야지. 일단 개머리판은 나무로 만들고...... 음. 형의 마력 없이 제작되도록 한번 만들어 볼께.”
“그래.”
언젠간 k2 소총도 뺏기겠지만 우선은 만드는 게 낫다.
기관총의 자동장전 원리를 적이 알게 되면 자동소총도 금방 만들어진다.
공기에서 빵을 만들어내는 비료기술은 모든 화학자의 꿈이었다.
질소가 식량 증산에 도움이 된다는 이론이 완성된 후 전 세계의 천재들이 전부 달려들었지만 무려 150년간 실현하지 못했다.
그 기술을 하버-보슈가 만들어냈고, 1차 대전 중 독일에 무한한 화약을 제공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패배한 독일은 비료 기술을 지키지 못했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독일과는 지구반대편에 존재하고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던 한국에 비료공장이 생긴 건 기술이 유출되고 고작 15년 후였다.
“몽골과 중국에서 연구가 시작되겠지. 5년 쯤 후에 완성될 거고 만들면 써먹을 거야. 화약기술이 부족해 많이는 못 만들어도 충분히 위협적일 테고. 계획대로 중국을 분열시키면 여러 세력이 보유하게 될 테니 기술발전은 더 빠를 거고. 일단 자동장전을 경험한 적대국은 온갖 수를 짜내 기술을 훔칠 테고 기술 유출은 점점 빨라지겠지. 삼십년이면 유럽도 자동소총을 보유하게 될 거야.”
이런 파급력을 아니까 기술보호를 위해 히스테릭한 B사감마냥 집중해왔는데.
“k2로 정리하자. k2도 뺏기겠지만 화약을 대량으로 만드는 기술은 우리만 갖고 있으니 됐고. 증기기관은?”
“글쎄. 이건 모르겠어. 증기기관이 워낙 커서 들고 가지 못했을 거야. 쇠를 녹일 기술은 없을 테고. 하루 관찰한 걸로 과연 카피할 수 있을까? 여기저기 망가진 증기기관인데. 대충 원리는 알아내겠지만 베끼진 못 할 거야. 강철 기술도 없이 합금을 생산하려면...... 황동으로 되려나.”
“못 베껴?”
“일단 아이디어는 얻었겠지. 증기를 이용해 이런 저런 시도를 할 테고. 하다보면 작은 증기기관은 만들 수 있을 거야. 밀가루 만드는 제분기 같은 거. 그리고 하다보면 점차 기술이 발전할 거고, 합금의 필요성을 느낄 테니까....... 아 몰라. 20~50년이면 증기기관차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나라가 혼란스러우면 집중하지 못할 테고.”
“그렇지. 일단 죽이고 쪼개야지.”
“그래.”
차하르 부와 요서군, 좀 더 확장하면 명나라 정부까지.
혼란을 가중시켜 적이 기술 개발에 집중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도망 다니게 만들어야지.
“요서는 이성량과 아들들을 죽인다. 구심점을 잃으면 흔들리겠지.”
“오케. 차하르 부는?”
“족장들만 죽이자. 여진 먹던 식으로.”
“그래. 가랏 진우몬!”
쿵.
꼭 매를 번다.
모현성은 이제 왕인데도 변한 게 없다.
이날 오후 광해는 대장간에 살았다.
마법으로 강철을 녹여 얇은 철판을 만들었고 말가죽에 하나씩 붙여 찰갑을 만들었다.
광해의 옆에 누워 오수를 즐기는 구름이.
“구름아 와서 서봐라.”
구름이를 세우고 새로 만든 갑옷을 입혀봤다.
자기에게 주자 눈이 반짝반짝 하던 구름이는 갑옷의 무게에 투레질을 했다.
이 녀석 지가 진짜 말인 줄 아네.
“구름이 완전 강해 보여. 멋져. 잘생겼다. 저 말보다 강하고 빠르고 잘 생겨 보여.”
마력으로 의미를 전달하자 구름이는 기분이 좋아져 크릉거렸다.
“싸우라곤 하지 않을게. 그냥 멋을 위해 같이 가는 거다.”
광해의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한 구름이는 목덜미를 광해의 허벅지에 비볐다.
말보다 큰 구름표범이 전마처럼 마갑을 입었다. 발바닥과 눈구멍을 제외하곤 화살 따위에 다칠 일은 없을 것이다.
다음날 마갑을 입은 구름이에 탄 광해가 궁을 나섰다.
백 명의 호위와 함께한 광해는 닷새 만에 창춘으로 가 기차를 탔고, 선로가 개설된 서쪽 끝까지 이동했다.
정충신의 기병 사만 기와 합류한 광해는 남서쪽으로 이동했다.
요서 서쪽, 베이징 북쪽에 차하르 라는 작은 도시가 있고, 이곳에 북원의 황제, 린딘 대칸의 황궁이 있다.
칸국군의 이동은 진작 알려졌고, 그 화력을 아는 몽골군은 성내에 틀어박혔다.
기차를 습격하면서 이미 예상한 일이었고 조선의 보복을 막기 위해 예전부터 준비해왔다.
성벽 근처까지 온 조선군은 일부가 말에 내려 광해이포를 설치해 기습에 대비했다.
그리고 광해 홀로 나섰다.
구름이를 타고 성벽 바로 앞까지 온 광해는 목소리를 확대하는 마법진부터 그렸다.
“나는 칸 제국의 대칸 광해다. 칸 제국은 비록 동쪽 칸반도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뿌리는 이곳에 사는 몽골족과 같다. 그러하기에 나는 은혜를 베풀어 식량이 부족한 이에게 식량을 주고, 철과 기술을 전달해 너희 모두 잘 살게 만들려 했다.
칸국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이는 교육을 통해 칸국의 백성으로 만들고, 스스로 사는 걸 선택한 이들에겐 아무 차별 없는 동등한 동맹으로 대하려 했다. 즉, 지금처럼 살더라도 식량만 받으면 되니 너희에게 유리한 동맹이었다.
그런데 너희 부족의 장은 감히 칸국을 공격했고 칸국의 백성을 살해했다. 이에 너희 부족의 왕과 그 일족을 죽이겠다. 이것으로 형벌을 끝내되 나머지는 나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 거부하는 자는 모두 죽이겠다.”
일단은 이간질부터.
적 전체를 다 죽이긴 힘들고 다 죽이면 얻을 것도 없다.
몽골기병 40만은 군침 도는 먹이감이다.
이들에게 식량을 제공해 복속시켜 중앙아시아를 점령한다.
이 대전략에 따라 식량을 퍼주고 있었는데 감히 기습하다니.
적의 대칸이 자기 지위를 지키기 위해 부족의 희생을 무시한 결과.
식량만 받고 동맹으로 남아도 훨씬 이득이지만, 적장은 자신의 권위를 위해 피의 무게를 무시했다.
이게 남의 위에 선 지도자의 본성인 거지.
말을 마친 광해는 홀로 전진했다.
몸 주위에 방어마법진을 발동시켜 구름이까지 감쌌다.
걸어가면 폼이 안 나니까 구름이를 타고 간다.
적은 맹수에 올라탄 광해가 홀로 전진하자 진짜 왕인지 긴가민가하면서도 화살을 날렸다.
화살비를 무시하고 전진한 광해는 구름이에 탄 채로 공중에 떠올랐다.
염동력으로 구름이를 감싸 띄운 것이다.
구름이는 테이밍 마법으로 의지를 전달받았음에도 깜짝 놀라 몸부림쳤지만 다행히 떨어지는 추태는 없었다.
“크아앙.”
겁먹은 표범이 울부짖었다.
- 작가의말
기술 유출의 파급 효과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와서 좀 자세히 적었어요
만약 지금 전기 기술자 한명이 칸국을 탈출해 유럽으로 간다면...국가에서 기술통제하는 칸국보다 유럽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전기제품을 좀 더 빠르고 다양하게 만들거라 생각합니다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글 초반부터 계속 기술보호를 외쳐왔지요...신의 이름은 칸신입니다. 칸신. 칸신배. 간신배.... 말장난이었는데 너무 진지한 답글들이 나와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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