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청소년
순도 100% 픽션입니다
명나라 곳곳에 자리 잡은 대명은행은 일본에서 하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명의 은과 금을 빨아먹었다.
미래의 큰 수익을 약속하며 모은 은과 금이 산더미처럼 쌓였고, 대부분은 식량으로 바뀌어 해안을 통해 조선으로 들어갔다.
이 식량이 고난의 행군을 끝내고 삼로원정군을 보내는 데 결정적 도움을 줬다.
황제가 주인이며 황제와 위충현이 수익을 나눠먹는 대명은행.
지방의 권력자는 감히 건드리지 못했고, 위충현은 톤 단위로 받는 은에 취해 실제 칸국이 얼마나 버는지 몰랐다.
은과 금을 빼돌리고 식량을 사고도 남은 은과 금은 칸국의 협력자에게 돌아갔다.
그 돈을 받아 무기와 식량을 마련하고 세력을 확장하던 소수민족과 군벌들은 칸국의 지령을 받았다.
-10월 1일 시작하시오.
지령엔 날짜뿐만 아니라 공격 목표와 목표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명나라 지역 요지를 일제히 공격해 모든 통제를 마비시키는 전략.
수많은 동지가 있다는 것은 이들이 망설이지 않게 도와주었다.
약속된 날이 되자 40여개 군벌이 일어섰고, 죽창과 나무화살로 무장했을 지라도 지역 군대보단 숫자에서 압도적이었다.
반란은 성공적이었다.
장강 하구 근처에 있는 소주.
대명은행 소주 지점에선 한창 철수 준비가 한창이었다.
“여기도 끝났구나.”
“어그그극. 세달 동안 휴가라니 오랜만에 집에 좀 가겠어.”
“서류는 다 태웠지?”
“문제없다고.”
야마토은행과 대명은행까지 성공적으로 작업한 최씨상단의 베터랑들이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성과급으로 금화 열 냥씩 주신 다는데?”
“캬. 역시 씀씀이가.”
“우리 최씨 아재야말로 진정한 지배자지. 어둠속의 지배자.”
“어이. 나씨. 나씨는 돈 받으면 뭐 할 거야?”
직원의 말에 나씨라 불린 사내가 대답했다.
“허...... 글쎄요. 가족이 없어서...... 다음엔 어디 작업한대요?”
“어디랬지? 모굴이랬나? 무골?”
“무굴일세 이 사람아.”
“아 거기구나. 무굴.”
“무굴이라는데 작업하면 저도 따라가려고요. 선발대는 없나요?”
“없긴. 벌써 사전준비 중이라던데. 거 사람이 돈을 벌었으면 좀 놀면서 쓰고 그러지 일만 하나.”
“성과급도 나씨가 항상 일등이잖아. 자네가 너무 열심히 해서 우리까지 눈치 보여. 그런데 나씨 고향이 어디랬지?”
“아... 나주요. 그냥 열심히 하는 거죠 뭐.”
나씨는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야마토를 무너뜨리고 대명도 돈으로 무너뜨리고. 다음은 무굴제국인가.’
명나라의 돈으로 명나라의 무기를 사서 명나라를 찌른다.
이 얼마나 신박한 작전인가.
나씨는 조선의 전략에 몸을 떨 정도로 감탄하면서 생각했다.
‘무굴에서 내가 이 작전을 막는다면...... 아니 내가 은행을 세워볼까?’
야마토은행에서 3년, 대명은행에서 1년 일한 나씨, 나오에 카네츠구는 이제 장사방법을 확실히 익혔다.
무굴로 갈까... 야마토로 갈까...
나씨는 인생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11월이 되자 요서군이 서진하기 시작했다.
요서군을 주시하던 정찰병은 즉시 상황을 전했고, 궁에선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사실 요동을 지금 공격받으면 위험하긴 했어.”
“내가 가면 지진 않겠지만 귀찮게 엉기지 않아 잘됐네. 그럼 모문룡은 용서할거냐?”
“어? 안 돼. 그놈은 조선 역사에 죄가 많아. 거의 이괄 만큼 죄를 많이 지었어. 죽일 거야 비참하게.”
“그 죄 아직 짓지 않았잖아. 이괄은 용서했으면서 왜 모문룡은?”
“이괄은 한국인한테 이상하게 인기가 많아서 죽이지 못했지만, 모문룡은 시원하게 죽일래.”
“모르겠다. 니가 왕이니 마음대로 해라.”
“예. 대칸 폐하.”
“야. 대칸 폐하라는 게 맞는 말이냐?”
“몰라. 그냥 대칸이라 부르면 그걸로 존칭이 되나?”
수첩에 적은 것 외엔 모르는 모현성.
사실 이게 정상이지.
“됐고. 술이나 마시러 가자.”
“간만에 치킨?”
“콜.”
요서군마저 중국으로 들어갔으니 칸국을 위협할 적은 없다.
광해는 긴장 따위 하지 않았지만, 더욱 느슨한 마음으로 술을 마시러 갔다.
편전을 나오자 뭉쳐서 놀고 있던 구름이와 호랑이들이 좋다고 달려온다.
커다란 머리를 허벅지에 비비는 짐승들을 타고 궁을 나섰다.
목적지는 창덕궁 바로 앞에 있는 창덕치킨.
“헛. 대칸을 뵙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종업원의 인사에 사람들이 나와 절을 한다.
맹수들을 이끌고 나온 광해는 그 자체로 시선이 집중된다.
광해는 익숙한 모습에 손을 휘젓고 안채로 들어갔다.
야외에서 먹는 걸 좋아하지만, 광해가 밖에 앉으면 돈화문 광장이 마비된다.
사람들이 감히 대칸 앞에서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
단풍이 물든 자그마한 정원 속 정자에 앉자 메뉴판이 보였다.
“삼겹살! 준비됐구나.”
“올. 드디어. 어이! 삼겹살 신선하냐?”
냉장고가 없는 시대다.
자칫하면 상한 고기를 먹을 수도 있다.
닭도 주문을 받은 후에 목을 꺾는 시대에 삼겹살은 조심해서 먹어야 한다.
“신선합니다. 살아있습니다.”
그래. 이런 시대지.
주문 받은 후 도축하는 시대.
“그래. 삼겹살 이쪽으로 내 오고 나머지 고기는 손님들에게 나눠줘라. 내장은 호랑이들 주고.”
대칸의 은덕으로 다들 포식하게 됐다.
꾸이이. 꾸우이.
돼지가 멱따이는 소리를 내며 죽는다.
피냄새가 나자 구름이와 호랑이들이 귀를 쫑긋 세운다.
“가서 얌전히 구경해. 주는 것만 받아먹고.”
커다란 맹수 넷이 강아지처럼 뽈뽈 달려간다.
“쟤들 잘못 키운 거 같다.”
“글쎄. 호랑이라 해서 꼭 사납고 거친 삶을 살 필요 없잖아.”
“뽀대라는 게 안 나잖아.”
“에휴. 형은 몽골족 같은 삶이 좋아? 배부르고 편한 삶이 좋아?”
“...... 편한 삶.”
“쟤들은 비교대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나름 만족하며 사는 거 같은데. 그거면 된 거 아냐?”
“그래. 애완동물에게도 나름의 행복이 있겠지. 그보다 구름이 짝 찾아줘야 할 텐데.”
“표범 주제에 너무 커. 맞는 상대도 없을 걸.”
“...... 그건 확실히 문제다.”
구름이와 꽃순이는 암컷이고, 맹호와 비호는 수컷이다.
지들끼리 스와핑하며 즐겁게 붕가붕가 하는데 꽃순이는 새끼를 낳았지만 구름이는 임신하지 않더라.
구름이의 짝을 생각하는 도중 소주와 간단한 전과 고추가루를 쓴 김치, 깍두기 등 익숙한 반찬들이 차려졌다.
고추가루가 매워서 기피하는 이가 많지만, 왕이 즐기니 차츰 퍼지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술을 따르려는데 모현성이 반찬을 차린 아이를 잡았다.
“얘야. 넌 몇 살이냐?”
“열다섯 살입니다. 전하.”
남자아이가 공손히 답했다.
“음. 그래. 알았다 가 봐라.”
애를 보내고 광해가 물었다.
“왜?”
“아직 오전인데 아이가 학당을 안 가서. 학당 못 가게하고 일시키는 거면 혼내려고 했지.”
“학당이 열 넷까지였지.”
“어. 미성년자보호법도 시작해야 할 텐데. 아직 상황이 안 되니......”
“왜?”
“왜냐니. 여유가 없어서 안 되는 거지. 식량이나 사회 전체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시작해야지.”
“아니 그러니까 왜 미성년자 챙기려냐고.”
“헐. 당연한 거 아냐?”
“왜 스무살인데?”
“그야......”
모현성의 말문이 막혔다.
항상 왜 그럴까 질문하던 모현성이 정작 질문을 받자 멈추는 것도 웃겼다.
회귀를 꿈꾸며 별의별 잡 지식을 챙긴 모현성은 항상 광해를 바보라고 놀렸지만...
“난 너보다 멍청하지 않아!”
준비가 안 된 것뿐이다.
“뭐야? 왜 갑자기 급발진 하는데?”
“왜 스무 살 전엔 담배랑 술을 마시면 안 되지?”
“그야 안 좋으니까.”
“안 좋은 건 다 알지.”
광해는 소주 한잔을 마셨다.
“어차피 안 좋은 거 전부 금하지 왜 스무 살 이하만 안 되는데?”
“더 안 좋아서? ...”
모현성의 자신 없는 대답이 광해를 기쁘게 한다.
“관련 논문은?”
“...... 글쎄. 없을 거 같은데.”
“연구했지만 발견하지 못했겠지. 왜 스무 살 이하는 섹스하면 안 되는데? 2차 성징을 통해 가장 성욕이 들끓고 바람만 스쳐도 발기하는 시기에 왜 금지시키는 거지?”
“아. 알겠다. 스무 살 이하 미성년자는 판단력이 부족해서 법으로 보호하는 거야.”
“그게 현대인의 상식이겠지. 스무 살이 되면 판단력이 생기냐?”
“...... 아니.”
“처음 할 땐 너무 좋으니까 판단력이 부족할 수밖에. 열다섯 살이나 스무 살이나 처음 사귈 땐 다 어색하고 실수하고 미친 짓도 하지. 이것도 사람마다 달라서 열다섯에 올바른 애가 있고 스무 살에 미친놈이 있고. 굳이 나이로 따질 수 없는 거야.”
“올.”
“왜?”
“형이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 게 신기해서.”
쿵.
왕이 되도 얻어맞는 모현성.
숯을 들고 오던 아이가 놀라 움찔한다.
“섹스에 관한한 내가 도사다.”
“아아. 시벌. 나쁜 놈. 남자의 적.”
황제를 욕하는 왕을 본 아이는 굳어버렸다.
“숯 놓고 가라. 술 한 병 더 가져오고. 아무튼 말이야.”
술 한 잔을 따라 마신 광해가 말했다.
“현대에는 생각 못했지만 이계에서, 그리고 조선에서, 두개의 세계를 경험하니까 알겠더라. 2차 성징 끝나면 성인이야.”
“고작 두개면 표본이 너무 적은데. 전 지구인이 스무 살로 인정하는데.”
“2차 성징 끝났으면 성인 취급해 줘야 하고 섹스 결혼 술 다 허용해 줘야하고, 대신 범죄도 똑같이 물어야 해. 그보다 어리면 배워야 하니 감형해주고. 아놔 시발 청소년보호법은 진짜.”
“어. 그건 확실히 문제가 있긴 하지. 그래도 열다섯이 성인인건 너무 어린 거 아냐?”
“내가 과외라는 걸 해봤거든. 한번은 완전 꼴통이었는데 두 번은 나보다 낫더라.”
“그건 형이 바보라서...”
쿵.
“나이가 적어서 지식은 부족해도 지능은 높아. 어려도 나름 책임감 있고, 꿈도 있고, 노력이란 것도 하고. 확실히 그때 나는 그냥 어영부영 살았으니까 나보다 훨씬 나은 아이들이었지.”
형은 지금도 어영부영이라고 중얼거리던 모현성은 광해펀치를 으힛 피했다.
구름이와 남매들이 입가에 피를 묻히고 활짝 웃으며 돌아왔다.
맹수들이 웃는다는 게 웃기지만, 만족한 표정이 보인다.
광해의 발치에 앉아 서로 얼굴을 핥아먹으며 치장하는 걸 한참 봤다.
치이익.
삼겹살이 불판에 올려지고 갓 잡은 돼지고기가 익기 시작한다.
맹수들은 앞다리를 세우고 앉아 뚫어져라 보고.
“전에 말했듯이 내 생각은 그대로야. 국가는 울타리일 뿐 개인의 인생을 강제해선 안 돼. 스무 살 전에 보호하려면 부모가 보호해야지 국가에서 법으로 해선 안 돼.”
“어린 애들이 부모에게 앵벌이 당하고 혹사당하면?”
“스무 살 넘은 애들이 부모에게 혹사당하면? 이건 괜찮아?”
“그 나이 되면 탈출할 수 있겠지.”
“솔직히 폭력 중 가장 잔인한 게 가정폭력이잖아. 범죄자들 자란 환경 보면 대부분 아비가 술 처먹고 패는 놈이고. 보호하기도 힘들고. 스무 살 보호법은 스무 살까지 가정 내에서 맞고 자라라는 뜻이기도 해.
차라리 교육하는 게 나아. 부모가 때리면 관아로 가서 말해라. 보호해주겠다. 부모가 때리는 걸 참지 마라. 부모가 개여도 너까지 개가 되지 마라. 부모한테 괴롭힘 당하는 걸 인내하라는 교육보단 부모를 버리는 게 낫지. 아. 백관 누구더라?”
“채유진? 아비한테 당하던.”
“그래 걔. 조선 성리학 사회에선 그런 일을 당해도 인내해야만 했지. 현대도 그런 교육을 시키잖아. 부모는 하늘이니 말 잘 들어라. 널 22시간씩 감금하고 교육시켜도 널 사랑해서 그런거니 꾹 참고 따라라. 딸치지 마라. 뭐 이딴 거. 이러니 애들이 저항 못하고 부모한테 괴롭힘 당하다 자살하지.”
“에이. 너무 나갔다. 사춘기 때 가출해서 망가지는 애가 더 많을 걸. 미성년자를 풀면 더 많아질 걸.”
“글쎄. 스무 살 전에 가출하면 방 잡을 수도 일 구할 수도 없으니 범죄로 빠지는 게 아닐까? 차라리 열다섯을 성인으로 인정하고 방 잡고 일할 권리를 허가하면 범죄가 줄지 않을까?”
“에...... 모르겠다. 아 탔다.”
삽겹살이 탔다.
이거 엄청 비싼데.
“생각해볼게. 미성년자의 나이라......”
“차라리 과학적 근거를 따르든가. 에이징커브. 평균적으로 세포가 서른일곱까지 성장하고 이후부터 줄기 시작하니까 서른일곱 살까지 미성년자로 보든가.”
“아. 크크크큭. 역시 형은.”
쿵.
- 작가의말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전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하고 싶은거 하며 예쁘고 착하게 잘 자랐습니다 데헷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