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 공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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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 모현성은 사업이 실패할 것을 뻔히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이괄에게 제의했으니 이는 이모든 사태의 원인이 됩니다.”
“그거 나도 알았는데? 동의했고.”
얼음장 같은 판결을 하던 이초란이 잠시 멈칫했다.
대칸도 잡아 쳐 넣어야 하는 고민을 하는 것 같다.
“...... 대칸은 법 위에 존재하십니다. 모현성은 직접 사업을 계획했고, 잘못된 사업계획을 대칸께 올렸으니 모든 죄를 감당할 책임이 있습니다.”
묶여있는 모현성의 표정이 착잡하다.
처음 사업계획을 짤 때 이괄이 물먹을 거라며 낄낄대던 표정과 대조적이다.
얼마 전 광해에게 미안하다고 할 때도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을 텐데.
“국책사업을 개인에게 맡긴 점과 그로인해 국가에 큰 피해를 입힌 점. 그에 따라 개인 재산으로 전체 피해액의 2할을 배상하며 모자랄 경우 이후 버는 돈을 차압할 것을 제안합니다.”
판결이 아니라 제안이다.
국왕에 대한 판결이니 자신이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뜻이겠지.
“왕위는?”
“법의 기본방향은 입헌군주제입니다. 헌법이 군주 위에 있으며 군주 또한 법을 지켜야 한다 했습니다. 법을 어긴 죄를 받되 왕위를 박탈할 대죄가 아니니 왕위는 유지해도 됩니다.”
이초란이 얼마나 고심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중립적 판단을 하려 노력했는지 보인다.
이 판결로 얼마나 큰 피해를 입을 지도 보인다.
주위의 중신들 대부분 이초란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보고 있다.
제국을 건설한 현자이자 지식을 가르쳐준 스승이자 나라의 국왕이자 남편에게 죄를, 그것도 그냥 넘어가도 문제없을 죄를 들추고 벌을 주는 게 마음에 안 들겠지.
심지어 허균마저도 흘겨보고 있다.
“판결에 동의한다. 모든 죄인은 벌을 집행하되 상고할 기간을 유예하라.”
모현성이야 뭐 돈이 넘쳐나고 광해산업 지분에서 번 돈 중 국가에 무상증여한 것만 해도 벌금의 천배니까 문제없겠지.
“자. 먹어.”
수라간에 두부 요리를 해오라 명했다.
두부김치, 순두부찌개, 두부전골, 연두부튀김, 두부포만두 .......
두부로 할 수 있는 모든 요리가 나왔다.
“어휴. 묶여보니까 무섭더라. 죄 짓곤 못 살겠어.”
“니 죄 다 밝혀지면 이미 천갈래로 찢겨 죽어야지. 일본도 그렇고 백칠해적단도 그렇고.”
“일본에서 날 잡으면 그러겠지. 한잔 더 줘.”
모현성은 태연히 두부를 먹으며 술을 마셨다.
“집에선 괜찮냐?”
“어?”
“초란이 집에서도 냉정하냐?”
“아니. 둘만 있으면 엄청 애교 많아. 형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 상상이 전혀 안 된다.
“가면...... 법관이라는 가면 때문에 더 스트레스 받는 것 같아. 집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 돼. 일 해주는 아줌마들이 깜짝 놀랄 정도야. 밤에는 또 다른 사람이 되고.”
“사람은... 진짜 알 수 없구나.”
“그런 거지.”
둘이 한동안 술만 마셨다.
“이괄은 이제 냅둘거지?”
“어. 내가 괴롭히다가 이지경이 벌어졌으니 놔둬야지. 그래도 성격은 파악했잖아.”
“성공을 위해 뭐든 하는 성격.”
“그치. 큰일 맡기지 말고 적당히 관찰하며 사고치지 않는지만 확인하지 뭐. 노역형 끝나면 늙어서 아무것도 못 할 테고.”
“그래. 벌금은 바로 처리해라.”
“그건 좀 놔두려고.”
“어? 너 돈 없어?”
“아니. 그보다 본을 보이려고. 왕도 죄를 지으면 법의 심판을 받는다, 법에서 내라는 벌금을 성실하게 낸다, 이걸 보여줘야지. 한 십년에 나눠 내면 되나. 이러면 다른 놈들도 법을 따르겠지. 대현자이자 국왕인 나조차 법을 지키는데 지들이 감히 법을 우습게보겠어?”
“어...... 그래라.”
또 자기 위인전에 적을 미사어구를 상상하나보다.
“몽골은?”
“이게 문제지. 피해액이 대충 신금 삼만 냥이야. 공산주의에 넘어간 인적피해 빼고, 순수 재산피해만. 내 죄가 육천냥이고, 이괄의 죄가 삼천냥, 김류의 죄가 나머지 다. 이괄과 김류에게 재산을 압류할 수 없으니 나라에서 지원해야 겠지. 이게 단순히 동전을 보내면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 금액만큼 사람을 보내고 물건을 보내 복구하는 거라서 한순간에 될 일도 아니고. 한 5년 복구에 매달려야지.”
재개발 한다고 집을 다 때려 부쉈고, 교량이며 도로며 관청이며 온갖 것을 만들겠다며 자재를 쌓아 놨다.
이것들 바로 잡으려면 한숨부터 나온다.
“참 대단하다. 어떻게 그 잠깐 사이에 그렇게 큰 피해를 입힐 수가 있지?”
“그래서 사람을 잘 뽑아야 하는 거지.”
“이택훈 이력 보면 얌전히 일 잘하던 놈이었는데.”
“사람 속은 모르는 거니까.”
그래. 그게 문제다.
광해는 한숨을 쉬며 한잔 쭉 들이켰다.
“김류 이놈. 죄 지은 거 보면 현대 생각나지 않아?”
같이 한잔 마신 모현성이 히죽 웃으며 말을 돌렸다.
“그러게. 신문에서 보던 비리와 똑같은 게 몇 개 있더라.”
“참 대단한 놈이야. 이러니 인조반정에서 우두머리를 했지. 본질을 바로 파악해.”
“본질?”
“정치인은 계약할 때 돈을 번다. 현대에는 상식이지만 이게 지금 시대에는 알기 어려운 거거든. 아직 계약 제도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본질을 꿰뚫어봤어.”
그게 현대에는 알기 쉬운 거냐?
광해의 애매한 표정에 모현성이 기뻐했다.
“역시 형은! 짱이야.”
“뒤진다. 뒤지기 직전까지 패고 한대 더 때린다.”
“헤헤헤. 어쨌든 현대에는 이게 상식이거든. 회사원은 월급날돈을 벌어. 공장장은 물건을 만들고 판 후에 돈을 벌어. 그런데 정치인은 계약한 순간 돈을 벌어. 아직 삽질하기도 전인데 말이지. 그래서 돈 벌고 싶은 정치인은 일단 계약서를 뿌리지.”
“음. 차이가 크냐?”
“어느 서울 시장이 서울에 재개발지역 30개를 한 번에 허가했어. 이게 동시에 착공하면 건설사도 부족하고 도로도 마비 되서 순차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거거든. 실제로도 거의 20년에 걸쳐 하나씩 진행되었고. 그런데 일단 허가서를 남발해줬지. 왜 자기 임기 이후의 그후의 그 다음 재개발까지 자기가 허가해줬을까?”
“뒷돈?”
“어. 그거 말고도 기상천외한 게 많아. 현대에 일어난 범죄를 김류는 그대로 반복했어. 어쩌면 2회차일지도 모르겠네. 이놈 대단한 게 뭐냐면...... 공장 같은 건 인풋과 아웃풋이 대략 계산되는데 토목은 그게 아니거든. 땅속에 뭐가 있는지 모르니까. 그래서 토목 사업으로 공사비를 부풀려 나라 돈 빼먹는 짓을 그대로 했어. 게다가 쓰레기 수출권. 현대에도 무려 30년 치를 한 번에 계약하는 대범한 짓이 벌어졌는데 똑같이 했더라. 당장 5년 후 10년 후 물가를 알 수 없는데 30년 후까지 쓰레기 버릴 권리라니. 크크큭.”
“그런게...... 있었나.”
“어쨌든 이건 철저히 막아야 해. 김류의 사례는 많은 놈이 공부하게 될 거야. 그중 바른 놈은 저런 짓 하지 말아야겠다, 하겠지만 부패한 놈들은 김류를 따라하며 뒷돈을 받아 챙기겠지. 말그대로 뒷돈받기의 모범답안이랄까.”
“어떻게 막게?”
“종교활동과 학교. 아예 사례를 공개해서 이런 제안이 오면 조지게 만들어야지. 감추는 게 다가 아니야. 현대의 교육은 감춰서 따라하지 못하게 하되, 누가 하는걸 봐도 이해 못하게 만드는 방향이지만, 우린 공개해서 이런 짓하면 신고해서 돈 벌어라, 이쪽으로 갈 거야.”
“그래. 그런데 그렇게까지 신경 쓸 일이야? 도로는 뭐? 원래 민간인이 짓는 거잖아. 공무원이 직접 삽질하지는 않잖아.”
광해의 물음에 모현성이 깊게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맞았다.
이놈 방금까지 묶여있던 죄인 맞나?
“자! 봅시다! 우리의 체계는 자본주의 바탕의 선거의회제도야. 의회제도는 아직 시작 못했지만 앞으로 갈 방향이지. 여기까지 알지?”
“어.”
“자본주의의 장점. 수요와 공급이 서로 경쟁해서 최적의 시장가격을 형성한다. 우리는 이 경쟁을 막지 않으며 불공정한 경쟁, 혹은 경쟁에 의한 약자의 피해를 막는다. 막는 일을 하는 건 정부고. 알지?”
“어.”
“자본주의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자 존재하는 게 정부야. 그런데 자본주의 자체에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분야가 있어. 쉽게 예를 들어볼까? 전기. 이걸 시장 경쟁에 맡긴다? 발전소에서 집까지 전봇대 천개와 전선 백킬로미터를 설치해야 해. 그럼 가격이 얼마가 되겠어?”
“어마어마하겠지.”
“업자끼리 경쟁하더라도 가격이 엄청 나가. 그런데 옆집의 누군가가 전기를 깔았어. 그럼 우리집의 설치비용은?”
“백미터도 안 되겠네.”
“이럼 분쟁이 생기지. 아니면 기업끼리 깔아놓고 경쟁시켜볼까? 전봇대 열개씩 나란히 세우고 각 기업마다 따로 전선을 깔아서 서로 가격경쟁을 하면 비효율적이고 너무 비싸지겠지. 이래서 전기는 국가가 관리해. 나라에서 세금으로 전국에 전선을 까는 거야.
다른 거 볼까? 상수도. 민간업자가 상수도를 관리한다고 쳐봐. IMF의 지시를 이행한 볼리비아처럼. 도시 전체의 상수도 망을 획득한 공급자는 가격경쟁에 의해 최대 가격을 불러. 이 돈 내든가 쓰지 말든가. 그럼 소비자는? 수돗물을 쓰려고 엄청난 돈을 쓰던가 싫으면 물을 사다가 써야해. 이 때 수돗물의 시장가격은 물을 사다 쓰는 것보다 약간 비싸게 형성 돼.”
“비싸게?”
“물 사오는 가격과 수고비용, 수도꼭지만 틀면 언제든 물이 나오는 편의성 등이 합쳐진 거지.”
“아하. 그렇구나.”
“도로도 보자. 누가 형 집 앞에 제멋대로 도로를 깔고 밟으면 돈을 받겠대. 기분 나쁘겠지?”
“어.”
“그렇다고 집 앞에 열개의 업자가 나란히 도로 열개를 깔고 그 중 가장 저렴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렇지.”
“그래서 도로는 국가가 관리해.”
“유료도로도 엄청 많잖아. 고속도로처럼.”
“그러니까 그게 문제인거야. 문제를 감추려고 공기업의 정의를 교육하지 않는 거지. 자본주의의 장점인 ‘경쟁’이 불가능한 사업 분야는 국가에서 관리한다. 상수도, 도시가스, 전기, 도로 등 국가에서 독점해 관리하는 사업을 공기업이라 부른다.”
“어. 공기업. 신의 직장.”
아는 거 나왔다.
광해는 기분이 좋아져서 한잔 마셨다.
모현성이 잠시 한심하게 보다가 입을 열었다.
“공기업의 의의는 저거야. 자본주의가 통제할 수 없기에 국가에서 세금으로 운영하는 기업. 그런데 현대에서 이거 배웠어?”
“......아니.”
배웠나? 잘 때 누가 말했나?
“현대의 교육은 학생 잘되라고 하는 게 아니야. 나라에서 하는 일에 바보처럼 따르라고 애국심을 세뇌시키는 게 교육이야. 당연히 공기업의 의미 같은 것도 알려주지 않지. 왜냐면 나랏님들이 돈을 벌어먹기 위함이지.”
“공기업이?”
“말 그대로 경쟁이 불가능한 특정 분야에 국가에서 세금을 투입해 운영하는 게 공기업이라면. 왜 주식이 상장되어 있지?”
“주식? 한전주 같은 거? 그게 문제되나?”
“세금으로 만들었잖아. 그럼 주인은 국민 전체 아니야? 아니면 납세액에 따라 주식을 나눠주든가. 그게 아니라 왜 엄한 누군가가 주식을 갖고 있고, 매년 공기업의 배당금을 받아갈까?”
“...... 왜?”
“일반 기업의 주가는 나름 합리적으로 움직여. 일 잘하면 오르고 일 못하면 떨어지지. 공기업은 아니야. 적자가 나도 국가에서 세금을 투입하기로 하면 오르고, 일 잘해도 그 돈 회수하겠다고 하면 떨어져. 절대 망할 일도 없고. 그렇다면 공기업의 주가를 가장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건 누굴까?”
“공무원.”
“그중에서도 의사결정권이 있고, 정보를 빨리 알 수 있는 고위공무원이지. 아니 애초에 상장할 기업이 아니지. 세금으로 운영하는 기업인데 당연히 무조건 적자나야 하는 거 아니겠어? 우리가 낸 세금이 거기 투입되는 게 맞는 거지. 조금 봐줘서 이익금이 생겼다면 배당을 주는게 아니라 당연히 국세로 돌아가는 게 맞고.”
“어...... 그러네.”
“그런데 신문과 정부와 정치인은 왜 공기업이 적자가 난다고 징징댈까? 당연히 적자가 나야 하는 거 아니야? 경쟁이 불가능하니 국가에서 세금으로, 즉 국민 모두의 돈을 모아 운영하는 거잖아. 그러니 수돗물이 싸고 전기가 싼 게 당연한 거 아니야?”
“그렇다고 안 받을 수도 없는 거잖아.”
“맞아. 수돗물 값이 공짜라면 집집마다 수영장 만들고, 수영장 물 깨끗하게 한답시고 하루종일 틀어놓겠지. 전기도 하루 종일 풀로 사용할 테고. 그래도 그 정도 미친 짓 하지 못할 정도의 가격에 싸게 공급하는 게 당연하잖아. 그런데 왜 적자난다고 징징대지? 애초에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업인데.”
“그러게. 왠데?”
“여기서 형이 아는 민주주의, 즉 선거의회주의의 최대문제점이 나와.”
말을 마친 모현성은 술잔을 잡고 천천히 마시고 천천히 두부전골의 만두를 건져먹었다.
이건 뭔지 물어봐달라는 신호다.
광해는 꾹 참았다.
자존심 강한 두 남자의 대결.
“에이씨. 그건 말야.”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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