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드라실(2)
엘 라스는 성소를 빠져나온 후 주변의 병사들을 불렀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재빨리 그의 앞에 도열했다.
푸른 옷을 입은 부대.
엘드라실의 병사들 중에서도 최정예의 병사들이었다.
"우리는 지금부터 봉인지로 간다. 그 곳만큼은 절대 뚫려서는 안된다. 알겠느냐?"
엘 하이린이 강조하고 또 강조한 곳이다.
엘 라스는 단호하고 근엄한 목소리로 병사들에게 말을 했다.
"네!"
우렁찬 목소리가 병사들에게서 흘러 나온다.
"가자."
엘 라스는 병사들을 이끌고 최우선의 목적지.
란테아의 무기가 봉인된 곳으로 향했다.
그 곳은 천년수의 뿌리 깊숙이 숨겨져 있었다.
성소를 빠져 나와 봉인지로 향해 얼마만큼 걸었을까.
그들이 가는 길 중간중간마다 쓰러진 엘프들의 시체가 보였고 후드를 뒤집어 쓴 침입자들의 시체 또한 섞여 있었다.
'우리의 아이들이...'
엘 라스는 손을 들어 병사들을 정지시켰다.
스윽-
후드를 걷어 보니 자신들과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얼굴이 새까만 다크엘프들이었다.
"역시나..."
"아니!!! 다크엘프들이 아닙니까?!"
그의 뒤를 따르던 병사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엘 라스는 골치가 아픈 듯 이마를 짚었다.
“이것들이 감히... 엘드라실에서 쫓겨난 종족들이 엘드라실을 쳐들어 오다니···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었군. 아니지... 이 녀석들이 이 곳에 온 것이라면...속도를 낸다.”
“예!”
엘 라스의 말이 끝나기가 그의 병사들은 그와 함께 최고 속력으로 봉인지를 향해 달려갔다.
다크엘프.
과거 이들은 엘드라실에서 쫓겨난 존재들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은 엘드라실의 모든 저서에서 다크엘프들을 저주받은 존재라 기록할 정도였다.
과거 모든 엘프들은 엘드라실에 모여 살았었다.
엘프도 여러 종족이 모인 군집체였기 때문에 다크엘프 또한 엘드라실이 그들의 고향이자 집이었다.
다크엘프는 일반적인 엘프와는 조금 달랐다.
하얀 색의 피부를 가진 엘프들에 반해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이들은 활이나 검보다는 암살을 선호했다.
종족의 특성이었지만 그들의 그런 성향은 엘드라실 내에서도 알게 모르게 차별의 벽을 만들어 냈다.
그렇기에 보수적인 엘프들에게 다크엘프들은 눈에 가시였다.
엘프로서의 정통성을 훼손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들은 늘 다크엘프의 추방을 외쳤다.
그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추방 운동들은 다크엘프들을 더욱 위축되게 만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해결은 되지 않고 차별을 당하는 다크엘프들은 당연히 불만이 쌓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쌓이고 쌓인 다크엘프들의 불만은 결국 한 사건을 계기로 폭발하게 되고 그들은 흑마법까지 건드리게 되었다.
오직 엘드라실을 무너뜨리기 위한 그들의 시도는 반란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엘 하이린 아래 단단한 결속을 자랑하고 있던 다른 엘프들은 너무 강했다.
다크엘프 한 종족 만으로 엘드라실 전체를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결국 반란에 패배한 다크엘프들은 그 길로 엘드라실에서 도망을 쳤고 그 후 영원한 추방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다크엘프들은 엘드라실에 돌아왔다.
엘프들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천년수의 결계는 이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 곳은 다크엘프들에게도 한때 집이었던 곳.
당연히 골목 하나하나까지도 이들은 훤히 꾀고 있었다.
물론 반란 이후 엘드라실이 너무 평화롭기도 했고 방심한 탓도 있겠지만 말이다.
엘 라스의 얼굴이 뿌리 쪽으로 내려가면 갈수록 어두워졌다.
엘프들의 시체가 침입자의 시체보다 훨씬 많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얼마를 더 내려갔을까.
'너무 평화로웠어...'
엘 라스는 진로를 방해하는 다크엘프들을 베어넘기며 더욱 속도를 높였다.
봉인지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죽어있는 엘프들이 늘어만 갔다.
'젠장...'
탁-
엘 라스는 봉인지 앞에 멈춰섰다.
"젠장..."
엘 라스의 입에서 절로 욕이 나왔다.
봉인지는 이미 다크엘프의 무리들이 장악을 한 상태였다.
그 곳은 봉인지를 지키던 엘프 부대들 중에서도 정예들이었다.
하지만 마음 먹고 쳐들어 온 다크엘프의 무리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봉인지를 지키는 자들은 몇 명 남아있지 않았다.
봉인지의 단장 또한 여러 군데 상처를 입어 생사조차 불분명했다.
엘 라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의 눈은 봉인지의 안쪽을 보고 있었다.
그 곳에는 후드를 입은 다크엘프 무리들이 서있었다.
“네이노오옴드으으을!!!!!!”
분노에 가득 찬 엘 라스가 고함을 질렀다.
평소 점잖던 그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
그의 목소리는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들의 형제, 가족이 죽어있는 모습을 너무나도 많이 봤기 때문이리라.
다크엘프 무리의 정중앙에 서있던 남자가 그 목소리를 들은 듯 천천히 몸을 돌렸다.
천천히 벗겨지는 후드.
“후후. 이게 누구십니까? 엘 라스 님 아니십니까? 어찌 이 누추한 곳까지~”
"네...놈이 감히..."
엘 라스가 아주 잘 아는 자였다.
천천히 후드를 벗고 드러난 얼굴 또한 역시 다크엘프였다.
그는 이 침입자들의 대장인 듯했다.
엘드라실에서 쫓겨나간 다크엘프들의 리더 자 모한.
그것이 바로 그의 정체였다.
으득-
“...살아있었던 것이냐.. 분명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거늘...”
“뭐 저도 죽을 줄로만 알았죠~ 후훗. 그래도 이렇게 살아있는 걸 보면 신은 참 관대하신 게 맞겠죠? 흐흐흐.”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죽여줘야겠구나... 절대 자비를 구하지 말라. 네 손에 죽어간 동족들의 원수를 내가 갚아주마...”
엘 라스의 얼굴은 이미 분노로 인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가 뿜어내는 기세로 인해 주변의 마나가 요동을 치고 있다.
그의 옷깃은 그가 힘을 끌어올리면 끌어올릴수록 더욱 펄럭였다.
“하하핫. 그렇게 화내지 마시구요~ 진정하세요. 이미 볼일은 끝난 걸요. 피곤하게 서로 힘쓰지 마시죠~ 저도 가서 좀 쉬고 싶네요. 하하하."
"네놈...그 봉인이 어떤 것인지 알고 지금 건드린 것이냐...?"
"제가 모를 리가 있겠어요? 다 아시면서 왜 이러실까~~"
"그건 절대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른단 말이냐???"
"에이~ 가뜩이나 혈압도 높으신데 왜 그렇게 열을 내실까? 그러다 고혈압으로 쓰러지세요~ 그러고 보니 엘프가 고혈압으로 죽었다는 얘기 들으면 그것도 웃기겠네요~ 안 그렇냐? 하하하하하하핫.”
자 모한은 옆의 부하에게 농담을 하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엘 라스는 자 모한 뒤편에 있는 봉인지 안쪽을 힐끗 보았다.
그 곳은 이미 빛을 잃은 상태였다.
'역시... 늦었는가...'
자 모한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가 꺼낸 것은 손바닥보다 조금 긴 단봉이었다.
그는 손에 넣은 단봉을 들어 손가락으로 돌려가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거 맞죠? 역시 고지식한 양반들이셔~ 랑켈의 창이라고 한다죠? 이걸. 이건 제가 가져갈게요~ 하하핫. 덕분에 꽤 많은 부하들을 잃었습니다만 뭐 이걸 손에 얻었으니... 이득이네요~ 훗.”
“네놈··· 그걸 어찌할 셈이냐? 그게 세상에 풀리게 된다면 세상이 어찌 되는지 알지 않느냐...?”
“뭐 그건 제 알 바 아니구요~ 전 당신네들에게 복수만 하면 그걸로 만족한다구요~ 세계 평화? 그딴 건 제 소관이 아니죠~ 그런 거창한 건 관심도 없어요~ 고상한 건 당신들이나 하세요. 하핫.”
끄아압-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었다.
마나를 극한까지 끌어올려 두었던 엘 라스는 자 모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팔을 쭉 뻗었다.
그의 손에서 한없이 새파란 마나가 두 줄기의 강을 뿜어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이다.
퍼퍼벙-!!!
끄아악-
엘 라스의 공격이 닿은 자리는 먼지가 피어올랐고 외마디 비명과 함께 피가 뿌려졌다.
그의 공격이 닿은 곳은 구덩이가 깊게 패여 있었다.
“해치웠나..?”
엘 라스는 눈을 부릅뜨고 확인을 하려 했다.
“하핫. 이거이거~ 급하기도 하셔라~ 깜짝 놀랐잖아요. 라스님 여전하시네. 실력이 녹슬지 않으신 걸 보니 아직 관 뚜껑 열기에는 멀었나봐요? 거 우리 같은 젊은이들 자리 잡게 얼른 좀 가시지. 뭐하나 몰라~”
자 모한은 어느새 원래 있던 자리에서 빠져나가 있었다.
그는 도망치기 직전의 자세를 취한 채 부하들과 함께 엘 라스를 약올리고 있었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는 다크엘프 한 명의 시체가 대신 쓰러져 있었다.
부하가 자 모한을 대신해 희생한 것이었다.
“이런 악랄한 놈... 네 놈은 부하들마저 한낱 도구에 불과하단 말이냐...?”
“예나 지금이나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는 건 여전하네~ 우린 하나가 여럿이고 여럿이 곧 하나요. 엘 라스 님. 그만 힘 빼시고 우리 다음에 봅시다. 다음에 볼 때는 친히 그 목을 따줄 테니.”
자 모한의 마지막 말은 서릿장같이 차가웠다.
그 말과 함께 자 모한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며 사라졌다.
나머지 다크엘프 또한 그를 따라 썰물처럼 그곳을 빠져나간다.
“젠장... 얼른 쫓아라! 얼른! 기필코 찾아야 한다!”
엘 라스의 부하 중 몇몇은 살아있는 병사들을 치유했다.
엘 라스는 그 모습을 보며 우선 발 빠른 부하들 몇을 추격을 위해 먼저 보냈다.
“큰일이로다···.봉인이 풀리다니... 하이린 님에게는 또 어찌 얘기해야 할꼬···”
자조 섞인 목소리였다.
봉인지에는 시체들만 잔뜩 남아 있을 뿐이었다.
엘 라스는 부하들을 추스린 후 다크엘프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추격을 재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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