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지는 봉인(1)
-흠. 이 근처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에리얼.
긴가민가한 표정이다.
에리얼은 지도를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지도 위로 주변 지형을 마법으로 그려주는 레이에나.
레이에나는 자신이 그려낸 지형을 지도와 매치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현재 그들이 서 있는 곳도 포함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략적인 범위 외에는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한마디로 포괄적이다.
흑마법이 되었든 그런 류의 기운이 조금이라도 느껴졌다면 금방 찾았을 것이다.
-이상하다... 그런 기운은 금방 찾을 건데...
이상했다.
기운을 어쩌나 철저히 숨겨둔 것인지 에리얼이나 레이에나 정도의 존재라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도마뱀. 제대로 좀 찾아봐. 자세히 알 수가 없잖냐.
"저 완전 제대로 하고 있다고요~ 정령왕이나 되시는 분이 아직도 그런 걸 못 찾으시고..."
-내가 너보다 이런 걸 잘 하는 게 이상하지 않냐?
"에이~ 왜 그래요~ 정.령.왕 이시면서~
봉인지를 찾는 와중에도 여전히 투닥거리고 있는 둘이다.
레온은 둘을 신경쓰지 않은 채 지도를 보고 있었지만 이 곳은 처음 와보는 레온이다.
그 또한 알 턱이 없다.
-음? 이 기운은?
갑자기 에리얼이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그는 지도에서 눈을 뗀 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뭔가 알아차린 듯한 표정이다.
에리얼의 눈썹이 일순 꿈틀거렸다.
무언가가 미묘하게 자신의 감각을 마구 긁어대고 있다.
그 감각은 점점 커져가더니 갑자기 한 곳에서 만개하는 듯한 흑마법의 기운이 피어올랐다.
“아. 에리얼 님. 이거···.”
에리얼이 느낀 기운은 레이에나도 느낀 듯했다.
하긴 레온마저 그 기운을 느낄 수 있었으니 드래곤이 못 느낄 리 만무하다.
레이에나는 이내 눈을 감았다.
슈르릉-
그녀의 마나가 일렁거리며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칫- 치릿-
갑자기 그녀의 주변으로 작은 스파크가 튀었다.
“제 기운이 충돌하는 것 같아요. 저 곳입니다.”
레이에나가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에리얼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의 군더더기는 필요없다.
답이 나왔으니 해결만 하면 그만이다.
-가자.
에리얼이 지도를 레온에게 넘겨주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플라잉]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법을 사용하는 레이에나.
레온 일행은 순식간에 흑마법의 기운이 탐지된 곳으로 날아갔다.
-여기서 내리자.
공중에서 에리얼이 어느 지점을 손으로 지었다.
레이에나 일행은 에리얼의 말을 따라 그 지점으로 그대로 하강했다.
탁- 타닥-
레온 일행은 수상한 자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숲 속에 착지했다.
발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흑마법의 기운이 물씬 풍겨나는 그들은 레온 일행이 온 것을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레온 일행이 몰래 바라보는 곳에는 수십여 명이 모여 있었다.
모두 흑마법의 기운을 내뿜는 걸로 봐서는 흑마법사들 이외 다른 사람은 없는 듯했다.
그들을 중심으로 중앙에는 작은 비석 하나이 하나 놓여져 있었다.
흑마법사들은 비석을 향해 멈추지 않고 여전히 마나를 퍼붓고 있었다.
"여기가 맞는 것 같은데요?"
"그치? 나도 그래. 에리얼 님. 우리가 잘 찾았어요.
에리얼이 소곤대는 레온과 레이에나를 홱 노려보았다.
-시끄럽다. 이 녀석들아.
합-
에리얼의 매서운 눈초리에 레온과 레이에나는 입을 꾹 닫았다.
“오오오오~ 이제 곧 끝이다아아앗!”
순간 희열에 흠뻑 빠진 마법사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는 흥분한 듯 덜덜 떨리고 있었다.
자이로는 희열에 가득 차 있었다.
그의 희번득거리는 기쁨에 가득찬 눈은 비석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중이었다.
히도르와 흑마법사들이 한창 마나를 퍼붓던 봉인은 이제 거의 다 풀린 모습이었다.
비석에서는 사람 형상을 한 검은 연기덩어리가 가슴 정도까지 나와 있었다.
우어어어어어어어~~
검은 연기덩어리에서도 둥굴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 나오는 듯한 스산한 소리가 흘러 나온다.
듣기만 해도 닭살이 돋을 정도로 음산한 목소리였다.
그 연기 덩어리는 자신의 봉인이 약해져 가는 것을 아는 듯했다.
“저게 란테아인가요? 저 정도면 좀 위험한 상태 아닌가요? 목소리가 엄청 기분 나빠요.”
레이에나는 음산한 소리에 닭살이 돋은 듯 팔을 문지르고 있었다.
하긴 에리얼은 원래부터 사람 형태였지만 그에 반해 란테아는 연기 덩어리였으니...
아직 형체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연기 덩어리였기에 그렇게 물은 것일 것이다.
레이에나의 시선은 여전히 비석과 흑마법사 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에리얼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상황에 대해 파악이 끝난 듯했다.
저건 무조건 100% 란테아다.
아직 완전히 봉인이 풀린 건 아니기에 지금이라면 막을 수 있었다.
스윽-
에리얼은 레온과 레이에나 쪽을 쳐다 보았다.
움직이자는 신호다.
에리얼의 시선에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레온이었다.
더 이상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 그는 브륜힐트를 꺼내 마나를 주입했다.
순식간에 늘어난 브륜힐트는 레온의 마나에 반응이라도 하듯 번득이는 금각을 드러냈다.
레온은 그대로 땅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움직임이다.
“실프!”
부웅-
실프를 불러낸 레온의 몸이 일순 공중으로 떠올랐다.
순식간에 그의 몸을 휘감은 실프는 레온의 팔과 다리에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슈와아아아악-
가속도가 붙은 레온의 몸은 순식간에 흑마법사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브륜힐트를 그대로 내려치는 레온.
그의 공격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했다.
퍼억-
레온의 봉이 흑마법사들에게 닿았고 커다란 타격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튕겨 나가는 흑마법사는 한 명도 없었다.
부우우웅-
레온의 공격은 실패로 끝이 났다.
흑마법사들을 감싼 옅은 흑색의 실드가 흑마법사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봉을 내려친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뒤로 튕겨져 나가는 레온.
크윽-
답답한 신음이 레온에게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뱀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것 마냥 한기 서린 마법의 창이 레온의 급소를 노리며 찔러 들어왔다.
그 기운이 지척에 다가오고나서야 레온은 그것을 알아차렸다.
이 상황에서는 실프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보이는 마법의 창이지만 실린 기운은 결코 가볍지 않은 것 같았다.
아직 레온은 튕겨져 나가는 중이다.
미처 착지도 못한 상태였던 레온은 다급한 목소리로 진을 불렀다.
"진!"
레온의 부름에 진이 바로 소환되었다.
그는 손에 쥐고 있는 바람의 방패를 이용해 마법을 무효화시켰다.
콰앙- 콰콰쾅- 콰콰콰쾅-
하나의 폭발음이 들렸다.
하지만 폭발음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마법의 창은 2차, 3차 연이어 진의 방패에 부딪혔다.
레온과 진이 마법을 막아내고 있을 때 그제서야 에리얼과 레이에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뚜벅뚜벅-
[실드]
레이에나는 에리얼과 함께 걸어나오는 중에 실드를 펼쳤다.
과연 드래곤이라서 그런지 그녀의 실드는 레온에게까지 덮어지며 쏟아지는 모든 마법을 막아내 주었다.
"레온. 네가 처리할 줄 알았는데.에잉..."
"그러게요. 저도 제가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쩝."
다소 민망해하는 표정의 레온이다.
하지만 레이에나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맞은편의 흑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이런 음침한 기운을 사용하는 것을 보니 흑마법사들이구나. 인간들아.”
레이에나의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다.
“허허. 이거 이런 외진 곳에 손님들이 방문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만... 존함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허허.”
"너부터 밝히는 게 예의 아니냐? 버러지 같은 흑마법사야."
"허허. 전 카이저 제국의 자이로라고 합니다만. 누구신지?"
방금 전 마법을 날린 마법사가 물었다.
란테아의 봉인이 곧 풀린다는 것에 정신이 쏠린 나머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에잉...'
그래도 레온이 튀쳐나올 때 그의 기색을 알아차릴 수 있던 자이로였다.
레온의 공격도 나름 나쁘지 않았다.
아마 자이로가 없었다면 꽤나 위험했을 터이지.
그의 공격이 성공해 버리면 봉인의 해제가 멈춰지는 것은 당연한 일.
그리하여 자이로는 레온의 공격을 막기 위해 마법을 날린 것이었다.
그는 말을 이어가며 뒤의 흑마법사들에게 작업을 계속하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여전히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레이에나에게 대답을 재촉하는 눈짓을 했다.
“난 위대한 드래곤 로드의 자손이자 그린 일족의 레이에나. 진녹의 현자이며 갈릴 산맥의 지배자인 몸이시다. 그리고 내 옆에 서 계신 이 분은 나보다 조금 더 위대한 바람의 정령왕 에리얼 님이시다. 에.. 그리고 방금 너희에게 공격을 한 이 인간은..보자···.잠깐만···.이름이···에···.또··· 그래! 레인이지.”
어...?
갑자기 레온의 이름이 생각하지 않았던 레이에나가 말을 더듬었다.
어째 좀 한 번에 NG 없이 잘 나간다 싶었다.
그래봤자 레이에나긴 하지만.
“저...레온입니다만···”
엉거주춤 주저앉아 있던 레온이 레이에나를 쳐다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이름조차 그렇게 틀리냐는 듯 타박하는 뉘앙스였다.
“아차. 그렇지. 레온이다! 이 녀석은 베이런 왕국의 왕자였고 지금은 에리얼 님의 계약자이지. 그런데 내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카이저 제국의 자이로라는 네 녀석은 뭐하는 놈이길래 그렇게 불손한 태도를 갖추고 나에게 말을 하는 것이지?”
레이에나의 목소리에는 불쾌하다는 느낌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우선 드래곤이라 밝혔음에도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불쾌했다.
또 자이로의 얼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애로워보이는 저 얼굴 뒤에 숨겨진 모습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레이에나도 나름 오래 살았다.
레이에나의 본능 저 편에서 저 녀석은 끊임없이 위험하다며 조심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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