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조각 하나
주변에는 온통 시커먼 어둠 만이 깔려 있다.
그 외에는 몸이 푹 꺼질 정도로 푹신해 보이는 의자 하나 그리고 방 전체를 비추는 등불 하나 뿐이었다.
이 곳은 자이로가 마련해 준 란테아의 비밀 거처.
그가 여기에서 지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황궁 내에서도 거의 없을 정도로 극비의 사실이었다.
방 안에 있는 의자에 앉을 수 있도록 허락된 자는 오로지 단 한 명.
란테아였다.
그는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은 채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감은 터에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슈우- 슈우- 슈우-
소리없이 나타난 3인.
그들은 란테아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바닥에 바싹 엎드렸다.
온통 검은 색 일색의 복장을 한 그들이었다.
란테아의 조각을 찾기 위해 대륙을 떠돌아 다니던 란테아의 아이들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돌아온 것이었다.
-으음.
눈을 감고 있던 란테아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어떻게 되었느냐? 나의 아이들아.
낮고도 깊은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깊고도 으슥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목소리였다.
일순 움찔하는 란테아의 아이들.
하지만 언제까지 침묵을 지킬 수도 없는 노릇.
먼저 입을 연 것은 란머였다.
-...아직 찾지 못하였습니다.
콰앙!!!
갑자기 란테아가 자신이 앉아있던 의자의 팔걸이 부분을 내리쳤다.
바스락 소리를 내며 으스러지는 팔걸이.
-아직까지 단 하나도 찾지 못했단 말이냐? 도대체!!!
분노에 실린 그의 목소리.
자신의 아이들이라면 실패할 리가 없을 터인데!
이 아이들이 곧 자신이고 자신이 곧 이 아이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분명히 지금쯤은 자신의 조각을 가져와야 했을 것이거늘!
그런데 돌아와서 한다는 말이 고작 아무 것도 찾지 못했다?
란테아의 눈에서 검은 불꽃이 일렁거렸다.
일순 란테아의 아이들 주위에 검은 불꽃이 사악 둘러졌다.
란테아의 눈에서 검은 불꽃이 화아악 터지려는 찰나.
그의 분노를 일순 사그라뜨리는 말 한 마디가 흘러 나왔다.
-고정하십시오. 하나는 여기 있습니다.
조용히 엎드려 있던 란다가 한 손을 살짝 들었다.
자못 공손한 자세를 취한 란다였다.
그녀가 천천히 들어올리는 손에서 검은 빛이 일렁거리는 파편이 하나 둥실 떠올랐다.
-오오오오!!! 나의 조각이로구나!!!
의자에 몸을 거의 파묻다시피 했던 란테아였다.
갑자기 그의 눈이 쟁반 마냥 커지더니 지금이라도 당장 튀어나갈 기세로 몸을 반쯤 일으켰다.
-오오~ 어서~ 어서~ 나에게 오라~
더할 나위 없이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쩍 벌린 란테아가 둥실 떠오른 자신의 조각을 향해 손짓을 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란다 쪽을 향해 뻗어진 란테아의 팔이 천천히 자신 쪽으로 굽어졌다.
그의 손짓에 따라 란다의 손 위에 떠올라 있던 파편이 움찔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편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잔뜩 들떠있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란다 쪽으로 뛰어가 제 스스로 파편을 취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인 란테아였다.
하지만 그는 기다림의 미학을 아는 자였다.
잠시 후 란테아의 손바닥 위에 도달한 조각.
-으흐흐흐흐.
흥분에 가득 차오른 그의 웃음이터져 나오고.
일순 강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검은 기운을 뿜어내던 조각은 마치 얼음이 녹아들 듯이 란테아의 몸 안으로 그대로 쏙 빨려 들어갔다.
-오오오오~
-오오오오~
-오오오오오~
란테아의 아이들의 입에서 동시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눈은 조각이 빨려 들어가는 모습에 고정이 되어 있었다.
슈와아아아-
조각은 란테아의 몸으로 남김없이 모두 빨려 들어갔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란테아의 아이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잠시 후.
그의 어깨 쪽에서 갑자기 검은 기운이 슈왁 새어나왔다.
하지만 그 곳은 조각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듯 이내 다른 곳으로 이동을 했다.
몇 군데를 더 헤맨 후 조각은 드디어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조각이 제자리를 찾아가며 란테아가 감았던 눈을 떴다.
눈을 지긋이 감는 란테아.
-아아~ 좋구나~
그의 약간 벌려진 입에서는 연이은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란테아의 아이들의 얼굴에서 기쁨이 일렁거렸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 셋의 몸에서부터 검은 기운이 일렁였다.
-나의 힘은 곧 너희의 힘. 나의 강함은 곧 너희의 강함. 나의 기쁨은 곧 너희의 기쁨이니라.
셋은 란테아의 말에 감격한 듯 머리를 깊숙이 조아리며 연신 경외를 표했다.
-나머지를 찾아라. 다음에는 나를 더욱 기쁘게 해주었으면 한다.
-네!
셋의 대답이 동시에 흘러 나오며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듯 신기루마냥 흩어져 갔다.
자신의 아이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란테아는 다시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그리고는 조각이 돌아옴에 따라 다시 회복되어지는 자신의 힘을 느끼는 듯 연신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크흐흐흐흐.
낮고도 기괴한 란테아의 웃음소리만 방 안을 잔뜩 도배했다.
뚜벅뚜벅-
그 순간 그의 시간을 방해하는 발걸음 소리.
"허허. 기분 좋은 일이 있으십니까?"
-왔느냐?
"밖에까지 느껴지는 기운이 무시무시합니다. 허허허. 란테아 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흩어진 조각 하나가 돌아왔다.
"오호~"
자이로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란테아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자신에게는 더욱 도움이 된다.
란테아의 조각을 찾았다는 말 한 마디는 자이로에게 감출 수 없는 기쁨을 안겨다 주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조각은 2개.
란테아가 자신의 조각을 모두 찾아 본연의 힘을 되찾기만 한다면야 더 이상 두려울 게 없다.
"제가 도와드릴 건 없습니까? 허허허."
번들거리는 욕망을 잔뜩 드러내며 자이로가 웃음 가득한 얼굴로 란테아에게 질문을 던졌다.
-흠. 지금은 딱히 없다만 꽁지를 감추고 숨어있는 신에게 한 방 먹이고 싶구나. 크하하하하.
"신 말입니까?"
-그렇다. 신 말이다. 나에게 치욕을 안겨준 그 신 말이다. 크흐흐.
"조각을 다 모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니겠습니까? 허허허."
-당연한 말이다. 그리고 내가 깨어났으니 분명히 행복의 여신도 깨어났을 터이지. 아직 즐길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이 남았구나.
란테아는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이 깨어난 이상 그 여신이 깨어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지금 신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때가 자신이 움직이기에 최적의 시기였다.
-그나저나 내가 해야할 일이 있느냐? 네가 여기까지 온 것을 보면 분명히 부탁이 있어서 왔을 터.
"이거 참. 귀신이십니다. 역시. 허허허."
-어차피 네가 하는 모든 일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 아니겠느냐?
"허허허. 그렇습니다."
자이로는 인자한 미소를 품은 채 란테아에게 부탁하고자 하는 일을 설명했다.
자이로의 설명이 이어질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는 란테아.
그는 자이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내심 감탄을 하고 있었다.
역시 괜히 정점을 찍은 놈이 아니다.
이 녀석의 야심은 자신조차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광오하기 그지없다.
자이로의 부탁을 다 들은 란테아의 얼굴은 이해했다는 표정이었다.
-좋아. 그럼 언제 출발할 것이냐?
"제 일만 끝나면 바로 출발하는 것으로 하시죠."
-그래. 알았다. 후후.
"그럼."
자이로가 자신의 용무가 끝이 나자 란테아의 방을 빠져 나갔다.
란테아는 그가 사라지는 모습을 계속하여 보고 있었다.
-역시 인간들이란 재미가 있어. 신의 피조물이란 녀석들이 저렇게나 불완전한 존재라니. 후후후.
사박사박 걸어나간 자이로가 떠난 자리는 텅 비어지고 다시 방 안에는 란테아 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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