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드라실에서의 격전
쿠구구구구궁-
천년수 전체가 흔들린다.
"흐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옥구슬이 쟁반을 구르는 듯 맑은 목소리.
하지만 평소와 다르게 몹시도 걱정이 넘쳐나는 목소리이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엘 하이린.
현재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그녀는 발이 아예 묶여버린 상태였다.
엘드라실로 쳐들어 온 다수의 침입자를 막아내기 위한 실드를 천년수 전체에 펼친 채 버티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쳐들어 온 규모로 봤을 때에는... 그나마 엘 하이린 님의 실드가 없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장로 한 명이 말을 더듬었다.
"아아아..."
그녀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 나왔다.
대륙의 정세에 대해서는 듣고 있었다.
통곡의 벽이 무너졌을 때부터 모든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언젠가는 그 화가 자신들에게까지 들이닥칠 줄은 이미 예상을 하고 있었다.
그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힘겨울 정도로 치고 들어올 줄은 몰랐다.
다른 종족들과의 타협을 했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이미 침공은 시작이 되었고 버틸 때까지 버텨야 한다.
이 곳 엘드라실이 무너진다는 것은 곧 남아있는 모든 엘프의 구심점이 사라진다는 말이니.
"...엘 라스 님이 일단 방어에 전념을 하고 계신 것이죠?"
"네. 그렇습니다. 일단은요..."
후...
힘이 든다.
아무리 자신의 온 힘을 쏟아부어도 겨우 막기에 급급하다.
이대로라면 엘드라실이 불에 타오르는 건 기정 사실.
그녀에게는 천년수가 활짝 열린 이후의 미래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려졌다.
엘프들의 고통이.
그리고 불타오르는 천년수의 모습이.
'제발 막아냈으면... 엘 라스 님...'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을 생각조차 못한 채 엘 하이린은 더욱 힘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무너질지언정 엘드라실은 무너지면 안되니까.
한편 엘드라실을 지키는 전선의 최전방은 난투에 난투가 거듭되었다.
어떻게든 천년수 안으로 진입하려는 어둠의 군대들과 몬스터들.
그리고 다크엘프들.
그들을 진두지휘하는 자들은 당연히 자 모한이다.
물론 에드먼도 함께 왔었지만 그는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뭐 그 자야 알아서 움직이겠지.
혹시나 지난 번처럼 빨리 끝낼 수 있지 않을까 숨겨진 통로부터 찾아봤지만 당시 한 번 호되게 당한 탓에 이제 그 곳은 아예 막혀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전면전이다.
예전처럼 비밀리에 잠입을 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그 곳이 막혀도 이번에는 뭐.
이 정도의 병력에 에드먼까지 데리고 왔으니 손쉬운 점령이 되지 않을까싶다.
지금까지야 어떻게든 발악을 하는 듯하지만 마지막에 웃는 자는 자신들이 될 테니.
그의 두 눈 가득히 천년수를 끊임없이 두들기는 몬스터들이 보였다.
곳곳에 불타오르는 천년수의 가지.
몬스터들의 시체가 쌓여갔지만 그걸 넘어설 정도로 많은 수의 몬스터들.
"쳐라! 더욱 강하게 몰아부쳐라!"
하지만 저항도 만만찮다.
지금처럼.
촤아아아아-
촤아아아아-
화살비가 쏟아진다.
그 화살이 노리는 것은 천년수를 올라타는 몬스터들.
푸슉-
푸슉-
정확하게 화살 한 대에 한 마리씩 나가 떨어진다.
역시 괜히 엘프들이 아니다.
꾸에에엑-
천년수 안으로 들어가려던 몬스터 한 마리가 목에 바람구멍이 뚫린 채 지상으로 떨어진다.
"흐음. 생각보다 시간이 좀 오래 걸리는군."
자 모한은 팔짱을 낀 채 엘드라실에서의 전투를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한편 천년수의 안.
이 곳은 바깥보다 더욱 더 치열했다.
어떻게든 안으로 진입하려는 몬스터들과 어떻게든 막으려는 엘프들이었다.
하지만 몬스터들의 수야 시야를 가득 채울 정도로 넘쳐나지만 엘프들의 수는 한정적이지 않은가.
그래도 무조건!
최소한의 피해로 저 몬스터 대군들을 막아야 하는 게 지금 이들의 과제였다.
"막아라! 저기 저기! 저 쪽이 또 비었지 않은가!"
에잇-
몸을 날리며 천년수로 막 진입하는 오크 하나의 목을 그대로 날려버리는 엘 라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목과 몸통이 분리되어진 몬스터는 그대로 천년수 밖으로 다시 떨어져 갔다.
"막아라! 집중 또 집중이다! 저들에게 이 엘드라실이 무너질 수 없다! 이 곳은 우리의 고향이자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곳이다!"
어떻게든 이 곳을 지켜내기 위해 애를 쓰며 엘 라스는 부지런히 뛰어다녔다.
'후......'
이마를 쓸어올리며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갈히 하는 엘 라스.
바로 그때.
"엘 라스 님!"
자신의 이름을 크게 외치는 목소리.
하지만 거기에 응답할 정도의 시간조차 없다.
여전히 자신의 일에 전념을 하고 있는 엘 라스.
"엘 라스 님!!!"
다시 한 번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
"뭐냐?!"
엘 라스가 짜증이 역력한 목소리로 옆으로 고개를 획 돌렸다.
그녀는 엘의 바람의 엘 아린이었다.
"아린 님."
그녀 또한 공격을 막아내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이 곳 엘드라실을 지켜내겠다는 그녀의 집념.
그 집념이 그녀의 눈동자에 투영되어 이글이글 불타오른다.
"제가 나가겠습니다. 엘의 바람과 함께. 허락해 주십시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엘 라스가 되물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고 있다.
분명히 지금 이 상태대로라면 더욱 방어가 힘들어질 것이라는 것을 그녀 스스로 인식을 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가 굳이 되묻는 이유.
그런 희생을 엘의 바람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는 엘 라스의 다른 방식의 거절이었다.
"허락해 주세요. 저희 엘의 바람들이 별동대로 움직이겠습니다."
"안 됩니다."
단호한 거절이다.
"왜요!"
엘 아린이 발끈했다.
쉽게 허락할 건 아닐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단칼에 거절당할 줄은 생각 못한 탓이었다.
"지금 전력이 분산되는 것은 안 됩니다. 그리고 지난 번 나갔을 때에도 많은 피해를 입었던 엘의 바람이 아닙니까. 그 때 거의 절반이 넘는 엘의 바람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간 걸 잊었습니까? 마지막. 엘 아린 님은 만약 저희 엘드라실이 무너졌을 때를 대비한 마지막 희망입니다. 그렇기에 절대 안 됩니다."
하나하나 이유를 대며 설명하는 엘 라스.
하나씩 이유를 들어봤을 때 틀린 말은 단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너무 맞는 말이라 반박을 할 수가 없는 게 분할 뿐이다.
엘 아린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하지만!"
"절대 안 됩니다. 엘의 바람들은 계속 자신의 자리를 지켜주세요. 제발요. 아린 님."
처음에는 단호했지만 마지막은 간절한 부탁과도 같은 엘 라스의 말이었다.
칫...
더 이상은 그 어떤 말을 해도 엘 라스에게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기에 엘 아린은 말을 더 꺼낼 수는 없었다.
몸을 빙글 돌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엘 아린.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엘 라스가 잠시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의 뒷모습이 왠지 안타깝게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잘 하리라는 건 알지만 혹여나 천년수에서 나가 어떤 일이 벌어졌을 경우에는...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지난 번에도 그 얘기를 듣자마자 얼마나 가슴이 철렁거렸던가...
하지만 이내 다시 고개를 돌린 엘 라스.
"집중해라!!! 버텨라! 버티고 또 버텨라!!!"
엘 라스가 목청이 터질 정도로 엘프들을 격려하고 또 격려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칼날이 무뎌질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
우르르르르르-
갑자기 천년수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격하게. 아주 격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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