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들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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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m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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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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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0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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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6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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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 계승 - 2

DUMMY

태양처럼 밝게 빛나는 금발, 에메랄드의 눈동자. 아직 어림에도 단정한 이목구비가 장래성을 슬쩍 보여주고 있었으나, 어두운 안색은 감출 기색도 없다. 라탄의 퇴폐미가 숱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면, 케온의 두 눈에서는 깊은 절망이 느껴진다. 미래에 대해 어떠한 기대도 품고 있지 않기에 보여줄 수 있는 눈이다. 아이가 가져도 될 눈이 아니다.


왕자님, 케온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열었던 입을 조용히 닫았다. 호부견자란 사자성어는 자주 들었지만, 이건 뭐라고 해야 할까. 견부호자? 격세유전? 안광은 날카롭지 않았고, 무거운 분위기로 나를 압도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한없이 어두운 낯빛을 한 채 방 한가운데에 앉아있을 뿐인데, 나에게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지팡이를 땅에 두며, 조금 불편하지만 오른쪽 다리를 반쯤 억지로 굽힌다. 격통이 발끝에서부터 타고 올라왔지만 참는다. 세필은 멈칫했으나 곧바로 나를 따라 무릎을 굽혔다.


“니카로프 폰 유클리아드 공작이 케온 옌타투스 세자 전하를 뵙습니다.”


책상 하나 없이 의자에만 몸을 의지하고서, 케온은 무릎 위에 책을 올려두고 있었다. 제 몸에 비하면 큰 책이다. 나를 잠시 내려다보던 케온은 책을 덮고서 고개를 창가로 돌렸다.


“의미도 없는 지위를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일어나주세요, 니카로프 공작님.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라도 한다면 제가 곤란해집니다.”


“무슨 말씀을. 이 땅에서 감히 세자 전하의 지위를 의심하는 자가 있단 말인가요?”


“케닌 올리치아가 그러하고, 그의 서기관이 그러하고, 또 당신이 그러하죠.”


올해로 몇 살이라 했던가, 열? 열 하나? 한 번쯤은 얼굴을 마주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리 썩게 두지는 않았을 텐데.


먼저 일어난 세필이 나를 일으켜주웠다. 때마침 라탄이 의자 하나를 가져다주어 나는 그곳에 앉을 수 있었다. 숨을 고른 나는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서재, 아니, 창고에 더 가깝다. 책장에 마구잡이로 꽂힌 책, 쌓였다기보다는 무더기로 뭉쳐있을 뿐인 책 더미들. 의자만이 덩그러니 놓여있고, 나와 케온은 정면에서 서로 바라볼 수 있었다. 무기질적인 방의 외향 때문일까, 도리어 두 존재만이 뚜렷하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니카로프 공작님 입장에서도 저를 함부로 불렀다가는 이 영지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줬을 겁니다.”


“그 말씀대로에요, 세자 전하. 이제 용무를 한 번 들어봐도 될까요?”


“용무는 없습니다. 있다 하더라도 의미는 없습니다.”


케온은 그리 말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 쥐고 있던 책을 더미에 조심스레 올려두었다. 규칙성 따위는 없어보이는 책 더미지만, 어째서인지 케온은 기존의 형태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듯 보였다.


“제 주제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어떻게 감히 제가 허가를 하니 마니 하겠습니까만은, 무례를 무릅 쓰고 말씀드리죠. 발언을 허가할게요, 케온 왕자님.”


내 무례한 언동에 라탄이 순간 움찔했지만, 그뿐이었다. 행동에도, 언동에도 흔들림이 없다. 별 말 듣지 않은 듯 케온은 태연했다.


“도발은 그만두십시오, 니카로프 공작님. 저는 솔직하게 묻고 싶을 뿐입니다. 니카로프 공작님의 질문에도 거짓으로 답할 속셈은 없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니카로프 공작님의 의향을 따를 뿐이지만, 그 편이 더 효율적이지 않겠습니까?”


은근한 비난마저 섞어 돌려준다. 자신을 결코 높이지 않고, 여전히 낮추면서, 내가 혹시나 어리석은 언행을 보여줄 때마다 이렇게 쿡쿡 찌를 셈인가?


“도발처럼 들리셨다니 유감이네요. 질문을 한 번 들어볼까요?”


조금 실수했나? 말하면서도 후회된다. 어디까지나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데, 일순간이나마 자존심을 세우고 말았다. 그게 뒤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지 모르겠지만, 만약 끼친다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케온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아도, 케온이 그걸 신경이나 쓰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묻고 싶은 건 하나입니다. 제 아버지는 죽습니까?”


그렇게 묻는 아이의 눈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터무니없는 일을 입에 담을 때, 자신이 무엇을 말하는지조차 모른 채로 떠드는 거라 여기기엔 두 눈은 무엇도 내비치지 않았다. 매표소 직원에게 표의 확인을 받는 것처럼 사실 확인에 들어간다. 나는 입을 열었다.


“그의 죽음을 바라는 사람이 많아요. 살기란 쉽지 않겠죠.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말이죠.”


“어떻게 해도 말입니까? 살릴 수 있는 방법은 하나도 없습니까?”


조금은 필사적으로 될만한 질문에도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 하나도, 라... 그야 진흙을 뒤져보면 진주를 건질 확률이 어떻게 전무하겠는가. 벼락을 맞아 죽는 사람도 희귀하지만, 벼락을 맞고서도 살아남은 인간은 더더욱 희소하다. 거대한 먹구름이 국왕의 머리 위로 드리우고, 태풍을 예고하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 확률을 최대한 계산해보았다. 어린아이의 문답에 이렇게까지 진지해질 필요는 없다고, 자신을 다그치는 누군가도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그 어린아이에게 솔직해져달라고 부탁을 받았는데 웬만하면 바른 자세로 받아들이고 싶다.


“없지는 않겠죠.”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사람의 힘으론 어떻게도 할 수 없으니 기적을 바라는 것 아닐까요?”


내 대답에 케온은 입을 꾹 다물었다. 겉으론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내심 동요하고 있었던 것일까. 새삼스레 죄책감이 밀려왔다. 제 삼자의 입장에서 냉정히 바라보면, 나는 저 어린아이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통보한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분명 충격을 받았겠지.


케온의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릴 셈이었지만, 의외로 왕자님은 금세 회복되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저는 제 살길만 구하면 되는 거군요.”


문득, 쭉 침묵을 지키고 있는 라탄이 눈에 들어왔다. 라탄은 두 손을 허리 뒤에 붙이고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나는 다시금 왕자에게 눈길을 돌렸다.


첫인상이 어째서인가, 나에게는 너무 강렬히 다가온 탓에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다. 왕자는 평상복, 부드러운 재질의 천옷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상하의가 구분되어 있지 않은, 이른바 원피스라 불리는 의복이다. 회색 바탕의 원피스에는 나름대로 무늬가 들어가있지만, 뛰어난 장인의 솜씨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손자를 위해 모닥불 앞에서 열심히 짰을 것 같은,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느낌의 옷이다.


그 옷이 왕자의 퇴폐적인 면모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곱게 자란 왕자의 겉모습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없이 침체된 표정. 침체되었다는 표현, 떠올리고 보니 참으로 어울린다. 그래, 왕자는 전반적으로 침체되어있다.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으면 수면의 소란 따위 닿을 여지가 있겠는가.


“니카로프 공작님이 저를 만나러 왔다는 건, 전 나름대로 이용가치가 있다는 뜻일 겁니다. 그렇게 받아들여도 괜찮겠습니까?”


제가 어떻게 감히 왕자님을 이용하겠습니까, 같은 상투구가 목구멍까지 올라오더니 조용히 물러난다. 쓸데없는 말은 관두자. 이 아이와의 대화에서, 그런 말들은 그저 방해에 불과하다. 안전한 지름길을 내버려두고 위험천만한 모험을 행하는 꼴이다.


“물론이죠, 왕자님. 당신을 이용하고 싶어서 저, 니카로프는 여기에 있는 거랍니다.”


“니카로프 공작님,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왕자는 시선을 살짝 떨구었다.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 않고서 입을 연다.


“저를 대가로 거래를 하겠다는 오만함은 버렸습니다. 니카로프 공작님이 하고 싶은대로 써주십시오.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해야만 할 일이 있다면 말해주십시오. 협력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계신 거겠죠?”


똑똑한 아이다. 어디까지,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가 불명이지만, 내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는 아이의 직감이 뚜렷하게 전달해주고 있을 터다. 날 이용하는 건 네놈의 자유지만 난 결코 협력하지 않겠다, 와 같은 각오라면 모를까 그 반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다시금 라탄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계속 시선이 라탄쪽으로 향하는 걸까.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라탄이 신경쓰인다. 케온의 말이, 결국엔 라탄에게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라탄과 케온이 상당히 닮아보이기 때문일까?


무섭도록 똑똑한 아이일지도 모르지만, 케온에게는 그래도 감정이 느껴진다. 편린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무엇이든 하겠다’, ‘협력하겠다’, 그 말에 담긴 건 각오다. 그 각오는 어린아이가 품기엔 너무나도 날카로운 칼날이다.


“니카로프 공작님이라면 저를 이용하여 왕위를 찬탈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니카로프 공작님께 협력한다는 건, 결국 제 아버지를 저버린다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렇게까지 탐욕스럽게 군 기억은 없는데... 제가 왕위까지 잡아먹을까봐 걱정이신가요?”


“어디까지나 예상입니다. 도시의 다른... 다른...”


갑작스러웠다. 케온은 말문이 턱 막히더니 의자에 앉은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괴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떨어뜨린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고 세필을 부르려던 찰나, 라탄이 케온에게 다가간다. 품에서 약을 꺼내더니 케온에게 내민다. 케온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라탄이 내민 약을 입에 넣었다. 라탄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물주머니를 내밀자 급히 마신다.


잠시 후, 진정된 케온은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으시다면 하루 정도는 쉬어도 괜찮아요. 급하기는 해도 여유가 없는 건 아니에요. 다그치다가 왕자님의 몸에 무슨 이상이라도 생기면 본말전도니까요.”


“지병입니다. 잠시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 그보다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케온에게서 괴로워하는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병, 들어본 적 없다. 왕자는 우리 인질들 중에서도 꽤나 중요한 존재이며, 그렇기에 몸 상태는 철저히 관리하고 있어야만 한다. 지병이 있다면 누구보다 먼저 내가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케온 왕자님, 니카로프 공작님께는 좀 더 설명드리는 편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만히 내 표정을 살펴보던 라탄이 케온에게 그리 진언한다. 케온은 그 말을 듣고서 아랫입술을 가볍게 깨물더니, 곧 납득했다.


“그렇겠군요. 니카로프 공작님, 드리기 어려운 말씀이지만 저에게는 정신적인 병이 있습니다.”


정신병, 나는 그 단어를 중얼거렸다.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가까우면서 먼 병이다. 모두가 품고 있으면서도,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독소다.


“타인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면 숨을 쉬기가 힘들어집니다. 약을 쓰면 일시적으로 증상을 억제할 수 있지만,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얼른 이야기를 계속해야 한다. 케온은 그러한 의도를 내비쳤다. 여기에 굳이 홀로 있던 이유가 그 때문이라면 납득이 된다. 사람과 대화하면 숨이 가빠진다... 공황장애의 일종이라 해석하면 좋을까? 무엇이 트리거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정신질환은 유전적 요소도 상당히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더욱 크게 좌우된다. 유전자가 인내할 수 있는 스트레스의 한계치를 결정짓는다면, 환경은 곧 그 인간을 짓누르는 스트레스 그 자체다. 유전적으로 정신적 스트레스의 임계치가 낮은 인간이라면 사소한 일에도 금세 붕괴할 테지만, 일생동안 행복하게 살고 가면 자신에게 그러한 정신병의 씨앗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로 영면에 든다.


케온 왕자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났는지, 그리고 생활하는지 모른다. 확실한 건 ‘인간과의 대화’ 자체가 케온에게는 스트레스로 다가온다는 사실뿐이다.


“어린아이를 괴롭힌다고 오해받고 싶지는 않은 걸요. 오늘은 이쯤 해두는 게 어떨까요?”


“배려라면 거부하겠습니다. 가능하면 빨리 결판을 짓고 싶습니다.”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마지 문답을 반복할 셈인가요? 케온, 저는 당신의 질문에 최대한 솔직히 대답해 드렸어요. 그렇다면 이번엔 당신 차례겠죠. 당신이 원하는 건 뭔가요?”


“니카로프 공작님, 예의를 갖추시죠.”


“입을 다물고 있는 게 그리 어렵던가요, 비서님?”


라탄은 내 말에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꽉 다문 입술에서 불만이 느껴지지만, 그보다 앞서 케온이 입을 열었다.


“라탄, 끼어들지 마. 니카로프 공작님, 말씀드렸다시피 공작님께 무언가를 요구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케온과 라탄이 주고받는 말에서 그 둘의 관계성이 엿보인다. 흥미로운 상상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위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이를 허락해서는 안 된다. 우선은 케온과의 대화에 집중하자.


“제가 케온을 어떻게 다루더라도 신경쓰지 않겠다는 뜻인가요? 당신에게 이용가치가 사라진다면 어쩔 셈이죠? 제가 당신을 제거하려고 한다면요?”


“니카로프 공작님이 정말로 그러고자 한다면 제가 어떻게 반항하겠습니까.”


“자신의 목숨에는 별 관심이 없나보네요, 케온. 그것보다 좀 더 소중한 걸 위해 저에게 헌신하고자 하고 있어요. 탐색전은 싫다고 하지 않았나요?”


케온은 눈동자를 굴렸다. 여기서 조금 더 압박을 넣어도 되겠지만, 함부로 쫓지는 않는다. 케온과 적이 되어도 득보단 실이 더 많다. 지금은 적당히 겁을 주면서 케온의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래봤자 아이의 자그마한 지혜에는 한계가 있단 사실을 알려줘야지.


“의외로 속이 좁으십니다, 니카로프 공작님.”


어떠한 감정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나지막히 말한다.


“저의 모든 걸 보여드린다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 정도는 침묵해도 될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누가 그 권리를 인정했죠? 적어도 전 아니거든요.”


“제가, 제 목숨을 걸고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니카로프 공작님께서 굳이 짓밟고자 하신다면, 저에게 선택지는 없습니다. 니카로프 공작님은 이용가치가 있던 아이 하나를 잃어버리시겠죠.”


저게 아이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사실 겉만 어릴 뿐, 정신연령은 훨씬 늙은 게 아닐까.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아이라 하기에는 침착하다. 자신의 내면이, 정신이 명확히 공포를 호소하는데도 어마어마한 정신력으로 이를 통제하고 있다고 봐야 할까?


대답하지 않으면 네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러니 말할지 말지 직접 선택해라. 나는 케온에게 선택지를 내밀었다. 케온은 이를 비틀어, 이번엔 나에게 선택하도록 한다. 나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나를 어떻게 할지는 당신에게 맡기겠다, 그렇게 돌려준다.


억지로 캐묻고자 한다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호기심이 자극되는 걸 느낀다.


“케온 왕자님께서는 제가 가진 권력을 과대평가 하고 계신 것 같군요. 저는 힘없는 영지의 주인에 불과합니다. 협의회장이라 하여도 이름뿐인 직함이구요. 서로를 위해서라도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케온은 입을 함부로 열지 못했다. 케온의 침묵이 이어지는 와중에 라탄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나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말한다.


“니카로프 공작님, 이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뤄도 괜찮겠습니까? 왕자님에게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어제까지 쭉 제대로 쉬지도 못하셨거든요.”


나는 라탄을 바라보며 싱긋 웃어주었다.


“예의를 차려주면 돌을 던지지 않을 거라 생각하셨나요? 당신에겐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것도 어려웠나보네요. 왜 왕자님과 대화하면서 옆의 누군가가 끼어들 걱정을 해야하는 거죠?”


“라탄,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


케온의 나지막한 말에는 분노마저도 느껴지지 않았다. 케온은 두 눈을 감고 고민에 빠졌다.


말은 겉치장이다. 탐색전은 하고 싶지 않다, 솔직하게 마주하자, 그 말마저 탐색전의 일부다. 자신의 어디까지 보여줘야 할까, 어디까지는 감춰야 할까.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또 이야기를 나누며 적정선을 찾는다.


자전하며 공전하는 두 행성처럼, 마주 보고 있는 듯하면서도 영원히 바라보지 못할 뒷면을 상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이용하고자 하는 인간이니만큼, 그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알아봐야 한다. 특히나 이런, 비정상적인 존재를 앞에 두고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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