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배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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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가넷
그림/삽화
케빈가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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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3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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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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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3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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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46화. 베네치아의 공녀 1

DUMMY

1535년 가을. 이오니아 해 인근.


금방 출발할 줄 알았던 로카의 갤리선은 코르푸 섬 앞바다에서 한 달을 더 지체하였다. 푸스카스의 눈높이가 높기도 했지만 노잡이들의 숙련도가 워낙에 엉망인 탓도 있었다. 노를 처음 잡아본 청년들은 힘은 세도 요령이 부족했기에 호흡을 맞추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앞을 못 보는 이반 형제가 뱃멀미로 인해 하선하기도 했다. 결국 여름이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항해를 떠날 준비가 완료되었다.

“휴······ 이제 정말 출발이다!”

푸스카스는 직접 닻을 끌어올려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한달 전에 비해 확실히 더 늙어 보였지만 그 역시 오랜만의 항해라 눈동자에 생기가 감돌았다. 배에 탄 선원들도 다들 기대에 부푼 표정이었다. 구식 갤리선이긴 해도 필요한 인원들을 모두 갖추자 제대로 된 속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로카의 갤리선은 천천히 코르푸 섬과 멀어져갔다.


“저건 또 뭐야?”

이오니아 해를 남하한 지 하루 정도 지났을 무렵 뱃머리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오스발도가 벌떡 일어섰다. 그의 눈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배들이 출현했기 때문이었다.

“설마 해적들인가?”

푸스카스도 의외의 상황에 당황했다. 그가 알기론 이 부근은 원래 해적들이 출몰하지 않는 지역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군항이 있는 코르푸 섬이 있는 데다가 상선대를 호위하는 베네치아의 해군 함정들도 수시로 지나다니는 바다이기 때문이었다. 위험을 감수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해적들이 이 먼바다까지 진출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들 앞에 나타난 배들은 분명히 해적선이었다.

“음, 상선 하나가 해적들에게 둘러 쌓여 있네요. 다행히 우리를 노리는 것 같지는 않고······”

시력이 좋은 드레이가 먼저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했다.

“함장? 더 다가가야 하나?”

푸스카스가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냥 지나쳐도 상관없지만 함장의 성향을 알아 두고 싶었다. 로카로선 지금 같은 상황이 가장 난감했다. 배에서 전투가 가능한 인원은 겨우 여섯 명. 초로의 푸스카스나 몸이 불편한 노잡이들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조금만 더 가보죠.”

하지만 로카의 성격상 위기에 처한 자들을 그냥 두고 갈 리 없었다. 조타석에 앉은 푸스카스는 말없이 뱃머리가 나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들은 이내 선미에 게양된 깃발을 식별할 수 있을 만큼 목표에 가까이 접근하였다. 놀랍게도 해적들에게 둘러 쌓인 선박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표식을 달고 있었다. 다만 선체의 어느 곳에도 가문이나 소속을 알리는 깃발은 보이지 않았다.

“어찌된 일이지?”

그 배는 갤리선 같은 군함이 아닌 베네치아 근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체가 둥근 상선이었다. 이를 가운데 두고 두 척의 해적선이 양 방향에서 협공하는 중이었다. 위기의 순간이지만 어찌 된 일인지 상선의 갑판 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해적들도 높게 일렁이는 너울성 파도 때문에 선체를 갖다 붙이는데 애를 먹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얼추 봐도 해적들의 숫자가 스무 명은 넘겠는데?”

뱃머리에 선 오스발도가 심각한 표정으로 상황을 살폈다. 항해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일이다 보니 선원들 모두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오직 푸스카스 만이 시종일관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요히 앉아있었다.

“지금 결정을 해야 될 거 같아.”

드레이가 로카를 쳐다보았다. 그의 말처럼 더 머뭇거리다간 해적들이 약탈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된다. 망설이는 사이 좌현에 붙은 해적들이 상선의 난간에 갈고리를 거는 게 보였다. 한쪽이 고정되면 반대편의 해적들도 수월하게 배를 갖다 붙일 것이다. 상황은 점점 더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네. 지금은 우리 밖에 없으니까.”

마침내 로카가 결정을 내렸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파미르와 오스발도는 각자의 무기를 챙겨 들었다. 조타실에서 이들을 지켜보던 푸스카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예상대로 무모한 친구들이군.”

하지만 비아냥거리는 말투와는 다르게 얼굴엔 미소가 피어올랐다.

“지금부터는 노를 짧게 잡아! 빠르게 전진하다가 순간적으로 배를 멈춰 세울 거야!”

그는 선창에 있는 노잡이 청년들에게 대뜸 고함을 질렀다. 그와 동시에 갑판 위의 선원들에게도 돛을 접으라고 지시했다.

“애송이들아! 진짜 바다에 온 것을 환영한다!”

푸스카스의 노련한 지휘를 받은 갤리선은 단숨에 약탈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뜬금없이 등장한 배가 자신들을 향해 돌진해오자 해적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우리 배는 대포도 충각도 없다. 그러니 선체를 붙인 다음 곧바로 백병전에 돌입해야 돼. 그 다음은 말 안 해도 알지?”

푸스카스는 높게 출렁이는 파도 사이로 절묘하게 방향타를 움직여가며 해적선에 다가갔다. 다행히 해적선들은 푸스타 급으로 그리 크지 않았다. 게다가 두 척으로 나눠 타고 와서 한쪽 배에 탄 해적들의 수는 열명이 채 되지 않았다.

- 타앙!

마침내 난간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날 정도로 선체가 엉겨 붙었다. 잔뜩 웅크리고 있던 오스발도와 파미르가 가장 먼저 적선의 갑판 위로 뛰어올랐다. 이에 질세라 마테와 마크로코도 달려들었다. 마지막으로 로카와 드레이까지 합세하자 이들의 첫 해전이 시작되었다.


“우왓!”

기습을 당한 해적들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할 수 없었다. 칼을 휘둘러보기도 전에 오스발도와 마크로코가 밀어 부치는 나무 판자에 가로막혔기 때문이었다. 양 옆으로 빠져나가려 해도 로카를 비롯한 나머지 인원들이 사정없이 칼을 찔러 댔다. 결국 대부분의 해적들은 나무 방패에 밀려 바다에 떨어지거나 칼에 맞고 쓰러져갔다.

- 쉭!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로카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다행히 흔들리는 선체 덕분에 맞추진 못했지만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얼른 뒤를 돌아보니 상선 위에서 또다른 해적들이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들이 싸우는 동안 반대편의 해적들이 상선의 갑판 위로 올라온 것이다. 아쉽게도 상선 내부의 선원들은 아직도 선실 문을 잠근 채 나타나지 않았다.

“망할! 놈들이 좋은 위치를 선점했어!”

오스발도가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살들을 연달아 쳐내며 소리쳤다. 처음에는 하나 둘 보이던 해적들이 삽시간에 십여명으로 불어났다. 갑판 위를 완전히 장악한 해적들은 로카 무리들을 공격하기 위해 모두 난간으로 모여들었다. 해적선과 상선의 단차로 인해 어느새 고지전의 양상으로 상황이 변했다. 로카에겐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쳤다.

“나무 판자 아래로 숨어!”

당황한 로카가 고함을 질렀다.

- 콰광!

그 순간 상선 좌현에 붙어있던 해적선의 선체가 거대한 파열음과 함께 위로 솟구쳐올랐다.

“뭐, 뭐야?”

어디선가 나타난 정체 불명의 함선이 해적선의 옆구리를 강하게 들이받은 것이다. 취약한 부분을 받친 해적선은 거의 반파되다시피 갈라졌다. 그와 바짝 붙은 탓에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상선도 크게 출렁거렸다. 그 바람에 중심을 잃은 해적들이 로카 무리가 있는 해적선 위로 맥없이 떨어졌다. 이제 상황은 빠르게 역전되었다. 로카와 대원들은 해적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놓친 무기들을 얼른 발로 차 바다로 밀어 버렸다.


“와······ 죽을 뻔했네.”

오스발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무기가 사라진 해적들은 모두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손쉽게 남은 해적들을 포박하는데 성공한 로카 무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상선에 올라탔다. 무려 다섯 척의 배가 엉겨 붙어 난타전을 치른 탓에 주위는 온통 난장판이었다. 해적들이 모두 진압된 것을 확인한 상선의 선원들은 그제서야 문을 열고 선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뭐지? 조난당한 건가?”

뜻밖에도 선실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겨우 세 사람뿐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과 동유럽 출신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 한 명, 그리고 로카 또래로 보이는 소녀가 전부였다 더 놀라운 점은 그들 중에서 직위가 가장 높은 사람이 나이 어린 소녀라는 사실이었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선을 대표해서 맨 앞으로 나선 소녀는 깍듯하게 감사인사를 표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승선자가 왜 세 명뿐인 거죠?”

의아해진 로카가 물었다. 소녀는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이 이탈리아 인이라는 걸 알고 경계의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건······ 혹시 당신들은 어디서 온 분들인가요?”

그녀는 대답대신 오히려 도와준 이들의 정체에 대해서 먼저 물어왔다.

“우린 코르푸 섬에서 나오는 길이긴 한데······”

“코르푸 섬이라면······ 베네치아 해군?”

뒤에 서있던 중년 남자가 반사적으로 칼자루에 손을 갖다 댔다. 그와 동시에 로카의 동료들 역시 일제히 칼을 뽑아 그들에게 겨눴다.

“아······. 우린 그저 당신들이 위기에 처한 것 같아서 도와주려는 것뿐이에요. 오스발도, 칼은 집어넣어. 그리고 당연히 우린 베네치아 해군이 아닙니다.”

로카는 동료들을 진정시켰다.

“죄송해요. 우리가 오해했군요. 아무래도 쫓기고 있다 보니 예민하게 굴고 말았네요.”

소녀는 어려 보이는 외모답지 않게 말투에서 상당한 기품을 엿볼 수 있었다.

“저는 란도 가문의 장녀 크레챠 란도라고 합니다. 급하게 가야 할 곳이 생겨서 항해하던 중이었어요.”

자신을 크레챠 라고 소개한 소녀의 얼굴은 수심으로 가득했다.

“란도? 혹시 베네치아의 란도 가문? 그럼 피에트로 란도 공이 당신의 아버지요?”

뒤늦게 상선 위로 올라온 푸스카스가 아는 체를 했다.

“맞습니다. 저희 아버지를 아시나요?”

“알다 마다. 이 바닥에서 베네치아의 란도 가문을 모르면 뱃사람이 아니지. 아, 자네들은 촌구석 출신이라 잘 모르겠군.”

선원들에게 가볍게 농담을 한 푸스카스는 배를 둘러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데 그 대단한 가문의 아가씨가 어째서 이런 허름한 배를 타고 있는 거요? 제대로 된 선원들도 없이.”

그러고보니 크레챠와 함께 있던 두 사람도 일반적인 선원들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는 갑판에 선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주목하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눈치를 살피던 로카는 이 이상 자신들이 나서지 않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란도 씨, 나는 타란티아 출신이고 코르푸 섬에서 함대를 결성한 로카 드니로라고 합니다. 함대라고 하기에는 아직 배가 한 척뿐이지만, 아무튼 그래요. 지금은 개인적인 이유로 크레타 섬으로 가는 길이구요. 음······ 굳이 말하기 싫다면 억지로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 뭔가를 바라고 도운 건 아니니까······ 그럼 우린 이만 돌아가 볼게요.”

로카는 친구들에게 눈짓을 하고 돌아서려 했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던 크레챠가 결국 얼굴을 감싸 쥐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드니로 씨······ 죄송하지만 전 지금 누구도 믿기가 어려워요. 사실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갑작스러운 그녀의 눈물에 모두가 당황하였다. 그때 뒤에 있던 백발의 노인이 가만히 다가와 그녀를 다독였다.

“아가씨, 이들에게 도움을 청해보는 건 어떨까요? 나쁜 사람들 같아 보이지는 않아요.”

노인은 마치 손녀딸을 달래듯이 크레챠와 눈을 마주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 덕분에 그녀는 조금씩 진정되었다. 잠시 후 심호흡을 크게 한 그녀는 바닥에서 일어섰다.

“죄송해요. 초면에 이런 모습을 보여서······”

크레챠가 손수건으로 얼굴을 정리하는 동안 로카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마침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우리 교역선에 문제가 좀 생겼어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돌아와야 할 정기 상선대가 흑해에서 실종이 되었는데 원인조차 알 수 없게 된 거죠. 게다가 상선대에 돈을 댄 투자자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아버지를 법정에 세웠고요. 베네치아의 상법은 매우 엄격해서 이대로 가다간 아버지가 감옥에서 나오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다급히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가는 길이었어요. 어떻게 된 일인지 진상을 알아야 하니까······”

그녀는 빠르게 말하면서도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천하의 란도 가문이 이렇게 삽시간에······”

푸스카스는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지금 꼴이 이 모양인 건 우리 가문의 모든 선박과 재산이 압류되어서 그래요. 그 바람에 하인 한 명과 집사인 로베르토 씨만 겨우 빠져나올 수가 있었죠. 사실 더 데리고 나올 수도 있지만 저 둘을 제외하면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위원회 사람들도 해군 쪽 사람들도 모두 아버지를 구명하는 일에 난색을 보였으니까요. 아버지는 배신을 당한 게 분명해요!”

설명을 모두 들은 로카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란도 공이 지금 감옥에 갇혀 있다는 말씀?”

함께 듣고 있던 푸스카스가 재차 물었다. 크레챠는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거요? 폭풍우에 배가 가라앉았을 수도 있고 해적을 만났을 수도 있는 건데. 멀쩡한 상선대가 사라졌다면 투자자들이 입은 피해도 막대한 것 아닌가?”

“그럴 수도 있지만 사후 처리 방식이 너무 이상해서 그래요. 보통 상선대가 실종되면 기본적으로 진상조사가 끝난 후에 배상이나 재판이 시작되거든요. 그런데 이 사건만큼은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몰아치니······ 뭔가 알 수 없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기분이에요.”

푸스카스를 제외한 선원들은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어렵게 느껴졌다.

“알 수 없는 음모라······ 혹시 란도 공이 차후에 어떤······”

“네 맞아요. 아버지는 예정대로라면 차기 도제(베네치아의 수장)에 오를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후보 중에 한 명이지만 거의 내정되었다고 들었거든요.”

푸스카스는 그제서야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렇다면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이군.”

“잠시만요.”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로카가 손을 들었다. 갑판 위에 선 사람들은 일제히 그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간다고 들었는데 당신들은 어떻게 입항이 가능한가요?”

사실 로카는 란도 가문의 위기보다도 흑해로 교역선을 들여보냈다는 것에 관심이 더 집중됐다. 갈수록 양국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들어갈 수 있는 입항 허가증이었다. 그동안 방법을 찾지못했던 로카는 어쩌면 란도 가의 공녀가 자신의 고민을 해결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흑해 내 도시를 오가는 기존 항로도 이제 항행이 금지된 것으로 아는데······ 당신 부친은 무슨 수로 흑해 안에 상선대를 들여보낸 거요?”

푸스카스도 로카의 질문을 거들었다.

80여년 전 오스만 제국의 대군단은 비잔틴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완전히 함락시키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지중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보스포루스 해협이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그동안 이 해협을 통해 이루어지던 흑해 무역이 어려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더 이상 흑해 안으로 상선대를 들여보낼 수 없게 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은 속속 상관을 철수시켰다. 그나마 마지막까지 오스만 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오던 베네치아도 이제는 외교적인 노력이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그렇기에 란도 가문의 상선대가 흑해에서 사라졌다는 말은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우리에겐······ 오스만의 술탄으로부터 발급된 특별 교역 허가증이 있어요. 우리 가문은 워낙 오랜 시간 그들과 교역을 해왔고 또 오스만 궁정 내부에도 친분이 두터운 관리들이 꽤 남아 있거든요. 그래서 아직 카파나 오데사처럼 규모가 큰 교역항들은 입항이 가능하다고 들었어요.”

평정심을 되찾은 크레챠가 차분하게 설명하였다.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요. 제한된 항로를 독점하게 되면 이익이 많이 남으니 당신네 가문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그 항로를 포기하지 못했겠소.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자자들도 많았을 테고.”

푸스카스의 말에 크레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아버지는······ 흑해에서 따로 찾는 게 있었어요. 어쩌면 교역은 그저 보여주기에 불과했는지도 몰라요. 아무튼······”

크레챠는 더 길게 설명 하려다 그만 뒀다.

“그럼 당신들은······”

“저기, 이 배를 ‘캐랙’ 이라고 부르나요? 재산이 모두 압류되었다고 들었는데 이 배는 어디서 구한 거죠?”

로카가 더 질문을 하려고 했지만 잠자코 지켜보던 드레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는 처음 봤을 때부터 생긴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네, 잘 알고 있네요. 우리 아르세날레(국영조선소)에서는 이 선박의 규격을 ‘캐랙’이라고 불러요. 이 배는 우리와 친분이 깊은 마리노 가문에서 비밀리에 빌려줬어요. 그들이 직접 나서서 도와주고 싶어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함부로 나설 상황이 아니다 보니······”

“헤이!”

그 순간 어디선가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판 위의 사람들은 일제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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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69화. 란도 가문 21.04.23 59 0 16쪽
69 68화. 아이라의 고향 21.04.15 31 1 17쪽
68 67화. 흑해의 들개 3 21.04.09 61 0 14쪽
67 66화. 흑해의 들개 2 21.04.02 37 0 16쪽
66 65화. 흑해의 들개 1 21.03.26 54 0 14쪽
65 64화. 뜻밖의 해후 21.03.19 59 0 18쪽
64 63화. 사라진 상선대 2 21.03.12 54 0 15쪽
63 62화. 사라진 상선대 1 20.09.22 78 0 14쪽
62 61화. 바라쿠다 용병대 2 20.09.18 59 0 15쪽
61 60화. 바라쿠다 용병대 1 20.09.15 37 0 14쪽
60 59화. 어긋난 계획 2 20.09.12 33 0 14쪽
59 58화. 어긋난 계획 1 20.09.09 43 0 14쪽
58 57화. 대담한 인질 2 20.09.07 40 0 13쪽
57 56화. 대담한 인질 1 20.09.04 50 0 13쪽
56 55화. 잊혀진 동굴 2 20.09.03 43 0 13쪽
55 54화. 잊혀진 동굴 1 20.08.31 6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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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50화. 공생 관계 1 20.08.21 60 0 15쪽
50 49화. 맘탈리 20.08.19 68 0 18쪽
49 48화. 사라진 타란티아 20.08.18 62 0 13쪽
48 47화. 베네치아의 공녀 2 20.08.17 59 0 13쪽
» 46화. 베네치아의 공녀 1 20.08.13 74 0 18쪽
46 45화. 할카 20.08.12 73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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