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 레벨 9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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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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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살해자 5

DUMMY

유적으로 들어선다.

횃불 따위는 들 필요도 없다.

뒤쪽의 용병들이 여기 들어올 일도 없을 것이다.

어떤 놈이 이런 짓을 하는지 몰라도 아주 잠깐 정도는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유적은 크고 넓지만, 거침없이 전진하니 그리 넓지도 않았다. 함정도 없고 지키는 것도 없다.

그리고 웬만큼 내려오자, 드디어 뭐가 하나 나오긴 했다.

넓은 공간. 공간 전체에 남아 떠도는 것은 소량의 마나와 마기.

그리고 바닥에 흩어져 있는 검은 재들.

무너져 내린 제단.

여기 뭔가 있었다. 아니, 여기에 로즈. 루나. 레인이 있었다.

인간들이 흑마법이라 부르는 것들의 흔적도 남아있다.

그리고 마기 중에, 아주 특이한 마기가 남아 있었다.

악마의 것이다.

여기서 악마 소환 의식이 있었다. 로즈. 루나. 레인. 그 셋을 제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게 전부였다.

여기가 마지막이다.

비밀 공간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혹시 비밀스럽게 숨겼나 싶어 더 찾아보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미련을 가지려 해봐도 아무것도 없다. 오랫동안 살았지만, 이번만큼은 대체 뭘 원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볼멘소리가 나온다. 불만 가득한 소리다.

그리고 레스는 주변을 잠깐 더 살핀 뒤 말했다.

“돌아가자.”

아무것도 없다. 더 찾아볼 필요 없다.

결국, 성과 없이 유적을 벗어난다.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자, 레스를 맞이한 것은 용병들이 아닌 무장한 군대였다.

기사들. 병사들. 심지어 여기에서는 귀한 마법사까지.

“레스. 맞나?”

가장 앞의 근엄한 표정의 누군가 말했다.

“마야크 도시연합 소속, 베니크의 도시장 한센이다. 레스 맞나?”

“···맞아.”

“그렇다면 묻겠는데, 로즈. 루나. 레인. 이 세 사람이 레스의 용병대 일원임을 인정하는가?”

“그 셋은, 내 동료지.”

죽었지만 일단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그리고 한센이 말했다.

“이 세 사람이 라인하텐 제국의 귀족을 살해했다. 따라서 우리 마야크 도시 연합을 대표하여, 너희를 체포한다.”

“······.”

“순순히 따라주길 바란다. 이번 사건은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니. 제국은 공정한 재판과 사건의 조사를 약속했다. 레스. 네가 소드마스터인 것을 알지만 국가를, 그리고 제국을 상대로는 도망칠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순순히···.”

“항복.”

레스는 두손을 들었다.

그러자 옆에서 난리가 났다.

“아니, 이게 뭐야?”

“먼지 털고 왔더니 갑자기?”

그러자 레스가 말했다.

“너희도 항복해.”

“···.”

어쩌겠는가. 항복하라니 해야지.

결국 남은 셋 역시 손을 들었다. 그러자 한센이 말했다.

“항복··· 좋다. 베니크와 도시 연합이 레스의 용병대에 신세진것도 있으니 거칠게 대하지 않겠다. 협조만 한다면, 자네들이 무죄 방면되도록 노력하겠다. 그럼 무기를 내려둬라.”

“협조하지.”

레스는 무기를 버렸다. 해머. 도끼. 레이피어. 그리고 실이 달린 단검까지도.

“감사를 표하지.”

한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명령했다.

“묶어라. 그러나 예의를 갖춰라. 용병이지만 우리 도시의 은인이다.”

기사들이 굵은 사슬을 들고 다가온다. 그리고 묶는다.

무기는 전부 빼앗겼고, 몸은 구속된다.

한 명씩 눈을 포함 사지가 결박돼 묶여 압송된다. 그러나 유일하게 한 명. 어린 소녀는 눈이 가려지지 않았다.

발이 묶이긴 했지만, 손은 내버려 두었다.

한센의 입장에서는 편의를 꽤 많이 봐준 처사다. 게다가 용병들에게서 이 여자애가 레스의 딸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바위산을 내려간다. 숲을 통과할때도 몬스터는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포악해도 이 정도 규모의 군대면 본능으로도 덤비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로 진입하자 얘기가 달라졌다.

“···.”

용병들의 시선.

수많은 용병들이 대로의 좌우로 돌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평범하게 더러운 농담이나 하며 돌아다니는 게 아니다.

그리고 시민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무기를 든 용병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험악하다.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창을 검은 천으로 가려놨지만 알고 있다. 저 군대가 누굴 압송해 데리고 가는지.

“저 거지 같은 것들.”

“대체 왜 잡아가는 거래?”

“뭐, 레스씨네가 제국 귀족을 죽였다는데?”

“제국?”

“그 개새끼들 좀 죽였다고 레스씨를 잡아가?”

말도 안 되는 불만이지만 정당한 불만이기도 하다.

마야크 도시 연합은 용병들이 나라를 지킨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귀족들이 없고 도시장이라는 직책이 각 도시를 관리하는데 그 도시장을 뽑는 투표에 용병들도 참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나라에 비해 빈약한 군대이기 때문에 원래 용병을 하던 사람들이 은퇴해 군인으로 복무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기 용병들에는 제국에서 쫓기듯 도망쳐 온 용병들도 많았다.

게다가 마야크를 마음의 고향 처럼 여기는 용병들도 있다. 실제로 은퇴하면 고향에 정착하거나 아니면 마야크에 정착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그런 마야크가 깡패 같은 제국에 휘둘린다 생각하니 반감이 터져 나온다.

“아니, 한센씨. 레스씨를 압송한다는 게 사실이요?”

“이보쇼, 도시장 양반. 이게 뭔 일인지 설명 좀 해보쇼.”

“레스씨를 왜 끌고 가는 거요!”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진다. 여차하면 앞을 가로막고 달려들 정도로.

급기야 성질 급한 용병들이 우르르 몰려와 길을 가로막았다.

“레스씨가 뭘 잘못했다는 거요.”

따지듯 묻는다.

분위기가 급속도로 험악해진다. 벌써 여기저기서 날붙이가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기사들과 병사들이 동요한다. 군대이긴 하지만 귀족이 없는 도시 연합의 특성상 기사들도, 병사들도 전부 평민에 용병 출신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센이 주변을 둘러본 뒤 들으라는 듯 소리쳤다.

“나도 좋아서 하는 짓이 아니야!”

“···.”

“빌어먹을 제국 놈들의 귀족 하나가 우리 도시에서 죽었어! 로즈. 루나. 레인. 레스씨네 동료들이 죽이는걸 본 사람들이 있다고!”

“제국 놈들이···.”

“그걸 누가 봤다는 거요?”

“자작극이겠지!”

그러자 한센이 다시 소리쳤다.

“그래, 빌어먹을 자작극이겠지!”

이런 대로에서 대놓고 자작극이라 소리쳤다. 잘못하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도시장이라면 해서는 안 될 말이다.

하지만 한센은 했다.

“자작극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어. 미친 제국 놈들은 당장에라도 전쟁을 하려고 안달이 나 있단 말이다. 얼마 전 라체아 왕국에서 벌어진 일들을 알지? 그것과 마찬가지로 제국 놈들이 군대를 우리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저놈들은 건수만 생기면 군대를 보내는 놈들이야. 그리고 나는 제국의 군대와 대치하고 싶지 않아. 비겁한 짓이지만 그렇게 해야 해. 만약 여기서 내가 너희가 바라는 대로 레스씨를 풀어주면, 마야크 도시 연합은 베니크를 강제로 독립시켜 버릴 테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따로 제국 놈들과 싸워야 한다고.”

냉혹한 현실에 용병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게 현실이다. 현재 제국은 룬하임을 강제로 합병한 것과 다름이 없었고 리텐에도 자기네 군대를 보내고 있다.

당장 라체아 왕국의 사건도 그렇다.

제국의 군대가 라체스 왕국의 서쪽 끝인 바몬 까지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거기서 엘프들을 끌고 자기네 나라로 들어갔다고 들었다.

마야크 도시 연합이 제국에 대항할 방법은 없다. 전쟁이 나서 모든 도시가 그 이름대로 연합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이제 길을 비켜. 여기서 문제가 생기면 오히려 제국 쪽에 명분을 주는 일이니까.”

눈에 힘을 주며 말하는 한센. 그리고 용병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다가 슬쩍 길을 비켰다.

더럽다 못해 역겹다. 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여기서 우격다짐으로 화를 내본들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더 악화될 뿐이다.

다시 이동한다. 그리고 한센은 조금 떨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



“어떻게 됐나.”

“말씀 하신대로 지하 감옥에 가둬 놨습니다.”

“따로?”

“예.”

“좋아. 잘해줬어.”

그리고 나는 잔에 담긴 붉은 빛 와인을 찰랑인 뒤 한 모금 마셨다.

바닥에 곰의 가죽이 깔린 투박하지만 좋은 방. 흔들리는 랜턴의 불빛 너머로 한센이 말했다.

“그럼 제 아들은.”

“걱정할 거 없어. 자네 아들은 제국에서 성공할 테니까. 분명 한스라고 했었나? 기억하고 있지.”

“예. 한스.”

“용병으로 대회에 출전했지만 지금쯤이면 떨어졌을 테지. 그 대회에는 귀족들이 키운 기사들도 많이 참가하니까. 하지만 새로운 기사단에 한 명 넣는건 일도 아니지.”

“그럼···.”

“말이나 돌보는 종자가 아니야. 제국의 기사 한스가 되는 거지. 준 귀족으로 어엿한 성도 받게 될 거고 어쩌면 제국의 영애와 잘될 수도 있지. 여러 가지로 이득이 되는 이야기로군.”

“···감사합니다.”

“힘든 결정이었을 텐데, 마음고생이 심했겠어. 하지만 아들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기특하군. 레스를 넘기면 제국의 작위를 약속했는데 설마 아들을 말할 줄이야.”

“···.”

한센은 눈 앞에 앉은 제국의 귀족을 바라보았다.

레이튼이라고 자신을 밝힌 귀족. 그리고 그 뒤의 여자들.

익히 아는 얼굴들이다. 로즈. 루나. 레인.

예전에 의뢰 때문에 몇 번 봤을 때는 까탈스러운 여자들이지만 무섭다는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에 보던 얼굴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무표정한 눈. 미소를 띤 것처럼 뒤틀린 입가.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혹시.”

“음?”

“혹시, 레스를 어떻게 하시려는 겁니까?”

레스의 용병대는 제국의 귀족을 죽이지 않았다.

이건 더럽고 추잡한 거래일 뿐이니까.

하지만 로즈. 루나. 레인. 저 세 사람이 제국의 귀족을 죽였노라고 말한다면 그게 진실이 된다.

왜 저 세 사람이 레스를 배신했는지는 모른다. 아니, 레스는 그 유적에서 처음 보는 다른 자들과 같이 있었으니, 뭔가 모를 속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 속사정은 이제 와서 알아도 소용없다. 다만 한센은, 최후의 양심으로 레스가 죽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레스는 죽을거야.”

“···.”

“레스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오늘 밤 알아서 처리하지. 그러니 감옥을 비워 놔. 쓸데없는 시선은 자네한테도 좋을게 없으니까.”

“예.”

“레스는 내일 아침 일찍 압송할 테니 준비하고.”

“예.”

그저 예, 뿐이다.

왜 죽는지는 묻지 못했다.

한센은 앞에 놓인 와인을 한잔 통째 들이켰다.

‘그래, 애초에 레스는 출신이 불분명했어. 갑자기 그렇게 나타났으니까. 그런 실력으로 용병을 하는 것도 말이 안되는 일이지. 제국에서 뭔가 죽을 죄를 지어서 용병 행세를 하는 거일 테고. 그게 아니고서야 레스를 죽이겠다고 소드 마스터를 보낼 리가 없으니까.’

한센은 거래를 하며 본, 그 푸른 불꽃을 잊을 수가 없었다.

레스는 소드 마스터다. 그리고 눈 앞의 남자 역시.

게다가 저 셋도 레스를 배신했다. 아니, 어쩌면 레스는 배신을 당할 만큼 저 셋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전부 자업자득이다.

“모쪼록, 제 아들을 부탁합니다.”

“제국의 이름을 걸고. 그리고 내 명예도 걸지. 자네 아들은 라인하텐에서 성공할 거야. 자랑스러운 아들로써.”

옅은 미소. 사람 좋아 보이지만 그야말로 사이한 저 미소.

“잔이 비었군. 따라주지.”

랜턴 빛을 받아 피처럼 붉게 빛나는 와인이 따라진다. 한센은 그 와인을 기꺼이 받으며 자신의 아들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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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또 시작 1 +16 20.11.24 2,667 111 19쪽
109 패배자의 전쟁 6 +21 20.11.21 2,603 105 21쪽
108 패배자의 전쟁 5 +25 20.11.19 2,456 103 12쪽
107 패배자의 전쟁 4 +13 20.11.15 2,893 100 12쪽
106 패배자의 전쟁 3 +25 20.11.13 2,676 116 13쪽
105 패배자의 전쟁 2 +14 20.11.12 2,636 97 14쪽
104 패배자의 전쟁 1 +15 20.11.08 2,994 123 11쪽
103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 6 +9 20.11.07 2,799 112 15쪽
102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 5 +15 20.11.05 2,983 121 17쪽
101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 4 +5 20.11.04 3,046 120 11쪽
100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 3 +19 20.11.02 3,163 134 12쪽
99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 2 +11 20.11.01 3,449 131 12쪽
98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 1 +12 20.10.30 3,801 138 15쪽
97 너. 마왕 하고 싶지? 5 +31 20.10.28 4,109 159 17쪽
96 너. 마왕 하고 싶지? 4 +6 20.10.27 3,985 134 14쪽
95 너. 마왕 하고 싶지? 3 +12 20.10.26 4,103 156 15쪽
94 너. 마왕 하고 싶지? 2 +9 20.10.24 4,609 158 16쪽
93 너. 마왕 하고 싶지? 1 +15 20.10.23 4,622 182 12쪽
92 뜻밖의 침략자 9 +28 20.10.21 5,168 230 18쪽
91 뜻밖의 침략자 8 +6 20.10.20 4,985 175 13쪽
90 뜻밖의 침략자 7 +23 20.10.18 5,495 19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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