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 OF TEARS AND F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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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빙
작품등록일 :
2020.07.08 17:29
최근연재일 :
2020.10.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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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07.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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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여동생 가희

DUMMY

‘나는 누구인가요?

저는 이대로 숨도 쉬지 말고 살아야 하는 건가요?

저의 의지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요?

제가 가야할 데는 어디죠?

어떻게 살아야 하지요?

모르겠어요. 모르겠어요.’

그 때 저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끝도 보이지 않는 길을 걷고 있었어요.


‘현실은 무엇이고 제가 그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란 말인가요?

현실에서 벗어나,

꿈의 세계로 갈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그런데 아무리 뒤져봐도 찾을 수 없었어요.

어디를 봐도 찾을 수 없다고요.’

‘결국 꿈은 물거품이었어요.

그냥 맹목적으로 사는 수밖에...

꿈은 현실너머에 있어요.

그 꿈은 어디에 숨어있을까요?

아마 꿈은 동굴 밖에서 서성거리며 저를 비웃고 있겠죠.’


며칠 동안 밤늦게 집에 들어갔어요.

저는, 동굴 같은 집을 억지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큰 고역이었어요.

들어갈 때마다 가족들은 거실에서 모여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죠.

저만 없으면 단란한 가정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만 바보같이.


“어서 와서 앉아라.

사내자식이 왜 그래?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안 되겠니?”

저는 제 방 입구에 서서 잠시 망설였어요.

그리고 소리쳤어요.


“내 엄마가 어떻게 죽었는지,

잘 알잖아요.”

삽시간에 저희 집 거실이 차가운 북극 얼음판 위로 내동댕이쳐졌어요.

“뭐야?

그게 지금 할 소리야?”

“제 엄마가 어떻게 죽었는지 잘 알잖아요.”

저는 그 소리 외에 다른 말을 할 수 없었어요.

“네 엄마가 바람을 피웠잖아.

그래서 이혼한 거고.”

“아빠는요?

마찬가지로 아빠도 바람 피웠어요.

제가 본 여인도.”

“나는...”

“엄마는요.

그녀는 외로웠어요.

아빠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했나요?

그녀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져줬어요?

아빠는 매일 늦게 들어왔고 주말이면 골프 운동 갔고.

언제 따뜻하게 가족여행이라도 간 적 있었나요?

아빠는 늘 다른 여인들 꽁무니나 쫓아다녔어요.

난 다 알아요.”


“그러다 그녀는 홀로 외롭게 죽었어요.

외로운 방에서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술만 마시다가 뇌출혈로 쓰러진 거라고요.

제가 갔을 때,

그 방에서 나뒹굴던 술병들이 아우성쳤어요.”


저는 시원하게 뱉어냈어요.

그리고 저는 다시 제 동굴로 들어갔어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붙들고 새우처럼 등을 구부렸어요.

엄마 자궁 속의 태아처럼 가장 편한 상태가 되었죠.

‘단절됐어요.

대화의 단절, 상담의 단절, 신앙의 단절이에요.

저는 누구와 대화하고,

누구와 상담할 것이며,

누구에게 신앙해야 할까요?’


‘친구가 없어요.

내 이런 현실을 이해하고 보듬어줄 친구가 없어요.

내가 지난 일들을 모두 들려줘도 돌아오는 답은 간단해요.

그냥 살아라,

참고 살아.’


‘심리상담 전문가도 해결할 수 없어요.

심리상담 전문가는 말하죠.

내 지금 상황과 어린 시절의 얘기해 보라고.

그리고 어린 시절의 어떤 트라우마를 끄집어낸 후

아, 그게 원인이었구먼.

헛소리만 해대죠.

그리고 그들은 강한 진정제를 처방하면 끝이에요.’


‘종교도 역할이 없어요.

종교인은 차분히 말해요.

모든 걸 절대자에게 맡겨라.

네 자신의 모든 걸 내려놓고 네 내면의 자아를,

절대자 하나님을 찾아 귀의하라 하죠.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다.

인간은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이 말하는 게 뭔 소린지 모르겠어요.’


‘제가 지금 답답해 죽겠다는데

사람들은 모두 쓸데없는 얘기만 하죠.

어쩔 수 없어요.

저는 어두운 방에서 이불이나 뒤집어쓰고

먼 우주를 헤매는 수밖에.

저를 제일 잘 아는 친구는 저밖에 없어요.

저를 상담해줄 전문가도 저밖에 없어요.

저를 신앙케하는 것도 결국 저뿐이에요.’


‘저는 어두운 들판에 홀로 서서 하늘의 별빛을 바라보며

폭풍 속에서도 끝까지 버텨내야 하는 거예요.

저의 겉치레의 옷이 벗겨지고

부드러운 살점도 떨어져나가며

앙상한 뼈도 녹아 없어질 거예요.

그리고 눈에서 형형한 빛을 발하는

극한 자아만이 살아남는 거지요.

존재가 어떻고,

실존이 어떻고,

절대자가 무엇이고.

모두 헛소리에 불과해요.’


며칠이 됐어요.

집에 안 들어간 지.

결국 저는 집을 나와 친구 집에서 지냈어요.

그날 아침 일찍 친구 집에서 나와 학교에 갔어요.

다른 학생들은 아직 등교하기 이른 아침이었어요.

텅 빈 교정을 서성거렸죠.

저는 은행나무와 버드나무가 만들어준 그늘에 서있었어요.

제 등에 남산만큼 커다란 짐이 매달려 있었어요.

등을 구부리고 땅만 쳐다볼 수밖에요.


수업시간에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저는 고개를 숙이고 공책에 낙서만 온통 그렸죠.

수업이 끝나면 저는 서쪽 구석 건물에 있는 생물실험실로 갔어요.

저는 열려진 창문으로 기어들어간 후,

빨간 동그란 회전의자를 딛고 올라가 동물해부 실험할 때 쓰이는 커다란 책상 위에 누웠어요.

그리고 눈을 감았어요.


전날 친구의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죠.

“이렇게 방황하면 안 돼.

정신 차리고, 집에 가야지.”

저는 속으로 생각했어요.

‘예, 저도 알아요.

이것이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을요.

그런데 다른 방법이 있나요?’


‘제 어머니가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있나요?

내 집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나요?

아니면 제가 들어가기 싫어하는 집을 떠나,

지금 독립해서 따로 나와 살 수 있나요?

할 수 없어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다른 방법이 없어요.

절벽이에요.

벼랑 끝이에요.’


제가 그렇게 동물해부 실험용 책상위에 두 팔을 벌리고 누우니

저는 영락없이 실험당하는 개구리였어요.

‘학생들은 개구리의 배를 가르고

아직도 두근거리는 심장을 꺼내서 작은 유리판 위에 놓지요.

그들은 그 개구리의 따뜻한 허파를 칼로 도려내고,

그것의 위와 간을 잘래내며,

기다란 창자를 거친 털실처럼 뽑아내지요.’


‘얼마나 더 고통 속에 처박혀 있어야

이 고문이 끝나는 것일까요?

저는 언제쯤 참혹한 연극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이었어요.


집을 나온 지 5일째 되던 날이었어요.

제가 수업을 마치고 학교 교문을 나올 때였지요.

한 중학교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교문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어요.


* * *


안녕.

내 이름은 가희야.

초등학교 5학년, 여자어린이로서는 성장했고 아직 청소년은 되지 못한 조금 어정쩡한 나이이지.

그날은 여름방학이라서 가사도우미 언니랑 엄마하고 동해 망상해수욕장엘 놀러갔어.

“언니, 바다 처음이지?”

“응, 바다 넘 좋다.”

“나도, 바다는 첨이야. 너무 넓은 수평선, 푸른 물결, 넘실대는 파도...”

“저기 흰 갈매기 좀 봐. 사람을 그렇게 무서워하지도 않네.”

“우리 수영하러 가자.”

“그래, 빨리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가자!”


하루 종일 수영을 했지.

바닷물은 수영장물과 느낌이 전혀 달랐어.

뭐랄까? 부드럽고 몸에 착 감기는 느낌?

오후가 되어 민박집으로 돌아가려고 물 밖으로 나왔다.

오래 물속에 있었더니 몸도 춥고 배도 고프고...


그런데 저기서 엄마가 낯선 남자랑 수영도 하고 장난도 치고

웃고 떠드는 것이 보였다.

그때 전 무심코 지나쳤는데

알고 보니 엄마는 혼자 온 게 아니었어.

서울에서부터 어떤 남자랑 같이 온 거였지.

어쩐지 기차에서도 보이지 않더라.


엄마는 혼자 사니까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내가 태어날 때부터 계속 엄마는 혼자였어.

내 아빠가 누군지도 모른다고 했지.

술집에 다니니까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

엄마는 자신이 술집에 다니는 걸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힘든 고역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어쩜 무척 즐기며 사는 느낌이었어.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뭐, 그런 거였지.

술집을 찾아오는 많은 남자들이 엄마를 좋아하니 엄마도 그게 참 좋았던 모양이지.


그때 내 생각에는 엄마가 학교에 제발 찾아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어.

운동회든 소풍이든...

짙은 화장에 싸구려 향수로 범벅을 하고 다녀서 나는 쫌 그랬어.

그래도 난 씩씩한 아이였지.

그런데 별로 굴하지 않고 반장도 꿰찼고 어린이회장도 했어.


그러데 저 남자는?

아직까지 독신이기에는 나이가 좀 많고

혼자가 되어 외롭게 사는 사람 같지도 않아보였어.

그렇다면 유부남이라는 얘기인데...

돈이 그렇게 많아보이지도 않고 인간성도 그렇고... 흠.

그저 그런 바람둥이, 파리들만 꼬여들었지.


몇 번인지 세지는 않았지만,

우리 집에 찾아오는 남자들도 많이 있었어.

“이제 너의 아버지가 될 사람이다.”

하고 엄마가 소개시켜주면 난 엎드려 큰 절을 드렸지.

별로 기대는 하지 않았어.

그런 남자들이 부지기수였으니까.


큰절을 하면서 난 생각했지.

‘빨리 이런 일이 끝났으면 좋겠다.

이젠 생각하기도 싫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서

그대로 사는 수밖에 없었어.

시궁창에 빠진 생쥐처럼...


* * *


“저 여학생 누구일까?”

“참 예쁜데?”

교문을 나가던 학생들이 말했어요.

저는 아무 생각 없이 교문을 나섰어요.

“저기요. 오빠아.”

어떤 여학생의 목소리였어요.

오식이는 저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땅바닥에 떨어진 동전만 찾았지요.

다시 그 목소리가 더 가까이 들렸어요.

“저기요. 오빠아.”

저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그 여학생을 똑바로 쳐다봤어요.

“어? 네가 웬일이야?”

제 앞에 새로 온 여동생이 예쁜 인형처럼 서있었어요.


저희들은 후암동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갔어요.

조금 어색한 분위기였죠.


‘처음 만난 가족!

식구?

여동생?

너무 예쁜 여동생?’


“오빠라고 불러도 되지?”

제게 가족이라 함은 어린 시절 기억이 막 자라기 시작할 무렵부터 함께 해온 사람들이었어요.

아버지, 어머니.


저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 그녀의 어깨너머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어요.

어머니의 등이 참 넓고 포근했지요.

그녀와 손을 잡고 걸을 때면 그녀는 나의 가장 든든한 보호자였고요.

어쩌다 그녀와 제 눈이 마주치면

그녀는 사랑이 듬뿍 담긴 미소로 꼬옥 안아주셨어요.

그녀가 시냇가에서 빨래를 하실 때 저는 옆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았어요.


“네 이름이 뭐니?”

“내 이름은 가희야.”

그리고 말이 없었어요.

우리는 타박타박 길을 걸었죠.


“오빠만 힘든 게 아니잖아!”

그녀가 나직이 말했어요.

“나도 알아.

네가 잘못 것은 아니야.

내 자신이 미운 것뿐이야.

바보, 멍청이, 무능력자야.”

제가 발을 거칠게 끌며 말했어요.


“나도 우리 엄마가 미친년이라고 생각해본 적 있어.”


“나는 친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몰라.

엄마는 요정이라는 술집전문점을 오랫동안 다녔어.

그녀는 매일 술에 취해서 집으로 돌아왔고

가끔 외박하는 날도 많았어.

나는 거의 가사도우미와 함께 살았지.

그리고 나는 많은 수의 새아버지들을 만났어.

나는 그들을 처음 만날 때마다

내가 그의 자녀가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정중한 인사를 드렸지.

그건 더러운 하수구에 빠진 것 같은,

참기 힘든 고역이었어.

나는 그들을 믿지 않았어.

그들이 나의 믿음직한 새아버지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지.

그냥 나는 그런 상황 속에서 살아야 했어.

그러다 마지막으로 나는 너의 아버지를 만난 거야.”


그녀가 담담하게 말했어요.

‘가희도 불쌍하게 컸구나.

참 그녀의 처지가 곤란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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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하나의 작고 순결한 꽃송이를 20.09.04 27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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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창문으로 어둠이 기어들어오고 20.08.28 25 0 10쪽
28 정말 웃기는 일이었어요 20.08.26 27 0 17쪽
27 너는 가희만을 사랑해 20.08.24 34 0 15쪽
26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 20.08.21 31 0 11쪽
25 벼랑 끝에 서있는 기분 20.08.19 31 0 11쪽
24 사람은 사랑을 먹으며 산다 20.08.17 49 0 9쪽
23 더 이상 무엇을 바라는가 20.08.14 25 0 9쪽
22 병사들은 술 취해 비틀거리고 20.08.12 26 0 9쪽
21 그녀의 모습을 한 내 어머니일까 20.08.10 29 0 8쪽
20 잘 가. 애인 대신이야 20.08.07 29 0 9쪽
19 누이의 꿈 20.08.05 26 0 11쪽
18 젊은 노동자들의 승리 20.08.03 41 0 9쪽
17 힘차게 휘날리는 깃발 20.07.31 42 0 8쪽
16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조 20.07.29 58 0 10쪽
15 노동자를 위한 세상은 없다 20.07.27 38 0 11쪽
14 고귀한 그리움 20.07.26 25 0 8쪽
13 젊은이들의 죽음 20.07.25 25 0 12쪽
12 찔레꽃 20.07.24 27 0 12쪽
11 누군가 그리워 20.07.23 26 0 9쪽
10 천국의 문앞에서 20.07.22 33 0 8쪽
9 총소리 20.07.21 48 0 11쪽
8 우리들은 정의파 20.07.20 3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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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무언가가 새로이자리 잡는 듯 20.07.15 39 0 12쪽
» 여동생 가희 20.07.14 5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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