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응변도 필요하다.(데이터 주의, 삽화 있음)
나의 목표는 쌍방이 최대한 적은 피를 흘리고 성안의 사람들에게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다.
내가 이 시대에 뭐 대단한 인도주의자라서 그런 게 아니다. 살아있으면 곧 우리 국가의 자산이 될 사람들이다.
노예가 되든 평민이 되든, 어쨌거나 내 백성(?)이 될 사람. 함부로 죽여서야 되겠는가?
뭐 딱 이 정도, 이 시대 정신에 어울릴 만큼만 생각해서 그렇다.
“아르반드, 너는 이 길로 병력을 이동시켜서, 최대한 은밀하게 왕궁 외곽 흙벽집들의 옥상을 점령해라.
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첫째다.
쇠뇌병 2명에 궁병 1명을 붙여라. 개인 무기 휴대는 필수다. 사다리를 써.”
나는 포로들이 얘기한 것을 토대로 만든 지도를 가지고 침투 경로를 설명했다.
“페쇼탄, 너는 아르반드가 흙벽집 뒤로 이동하는 동안 중간에 튀어나올 만한 적들을 모두 제거해.
너도 소리를 안 내는 것이 최우선이야.
단검을 잘 쓰는 애들을 데려가. 인원수는 100명까지 네가 원하는 대로 뽑고.
오마르 장군님은 저와 함께 가시죠.”
“비밀통로를 직접 가시게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는 법입니다.”
“호랑이는 뭔가요?”
“있어요. 사자 같은 거.”
“네···”
“포로와 통역도 데려갈겁니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냥 제가 길을 뚫으면 그 때 함께 들어오시죠?”
“아니요. 저자가 있어야 일이 쉽게 풀릴 겁니다. 그리고 저는 가급적이면 피를 적게 보고 싶어요.”
“오~ 웬일이십니까?”
“왜요?”
“사람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죽이시는 분이 그런 말씀하시니까 적응이 안되네요.”
‘누가 들으면 내가 살인마인줄 알겠네. 나는 내가 살려고 그러는 거라고. 전투할 때 빼고 내가 언제 사람 죽이는 거 봤어? 이 아저씨가 정말.’
“흐, 장군님은 저보다 더하시지 않나요? 그 스승에 그 제자인 법입니다.”
아르반드에게는 옥상에서 왕궁 초병들을 겨누고 있되, 상대가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대기하라고 명령했다.
누군가 옥상에 올라간 이후에는 초병에게 들켜도 상관없다고 했다.
사실 그 틈에 침투할 생각이니까. 사실 옥상조는 어그로 끄는 역할이면 충분하다.
누가 그랬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도 속일 줄 알아야 한다고.
게다가, 왕궁에서 도망쳐도 퇴로가 차단됐다는 전시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페쇼탄에게는 아르반드 조가 주택에 도착할 때까지만 주변의 방해를 제거한 후, 지체없이 침투조의 뒤를 따라 왕궁으로 진입해서 초소병을 제압하라고 지시했다.
사실상 제일 바쁘게 움직여야 할 조이기도 하다.
아르반드가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옥상에 한두 명이 올라가는 순간 소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흙벽집을 올라가면서 조금 소란스러워도 크게 상관은 없다.
침투조가 그 틈을 이용해 비밀통로를 장악하기 시작할 것이고, 페쇼탄이 뒤를 따라 들어와 왕궁 경비를 제압한다.
나와 오마르 아저씨는 궁내에 숨어있을 우두머리를 찾는다는 게 나의 밑그림이었다.
“우리는 왕궁 내부로 들어가서 제사장이든 왕비든 저항을 무력화시킬 만한 우두머리를 제압할 겁니다. 무력보다는 협상을 할 거예요. 다만, 협상이 유리해질 수 있도록 우리가 이 도시를 완전히 장악했다는 사실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통로 침투조(나, 오마르, 근위대 등) 120명, 주택조(아르반드) 120명, 암살조(페쇼탄) 약 100명, 선박 방어(장군1명)에 300명입니다. 나머지는 반씩 나눠 이 곳과 이 곳에서 3열을 유지한 상태로 대기하세요.”
나는 지도에서 우바이드 주민이 가장 쉽게 몰릴 수 있는 지점 두 군데를 콕 집어 가리켰다.
신규 매장 오픈하면서, 상권 동선만 수백 번을 검토한 노하우를 되살렸다.
포로들의 답변을 모아본 결과 만약 불이 난다면 사람들은 크게 네 군데로 분산되는 것 같다.
그 중에 가장 많이 몰릴 만한 퇴로 두 곳에 병력을 집중했다.
나머지 한 곳은 어차피 배가 있는 곳이고, 또 하나는 우르크 방향이다.
상황종료 후에도 배를 타고 거슬러 올라가면 얼마든지 추적이 가능할 것 같았다.
도망친 인원수를 보고 결정해도 될 문제다.
“대기조는 적이 무기를 들지 않았을 경우, 살상은 하지 말고, 이동을 못하게만 막으면 됩니다. 저항이 심할 경우 필요하다면 사살도 허용합니다. 대신, 그만큼 자신에게 배정될 노예는 줄어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이게 최선일까? 이미 엎어진 물이다. 일단 쇠뿔부터 뽑고 나서 생각하자.’
이건 그저 내 시나리오였고, 계획은 계획일 뿐, 실제 상황은 의도대로 흐르지 않을 확률이 높다, 여차하면, 불화살로 신호탄을 쏘기로 했다. 그 때는 선박 방어조도 100명만 남기고 총공세에 합류해 그냥 다같이 다구리 치기로 했다.
‘저항이 무의미하다는 걸 알려줘야지.’
침투조가 가장 먼저 비밀통로라는 집 앞을 향해 이동했다. 한밤중이라 120명이나 되는 인원이 완전히 소리를 죽인 채 움직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병장기를 들고 있으니 더더욱 티가 났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개 짖는 소리였다.
‘페쇼탄은 어떻게 저 개들한테 안 들켰지?’
“일단 들킨 건 들킨 거고, 작전대로 강행한다.”
나는 수신호를 통해 원안대로 진행한다고 알렸다.
왕궁 위의 보초들이 분주하거나 말거나, 밀어부쳤다.
왜냐고? 생각보다 적군이 너무 적었다. 왕궁 위의 초병이 전부가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적이 화살로 쏘아댔지만, 방패로 충분히 막을 만했다.
“이제부터 속도가 생명이다. 최대한 빨리 끝내.”
모든 게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조용한 잠입은 개뿔, 한밤중이라 적들이 대체로 공포에 휩싸였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적들은 한 마디로 패닉이었다. 나는 포로를 앞세워 비밀통로라는 집으로 들어갔다. 왕궁을 둘러싸고 있는 집 중에 하나였고, 적이 쏘는 화살이 직접적으로 날아드는 그런 곳에 입구가 있었다.
“이게 비밀통로야? 그냥 대문이라고 해라.”
왕궁에 직접 난 대문이 아니라는 것뿐, 수비가 가장 집중된 문이라고 보는 게 맞았다.
이 왕궁은 굉장히 독특하게 출입구를 만들었다. 궁으로 들어가는 좁은 통로를 만드는 대신, 건물 밖에 다른 건물을 만들고, 땅굴(?)을 팠다. 그런데 인공적으로 만든 것 같진 않다. 자연상태로 있는 땅굴을 이용한 느낌이라고 할까? 왕궁 앞을 둘러싼 길은 해자 역할을 하고 있었고, 궁은 대문이 없었다.
전생에 중국 투르판을 여행 갔을 때였다.
고대에 지어졌다는 인공 지하수로 카나트를 보러 간 적이 있다.(주석1)
마치 그 수로를 보는 느낌이었다.
물이 없다는 것만 빼면, 거의 똑같았다.
나는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지만, 아빠 정도라면 고개를 숙여야할 만한 높이. 왠지 함정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거 왠지 함정 같지 않아요?”
“네, 왕자님, 안 들어가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솔직히 말해! 통로가 여기뿐이야? 잘 대답해.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일 수도 있으니까.”
나는 통역에게 어금니 꽉 깨물고 지금 내가 말하는 어조를 그대로 전달하라고 시켰다.
녀석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아직은 필요하니까 살려는 둔다만, 네가 그 어떤 공로도 세우지 않는다면, 그냥 죽은 목숨이라 생각해라. 자, 우리는 철수한다. 그냥 왕궁 벽으로 사다리 걸치고 올라가!”
나는 통로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냥 나왔다.
영화 300에서 나왔던 그 적군의 왕이 생각났다.
지금 이 문으로 들어가면 내가 딱 그 짝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가 통로에서 다시 나오는 사이 아르반드는 훌륭하게도 지붕을 모두 장악했다.
보아하니, 이 나라에 있는 병력은 정말로 저 위의 보초들이 전부다.
아니라면 아르반드가 저렇게 손쉽게 옥상을 점령할 수가 없다.
내가 출입구를 들어갔다가 나온 시간이 아무리 길게 잡아도 10여분을 채 넘기지 않았다.
자연 동굴의 입구를 보고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으니까.
저건 그냥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사다리 타고 건물 옥상을 올라간 거나 마찬가지였다.
“오마르 장군님, 지금 신호탄을 쏠 테니까, 모든 병사들에게 사람들을 가급적이면 죽이지 말고 최대한 생포하라고 해주세요.”
더 늦어지면 도시를 탈출하는 인원이 걷잡을 수 없이 많아질 것 같았다.
일일이 추격해서 잡는다는 것도 일이고, 다음 두 도시를 공략하려면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 도시로 누군가가 먼저 가서 방어를 철저하게 하거나, 도시를 비우고 도망가면 그만한 낭패도 없었다.
“침투조는 왕궁 벽을 통해 안으로 진입한다. 아르반드, 페쇼탄 엄호해라.”
쇠뇌병들이 엄호사격을 하는 동안 침투조가 사다리를 벽에 걸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적들이 하나 둘씩 화살에 맞아 쓰러질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아주 여러가지 의미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사기당하는 거다.
‘이 새끼가 사기를 쳐?!’
상대를 기만할 때는 들켰을 때 그만한 뒷감당을 할 자신이 있어야 한다.
놈이 뒷감당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잠시 후, 아군이 더 이상 쇠뇌를 쏘지 못하도록 막았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적들이 내 옆에 있는 포로를 보더니 더 이상의 공격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 도대체 뭐냐?”
녀석은 통역의 말을 듣고도 대답을 안했다.
“왕자님 말씀이 안 들려?”
페쇼탄이 칼을 목에 들이밀고 위협하자, 적군들이 모두 페쇼탄에게 겨눴다.
쇠뇌병들도 적들에게 다시 쇠뇌를 겨눴다.
“잠깐! 냅둬라. 대충 각 나오는 것 같지 않냐?”
“활 거두라고 그래. 저항하지 않으면 모두 살려준다고. 딴 소리하면 저 안에 있는 사람은 너와 함께 다 죽는 거야.”
놈은 실실 쪼개기만 했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놈을 죽여 괜히 적을 자극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 사이에 이미 적병 숫자에 버금가는 병력이 왕궁의 지붕(?) 위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통역, 네가 말해. 녀석을 살리고 싶으면, 활을 내리라고.”
역시, 놈은 인질로서 꽤나 가치가 있는 모양이었다.
모두가 순순히 활을 내려놨다.
사실 적들은 이미 자포자기 상태에 가까웠다.
고작 서른 명 남짓 되는 병력으로 수십배에 달하는 우리를 이길 가망은 없었다.
아니 저항조차도 무의미하다고 보는 게 맞았다.
“페쇼탄, 너는 저 집들을 다 들어가서 혹시 출입구가 더 없는지 확인해 놔. 어딘가 비밀 통로가 더 있을 거야.”
페쇼탄이 암살조(?)들을 이끌고 다른 출입구를 찾는 동안 침투조는 하나둘씩 왕궁 지붕 위로 올라갔다.
“내부로 들어가서, 대문을 찾아! 나는 이놈과 그리로 들어가겠다.”
그리고, 정말 웃기게도 우리가 처음 갔던 그 집에서 아군 병사 네 명이 적 초병 한 명과 함께 걸어 나왔다.
“네 놈이 어떤 놈인지 점점 더 궁금해지는구나”
대문을 통해서 왕궁 안으로 들어갔다.
우르크 왕궁에 비하면, 참 소박해 보였다.
총 건평은 어느정도 될까?
건물 외곽으로 나가 봐야 알겠지만, 밤이라 그런지 여러모로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왕궁의 중앙홀 같은 곳으로 들어서자 방들이 여러 개 나왔다.
“너는 페쇼탄을 불러오고, 아르반드에게는 지붕에 쇠뇌병 한 명씩만 남기고 모두 내려와서 페쇼탄이 찾아 놓은 통로를 모두 막아 두라고 해.”
나는 옆에 있던 근위병(여전사) 한 명에게 내 명령을 전달하도록 시켰다.
잠시 후 페쇼탄이 나를 찾아왔다.
“탈출 통로가 더 없는지 샅샅이 뒤지고, 잡은 사람들은 모두 이 곳에 데려와”
삼십 분쯤 지나자 궁 안 곳곳에서 숨어 있던 사람들이 속속 잡혀왔다.
그리고 나는 놈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건 내가 아니라도 누구나 알 법했다.
참 독특한 얼굴이었다.
‘편두라는 게 저런 건가?’
이마가 뒤로 밀린 듯한 외관의 여성이 내 앞에 나타났다.
묘한 색기가 흘러나왔다.
도도함이 기묘한 외모와 어우러져 방안에 있는 모든 남자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내가 어린 아이라는 게 다행인 걸까? 신라왕족도 한 때 편두라고 했는데, 이들하고 무슨 관계지?’
“흠··· 자, 말해 보실까? 이 사람은 누구지?”
나는 한 대 쥐어 패 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놈에게 물었다.
카나트 우물 구조 도식화
출처 : 아틀라스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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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고나바드 카나트 우물 출입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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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투루판 카나트 우물 입구 사진
출처 : 아틀라스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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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소설 속 배경인 중동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본문에 첨부된 그런 카나트 우물이 고대부터 다수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그 연대가 기원전 4000년까지 올라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이런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정도로만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많이 부족한 글이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이 있어 열심히 쓰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선작과 추천은 글 쓰는데 정말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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