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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코트
작품등록일 :
2020.07.19 22:28
최근연재일 :
2020.11.20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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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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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DUMMY

아래 글은 소설 ‘거미입니다만, 문제라도?’를 모티브로 쓴 습작임을 밝힙니다.


============



거미를 보거든, 죽이지 말고 지나쳐라.

일견 우스워 보이는 이 나라의 격언 뒤에는 재미있는 기록이 있다.


7세기 말 여러 사료에서 등장하는, 홀로 도시를 궤멸시키고 병자를 치료해주었다는 거미에 대한 이야기.


당대의 사료 중 절대 다수가 그를 단순한 전설로 치부하기에는 어려운 것이었다.


기록은 렌 왕국의 가도에서 시작된다.


1.


“쏴라!”


팔미온 상단과 그 길을 가로막은 검은 거미는 사람의 허리높이만큼 컸고, 양 앞발이 낫처럼 날카로웠다.

새벽 공기를 가르고 날아간 화살이 그 외갑을 맞추고는 튕겨나갔다.


“뭐...?”


“저거 화살을 튕겨내는데요, 상단주님?”


“그렇다고 거미 하나 때문에 상로를 변경할 수도 없지 않나!”


그리 말한 상단주는 인부 두 명을 시켜 거미를 치우라 명령했다.

장정들은 다가가려다가, 다가오는 그들을 따라 움직이는 거미의 눈길에 다가서지는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뭐 해! 어서 치워!”


상단주의 재촉을 차마 거부하지 못하고 다가가 장대로 쿡 찌른 인부.

그는 다음 순간 목이 날아갔다.


그를 기점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거미가 수십 명을 몰살시키기까지 걸린 시간은 수 초 남짓.


이후 숲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그의 모습은 후에 도착한 조사단이 발견한 영상 기록 저장구에 포착되어, 위험종 3급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2.


그로부터 이틀 후, 덫에 걸린 토끼를 굽던 양치기의 앞에 나타난 거미는 얌전히 토끼만 먹고 사라졌다고 한다.


다음은 양치기의 증언 중 일부다.


“웃긴 얘기지만, 마치 사람 같았어요. 다가와서는 제가 굽고 있던 토끼를 손?으로 가리키더니 몸체를 갸웃거리는 거에요. 먹어도 되냐는 듯이.

제가 고개를 끄덕이니까 뭐랄까... 맛있게 먹고 갔어요.”


3.


사흘이 흐른 5월의 정오, 하멜른이 궤멸되었다.


4.


“그게 무슨 소린가?”


“없어졌다니까요? 그냥 도시 하나가 사라졌어요! 하룻밤 만에!”


“농담... 아니지?”


“지금 난리 났어요! 교회는 막 악마의 소행이라 그러고, 소문에는...”


“일단 가세!”


하멜른 옆 도시인 란드레의 시장, 산초가 이 때 밖에 나오지 않았다면,


“어? 저게 뭐죠?”


그래서 거미와 그를 겨냥하는 경비대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거미...?”


그래서 순간적인 판단과 행동이 아주 잠깐이라도 늦었다면,


“모두 사격 중지-!!”


거미를 향해 날아간 화살은 하나가 아니었을 것이고,


핑-!


빗나간 화살이 땅바닥에 박히는 행운이 행운으로 남는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


“방금 어떤 새끼야!!”


경비대장이 자신의 부하들을 다그치는 사이, 시장 산초는 거미를 살폈다.


여덟 개의 붉은 눈은 사람과 다르게 눈동자가 없어, 감정을 읽기 힘들었으나 산초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하룻밤 사이 사라진 하멜른과 저 거미 사이에,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그런 확신이.


그리고 그 순간, 거미가 도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모두! 아무도 발사하지 말라!”


“왜 그러십니까?”


“하멜른이 어제 궤멸되었다. 그리고 오늘 정체모를 거미가 우리 성 앞에 있지.”


“너무 넘겨짚은 거 아닙니까? 만약...”


“만약, 저 거미가 하멜른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든 장본인이라면. 만약, 저것이 원하는 게 우리를 모두 죽여버리는 게 아니라면!”

“자네가 공격했다가 저것이 빡치면 감당할 수 있나?”


경비대장은 이글거리는 시장의 기세에 주춤거렸으나,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의무를 말했다.


“그럼 저것이 도시에 들어와 난동을 피우면 어떡합니까?”


“저놈이 하멜른의 주범이라면 어차피 막을 수 없을 것이고, 아니라면 자네가 죽일 수 있지 않을까?”


“저것이 시민을 습격한다면, 저는 주저 앉고 검을 뽑을 것입니다.”


“그때는 나도 말리지 않겠네.”


그 사이 열린 성문으로 거미는 들어왔다.

긴장한 표정으로 검에 손을 올린 경비대장이 따르는 것에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그것은 시장의 꼬치구이 앞으로 걸어가 멈췄다.


내밀어지는 은화.


파들거리던 불쌍한 상인은 거미가 돈을 내미는 광경에 반쯤 정신을 놓은 채 꼬치를 주었다.


그러자 거미는 꼬치를 우물거리며 도시를 나섰다.


5.


전염병이 돌았다.


아이, 어른, 남녀 구분할 것 없이 병자와 접촉한 이는 모조리 추방되어, 산짐승과 추위에 노출된 채로 황야를 배회하였다.


도시들은 문을 걸어잠그고 병자들을 들여보내지 않았다.


그들은 한데 모여 움막을 짓고 산딸기와 칡뿌리 등을 캐서 먹었다. 허나 배고픔은 해결되지 않았고, 끝내 절망의 벼랑에 몰린 자들이 인륜을 저버리려던 무렵,


거미를 만났다.


병자들은 그를 공격하였으나 거미는 그들을 죽이지도, 잡아먹지도 않은 채 괴이하게도 병자들의 몸을 구석구석 씻기고, 주변 들짐승들을 찾아와 특별한 요리법으로 구워 먹였다.


그들의 증언에 따르면 거미는 ‘난생 처음 보는 수준의’ ‘굉장한’ 마법을 사용하였는데, 그 수준이 워낙 섬세하여 썩은 살을 도려내면서도 환자는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거미에 대한 소문은 널리 퍼져 온갖 전국 각지에서 병자들이 모여들었다. 전염병에 걸리지 않은 자들마저도 기적을 접하기 위해 걸음하며 끝끝내 몸을 사리던 귀족들마저 마치 관광을 오듯이 그를 구경하러 오자, 거미는 홀연히 사라졌다.


이것이 그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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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미 20.11.20 15 0 6쪽
6 크툴루의 강림 20.08.02 20 0 12쪽
5 일본인과 한국인/ 정수기 20.07.27 22 0 7쪽
4 좌초 20.07.26 24 0 7쪽
3 돌아온 아인슈타인 20.07.21 25 0 12쪽
2 X +2 20.07.20 37 0 19쪽
1 헌터의 하루 20.07.19 51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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