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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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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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8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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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의 탑

DUMMY

할버드를 맸다. 도끼창이라고도 불리지만 부를 때에 도끼랑 햇갈릴 수도 있으니 구분짓는 편이 좋다.


할버드와 교차하여 창도 맸다. 할버드의 끝에도 창날이 붙어있지만, 단순 찌르기만을 생각했을 경우 창이 낫다.


가슴에는 도끼를 찼다. 갑주를 입지 않은 나의 심장을 보호해주는 역할이기도 하고, 여차할 때에는 던지기도 찍기도 가능해서 유용하다.


대거는 여섯 개. 많을수록 좋겠지만 이보다 많으면 걸리적거린다.


검은 녹슨 검보다 가볍고 휘두르기 편한 것 두 개를 새로 장만했다. 녹슨 검의 위치는 자연스럽게 허리에서 등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 밖에도 둔기나 대검에 관해서도 고려해봤으나, 남아있던 최소한의 양심이 가로막았다.



"더는 없나?"


고개를 끄덕였다.


"흠···"


단테는 나의 차림새를 훑어보더니 길을 가다 팔목보호대를 집어들었다.



"이것도 차라."

"아무래도 이 이상 받기는···"

"네가 죽는 것보단 낫다. 목숨이 달린 일이다. 사양하지 마라."

"넵···"


그가 건네준 팔목보호대를 착용했다. 답답하긴 하지만 착용감이 나쁘지는 않다. 가죽과 헝겊의 사이로 얇은 금속판이 느껴졌다.


이걸로 손목이 베이는 참사는 벌어지지 않겠지.


그 밖에도 이것저것 챙겨주는 단테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무게가 더해질수록 꺾여가는 무릎을 바로세웠다.



"어디보자, 그리고 포션에다가 초급 마법서도 필요할 테고, 갈아입을 옷이랑 칫솔이랑 또···"

"저어···?"

"붕대랑 소독약이랑 밧줄이랑···"

"저기요? 단테 씨?"


분명 안에 든 사람은 남자일 텐데 모성애가 우러나오는 중얼거림을 끊기 위해서는 그의 갑주를 툭툭 쳐야만 했다.



"앗."

"이제 충분합니다만···"

"그런가. 미안하군, 누군가를 챙겨주는 건 오랜만이어서 몰두해버렸다."


누군가를 챙겨주는 일에 몰두라는 표현을 쓰는 그의 말은 내가 진정한 영웅의 곁에 서있음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현상금이 걸린 사냥감이 진정한 영웅의 곁에서 이것저것 챙겨지는 상황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끄는지에 대해서도 체감했다.



"단테 님께서 무슨 일이시지?"

"저 남자는 정체가 뭐야?"

"저거 범죄자잖아!"

"어떡하지? 신고할까?"

"기다려봐. 단테 님께서도 생각이 있으실 거야."


수근수근 쑥덕쑥덕 들려오는 말소리를 무심하게 흘려보낼 능력을 가지지 못한 나는 무덤덤한 단테가 부러웠다.


그에게 있어서 이런 일은 익숙한 거겠지.


익숙하지 않은 나를 배려해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기야 하지만 무기들부터 시작해서 보호대에 포션에 초급 마법서에 뭐시기저시기까지 받아버린 내가 더를 바라는 건 배은망덕한 짓이다.



"그럼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지."


단테는 구매한 물건들의 값을 지불하고 알텐하르크에서 사르티아로 향하는 마차에 올라타 대화를 진행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침을 삼켰다.


조만간 입을 열어 그와 정보를 나누었다.


내가 몰랐던 사실을 알게되는 것보다 대부분 단테가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나로서는 얻은게 별로 없었다.


영웅 나름의 배려일 테니 미심쩍게 여기지는 않기로 했다.


대화를 끝마치며 사르티아의 지도 위로 손가락을 올렸다.



"이곳이 '병기'의 저장고입니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은 골목길에 있지만 숨겨놓지는 않았으니 괜찮을 겁니다. 다만···"

"무슨 일이지?"

"백화라는 여성이 지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잠깐의 침묵.


지나가는 돌부리를 넘어선 마차가 크게 흔들렸다.



"그녀가 어째서···?"


의아함이 섞인 단테의 독백이 갑주의 틈새로 새어나왔다.


단테는 백화를 알고 있는 건가.


이 세계의 손에 꼽는 강자들일 테니 서로 알고 있어도 이상할 건 없겠지.


뒤에 붙은 어째서가 마음에 걸리지만 두 사람의 관계에서 나는 하루하루 덧없이 살아가는 개미 같은 존재이니 관심을 두어서는 안 된다.



"일의 진상은 대강 알겠다. 협력에 감사하지."

"뭘요, 저야말로 영웅을 도울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철그럭.



단테의 목이 돌아갔다. 마부를 향하고, 그에게 말했다.



"마부여, 잠시 멈춰주시오."

"알겠습니다."


그의 행동을 짐작하지 못한 나는 멍하니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너를 각성의 탑으로 보내주마."

"예?"


덥석.



실제로 소리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런 소리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움직임으로 단테는 나를 집어들었다.


새끼를 옮기는 고양이처럼.


어미에게 목덜미를 물려서 옮겨지는 아기 고양이의 기분을 실컷 맛보며 마차에서 내려지자, 단테가 나를 껴안았다.



"에? 예? 이게 무슨?"

"무운을 빌지."


그렇게 말하며 단테는 발을 내디뎠다.



쿵.



땅이 흔들렸다.


마차가 들썩였다.


깜짝 놀란 말들이 쏜살같이 달려 도망쳤다.


흙먼지가 폭풍처럼 날아올랐다.


단테의 발을 받아들인 대지에는 균열이 생겨났다.



"크아아아아악!!!"


단테가 짐승 같은 기합을 내뱉으며 팔을 휘둘렀다.


물론, 그 팔에는 내가 붙잡혀있었다.


세상이 돌아갔다.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되었다.



"이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하늘이 되었던 땅이 나의 시야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깨달았다.



"미친."


하늘을 날았다.


이 세상에는 신이 있고, 용이 있고, 용사도 마왕도. 성검도 마검도 있다. 마법도 있고, 기(氣)라고 불리는 특이한 힘도 있다.


그러나 나의 지난 생을 되돌아보면 그러한 것들과는 연관없는 삶을 살아왔다.


나의 삶에는 마법도, 신도, 용사도, 마검도, 마물도 없었다.


접점이 있었다면 가끔 보이는 음유시인들의 영웅찬가나 도서관에서 비싼 돈을 지불하고 빌린 소설책이 전부였다.


노래나 소설에서는 용을 쓰러뜨리고 왕자를 구한 공주의 이야기나 용사를 사랑한 마왕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그런 소설을 한두 번 정도 읽어본 나로서는 지금 나의 인생을 비유하자면 소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삶을 소설이라고 한다면, 단테라는 주인공은 나라는 조연을 하늘까지 날려보내는.


개연성 밥 말아먹은 영웅이었다.


무기를 사준 것도, 포션이나 마법서를 사준 것도 감사하게 생각하고는 있다.


하지만 사람을 구름들의 사이로 던져놓은 시점에서 아웃이다.


명실상부한 살인이다.


단련되지 않은 일반인을 이렇게 높은 하늘로 던지면 급격한 기압 차이와 산소부족으로 빈사상태에 이른다.


숨이 막혔다.


혈관의 맥박이 온몸을 찢어놓았다.


두개골이 갈라지는 통증이 정신을 뒤흔든다.


목소리조차 나오질 않는다.



'죽었다···'


눈앞에서 꽃잎들이 아른거렸다.


이번만큼 허무한 죽음은 없었다.


꽃잎 하나가 일렁였다.


정신을 잃었다.



...



쨍그랑.



접시보다 많은 질량을 지니고 있던 유리가 깨지는 소리.



"꺄아악?!"


듣기만 해도 머리를 감싸고 몸을 웅크리며 질렀을 거라고 예상되는 여자의 비명소리.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 보였다.



"쿨럭···!"


날카로운 유리조각들이 등을 찌르고 있었다. 몸의 무게에 의해 점점 박혀들어간다.

그나마 녹슨 검이 있어서 망정이지 이마저도 없었다면 즉사였을 거다.


찢어진 살을 파고드는 유리조각들이 유발하는 고통을 설명할 시간도 없이.


여성의 절규가 들려왔다.



"단테!!! 그 정신나간 망나니 기사!!! 만나면 죽여버리겠어!!!"


이제는 고막까지 찢으려 드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통증이 사라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감각이 들었다.



"하··· 그래, 던져진 네가 무슨 잘못이겠니··· 이제 움직여봐."


손가락을 움직였다. 이어서 손목과 팔꿈치를 접으며 몸을 지탱하고, 발목과 무릎을 펴서 일어났다.


까드드 하고 짓밟힌 유리조각들이 무게로부터 벗어나고자 안달이었다.


빈사상태였던 몸이 단숨에 완쾌했다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여성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티없는 새하얀 옷감에 푸른빛의 선을 새겨넣은 신관복을 입고 있는 여성이 있을 줄로만 알고 있던 나는 연달아 놀랐다.


단테가 나를 집어던진 것까지 합치면 3연속 놀람이었다.


뭐든 세 번하면 익숙해진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은 놀라는 것에도 적용되는 모양이었다.


푸른빛이 있을 거라는 예상은 맞았다. 하지만 그 외의 모든 예상은 틀렸다. 오직 푸른빛만이 있었다.


푸른색 불꽃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며 나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때부터 생각하기를 관두었다.



"어서오세요. 비선별인원이여. 이곳은 각성의 탑 최상층. 시련을 극복한 그대에게 힘을 부여하겠어요."


그리고 3초 뒤.



"는 개뿔! 시련도 건너뛰고 창문은 창문대로 부숴놓고! 비선별인원? 엿이나 먹으라지! 불법침입자!"


그리고 다시 3초 뒤.



"그치만 이건 단테에게 인정받았다는 뜻이기도 하니 인정해줘도 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3초 뒤.



"에라 모르겠다! 본인은 영령 하레니아. 그대의 자격을 인정하고 가호를 부여하겠어요."


화를 내다가 차분해졌다가 화를 내고 중얼거리고는 내팽개친 하레니아를 멍하니 바라보며 단테가 해주었던 설명을 떠올렸다.


탑이란 힘을 지닌 신이나 영물, 영령이 강한 미련(未練)을 가지면 그것이 실체를 이루어 대신하여 풀어줄 인물이라 판단한 자에게 가호를 부여한다고.


그리고 영령은 정신상태가 불안정하니 심기를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고.


정신상태가 불안정하다는 설명이 이보다 와닿을 수는 없었다.



"자, 이리와서 손을 내밀어."


하레니아의 지시대로 두 손을 모아 푸른 불꽃을 올렸다.



"눈을 감아봐."


눈을 감았다.



"떠오르는 문장을 읊어봐."


떠오르는 문장.



"배고프다."

"엥?"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눈꺼풀을 열어서 의아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하레니아를 바라보았다.



"어, 이, 이게 아닌데? 잠시만 기다려봐. 뭔가 문제가 있을 거야. 나한테 있는게 아니고 너한테. 다시 눈을 감아줄래? 금방 찾을 테니까!"


눈을 감았다.


자욱한 주마등이 역행하고 있었다.


나의 삶을 거슬러올라가고 있었다.



"찾았다!"


과거를 샅샅이 들춰진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얼굴이 구겨질 정도로 비위가 썩어들어갔다.



"후우···"


심호흡으로 심정을 다스리고 처음으로 말을 건넸다.



"원하던 문제는 찾았어?"

"응, 너는 너에게 다가오는 힘을 의식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너의 영혼은 필사적으로 '평범함'을 추구하고 있어."


가슴이 짓눌리는 감각.


정곡을 찔렸다는 표현은 이런 감각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서 좋을게 뭐야? 자기합리화에 익숙해지는거?"

"···닥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너는 먼저 자신의 과거와 마주할 필요가 있겠네."


입을 열었다.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마주하려 노력했다고. 나도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고. 맞서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고. 그런데도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내 의지는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어떤 입발림도 그녀의 귀에 닿지 못했다.



"잘 다녀와."


목소리가 울렸다.


몸이 기울었다.


이성의 끈을 놓고, 정신이 빠져나가는 느낌은 익숙했다.


하루에 두 번씩이나 기절하는 것도.


낯설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



눈을 떴다.


그곳에는 익숙한 천장이 있었다.


수년간 올려다보지 못했던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냈다.



'집이다.'


아래에서는 펄펄 끓는 주전자의 소리. 야채를 써는 식칼의 소리. 이제는 서서히 잊혀져가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말소리가.


한데 뒤섞여,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손을 뻗었다.


나의 것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작은 손이 보였다.



'뭐지···?'


나의 손인 건 맞다. 하지만 이 손은 어린 손이었다.


어린 시절의 내가 가지고 있던 작은 손.



"리시스!"


믿기지 않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새가 지저귀는듯한.


다시는 듣지 못하리라 여기며 망각에게 떠넘겼던 목소리였다.



"엘, 리스···?"


작가의말

오늘 드디어 글쓰면서 해보고 싶은 100가지 중 ‘주인공이 하늘을 나는 모습이 보고 싶다.’를 완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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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불사를 베어내는 검-3 21.05.31 52 0 10쪽
120 불사를 베어내는 검-2 21.05.08 64 0 11쪽
119 불사를 베어내는 검-1 21.05.06 49 0 11쪽
118 녹빛의 검은 백화(白花)를 피워낸다. 21.05.04 62 0 12쪽
117 재생 21.04.28 85 0 12쪽
116 이뤄주지 못할 소원 21.04.27 98 0 11쪽
115 정보상과 의사 21.04.25 74 0 17쪽
114 상실 21.04.24 62 0 9쪽
113 고정부(固定附) 21.04.24 63 0 11쪽
112 낙마 21.04.14 61 1 13쪽
111 구역질 21.04.12 79 0 11쪽
110 발자국 21.04.09 108 1 12쪽
109 발을 들이다 21.04.07 93 0 11쪽
108 아침에는 가재 21.04.03 103 1 11쪽
107 별들에게 호소하는 밤 21.03.27 73 1 13쪽
106 지우지 못한 단서 21.03.24 71 1 11쪽
105 붙잡히다 21.03.23 76 1 11쪽
104 주맥시(呪脈視) 21.03.22 80 1 11쪽
103 잭이라는 화제 21.03.19 80 1 12쪽
102 믿음, 극복, 퍼져나가라 21.03.17 67 1 13쪽
101 성당, 시체, 전투 21.03.13 65 1 24쪽
100 외전-사냥꾼들의 밤 21.03.12 61 0 22쪽
99 간단한 수수께끼 21.03.03 65 0 12쪽
98 이동계획 +1 21.02.18 79 1 11쪽
97 쥐구멍에서 +1 21.02.16 72 0 13쪽
96 촉수 21.02.08 99 1 11쪽
95 협력제안 21.02.08 117 0 12쪽
94 탄로 21.02.06 7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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