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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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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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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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천재 마법사

DUMMY

신기하게도, 나는 당황하지 못했다.

마주보고 이야기했던 세실이 죽더라도, 슬퍼하는 것은 할 수 있어도 놀라지는 못할 것만 같았다.

갑작스런 상황일수록 냉정해져갔다.

놀란다는 개념이 결여되버린 걸까.

낯익게만 다가온다.

틀린듯하면서도 부정하지 못할 침착함이 심호흡을 유도했다.

손끝은 촉각을 감지하기도 전에 대거와 검을 쥐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성사시켰다.


“크으윽···!”


레이든이 팔을 치켜들었다. 빛이 흘러나오는 손끝에서 희미한 선들이 그려졌다.


“옴, 렐, 엑···!”


새하얗던 선들이 보랏빛으로 변색되어 검은 구체를 형성했다.

그가 팔을 뻗은 방향을 향해 돌아서며 검을 휘둘렀다.

어떠한 것도 베어내지 못했다. 마법은 날아오지 않았다. 무안하게 화살까지도 보이지 않았다. 나를 향해 날아오는 공격은 없었다.

그곳에는 금발의 남자가 서있었다.

비슷한 외모에 무심코 착각할 뻔했으나, 인간의 것과는 다른 복장과 눈동자의 색, 귀의 생김새 등이 분위기를 달리 하고 있었다.

경매간부 구르게스가 아니었다. 처음 보는 남자였다.

공기를 움켜쥐는듯한 손동작을 따라 하얀 마력이 넘실거렸다.


“찌꺼기도 못 지우는 찌끄레기들.”


서릿발이 깃든 냉담한 시선을 마주치자 목 뒤가 서늘했다.


-파캉!


레이든의 손에 붙어있던 마법진이 선들을 흩뿌리며 사라졌다.

그는 감기려는 두 눈꺼풀을 끝까지 붙들었으나, 확실한 끝이 있었다.

마지막까지 버티던 레이든까지 의식을 잃어버렸다.

슬롯은, 잘 모르겠다. 쓰고 있던 후드에 가려져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팔다리로 보아 그 또한 질식으로 정신을 잃었으리라.

이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저 남자와 담판을 짓는 수밖에 없는 건가.

대거를 던져도 닿지 않을 거리에서 세 명의 마도사들을 마법으로 띄웠다.

그러고선 나만을 남겨두었다.

어째서, 라고는 묻지 않겠다. 내가 가만히 있는 이상 저 엘프 마법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만일이라는 사태를 막기 위해, 몸을 옆으로 세웠다. 엘프에게 검을, 시야의 사각에 대거를 겨누었다.


“대화를, 하고 싶으신 겁니까?”

“하등 주제에 질문하지마라.”


입을 다물었다. 부정할 수 없는 표현이었기에 반박하지 못했다. 설령 가능했다고 하더라도 해서는 안 됐다. 저 자의 손가락 하나하나에 지키고 싶은 생명이 하나씩 들려있으니.


“네 녀석들이 범인이라는 건 알고 있다.”


범인. 그것은 평범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아닐 것이다. 상대의 종족은 엘프다. 그들의 터전인 숲을 불태운 것이 커다란 노여움을 산 걸지도 모른다.

둘러대는 것도, 변명하는 것도, 용서를 구하는 것도 통하지 않을 테지.

내가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못한다. 해결의 열쇠는 나의 손에 주어지지 않았다. 내가 만든 사건이 아니다. 나는 휘말렸을 뿐이다.

이번에도.

이번에도 말이다.

이번에도 원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버렸다.

검을 내동댕이치려다 말았다.

심호흡으로 서럽다는 잡생각을 잠재웠다.

등을 토닥여주었던 세실의 손길을 떠올렸다.

전혀 상관없는 타인을 위해 위기에 뛰어든 레이든과, 내가 만든 투박한 스튜를 먹어준 슬롯까지.

짧은 인연이다. 하지만 소중한 인연이기도 하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현명하지 못한 판단이라고 욕을 먹더라도 이상할 것 없지만서도.

나는 그들은 친구라고 여기기로 했다.


“무례를 범해서 죄송합니다. 무언가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군요. 부디, 이야기를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내뱉으려던 한 마디를 목구멍으로 구겨넣었다.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끝내 목숨을 걸지 않았다.

그건 무서워서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영웅적 희생은 나에게 올바르지 않았다.


“아루아는 어딨지?”


엇갈리는 질문. 시간은 서로 달랐다. 내가 먼저 말을 마쳤고, 이윽고 들려온 것이 그의 질문이었다.

그는 나의 질문을 듣지 않았다. 직설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밀어붙였다.

견고함이라는 벽에 부딪힌 나는 힘겨워하기보다 당혹감을 감추기 위해 태연하게 연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뜬금없이 튀어나온 아루아의 이름은 그마저 흐트러뜨렸다.


“당신이 어떻게···?”

“짚이는 바가 있군.”


무슨 말을 해야할까. 말이 헷갈렸다. 입이 어떠한 형태를 자아내는지조차 느낄 수가 없었다.

혀가 굳었다.

놓쳐버린 검과 대거가 사뿐히 흙바닥 위로 떨어졌다.

이 사람에게 죽는다면 서럽도록 억울하겠지.


“그들을 풀어주세요···!”

“숨통은 터놓았다. 그저 답해라.”

“뭐든지 할게요, 아루아를 위해서라면···!”


남자의 얼굴에 수만가지의 의문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내가 짊어진 것들과 견주더라도 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감정들이 그의 들썩인 어깨로부터 전해져왔다.

나는 바보가 되었다. 그가 아루아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도 알아내지 못한 채로 반가워했다.

듣지 못한 이름을 지닌 남자가 아루아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저항하기를 택하는 순간 세 명이 죽어나간다. 나의 그릇된 선택으로 죽어버리는 사람들의 숫자를 더는 늘리고 싶지 않았다. 의도치 않았다고 하더라도 살인은 살인이다.

의도하지 않은 간접적인 살인은 나에게 자기합리화를 강요하고, 몹쓸 인간으로 변질시켜간다.

적어도, 아루아를 구해내기 전까지는 그녀의 웃음을 건네받을 수 있는 도덕성을 남겨놓고 싶었다. 원망받더라도 원망하지 않는 최소한을 간직하고 싶었다.


-털썩


허공에 붙들려있던 세실과 레이든, 슬롯이 떨어졌다.

작게 오르내리는 가슴을 확인했다.

숨은 쉬고 있다. 조만간 깨어나서 나를 곤란하게 만들겠지.

제발 그래주기를 바란다.


“그 닭살 돋는 목숨구걸은 연기인가?”


닭살 돋는 목숨구걸. 오해지만, 그에게는 타당한 추측이다. 깊은 숲속에서 홀로 사는 엘프의 이름을 한낮 인간이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테니.

날뛰던 감정들을 하나씩 붙잡아 침착의 항아리에 가둬두었다. 물론 그런 게 있을 리는 없으나, 없다고 생각하기보단 있다고 생각하는 게 편리했다.

나는 이제부터 의심을 받을 것이다.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는 알지 못한다.

날아오는 질문에 최선의 답을 내놓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다시 한 번 묻지. 하늘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맹인 엘프 소녀는 어딨지?”

“모릅니다. 저는 그녀를 알고 있지만, 그녀가 어딨는지는 모릅니다. 제가 숲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불타고 있었습니다.”


이게 과연 맞는 답일까.

옳고 그름을 판별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시간제한이었다.


“···많이 묻지는 않겠다. 아루아가 어떤 아이인지, 그것만 말해라. 틀린다면, 그때는 알아서 하도록.”


침을 삼켰다.

나의 목숨구걸에 못지않게 닭살돋는 질문이 나의 운명을 쥐고 있었다.

과거를 회상했다.

주위에는 색색의 꽃들이 한가득 피어있고, 새의 청아한 지저귐이 울려퍼지는. 아름답다는 감상을 품는 것이 당연한 나머지 잊혀지질 않는 호수에서.

아루아는 칼끝으로 목을 찌르고 있었다.

작고 붉은 한 방울이 차가운 날을 따라 흐른 순간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었던 과거.

나이프를 손에 쥔 그녀의 행동은 익숙하고 또 자연스러워서, 무엇이 이 소녀를 슬프게 만들었는지를 고민케 만들고는 했다.

내가 의식을 잃었다 낯선 천장을 바라보며 깨어났을 때에는 사흘밤낮 가리지 않고 간병해주었고, 그럼에도 요리솜씨가 좋아서 피로한 몸임에도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주었다.

책장에 꽂혀있던 책들의 제목은 하나같이 모험과 영웅으로 들어차있었고, 고작 하루를 보살펴졌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싫어했던 그녀는.

잊으려고도, 포기하려고도 했던 그녀는.

소중한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처음에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어느샌가 나의 마지막이 되어있었다.


“이걸로, 끝입니다···”


구구절절하게 늘어놓은 설명은 지루할 새도 없이, 남자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 아이임은 틀림없군. 아루아의 책장은 창문에서 보이지 않아. 즉, 너는 오두막 안에 들어가본 거겠지.”


그렇다면 경우의 수는 두 가지. 내가 그녀를 납치한 장본인이거나, 그녀에게 구원받은 찌질이거나.

남자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내가 둘 중 어디에 속하는지는 따지지 않았다.

납치했다면 뇌를 열어서 끄집어내면 그만, 찌질이라면 부려먹으면 그만이라고. 그는 말했다.

살벌함에 몸을 떨며, 나는 아루아에 대한 정보를 은폐한 것이 정녕 잘한 일이었는지 적극적으로 검토했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시간이란 나의 생각에 따라 느려지고 빨라지는게 아니었다. 느려진다거나 빨라진다면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일 뿐이니까.


“쿨럭···! 케헥···!”


레이든이 괴로운 숨을 토해내며 벌떡 일어났다.

예상보다 빠른 기상이었다.

무사히 살아줘서 기쁘기 그지없지만, 현재는 제쳐둬야 할 사항이었다.


“외람됩니다만, 당신은 누구십니까?”


마법진이 존재하지 않는 기묘한 마법을 거둔 남자에게 물었다. 그는 괜스레 흙도 묻지 않은 옷소매를 툭툭 털어냈다.


“변변찮은 마법하나 구사 못하는 떨거지 제자의 보호자다. 그리고 천재 마법사다.”

“그게 무슨···”

“쉽게 설명해주지, 아루아의 아버지(대체)다. ···그리고 천재 마법사지.”


말을 하면서 괄호열고랑 괄호닫고를 말하는 인간은. 아니지, 엘프는 처음으로 봤다.

분위기와 맞지 않는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의 이름을 물었다.

예상외로 깔끔한 답이 돌아왔다.


“엘무리아스. 보다시피 천재 마법사다.”


‘너는?’하고 묻는 그의 시선과 턱짓에 나 또한 이름을 댔다.


"리시스입니다."

“리시안셔스인가.”

“뭐··· 그렇죠···”


리시안셔스. 부모님이 내 이름을 지을 때에 참고했던 꽃의 이름이었다.


“아루아가 좋아하는 꽃이다.”

“아···”

“이러고 있을 시간은 없다. 움직여라. 우선 마법부터 배워둬.”

“예···?”


엘무리아스가 대담한 걸음으로 뚜벅뚜벅 다가왔다.


“일어나라 꼬맹이.”


그의 손바닥에서 하얀빛이 맴돌더니 동그란 실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퍽!


누워있던 슬롯의 낭심으로 발사했다.


“끄아아악?!”


기절한척 하고 있던 그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일어나라 계집.”


이어서 세실에게도 발사하려 했으나, 레이든이 뛰어들어 막았다.


“다, 당신 누구야!”

“천재 마법사 엘무리아스다. 간다. 따라와라. 반항은 용서치 않는다.”


하얀빛을 거두고 막무가내로 나아가는 엘무리아스를 멍하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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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고정부(固定附) 21.04.24 63 0 11쪽
112 낙마 21.04.14 61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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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붙잡히다 21.03.23 76 1 11쪽
104 주맥시(呪脈視) 21.03.22 80 1 11쪽
103 잭이라는 화제 21.03.19 80 1 12쪽
102 믿음, 극복, 퍼져나가라 21.03.17 67 1 13쪽
101 성당, 시체, 전투 21.03.13 65 1 24쪽
100 외전-사냥꾼들의 밤 21.03.12 61 0 22쪽
99 간단한 수수께끼 21.03.03 65 0 12쪽
98 이동계획 +1 21.02.18 79 1 11쪽
97 쥐구멍에서 +1 21.02.16 72 0 13쪽
96 촉수 21.02.08 99 1 11쪽
95 협력제안 21.02.08 117 0 12쪽
94 탄로 21.02.06 7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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