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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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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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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08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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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제안

DUMMY

망령처럼 떠돌았다.

엘리과 빌렌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무사히 도망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더는 자신을 괴롭힐 구실을 만들고 싶지 않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은 것으로, 자책을 한다는 건 너무나도 어리석은 행위이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스읍··· 후우···”


식은땀이 흘러내린 피보다도 많은 면적을 적시고 있었다. 무리해서 쥐어짜낸 움직임들이 상태를 악화시킨 탓이었다.

통증이 점차 심해져간다.

조금이라도 몸을 쉬게 하고자, 침실로 향했다. 핍박을 주는 사람은 남아있지 않았기에, 그대로 침대 위에 스러졌다.

사람의 몸을 잡아먹는 푹신한 매트릭스의 감촉이 기분 좋았다.

이대로 눈을 감고 잠들고 싶다. 하지만, 동이 트기 전에 눈을 뜰 자신이 없다. 감겨오는 눈꺼풀을 참아가며, 호흡을 천천히 가다듬었다.

복부의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기대하기란 어려웠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때까지만 회복하자.

익숙한 고통을 참아가며 끊지 않고 생각했다.

라이넬이 어째서 사간회에게 협력하고 있는 건지를 알 길은 없었다. 그나마 가진 것으로 이것저것 가설을 세워볼 수 있는 의문은 하나뿐.

이곳으로 온 목적이 무엇인가.


‘나를 노리는 것 같지는 않았어···’


그는 명백하게 엘리를 노렸다. 그녀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엘리가 드워프의 왕이라는 걸 알기에 가능한 기습이었다. 평범한 소녀를 이유도 없이 죽일 리가 없으니까.

그가 엘리를 죽였을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달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자신들의 식량난을 해결하고자 타국으로 향한 왕이 그곳에서 정체불명의 암살자에게 살해를 당하는 거겠지.

드워프들은 결국 식량난을 해결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왕은 암살을 당한 상황. 세르나리아는 달란보다 식량이 풍족하지만, 철의 주조기술이나 무기생산, 군사력 등에서 현저하게 뒤쳐지니 만일 그로 인해 전쟁이 일어난다면 달란의 압승이겠지.


‘전쟁···’


세르나리아를 침략했을 경우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고, 자신들에게는 압도적인 승리가 보장되어있는 달란에게는 왕의 죽음이라는 전쟁의 구실조차 마련되는 셈이다.

그리고, 엘리라는 인물은 백성들의 상당한 지지까지 얻고 있을 거다. 논리적으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감정에 치우쳐 세르나리아와의 전쟁을 주장하는 이들도 생겨나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가진 정보와 사고력으로 유추 가능한 그의 목적은 전쟁이다. 세르나리아와 달란의, 혹은 그보다 거대한 규모의 전쟁.


‘하지만, 전쟁을 일으켜서 뭐가 되지?’


고개를 저었다. 나로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사정이었다.

오히려, 전란으로 인한 어수선함이 아루아를 데리고 도망치는 데에 도움을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를 살해할 수 있는 기사단이나, 마도사단 등도 전부 전쟁에 동원될 테니까.


‘마도사단이 동원이라···’


만일, 정말 그렇게 된다면 마신의 부활이 지연될지도 모른다. 그들의 음모에 종지부를 찍도록 힘을 기를 유예를 쥐어주지 않을까. 아직 마신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탓에 확신을 가지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둘 중 하나다.

그들 또한 전란을 이용하여 계획의 진행을 촉진하거나, 혹은 전장투입으로 인한 인력소모로 차질이 생기거나.

어느 쪽으로 흘러갈지는 굳게 닫힌 상자와도 같아서 직접 열어보지 않는 이상은 알 수 없다.


‘전쟁을 일으키는 게 목적이라면, 아루아를 납치한 이유는 뭐지···?’


라이넬과 구르게스의 목적이 다르기라도 한 건가. 그게 아니라면, 아루아를 납치한 것에 이유가 없는 건가.


‘정말, 이유도 없이, 단지 그곳에 있어서 납치해간 것이라면··· 아루아는···’


주먹을 쥐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서도 안 됐다.

그녀가 어떤 상태이건, 그녀를 구하겠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괴로운 기억을 가지게 되었다면, 괴로운 기억을 지울 방법을 찾아주겠다.

처음이 아닌 결심을 되새겼다.


‘그것도 결국은 내가 편해지기 위한 이기심이겠지만···’


눈을 감았다. 잠에 들기 직전에 다시 떴다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감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터벅터벅. 멀어지던 의식이 서서히 돌아오자, 어딘가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침실 바깥의 복도. 누군가의 그림자가 피 묻은 복도를 배회하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발소리는 내가 남겨놓은 피 묻은 발자국을 정확하게 뒤따르고 있었다.


‘누구지···?’


침대를 엄폐물 삼아 몸을 숨겼다. 대거를 꺼내들고, 그림자의 주인이 침실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숨죽이고 기다렸다.

이윽고, 발소리가 들어왔다. 그것은 머지않아 멈춰 섰다.

약 5미터 남짓한 거리를 예상하고, 무릎을 박차고 일어서며 상대의 위치를 확인했다.

뒤로 젖혀놓았던 팔을 휘두르고, 손목에 스냅을 넣는다.

그렇게 손가락으로부터 대거를 떠나보내려다, 상대의 정체를 확인하고서는 느슨했던 손가락에 힘을 가득 주어 대거를 정체시켰다.


“잭···?”

“우연이군. 내가 보고 싶어서 찾아온 건가? 하하! 아무리 임자 없는 몸이라지만 남자는 사양하지!”


입을 다물었다. 찾아갈 방법이 있었다면 찾아갔을 정도로 정보에 목이 말라있었지만, 그의 쌀쌀한 농담을 듣고나니 그나마 있던 용건마저 모조리 증발할 것 같았다.


“이봐, 그런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면 아무리 나라도 상처받는다고. 상을 쳐받는다고.”


이곳에 둘보다 많은 수의 사람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아마 끅끅대며 웃는 것은 잭 하나뿐이겠지. 제대로 확신이 들었다.

그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의 농담에는 누구도 웃어주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다.

짝. 잭이 팔을 크게 휘둘러서 박수를 쳤다. 한 번의 울림이 경쾌하게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자, 그럼 무거운 분위기도 띄웠으니 하나 제안하겠어.”

“그냥은 받을 겁니다.”


들고 있던 대거를 제자리로 돌려보내고, 거래의 대상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나의 것과 공평하지 않았다. 무언가 본질적으로 다른 느낌을 주는, 거래가 아닌 그 이상의 제안을 내놓았다.


“그렇다면, 엘프 소녀의 위치를 알려주지. 어때?”

“···제게 원하는 게 뭡니까.”

“협력, 그리고 다소의 정보제공이지.”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아루아의 위치를 알려준다는 것만으로도 승낙할 이유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거기에 모든 전말을 꿰고 있을 잭의 협력까지. 생각만 해도 입안이 달달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덥석 물어챌 수는 없는 제안이기도 했다. 잭에게의 협력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그가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 건지 모른다. 모르는 이상, 순순히 받아줄 수는 없다.

약속을 해놓고 지키지 않으면 그만이기야 하겠지만, 그를 이길 자신은 솟아날 구멍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또다른 제안이겠지.’


입을 열었다.


“협력의 내용이 뭔지, 당신이 무엇을 바라보고 움직이는 건지에 대해서와 원하는 정보의 제공, 아루아의 정확한 정보와 안전을 보장한다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이봐, 요구사항이 너무하잖아. 계집의 안전은 내가 어떻게 다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두 개로 줄여.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어?”


아루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어느 시점부터였는지는 몰라도 잭은 사간회를 배신하기 위한 밑준비 같은 것들을 실행하고 있었고, 구르게스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다. 잭이 나에게 아루아를 구하도록 했다는 걸 아는 이상은 손쓰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겠지.


‘아루아를 구하면, 잭은 어떤 이득을 보는 걸까.’


그는 전부터 아루아를 구하도록 협력했었다. 그저 선행이라고 보기에는 미심쩍지만, 그렇다고 무언가가 있을 거라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를 알지 못하는데다가, 그가 어떤 행동들을 하고 돌아다녔는지조차 모르고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아루아를 구하는 게 먼저다. 그녀는 너무 오랜 시간동안 괴로움을 겪어야만 했다.

한시라도 빨리.

그런 조바심을 내며, 두 가지의 요구사항을 꺼내놓았다.


“그렇다면, 아루아의 위치와 정보의 제공을 제안하죠.”

“거래성립이군.”


불안감을 조성하는 꺼림칙한 웃음소리를 내며, 잭은 침실 밖의 복도로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달빛을 들이는 창문을 등진 채로 불만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금발의 엘프가 서있었다.


“끝난 건가?”


엘무리아스가 자신이 느끼는 불쾌함을 미간의 시시각각 주름으로 나타내며, 잭에게 물었다.


“뭐어, 그런 셈이야.”

“그럼 곧바로 출발하지. 피 냄새가 밴다.”

“이런이런 또 결벽증이 돋으셨구먼.”

“결벽증?”


잭의 도발을 넘기지 못한 그는 허, 하고 헛웃음을 치더니 어이가 없다는듯 말을 이었다.


“네 위생관념이 밑바닥인 거다.”

“그래?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잭은 대수롭지 않게 방을 나서며, 따라오라고 손가락을 까딱였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일 거야. 그 전에 정보교환이라던가, 이것저것 필요할 거 아니야? 나는 여기서 해도 괜찮지만, 저기 계신 엘프 양반께서 영 불편해하더군.”


어디로 가는 건지 묻기 전, 나의 입에서 나올 질문을 사전에 파악한 잭이 미리 답했다.

그는 내가 그를 완전히 믿지 않는다는 것과 이유가 없으면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다는 성향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충동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아도 치밀하고, 계획적인 인간이다. 그런 감상을 가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좀처럼 새삼스러워지지 않았다.


“뭐해? 안 따라오고.”


멀뚱거리며 서있자, 잭이 재촉했다. 그에게 따라붙고, 뒤를 따라 걸었다.

혈흔으로 도배된 복도를 지나, 영사관의 밖으로 나왔다.

최소한 마차라도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이동수단으로 보이는 건 어디에도 없었다. 잭과 엘무리아스는 그대로 영사관을 빠져나가, 하수도로 내려갔다.


“걸어가는 겁니까···?”

“마차라도 있을 줄 알았나?”


엘무리아스가 옷에 두른 마력을 한 겹 더 쌓으며 답했다.


“뚜벅이들의 비통이지.”


끅끅 웃으며, 잭이 현실을 받아들이라 충고했다.


“그런고로 묻겠다만, 리시스. 렌이랑 결혼할 생각 없나?”

“네···?”

“좋잖아. 예쁘고, 능력 있고, 성격도 좋고. 그리고 무엇보다, 날아다니는 침대를 가지고 있지. 하늘에서 애를 낳을 수도 있다고?”


등골이 서늘했다. 공공연히 살기를 드러낸 엘무리아스가 이를 아득바득 갈고 있을 것만 같았다.

실제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뒤통수에 마법이 작렬하지 않을까 두려워 곧바로 자신의 목숨을 변호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예전에는 렌 같은 어여쁜 여성과 결혼해서 멋진 가정을 꾸리는 게 꿈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행복 겨운 나날을 보낼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그래, 자기 주제를 잘 알고 있군.”


엘무리아스가 이글거리던 불꽃을 꺼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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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불사를 베어내는 검-1 21.05.06 13 0 11쪽
118 녹빛의 검은 백화(白花)를 피워낸다. 21.05.04 2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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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믿음, 극복, 퍼져나가라 21.03.17 30 1 13쪽
101 성당, 시체, 전투 21.03.13 28 1 24쪽
100 외전-사냥꾼들의 밤 21.03.12 24 0 22쪽
99 간단한 수수께끼 21.03.03 20 0 12쪽
98 이동계획 +1 21.02.18 39 1 11쪽
97 쥐구멍에서 +1 21.02.16 30 0 13쪽
96 촉수 21.02.08 37 1 11쪽
» 협력제안 21.02.08 40 0 12쪽
94 탄로 21.02.06 3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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