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12,090
추천수 :
264
글자수 :
658,374

작성
21.03.03 00:50
조회
22
추천
0
글자
12쪽

간단한 수수께끼

DUMMY

사르티아에서 하루만에 벗어나기란 어려웠다. 멀리 떨어졌다고는 해도 마물들의 서식지인 검은 숲과 이어진 교역로이기에 늦은 밤에는 관문을 폐쇄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보존식의 구비와 들키지 않고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여러 절차와 준비가 필요했다. 보초에게 공여하는 뇌물 같이 돈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들은 하렐뉴가 해결해주었다.

그리고,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곤 없었다. 결국 움직이고, 구비하는 것은 그녀 혼자만의 일이었다. 터무니없이 수완 좋은 그녀 덕분에 모든 준비는 이틀도 지나지 않아서 끝이 났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이기적인 자책을 곱씹고 있을 즈음에 돌아온 그녀가 “이것도 빚으로 칠 게요.”하고 차분하게 말해주었을 때에는 저도 모르게 안심했을 정도로, 나는 무력했다.


“항상 어두운 표정이시네요.”

“···그렇습니까.”

“지도 보면서 그렇게 어둡기도 어려울 텐데요.”


다가온 하렐뉴는 시선의 한쪽으로 건더기 없는 스튜와 딱딱하게 굳은 빵 하나를 밀어두었다.


“이거밖에 남지 않았데요. 이래놓고 돈은 돈대로 받아갔어요. 그것도 두 배로요.”


건조한 어조로 말하며 흘깃 지도를 쳐다본 하렐뉴는 꽤나 지쳤는지 침대로 다가가 걸터앉았다. 하얀색이기에 그 메마름이 강조되는 황량한 눈빛은 여전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잭에게서 떨어져나온 그녀는 그저 말을 할 뿐인 인형 같았다.

감정이 있음을 믿게 만드는 것은, 부드럽게 이어지는 그녀의 문장이 전부였다. 어조도, 표정도 짜증을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문장만은 그녀의 감정을 착실하게 담아내고 있었다.


“인간들이 팔란타(마족)를 싫어하는 건 알았지만, 이건 정도가 심하군요.”

“그걸 인간인 리시스님이 말씀하니 애매한 심정이네요.”


애매하다는 말과 다르게 무표정한 얼굴로 식사를 시작하는 그녀는 그새 나의 시선과 지도를 대조했던 모양이었다.

하렐뉴는 곧바로 정적을 몰아내기 위한 장작으로 사일레르라는 이름을 꺼내들었다.


“그나저나, 사일레르에는 무슨 일인가요? 아까부터 거기만 보고 계시던데요.”

그녀의 질문이 거두지 않은 의심을 자극했다. 알고 싶다고 알리는 진실인지, 모르고 있다고 인식시키는 거짓인지.

알고 싶어서였다면, 사일레르에 무엇이 있는 건지를 알고 싶어서일까. 그게 아니라면, 내가 어째서 사일레르에 신경 쓰고 있는지에 대해서인가.

모르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것이라면, 대체 무얼 위한 거짓인가.

거듭해서 쌓아가던 의심은 답을 내놓지 않았기에,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그렇다고 해서 비겁한 입이 무언가를 내뱉은 건 아니었다.

나는 의도된 정적을 자아내며 그녀가 화제를 돌리기 전까지 식사에 전념했다.


“으음, 하지만 몰라도 괜찮겠네요. 모른다고 죽는 건 아닐 테니까요.”

“어차피 오늘이나 내일로는 갈 수 없는 곳입니다.” “그렇긴 해요. 모르는 게 약일 때가 아주 많다고 잭이 말했으니 한 번 따라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어요.”


사일레르까지의 왕복은 아루아에게로 이어진 실마리를 잡아버린 이상은 시간낭비다.

게다가 하루아침에 창고 하나를 잃어버린 사간회가 멍청이처럼 가만히 두고 볼 거란 생각은 안일하다. 사르티아에 존재하는 다른 창고들을 지키려 모험가나 용병을 고용했다고 생각해야겠지.


“···역시 관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지도를 접었다.

얻는 것에 비해 과분한 위험이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다는 고집을 버리기만 한다면, 그곳으로 향할 이유는 이제 남지 않는다.


“아쉽네요. 조금 궁금했으니까요.”


식사를 마치고 다가온 하렐뉴가 빈 그릇을 거두어갔다. “이것도 빚이에요.”하고 덧붙인 그녀는 식기들을 반납하러 방을 나섰다.

그렇게 홀로 남은 방안.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사라지지 않은 행인들이 차가운 밤바람과 함께 활보하고 있었다. 가을의 어둠은 제법 추운지, 외투를 부여잡는 모습이 많았다.


‘겨울이 오기 전에는 반드시···’


없는 것보다는 나은 소망을 다짐하며, 기대어놓았던 창대들을 맸다.

부러진 검의 깔끔한 단면을 바라보며 준비를 마쳤을 때에는 하렐뉴가 돌아왔다. 그녀는 나에게로 다가오며 슬며시 바깥을 훑어보았다.


“외출인가요. 아직 이른 시간인데요.”

“확실히, 지금 나간다면 모험가와 마주치기 십상이겠죠.” “그렇다면 티타임이라도 즐기고 가시는 게 나을 텐데요. 저하고 어울려주신다면 잭의 전언을 말해줄게요.”


문장에 담긴 작은 심술을 이해한 나는 창대를 도로 내려놓았다.

어느새 가져온 건지, 찻잔을 건넨 하렐뉴는 주전자에 담긴 차를 따랐다. 풋풋한 향기가 피어올랐다. 처음 맡아보는 어색한 향기에 머금기가 꺼려졌다.

떠오르는 김을 후후 불어 식히는 그녀가 한 모금을 마시고서야 미미하게 들이켰다. 뜨거운 얼음이 입안으로 흘러들어온 것만 같은, 상쾌한 향.


“어떤가요. 솔잎차라고 해서 최근에 들어온 거라던데요.”

“독특한 향이네요.”

“그런가요. 그리운 대답이네요.”


하렐뉴는 지금껏 말에 감정을 담지 않았다. 얼핏 바라본 표정에서도 무언가를 읽어내기란 힘들었다.

바라보는 방향 말고도 알아낼 수 있는 게 있다면, 알려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감추어진 감정들. 변하지 않는 표정, 높아지지도 떨어지지도 않는 목소리.

움직이지 않는 그녀에게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그녀가 말한 그립다는 감정만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표정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을, 작아지는 목소리가 들려주었다.


“그렇습니까.”


나는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가뭄에 한 방울만의 비가 떨어지는 것은 기적이 아닌, 하늘의 실수일 테니까.

누구에게나 그리운 과거는 있다. 그것이 아프지 않을 거라고는 그녀가 아닌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얼떨결에 나온 감정을 그대로 붙잡아버리면, 마음을 닫는 계기가 되겠지.


“잔이 비었네요. 한 잔 더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화장실을 자주갈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니까요.”

“그건 그러네요. 마시고 싶으면 말해주세요. 언제든지는 아니지만요.”


하렐뉴가 차를 들이켰다.

한 번의 호흡으로도 끝나버릴 짧은 시간에서 생겨난 어색함마저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걸까. 머금은 차를 넘기고서는 대화를 재촉하는 그녀였다.


“정말이지 과묵하시네요. 뭐라도 말해주세요. 어색한 건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그녀는 나에게로부터 목소리를 끌어내지 못해 안달이었다. 표정도, 목소리도 변하지 않았지만.

안달을 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두려운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아마, 그녀는 정적을 극도로 꺼려하는 게 아닐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이제 말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잭의 전언에 대해서.”


나는 조바심을 냈다. 그리고 하렐뉴는 나의 조바심에 따라주었다.

숨기는 기색 하나 없이 순순히 말해주는 그녀의 태도는 갖고 있던 의심마저 흐릿하게 흐트러뜨렸다.


“뭐, 좋아요. 제 티타임은 끝나지 않았지만, 저는 그렇게 융통성 없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말해드릴게요.”


못다 비운 찻잔을 마루에 내려놓은 그녀가 다소곳이 두 손을 무릎에 포갰다.


“다친 고기로 만든 외로운 소시지. 기적을 하사받은 도살자. 두 부류의 인간이 한데 모인 곳으로 영혼을 원하는 위선자가 충동을 향하리라.”


듣자마자 깨달은 게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확인을 하고자 열렸던 입은 묻지 못하고 닫혔다.

그것을 물어봐선 안 될 이유가 있어서가 아닌, 물어볼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리시스님에게 보내져온 전언이에요.”


영혼을 원하는 위선자는 나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제는 확실해졌다. 어떻게인지는 모르지만, 잭은 나의 상태를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콜로세움에 있었을 때부터인가···?’


이후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전이거나, 당시. 어쩌면 단테나 사간회보다 먼저 나를 노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야영지가 마물의 습격을 받은 건, 잭이 마물을 풀었기 때문이 아닐까.

들었던 의문들을 제쳐두었다. 언젠가 풀릴 터인, 지금은 풀 수 없는 문제들은 고민하지 않는다. 지금은 수수께끼의 풀이가 먼저다.


“그밖에 전해들은 말은 없었습니까? 아니면, 암구호의 해독법이라던가.”


그녀는 고개를 젓지 않았다. 그렇다고 끄덕인 것도 아니었다.

내려두었던 찻잔을 다시 집어드는 하렐뉴는 행동으로 드러내지 않는 의사를 조용한 수다로 전해주었다.


“저는 몰라요.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을 하는 그런 심술궂은 사람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숨긴다고 해서 당신의 의심 말고는 살 수 있는 게 없는 걸요.”

“···그렇습니까.”


펼쳐진 지도를 바라봤다. 다친 고기로 만든 외로운 소시지, 그리고 기적을 하사받은 도살자. 두 가지의 기이한 단어가 연관성을 가지는 장소라면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가진 충동이 무엇을 바라는지 잘 알기에, 영혼을 원하는 위선자가 어떠한 충동을 향할지까지도.

구태여 생각하지 않아도 깨닫는다. 이미 깨닫고 있다.

잭이 어째서 나를 그곳으로 보내려는지도 예상하고 있다.


“티타임은 끝나셨습니까.”

“네, 마침 끝났어요.”


고이 잔을 내려두는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곳으로 먼저 향하고 있던 나의 시선은 사라지지 못한 방황자들을 찾고 있었다. 없어지기를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기에, 수가 줄었다는 걸로 만족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대어놓았던 창대를 느슨하게 짊어지고, 외투를 깊숙하게 눌러썼다.


“따라오실 겁니까?”

“감시역이라는 거 알고 계시잖아요.”


하렐뉴가 정리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문고리를 잡았다. 술잔을 비우지 못한 주정뱅이들이 스러진 여관 로비를 지나, 밖으로 나왔다.

머지않아 따라붙는 기척은 하렐뉴의 것이었다.


“원래 그렇게 성급한 성격이었던 건가요. 그게 아니라면,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요.”

“둘 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가요. 그렇게 말한 하렐뉴는 곧바로 다음 질문을 꺼냈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은 건, 감시역이라는 임무와는 상관이 없는 게 아닐까. 의문이 들 정도로 곧잘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그녀였다.


“그나저나 역시 어두운 표정이네요.”

“그렇습니까.”

“그 표정을 지어내는 건, 순수한 죄책감인가요? 아니면 그래야만 한다는 의무감인가요?”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의 질문에 대한 답은 아주 오래 전부터 나의 안에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깊은 뿌리를 내려 마음과 뇌리에 자리 잡은 그것을 사실로서 수긍하고 있었다.

부정도, 자기합리화도 곁들이지 않은 순수한 대답을 내놓을 자신이 있었다. 나의 입은 그 자신감을 그대로 반영했고, 나의 마음은 그런 입에 무게를 부과했다.


“···자기만족이죠.”


그렇게 답한 나는 그녀가 뭐라 말을 걸어오건 입을 다물었다. 더는 대화를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쓸모없는 잡담을 조금이나마 내려놓고 싶다. 10분이라도 좋다. 조용히 밤의 정적 속으로 자신을 감춰버리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걸었다.

달이 보이지 않는다던가. 구름 덕분에 몸을 숨기기 좋겠다던가. 그쪽 골목길은 막다른 길이라던가. 뇌물을 받은 보초의 눈가에 커다란 사마귀가 있었다던가. 그게 엄청 커다래서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던가.

하렐뉴의 혼잣말들이 밤하늘로 높이 떠올랐다.


작가의말

 잠시 방황했었습니다. 글쓰기를 관두고 이런저런 일을 해보았지만, 저는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공지 하나 없이 잠수를 타 너무나도 죄송하고, 면목없습니다.

 당분간 열심히 달려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쓰고 싶어서 쓰는 2기 후기! (필독X) +3 21.01.14 114 0 -
공지 1기 후기(필독X) +1 20.10.05 231 0 -
121 불사를 베어내는 검-3 21.05.31 10 0 10쪽
120 불사를 베어내는 검-2 21.05.08 18 0 11쪽
119 불사를 베어내는 검-1 21.05.06 14 0 11쪽
118 녹빛의 검은 백화(白花)를 피워낸다. 21.05.04 21 0 12쪽
117 재생 21.04.28 24 0 12쪽
116 이뤄주지 못할 소원 21.04.27 41 0 11쪽
115 정보상과 의사 21.04.25 37 0 17쪽
114 상실 21.04.24 22 0 9쪽
113 고정부(固定附) 21.04.24 17 0 11쪽
112 낙마 21.04.14 21 1 13쪽
111 구역질 21.04.12 29 0 11쪽
110 발자국 21.04.09 64 1 12쪽
109 발을 들이다 21.04.07 50 0 11쪽
108 아침에는 가재 21.04.03 58 1 11쪽
107 별들에게 호소하는 밤 21.03.27 31 1 13쪽
106 지우지 못한 단서 21.03.24 28 1 11쪽
105 붙잡히다 21.03.23 25 1 11쪽
104 주맥시(呪脈視) 21.03.22 30 1 11쪽
103 잭이라는 화제 21.03.19 32 1 12쪽
102 믿음, 극복, 퍼져나가라 21.03.17 30 1 13쪽
101 성당, 시체, 전투 21.03.13 29 1 24쪽
100 외전-사냥꾼들의 밤 21.03.12 26 0 22쪽
» 간단한 수수께끼 21.03.03 23 0 12쪽
98 이동계획 +1 21.02.18 41 1 11쪽
97 쥐구멍에서 +1 21.02.16 32 0 13쪽
96 촉수 21.02.08 38 1 11쪽
95 협력제안 21.02.08 68 0 12쪽
94 탄로 21.02.06 31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B둘기'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