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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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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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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3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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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2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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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사냥꾼들의 밤

DUMMY

조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암시장이라는 것이 사르티아에 있는 줄도 몰랐건만, 모험가 시절의 직업이 도적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뒷조사를 떠안게 되었다.

그런 편견을 버려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을 적합자로 가리킨 리더의 지시는 나름대로 훌륭했다. 라고, 로셸은 수긍했다.

소매치기가 기원인 도적이란 직업의 인식이 암시장에서의 경계심을 흐트러뜨렸고, 범죄건 정의건 아무래도 좋고 내일의 자신이 배만 부르면 그만이라는 회색의 사고방식이 암시장의 이기적인 분위기에 적응시켰다.

그렇게 될 것이라는 걸 예견하기라도 한 건지, 로셸을 기다리는 리더의 눈에는 부풀어 오른 기대와 확신이 담겨있었다. 기대를 드러내는 게 처음은 아니지만, 흔하지 않다는 걸 아는 로셸은 자신들의 리더가 얼마나 이번 ‘사냥감’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누구보다, 라고 까지는 못하더라도. 그녀 또한 돈에 굶주려있으니까.


“잠시 소식이 끊기는 듯싶더니, 사간회라 불리는 조직의 창고를 습격했답니다. 그리고 그 창고는 사르티아에서 벌어지는 인신매매의 근원지 같은 곳이었다더군요. 정말 신기한 건, 녀석이 죽인 건 사간회의 졸개들이 다였다던데요. 납치당한 민간인들은 모두 무사했답니다.”

“단테 행세라도 하려는 걸까?”


리더는 턱을 바치던 손으로 탁자를 짚고 일어섰다. 터벅터벅 경쾌한 군화소리가 객실 안을 채웠다. ‘사냥감’의 이동경로를 표시한 지도의 앞에 서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 끙 하고 골머리를 앓았다.

그럴 만도 하다고, 로셸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끄덕이기도 했다. 말을 잘 하지는 않지만, 그런다고 내성적인 성격은 아닌지라 행동으로 뚜렷한 감정표현과 의사표현을 행하고 있다. 그럴 수도 있다고, 리더라도 만능은 아닌 법이라고, 나도 모르고 우리 모두 다 같이 모르는 난제라고. 그렇게 말해주지는 못하니까. 이렇게나마.


“그래, 너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구나.”


리더는 뒤돌아보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마치, 로셸의 생각을 읽고 있다는 것처럼. 지금의 로셸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전부 보인다는 것처럼.

머리카락 사이에 3의 눈이라도 감춰놓은 걸까. 그게 아니라면, 끄덕여줄 것이라고 믿고 있던 걸까.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3의 눈이라는 가능성이 사실이라면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했다. 그녀를 사모하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뒤통수에 3의 눈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꽤나 복잡한 심정에 쳐하지 않을까.

아직 만나보지도 못한 남성을 위해 그런 걱정을 품고, 그녀가 품고 있을 의아함에 동조했다.


“시작은 모험가 셋을 살해했던 거였나? 세르나리아에서 사르티아로 향하는 교역로에서 말이야. 그리고 그 다음은···”

“신고를 받은 모험가 협회가 조사를 개시했으나, 시체 한 구 찾지 못했죠. 하지만, 의혹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없었습니다.”

“그거야 높으신 기사님께서 입막음을 톡톡히 했을 테니까. 그 녀석이 사형장에서 탈옥한 것도, 전부 공을 높이려는 기사님들의 수작일 거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어. 너는 어때?”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타당하겠죠. 솔직히, 저도 그거 말곤 방법이 없다고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근거가 없는 건 아니었다. 우선, 초기의 현상금수배서가 지방의 협회에만 지급되었다는 것. 궁핍한 신출내기 모험가들이 손을 대도록 만들어 희생양을 늘림으로서 ‘사냥감’의 가치를 높이는 수법으로 볼 수가 있다.

그리고, 리더가 말하듯이 경비병들에게 제압을 당할 정도의 ‘약자’가 그보다 아득히 높은 수준의 병사들이 사각 없이 감시하는 사형장에서 탈옥했다는 것 또한 하나의 근거다.

마치, 죄 없는 시민 하나를 골라 살인이라는 누명을 덮어씌워 자신들의 공적을 늘리려는듯한 소행들.


“하, 씨··· 진짜 미치겠네···”


리더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뜨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녀 또한 같은 생각에 다다른 것이리라.

그래, 분명 누명을 덮어쓴 시민을 해치움으로서 공적을 올리려고 하는 것이라고 누구나가 생각할 수 있다.

마을 하나를 불태운 것도, 마도사단의 단원을 살해한 것도 꾸미고자 한다면 충분히 꾸밀 수 있는 수작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사냥감’은 종적을 감추었다가 자신의 위험성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돌연히 사간회라는 범죄조직을 습격했다. 그렇게 벌어진 것은 학살이었다. 100골드가 넘는 값어치의 몸이 인신매매로 먹고 살던 외도들을 상대로 학살을 자행했다고 하면, 믿지 않을 사람이 없을 텐데.

모두가 믿고, 모두가 위험성을 상기할 거다.

그것을 노리기라도 한 건가? 나는 위험한 녀석이라고. 너희들의 뜻대로 놀아날 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경고하기라도 하는 거란 말인가?

그것은 너무나도 어리석다. 무고한 마을 사람들을 몰살시킨 것도, 마도사단의 단원을 살해한 것도 전부 자신이라고 긍정하는 꼴이 되어버린다.

무언가 다른 노림수가 있을 거다. 꿍꿍이라던가, 사정 같은 게 있겠지.

그걸 알고 싶다.

아니, 정확히는 그가 어디로 향하는지를 알고 싶다. 그거 하나면 충분하다. 구구절절 사정을 들을 필요도 없다. ‘사냥감’은 사냥감이고, 사정은 로셸에게도 있다. 사정없는 사람은 없는 거다. 이쪽도 필사적으로 필사적이다.

사정을 알고 싶다는 건, 단지 그뿐이다. 정확한 위치. 그 하나를 모르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자신도, 리더도, 그리고 다른 동료들도.


“이동경로가 너무 불규칙적이야. 예상되질 않아. 행동패턴도 그래. 다음은 왕이라도 시해할까?”

“그건 너무 갔다고 생각하는뎁쇼.”

“그렇지?”


아하하 하고 난처하게 웃은 리더는 흐음 하고 다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한 번 잠겨들면 답이 나오거나 졸릴 때까지 정신을 꺼내놓는 그녀였다. 로셸은 그것을 알고 있었고, 때문에 당분간의 한산함을 프라이거 육포로 때웠다. 불법 밀렵으로 잡은 멸종위기종의 고기여서 그런지 각별하게 맛났다. 암상인의 말에 따르면 너무 맛있어서 마구 잡아버린 탓에 그렇게 되어버렸다던가. 그 생물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도 암시장에서 구매한 것치고 잘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씹었던가. 딱히 세지는 않아서 모르겠지만, 손바닥 크기만 한 육포를 두어 개쯤 삼켰을 때에 끼익 하고 문이 열렸다.

누구일까. 곳곳의 비리에 대해 조사하러 뛰어다녔던 나타릭일까. 용병과 모험가들에게서 목격담과 소문을 소집하던 세이레일까.

흘깃 시선을 향한 그곳에 정답은 없었다. 그곳에 서있는 건 나타릭도, 세이레도 아니었다. 허름한 챙모자를 쓰고, 마석이 달린 지팡이로 바닥을 짚은 젊은 여자.

로셸은 품어두었던 기대를 거두었다. 하지만, 자신과 다르게 리더의 눈빛만은 빛나고 있었다.

대조되는 두 눈빛을 받는 여자가 쿠후후 하고 기분 나쁘게 비웃었다. 그 비웃음은 확실하게 로셸을 향하고 있었기에 석연찮은 기분이 들었지만, 하루 이틀 그러는 사람이 아니어서 가볍게 흘려버렸다.

리더가 품은 기대에 불만을 호소할 정도로 참을성 없는 남자가 아니다. 남들이 보기에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로셸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무튼, 설명을 하자면. 지금 등장한 여자는 ‘나는 딱히 돈이 궁한 것도 아니고 그저 재밌기만 하면 그만이지만 조사 같은 지루한 잡일을 담당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하며 거리를 방황하던 발리아였다.


“재밌는 소식을 가져왔나보네, 발리아.”

“기대해도 좋은 거 맞을까요?”


로셸은 은근슬쩍 언짢다는 감정을 제시했다. 그걸 들은 리더는 어깨를 한 차례 으쓱이고는 이미 포기했다는 심정을 보여주었다.


“내가 괜히 풀어놓는 게 아니라는 거 알잖아.”

“맞아~ 누구들이랑은 다르게 유능해서 말이지~”


넘실대는 파도처럼 오르내리며, 잡아당기는 고무줄처럼 늘어지는 어조. 예전에는 상당히 짜증이 났지만, 지금은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5살도 어린 후배. 그런 후배의 독특한 개성에 화를 내는 건 선배로서 옳지 않다.

리더의 말은 틀리지 않았고, 발리아에게 도움을 받았던 적도 한 번쯤인가 있었으니까. 있었던가? 실제로는 없을 거다. 그래도 있었다고 믿고 싶으니까, 믿는다. 그렇게라도 믿지 않으면 지금 당장에라도 달려들어서 한 대 쥐어박을 심정에 자기최면을 걸었다.


“아, 그러냐. 뭐 됐다. 네가 좋은 소식 가져온 거면.”


텅 빈 입속으로 다시 육포를 물렸다. 우물거리며 먹고 있자니, 그에 흥미를 보인 발리아가 “뭐야뭐야?”하고 다가와서는 하나를 집어가려 했다. 좋지 못한 손버릇을 고치는 건 선배로서의 의무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지. 찰싹 때려서 물러가게 만들었다.


“째째해~”

“내가 사온 거잖아. 적어도 물어보기는 하라고.”

“물어봐도 안 줄 거면서!”

“그건 맞지만.”

“맞는 거냐고!”


발리아가 태클을 걸어왔지만 하천에 물이 흐르는 것과 같이 당연하게 흘려보냈다. 이미 거둔 시선은 발리아에게서 떠난 지 오래였다. 그래도 일단은 생사를 함께하는 동료이기도 하고, 나름대로 분위기를 신경 써주는 언행이니 기특하기는 하다. 그런 생각이 발리아에게 한 조각을 건네주었다.


“아껴먹어. 다른 녀석들 것도 남겨둬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완전 알겠습니다. 오케이. 슈퍼 오케이!” “슈퍼는 또 뭐냐.”

“뭔가 강력한 느낌! 무식해서 못 알아들었나봐~?”


하아. 깊고도 깊은 한숨. 자신이 내뱉은 한숨에 빠져버리는 어이없는 일이 당장에라도 벌어질 것만 같았다. 그만 가라고 손을 휘휘 젓자, “하나만 더~”하고 손을 뻗는 발리아였다. 방금보다 세게 때려서 손을 물리도록 해주었다.

어림도 없다. 암.

아야야, 하고 손을 거둔 발리아는 잠시 뒤 헤벌쭉 웃더니 소파로 걸어가 철푸덕 드러누웠다.


“그럼, 발리아. 당장은 피곤할 테니까, 이야기는 모두가 오면 들을게. 그걸로 괜찮지?”

“땡큐~ 노느라 많이 지쳤거든, 역시 리더야.”


히히 웃으며 육포를 야금야금 먹어치운 발리아는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잠들어버렸다. 드르렁거리는 코골이가 유난히도 시끄러웠다.

스물 살도 채우지 못한 소녀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여겨지지가 않네. 중얼거리자, 리더가 “그러네.”하고 답해주었다.

리더의 눈빛은 발리아를 향하고 있지만, 발리아를 비추고 있지 않았다. 발리아와 닮은, 과거의 누군가. 그리고 그 누군가와 함께했던 자신. 그 뒤를 가득 채우고 있던 그리운 배경.

로셸은 상상하지 못하는 리더의 행복이 쓸쓸한 눈빛에서 엿보였다.


“차라도 끓일까요? 리더.”

“어머, 끓여주는 거야? 그러면 고맙지. 부탁할게.”

“맡겨두시죠. 도적이 되기도 전에는, 카페에서 일했었으니까요. 꽤나 마실만할 겁니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꽤나 기대되는 걸.”


기왕 추억에 잠길 거라면. 돌아갈 수 없는 슬픔을 되돌아볼 거라면. 차라도 마시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는 편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의 마음은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무너질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술 또한 나쁘지 않은 선택이겠지만, 그건 건강에 좋지 않다.

의기양양한 어깨를 으쓱이며 걸어가, 이른 계절 타오르는 난로에 물을 올렸다. 주전자가 완전히 끓기 전, 뚜껑을 열고 설탕에 절인 라임과 복숭아를 한 조각씩. 봄날의 바람에 말린 로즈마리를 듬뿍.

그리고는 끼익하는 문소리와 함께 마침 돌아온 나타릭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양옆에 자리 잡은 두 개의 검에는 혈흔이 굳어있었다. 묻은 곳이 검집인 걸로 보아, 누군가를 죽이지는 않은 건가. 예나 지금이나 이도류라는 살상적인 검술을 사용하면서도 살인을 싫어하는 녀석이다.

살인의 경험자로서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전사라는 포지션을 맡고 있는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포부였다. 이곳이 널리고 널린 모험가 파티였다면, 말이다.

포지션이라던가, 구성원이라던가. 비슷하기는 해도 목적도 하는 일도 명백하게 다르다. 큰돈을 원하는 어중이떠중이들의 모임. 리더의 아래에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일을 하고, 고생한 만큼의 돈을 받는 비즈니스 관계.

그러니, 로셸이 해야 할 말은 그를 향한 충고가 아니다.


“어서와, 나타릭.”

“오우!”


힘차게 손을 든 나타릭이 “다녀와쓰!”하고 인사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풋 하고 터져버린 리더가 뒤늦게 말을 건넸다.


“여전히 기운차구나, 너는.”

“그게 유일한 장점쓰!”

“그래그래, 어서와. 마침 로셸이 차를 끓이던 참이거든. 너도 한 잔 어때?”

“아주 좋쓰!”


성큼성큼 걸어간 나타릭은 팔짱을 끼고 의자에 앉았다. 보통은 의자에 앉아서 팔짱을 낄 텐데. 예전에는 신기하게 여겼지만, 지나고 보면 이러한 순서의 엇갈림에 정이 들기도 하는 법이었다.


“발리아는 자는 건가.”


지금껏 큼지막했던 목소리는 발리아의 자는 모습을 보자 수그러들었다. 나타릭의 경쾌한 웃음이 인자하게 바뀌는 건 금방이었다.


“나타릭, 대체 발리아의 어디가 좋은 거야? 40대 넘은 아저씨가 사랑을 보일만한 대상은 아닌데. 아, 역시 그건가. 건방져서 손을 좀 봐주고 싶은? 그거라면 나도 거들어줄게. 포박부터 해줄까?”

“너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로셸. 남자는 여자에게 이길 수 없어. 그게 어리다면 어릴수록 더더욱. 그것을 자신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여자와 결혼을 했을 때에 한 번.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를 낳았을 때 한 번 깨닫지.”

“미안, 결혼도 출산도 해본 적이 없어서 이해 못하겠네.”


로셸은 애써 목소리를 높이며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연기가 겉치레라는 걸 알고 있는 건 리더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겉치레를 관두도록 배려해주는 것 역시 그녀 혼자였다.


“정말이지, 이중인격이란 건 신기하네. 혼란스러울 정도로 휙휙 바뀌잖아. 어느 쪽의 나타릭이건 우리의 동료고, 전부 좋지만.”


리더는 그렇게 말하며, 나타릭의 시선을 이끌고 발리아를 바라봤다.


“헌데, 아무래도 슬슬 공주님이 깨어나실 것 같네.” “오우!”


울적한 기분은 멀어져가지 않았다. 대화에서 떨어져나간 로셸의 눈은 점점 가늘어졌다. 언젠가 꺼져버릴 난로불의 일렁임을 바라보다, 끝까지 감아버렸다. 예전에는 곧잘 울고는 했었지만, 사람이 흘릴 수 있는 눈물에는 정해진 양이 있었다.


“어? 나타릭이다!”


기뻐하는 발리아의 목소리가 귓가를 덮었다. 기운차게 답하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을 나타릭의 행동이 캄캄한 머릿속에 그려졌다. 벗어나지 않는 예상의 현실을 바라보고자, 눈을 떴다.

그러자 나타난 것은 예상에서 벗어난 리더의 얼굴이었다. 로셸의 곁에 쭈그려 앉은 그녀는 애잔한 미소를 향해주고 있었다.

평소에서 한 걸음, 아니. 두 걸음 정도인가. 아니아니, 정도는 아무래도 상관없나. 평소의 리더는 말로만 위로하지 이렇게 곁으로 다가와준다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반쯤 놀라는 심정. 때문에 반쯤 침울한 자신이 지워지는, 그런 순간이었다.


“가끔씩 너를 보면, 히로가 생각나.”

“···어떤 학생이었는지, 궁금하네요.”

“인간과 팔란타의 하프였는데, 음, 종족은 아무래도 상관없으려나. 무튼, 굉장히 사랑에 열정적인 학생이었어. 사랑만을 위해 살아가는? 그런 로맨티스트라고나 할까. 근데 그 녀석, 모태솔로였거든.”


허. 저도 모르게 웃음이 흘렀다.

비웃음은 아니었다. 정확하게는 비웃음일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오해받아도 변명이 불가능한 톤이었지만. 그곳에는 공감도 섞여있었다고 생각한다. 라기보다는 느끼고 있다. 히로라는 학생의 성격이라던가, 버릇이라던가. 편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히로는 이런 사람이었을 거다.’라는 감은 오고 있다.

때문에 이것은 비웃음이면서도, 하나의 성찰이다. 그래, 성찰. 그러나 어느 하나 고쳐지지 않을 무의미한 허탈감.

새롭게 생겨난 감정들이 나타릭의 웃지못할 농담을 덮어버렸다.


“그래서, 그 녀석은 사랑을 찾았던가요?”

로셸은 물었다.

그에 답하듯, 리더는 로셸의 어깨를 툭툭 어깨를 두드렸다. 하지만 그것은 대답의 대신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 빙 둘러말하지도 않고, 무언가를 감추지도 않는다. 애초에 그럴 만한 이야기였다면 꺼내지도 않는다.

리더가 로셸에게 말을 걸었고, 과거를 꺼냈다.

그러니 답은 반드시 돌아온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더라도, 딱히 실망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사람에게 기대를 품지 않는 것만이 자신의 유일한 장점이라고 믿는 사람. 그게 바로 로셸이었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남들도 그렇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래서 유난히 도적이란 직업과 잘 맞는 것 같다고 느끼고도 있고.


‘···뭐, 아무래도 좋나.’


리더는 자리에서 일어나 활짝 기지개를 폈다. 로셸의 믿음에 보답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보답, 이라고나 할까. 보답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애매한 대답이었지만.


“나도 잘 모르겠네, 하지만. 떠들썩한 걸 좋아하는 주제에 어른들을 상대하는 걸 유난히 어려워했었던가. 자기보다 한 살이라도 많으면 말도 잘 못하고. 졸업할 즈음에는 꽤나 나아졌지만, 뭐랄까. 위화감? 그런 걸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는 학생이었지.”

“연인이 생긴다면 바로 철이 들었겠죠. 조금 더 조용해지고, 그러다가 친구들을 만나면 열심히 자랑하고. 연인의 옆에 서면 한없이 소심해지고. 뭐라도 했을 것 같네요 정말.”


로셸은 철제 주전자에 나무걸이를 걸어 들어올렸다. 충분히 달궈진 주전자에서는 달콤하고도 상큼한 향기가 퍼지고 있었다. 미리 컵을 들고 대기하는 리더에게 가장 먼저 따라주었다.

발리아랑 나타릭은···


“아핫! 아하핫! 목마 재밌어! 나타릭 굉장해!”

“오우! 오우!”


나중에 줘도 되겠네.

아니다, 그냥 주지 말자.


“기분은 좀 나아졌어?”


들려오는 목소리에 깨달았다. 깨닫고 보니, 웃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깨닫기보다 먼저 바라본 리더는 흐뭇하게 로셸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은 나아졌다, 고 해야겠죠.”

“그럼 다행이네.”


툭. 리더의 가벼운 주먹이 로셸의 팔을 때렸다. 단단한 솜으로 맞는 것 같았다. 아프지 않았고,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아서 자기 자신이 마조히스트인지에 대해 의심해야 하도록 만드는 펀치.


“뭐랄까, 로셸 네가 말한 대로. 히로는 그런 아이였던 것 같아. 으음, 그렇게 생각하게 되어버린다고나 할까. 너무 닮았단 말이지. 얼굴이라던가. 그 특유의 침침한 분위기라던가. 아, 이거 칭찬이야. 참고로.”


어느 부분이 칭찬인 걸까. 침침하다라는 표현은 보통 칭찬이 아니지 않나. 라기보다는 명백한 험담이다. 그걸 칭찬이라고 하다니. 그녀는 선생님으로 지낼 시절에도 이런 ‘칭찬’들을 학생들에게 해주었던 건가. 그리고 그런 ‘칭찬’을 들은 학생들은 그걸 좋다고 하면서 그녀를 따랐던 건가.

M들을 위한 S의 교육이었던 건가. 무섭도다.

로셸은 끝내 허, 하고 웃음을 내뱉었다.


“뭡니까, 그게.”

“좀 웃고 다니라고. 그렇게 말이야. 그렇게 희미하게라도 좋으니까.”


그녀의 말도 안 되는 ‘칭찬’에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린 모양이었다. 그것을 깨닫고 지우는 게 평소였지만, 오늘은 평소가 아니었다. 평소보다는 그나마 나은 하루. 그렇게 여기고 싶은 기분이 드는 하루였다.


“나쁘지는 않겠네요. 이번 일만 무사히 끝난다면, 조금은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래, 그거면 돼. 나도 무사히 끝나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까.”


리더가 차를 들이켰다. 처음 마신 한 모금이 뜨거웠는지 “흐에···”하고 혀를 삐죽 내밀었다. 이윽고 후후 불어 식히고서는 다시 한 모금. 그리고는 “응, 좋네.”하고 작게 끄덕였다.


“세이라는 언제쯤 돌아오려나?”

“뭐, 길 가던 유부남 하나 잡아먹고 오지 않을까요.”

“아··· 그건 정말 곤란한데···”

“항상 뒷감당은 우리란 말이죠. 조금은 자제해줬으면···”

“진짜···”


리더는 이후 말을 잇지 않았다. 철부지 아이들처럼 좁은 방안을 뛰어노는 발리아와 나타릭을 바라보다가, 종종 소리 없이 미소를 띄우기만할 뿐이었다.

금세 사라지는 그녀의 표정들을 로셸은 시야의 구석으로 흘려보냈다.

조용히, 차를 마셨다. 들이킨 차의 향기가 오늘따라 짙었다. 짙은 향기에 미운 목소리가 떠올랐다.


『돌아오면, 카페를 차리자. 그곳에서 둘이 결혼하는 거야. 아이도 있으면 좋으려나? 응, 엄청 귀엽겠지. 당신의 아이니까. 그러면, 무리해서 돈을 벌 필요도 없을 거야. 모험가 같은 건 관둬도 좋을 거야. 부족하더라도, 내가 힘내서 보충할 테니까. 전부 괜찮을 테니까. 행복하게 살아가자, 로셸.』


"···행복은 무슨."


로셸이 중얼거린다. 발리아가 꺄아꺄아 소리친다. 나타릭이 그런 발리아와 놀아준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부녀지간의 유치한 놀이를 바라보며 리더가 회상한다. 돌아오지 않는 세이라가 괜한 걱정을 부과한다.

그런, 익숙하고도 변함없는 밤이 지나간다.


사냥꾼들의 마지막 추격이 시작되었다.


작가의말

 사실 저의 꿈은 잠수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꿈을 이루기 위해 잠수를 자주...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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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낙마 21.04.14 21 1 13쪽
111 구역질 21.04.12 28 0 11쪽
110 발자국 21.04.09 63 1 12쪽
109 발을 들이다 21.04.07 49 0 11쪽
108 아침에는 가재 21.04.03 58 1 11쪽
107 별들에게 호소하는 밤 21.03.27 30 1 13쪽
106 지우지 못한 단서 21.03.24 28 1 11쪽
105 붙잡히다 21.03.23 25 1 11쪽
104 주맥시(呪脈視) 21.03.22 29 1 11쪽
103 잭이라는 화제 21.03.19 31 1 12쪽
102 믿음, 극복, 퍼져나가라 21.03.17 29 1 13쪽
101 성당, 시체, 전투 21.03.13 27 1 24쪽
» 외전-사냥꾼들의 밤 21.03.12 24 0 22쪽
99 간단한 수수께끼 21.03.03 20 0 12쪽
98 이동계획 +1 21.02.18 39 1 11쪽
97 쥐구멍에서 +1 21.02.16 30 0 13쪽
96 촉수 21.02.08 37 1 11쪽
95 협력제안 21.02.08 38 0 12쪽
94 탄로 21.02.06 3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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