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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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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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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3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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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3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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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시체, 전투

DUMMY

시체가 흘리는 피는 그의 발등에도 닿지 못했다. 신발의 밑창도 담그지 못했다. 어둑한 골목길에서 붉은 빛이 나오지 않도록, 그 시체는 안치되어있었다.

벽면에 세워둔 할버드, 그 반대편에는 단창이 한 자루. 두 사이에는 검은 실이 이어져있다. 뒤에서 다가오는 누군가를 알아채기 위한 알람이자, 시간을 벌게 하는 지연장치.

숨소리 하나 내지 않는 그의 뒷모습에 서있을 수 있는 건 정적, 그리고 하렐이라는 소녀 하나가 고작이었다.


“이번 달에도 준비는 됐겠죠?”

“아아, 물론이기는 합니다만. 평소보다는 조금 적습니다.”


골목의 그림자 너머로 보이는 건 성당이었다. 그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사제, 그리고 사간회로 추정되는 일당. 사제의 뒤에는 적지 않은 포대가 쌓여있고, 일당의 뒤에는 그것을 실어 나르기 위한 마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짐작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포대에는 사람이 들어있고, 사간회는 그것을 원한다. 돈벌이를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도 그럴게, 그렇다. 포대 안에서는 작은 숨결 하나 느껴지지 않는다. 뒤척이지도, 무언가를 흘리지도 않는다. ‘주맥시’를 통해 보아도, 죽어있다는 사실만이 굳어질 뿐이었다.

리시스는 그것을 알고 있는 걸까. 하렐은 입이 근질거렸다.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망보기를 처리했다고 해서 대화를 할 여지가 생겨난 건 아니다. 작은 말소리 하나마저 치명적이겠지.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지 모르지만, 리시스는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쓸모없는 년이!"


시야의 구석에서 두꺼운 손이 매섭게 날아왔다. 아프고 싶지 않다. 아픈 건 싫다. 맞고 싶지 않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어째서.

몸을 웅크렸다. 그러자, 날아오는 것은 손이 아닌 발이었다. 아니, 손도 날아온다. 발도 날아온다. 무언가가 구타한다.


“우, 우우···!”


머리를 끌어안았다. 몸을 둥글게 말았다. 그런다고 해서 폭력이 멈추는 건 아니다. 맞는 건 맞는 거다. 아프고, 괴롭다.

잘못한 게 없는데도 맞는 건, 무척이나 억울하다. 그런데도 맞아야 한다. 맞아야 하니까 맞는다. 저항은 용서받지 못한다. 아프다. 아프다. 맞고 싶지 않은데. 아프고 싶지 않은데.

눈물이 떨어진다. 억누른 목소리가 당장에라도 터져 나올 것 같다. 하지만, 우는 것도. 소리치는 것도. 소용없다. 자신은 맞아야 한다. 그래서 맞는다. 짓밟히고, 끝내는···


“아···”


낯선 손길이 어깨에 올라섰다. 그것은 차가운 이불이었다. 차갑다고나 할까, 실은 차갑지 않았다. 따듯하지 않을 뿐이지 느낄 수 있는 온기가 있었다. 때리는 게 아닌, 살며시 덮어주는 손길.

그것이 하렐을 과거로부터 끌고 나왔다. 깨닫고 보니, 그곳에 쭈그려 앉아있었다. 구타하는 폭력은 어디에도 없었다. 모두 환각이고, 환청이었다. 자신은 맞지 않았다. 맞았다고 어긴다면, 그 범인은 정적이었다.


“···죄송해요.”


하렐은 입모양으로 그렇게 말했다. 알아들은 걸까. 골목이 유난히도 어두워서 어떤 표정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는 짧은 구박 한 마디 내뱉지 않았다. 검지를 입술에 가져가는, 조용히 하라는 간단한 지시조차 내리지 않았다.

담담하게 하렐의 어깨를 한 번 쓰다듬고, 시선을 제자리로 되돌렸다.

어떤 심정으로 그러했는지 모르겠다. 배려였을까? 그가 입에 달고 다니는 자기만족의 일부였을까?

하렐은 알 수 없었다. 그저 조금은 더 참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되었고, 그래서 조금만 더 참기로 했다. 말을 건다거나, 적어도 손끝 정도는 닿아있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다. 좋지 않은 기억이 되돌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고, 그것이 입술을 간질인다.

나는 여기에 있다. 폭력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롭다. 알고 있더라도, 종종 정적에 갇히면 잊어버린다. 잊어버리고, 헐거워진 기억에서부터 뛰쳐나온 폭력에 휩싸인다. 그래서 말을 하고 싶다.

뭐라도 좋으니 소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참아야 한다. 하렐은 감시역이다. 감시역은 감시를 하는 역할이다. 방해하라는 지시를 하달 받지는 못했다. 언젠가는 방해를 해야할지도 모르지만, 그 언젠가는 지금이 아니다.

잭은 참을 수 있을 거라 믿었기에, 하렐을 붙여놓은 걸 테니까. 그 믿음에 부응해야 한다.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그러니까, 참고 기다리는 거다.

리시스의, 딱딱하고도 다정한 손길이 아직 남아있다. 그러니, 아직 참을 수 있다.


“기다려주시죠. 위험하니까.”


곡예를 부리던 나이프가 집으로 돌아갔다. 그것을 되돌린 리시스의 손길은 할버드와 창을 붙잡았다. 묶어놓았던 실이 풀리자, 두 자루의 무기가 순식간에 그의 등 뒤로 매달렸다. 좁은 골목이라 움직임이 제한되었을 텐데도, 눈 깜짝할 사이에 정비를 마친 그였다.


“검 같은 거, 있으십니까?”


그는 그렇게 말했다.

여태껏 목소리를 억누르고 있던 하렐의 노력은 뭐였을까.

확실히 골목에서 성당까지의 거리는 상당하다. 평범한 목소리로 말하더라도 들리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간회가 다루는 마물들 중에서는 블러드하운드라는 녀석들이 있다. 유난히도 코와 귀가 좋은, 그런 마물이다.

그것을 경계하지 않을 수는 없다. 리시스도 그것을 경계하고 있는 걸 테고, 때문에 조용한 것이다. 하렐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그런 심혈을.

리시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그러했다.

반대로 본다면, 조용한 것을 싫어하는 하렐을 위해 구태여 무언가를 물어봐주는 상냥함이라고나 할까. 누가 뭐라 해도 지금의 하렐에게 검다운 물건은 없었다. 유일하게 들고 있는 가방 하나마저 검이 들어갈 만한 크기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검이 없는지 물어본다니.

바보는 아닐 텐데. 눈도 한 쪽밖에 없지만, 아예 못 보는 게 아닐 텐데.

그게 아니라면, 치마 속에 검을 넣고 다니는 살벌한 여성으로 인식된 걸까.

그런 수많은 생각들이 거쳐가는 와중에도 고개는 잘만 저어졌다.


"저는 무기로 싸우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검은커녕 단도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렇습니까. 어쩔 수 없죠. 그럼, 말한 대로 이곳을 맡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렐의 손에 대거 한 자루가 쥐여졌다. 누군가를 죽이라는 게 아닌, 자신을 지키라는 것 같았다. 제멋대로인 해석일지도 모르지만, 그게 지금의 하렐에게 가능한 하나뿐인 해석이었다.

자신을 감시하는 감시역에게 무기를 쥐어주고, 자신을 지키라니.

차라리 둘밖에 없는 틈을 타 하렐을 처리해버려도 좋았을 거다. 이곳에서 하렐이 죽더라도 쥐도 새도 알지 못할 텐데. 잭이 알게 된다고 해도 그것은 머나먼 나중일 텐데. 그걸 모르는 게 아닐 텐데. 할 수 없는 게 아닐 텐데.

어째서.

하렐은 그나마의 가능성을 쥐어짰다. 퇴로의 확보를 위해서, 라는 걸까? 일리 있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순전히 무사해주기를 바라는, 그런 눈빛.

그것을 단순한 착각이나 오해로 치부하지 못하도록, 떠나기 전의 리시스는 못을 박았다.


“정리가 된다면, 바로 붙어주시죠. 그 편이 더 안전할 겁니다.”


머릿속이 멍해졌다. 무얼 노리는 걸까. 하렐에게서 무엇을 바라는 걸까. 그 답은 조금만 더 생각하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하렐은 끝내 떠올리지 못했다.

아아, 그런 건가, 하고 알아채기도 전에.

리시스는 뛰쳐나갔다.

어둠에서 드러난 칼날들이 가려지지 않은 달빛을 머금고 질주했다. 한 번 휘두른 손에서 세 개의 단도가 날아갔다. 번쩍이며 날아간 작은 단도들이 무기 든 남자 셋을 정확하게 사살했다.


"뭐, 뭐야?!"


마차를 지키는 인원은 총 일곱. 방금의 기습으로 셋이 줄었지만, 아직 넷이나 남아있다. 포대를 옮기는 여섯 명과 그것을 지켜보는 한 명, 거기에 사제까지 포함하면 열둘. 열두 명의 인원을 동시에 무력화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열두 명에게 둘러싸이는 상황을 전투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것은 집단살인이다. 아니, 먼저 당한 건 그들이니 집단보복이라 해야 하나.

리시스는 그것을 바라기라도 하는 듯, 쓰러진 조직원들을 지나쳐 중앙으로 달렸다. 그곳에는 포대를 떨어뜨리며 당황한 기색으로 무기를 뽑아드는 한 명의 희생자가 서있었다.

그를 사간회의 말단이나, 인간, 그, 누군가, 등으로 표현할 수도 있었지만.

하렐은 그 죽음을 보고 희생자라는 단어밖에 떠올리지 못했다. 매섭게 폭주하는 창날, 그것은 일직선으로 남자의 명치를 노렸다.

당연하게도, 남자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경험이 있는 건지, 당황하면서도 옆으로 몸을 돌려 피했다.


"으랴앗!"


이어서 창자루를 잡으려는 손짓, 발을 걸려는 시도.

두 가지의 행동이 동시에, 리시스를 대상으로 삼았다. 상당히 예리한 반격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돌진하는 리시스의 발목을 걸었다. 성공적인 반격, 이라고 하렐은 생각했다. 그리고 당사자 또한 다르지 않았겠지.

리시스는 곧 넘어진다. 팔이나 창을 붙잡히고, 땅을 구르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그에게 승산은 남지 않는다.

도와줘야 하나? 하지만, 무엇을?


-툭!


무언가가 떨어졌다. 둔탁하면서도, 그리 무겁지 않게 느껴지는. 생명의 일부였던 것의 분리. 붙어있어야 했던 것이, 움직여야 했던 것이, 붙잡아야 했던 것이 허무하게 떨어져내렸다.

떨어지는 희생자의 손. 속도를 늦추지 않고 부드럽게 구르는 리시스는 그것을 뒤로 하고 다음 표적을 찾아 움직였다. 신중하고, 또 신속한 움직임. 언제부터였을까. 리시스의 발을 걸었던 '희생자'의 목에는 단검 한 자루가 박혀있었다.

이윽고 스러지는 시체.


“아, 아아아, 아아아아악!”


뒤이어 첫 번째 비명이 울려퍼졌다. 바라본 그곳에는 한 남자가 갈라진 어깨를 부여잡고 소리치고 있었다. 상처는 제법 깊었다. 동맥이 잘려나간 건지, 울컥대는 피가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그 시점에서 리시스는 두 자루의 검을 들고 있었다.

하나는 지금 소리치는 남자의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손목이 잘린 채로 숨을 거둔 희생자의 것. 두 검의 출처를 알게 되자 소름이 끼쳤다.

방금 전, 바람처럼 스쳐지나가는 짧은 순간. 창으로 돌진하는 리시스가 취한 행동은 숫자는 하나가 아니었다.

창으로 찌르며 돌진. 무기를 뽑지 못한 남자가 옆으로 비켜서며 손과 발로 반격을 취하자, 하나 남은 대거로 손목을 잘랐다. 자신을 넘어뜨리려는 발을 뛰어넘고, 시야의 뒤로 지나가는 상대의 머리에 투척한 대거를 정확하게 꽂아넣었다.

거기까지는 포착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무기까지 빼앗다니.

감탄하는 와중에도, 그곳에 존재하는 생명의 숫자가 빠르게 줄어갔다. 남은 건, 여섯. 아니, 이제는 다섯. 그렇게 세어가는 도중에 넷, 셋. 도끼로 난도질한다. 달려오는 남자에게 투척한다. 두 명이 쓰러진다.

창을 든 한 명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덤벼들었으나, 그 창은 작은 생채기 하나 만들지 못했다. 리시스가 잽싸게 할버드를 꺼내들었고, 도끼날과 창대의 사이로 상대방의 창날을 막아냈다. 손목을 비틀고, 절묘한 움직임으로 떨쳐낸다. 눈 깜짝할 새에 비무장이 되어버린 사내는 바꿔든 창에 목이 찔려 죽어버렸다.


“후우···”


리시스가 작은 호흡을 토해냈다. 조금은 거칠었다. 지쳤다는 기색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버거워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익숙하다는 표정. 손등으로 괜스레 피를 닦아내는 그 표정은 그야말로 무채색이었다.

더 이상 덤벼드는 자는 없었다. 살아있는 자는 있었으나, 그것은 한 명에 불과했다. 그 최후의 한 명마저,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져 실금했다.

5분은 걸렸을까. 아마, 3분도 되지 않은 게 아닐까. 시계가 있었다면. 아니, 시계가 없더라도 알 수 있다.

저 청년은. 리시스라는 이름을 지닌 저 인간은.

두말할 필요 없이 위험하다.


...


사수는 보이지 않았다. 싸우는 내내 여유가 생길 때마다 주위를 둘러봤으나, 어딘가에 숨어서 보고를 하러 도망친다거나 화살을 겨누는 기척은 없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면 사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도망치는 방향을 알기는 안다. 사제는 성당의 내부로 불이 나도록 도망쳤다.

성당과 사간회가 무슨 연관인지는 아직 모르겠으나, 사간회가 시체를 원한다는 건 엿들은 대화로 유추할 수 있었다.

시체를 화장하지 않고 넘기는 이유가 뭘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마차를 호위하던 전력이 변변찮게 죽은 것으로 보아서는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중요한 일이었다면, 근처 어딘가의 골목에서 화살이 날아왔겠지. 혹은 감시자가 일을 보고하러 도망가거나 말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걸로 보아서는 딱히 중요한 일이 아닌 것만 같았다.


“저, 저리가! 내가 누누누누, 누군 줄 알고!”


살려놓은 한 명이 손을 휘둘렀다. 필사적인 위협이었으나, 검 한 자루 들지 않은 손에서 위험을 느끼기란 힘들었다. 보아하니 무투가인 것도 아니었다. 그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걸 쉽사리 간파할 수 있었다.

사간회가 동네 양아치에게 무기와 용돈을 쥐어주고는 일을 시켰을 뿐이라는 전형적인 느낌이다.

때문에 양아치들에게 시체를 운반시키려고 했다, 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가 던져야할 질문인가. 아루아를 구하기만 하면 그만인 나에게는 하나의 호기심에 지나지 않지만, 때문에 물어보았다.

어쩌면, 좋은 힌트가 되어줄지도 모르니까.


“몇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만족스럽게 대답해주신다면 살려드리죠.”


말을 건넸다. 돌아오는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느끼던 공포가 흐려지고, 멍하니 허공 아닌 허공을 바라본다. 그 허공에는 내가 서있고, 기회를 건네고 있다. 자신은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모든 사람이 논리와 이치대로 움직이는 건 아니다. 살기 위해 살아가는 건 아니다. 살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고 해서, 그 희망을 붙잡는 건 아니다. 한순간의 충동에, 한순간의 분노에 이성을 잃기도 한다.

그것을 알기에, 그리고 수없이 보았기에. 그것을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라 생각했다.


“퉤!”


남자가 뒤늦게 낸 용기로 침을 뱉었다. 걸쭉한 가래가 왼쪽 볼에 맺혀 질척하게 흘러내렸다.

너무나도 뒤늦은 용기였다. 오줌까지 지리며 넘어지는 자신의 모습이 꼴불견이었고, 그것을 만회하고자 허세를 부리는 건가. 자기만족에 불과한 행동, 때문에 자기 자신만 만족하면 그만이기야 하겠지만.

···이제 와서?

똑같은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는 세상이라고는 해도, 조금 놀라웠다. 이렇게까지 뻔뻔할 수가 있구나.

그는 자신이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거라 착각이라도 한 걸까. 우위에 서있다는 표정으로 끌끌 웃는다.


“알고 싶어?”


남자가 물었다.


“딱히.”

“뭐?”


-푹!


“아아아아악! X발! X발아!”


창날이 남자의 허벅지를 짓이겼다.

화가 났다거나, 무언가 감정에 휩쓸려 하는 분풀이가 아니다

. 의외로 넘어진 상대는 위협적이다. 그가 죽음을 각오하고 덤벼들면 넘어지기 일쑤다. 넘어지면, 그 순간부터는 진흙탕 싸움이다. 뒹굴고, 때린다. 창이라던가 검 같은 무기들의 움직임이 철저하게 제한된다. 대거, 그리고 주먹의 싸움. 그곳에서 대거마저 꺼내지 못한다면, 겨루는 것이라곤 오직 힘밖에 남지 않는다.

그저 치고 박고 싸울 뿐인 소모전. 체력도, 힘도 예전에 비해서 늘어났다고는 해도 그렇게 되면 상당히 치명적이다. 사람을 죽이는 건 쉽지 않다.

쉽지 않다고, 아직까지는 믿고 있다. 그렇게 느끼고 있다. 날이 붙은 무기로 죽이기도 힘들다고 여기고 있다.

그런데 고작 주먹이라니. 주먹 하나로 죽여야 한다니. 일방적으로 때리기만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때린 만큼 얻어맞거나, 그보다 많이 맞을지도 모른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역으로 당할 가능성도 높다.

감수하고 싶지 않은 위험이고, 때문에 감수하지 않는다. 설령 몸과 몸이 얽히더라도 상대가 나의 위로 올라서지 못하도록.

움직이지 못하게 망가뜨려놓는다.


-푹!


이어서 복부를 꿰뚫어 헤집는다. 남자가 아까부터 욕을 뒤섞은 비명으로 무어라 외치지만, 시끄럽기만 할 뿐이지 정작 귀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이어서 어깨를 뜯어낸다. 팔을 찌르는 편이 좋기는 하지만, 팔을 노리면 피해지거나 창을 붙잡힐 위험이 있다.

그러니, 노리는 건 어깨다. 몇 번인가 찔러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마침내 목을 찌른다.

숨이 멈추는 걸 확인하고, 도끼로 팔과 다리를 잘라냈다.

하나, 그리고 둘. 다른 시체들의 것도 공들여 절단했다.

죽어버린 시체의 사지를 모두 자르지 않으면 안심하지 못한다. 죽은 척일지도 모른다. 목에서 피를 흘린다고, 머리에 칼날이 박혔다고, 완전히 죽었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끝난, 건가요···?”


하렐뉴가 골목에서 삐져나왔다. 얼굴에 표정은 없었지만, 대거를 꼬옥 쥔 두 손이 벌벌 떨렸다. 느끼고 있는 건 공포인가.

누구에게? 나? 나에게? 의외이기는 하지만 딱히 납득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이해할 수 있다. 나에게는 시체에 대한 존중이 결여되어 있다. 마구 헤집고, 파헤친다. 인간의 모습이 남지 못하도록 다져놓는다.

무서운 게 당연하겠지. 하지만, 그 대상이 내가 아니라면? 없지 않은 가능성이다.

내가 아닌, 그녀 또한 아닌 누군가가 있다. 시선이, 기척이 느껴진다. 어디일까. 눈동자를 빠르게 굴려 탐색했다. 결과적으로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던 순찰병들과 눈이 맞았다.


“으, 으아아아아악!!”


세 명의 순찰병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예전에는 붙잡으려 덤벼왔지만, 요즘에는 지켜보기만 하다가 도망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현상금, 그리고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묵묵하게 시체를 해부하는 모습이 영향을 주었겠지.


"하아···"


무기를 거두었다. 주위에 기척은 없는듯했다. 도망친 순찰병들이 기사라던가, 강한 전력을 불러오면 성가시다.

지금은 물러나는 편이 좋겠지.


‘잭이 이곳으로 보낸 이유는 뭐지···?’


고민하면서, 하렐뉴에게로 걸어갔다. 내가 다가가자, 그녀는 떨리는 손끝으로 대거를 돌려주었다.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모를, 희미한 망설임. 그것이 드러나는 건 어디까지나 손끝 하나였다. 손목의 위부터는 차분했다.

괜찮다, 기보다는 괜찮은 척을 하는 것 같았다.


“조금, 무섭네요.”

“···그렇겠죠.”

“확인사살치고는 너무 비효율적이에요. 잔인하고요.”


맞는 말이어서 부정하진 않았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공을 들인다. 이 사람을 죽인 건 바로 나라고, 그렇게 알리고 싶기라도 한 걸까. 그게 아니라면, 죽이는 입장은 나라고 안도하고 싶은 걸까.

깨닫고 보면 탐닉하고 있는 자신이 느껴진다.

이제는, 그런 자신에게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포기했다.


“그럴지도 모르죠.”


대화를 시작하니, 금세 긴장이 풀린 것 같은 그녀였다. 사제와의 대화를 엿듣던 도중에도, 말을 하지 못한다는 상황 자체에 괴로워하고 있었으니까.

이제는 확실하다. 하렐뉴에게는 무언가, 떨쳐내지 못한 과거가 있다. 그 속의 트라우마가 조용해지는 순간마다 찾아온다.

웅크리고, 신음하던 그 모습은 지금 앞에 서있는 그녀의 분위기와 너무나 달랐다. 딱히 동정이 된다거나, 마음이 아픈 건 아니지만.

배려해줄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빚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다. 작은 호감 하나가 누군가의 정해진 계획에 사소하게나마 오차를 만들어줄지도 모른다는. 누군가가 하렐에게로 향하고 있는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게 하려는.

그런 노림수가 있다.

가능성은 없겠지만, 그래도. 지푸라기는 많이 잡을수록 좋으니까.


“잭이 원하던 건, 여기까지가 맞습니까?”


나는 화제를 돌렸다. 물어봐야 했다. 열둘이라는 숫자를 결코 작게 여기지는 않지만, 시셀티스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부족하겠지. 틀림없이 부족할 거다. 더 많은 사람을 죽여야 한다.

잭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판단한 건가. 그렇다면, 내가 괜한 걱정을 하는 건가. 지금껏 죽여온 사람의 수는 결코 적지 않다. 특히나, 백화가 알려주었던 지난번의 창고에서는 마흔이 넘는 수를 죽였다.

그들의 수많은 영혼이 언제 고갈되는 건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어쩌면 잭은 알고 있지 않을까. 나보다도 먼저 영혼에 대해 눈치 채고 있던 잭의 판단은 정확하지 않을까.

믿음과 의혹이 뒤섞인다. 마음이 어디로 기울지는 하렐뉴의 대답에 따라서 갈리겠지.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냥 잭이 당신을 따라다니라고 해서 따라왔을 뿐인걸요.”

“그렇습니까.”


그렇게 넘기며, 나는 무기들을 회수했다.

분간할 수가 없었다. 표정이라던가, 어조라던가. 하나 꿈쩍하지 않고 말하는 그녀였다.

나는 독심술을 배운 적은 없다. 어지간히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참과 거짓을 가려내지 못한다. 충분한 정보가 있다면 가능하겠지만, 골똘히 생각해봐도 정보부족이란 결론만이 도출된다.

믿는 것도, 믿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알고 있으면 된다. 지금은 그런 단계다.

하렐이란 인물에 대해서도, 잭이 어째서 나를 이곳으로 보냈는지에 대해서도. 그 밖의 여러 가지 의문들도.

아직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천재가 아니니까···”


마지막 대거를 회수하며 중얼거렸다.

완전한 혼잣말이었지만, 하렐뉴는 그에 답해주었다.


“그러게요. 언제나 아쉽잖아요. 천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게 아니니까 더 괴롭잖아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가능성이 보여도, 그걸 하지 못할 때마다. 그렇게 괴로워지는 거예요. 어떤 느낌인지 완전히는 아니어도 알 것 같네요. 그 마음이요.”


잠시 바라보자, 무표정한 얼굴을 갸웃하는 하렐뉴였다.


“안심하세요. 독심술 같은 건 없으니까요. 있다고 해도, 자세히는 알 수 없잖아요 또. 아, 근데 있으면 좋긴 할 것 같네요. 잭,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니. 그건 꽤나 즐거울 것 같으니까요.”

“그건, 확실히 좋겠군요.”

"그쵸?"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서는 석궁의 상태를 살폈다. 아까 발에 걸렸을 때에 억지로 몸을 던진 탓에 나보다도 먼저 바닥에 떨어졌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다. 흠집이 났을 뿐이지 휘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장전해두었던 화살은 부러졌지만, 새로 갈아 끼우면 그만이다.


-철컥!


새로운 화살을 장전하고, 석궁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도망친 사제는 어떡하실 건가요?”

“마음 같아선 죽이고 싶지만, 아무래도 그럴 때가 아니니까요. 순찰병들한테 들켰기도 하고, 혹시나 성당기사가 깨버렸을지도 모르니 얼른 도망치는 편이 낫겠죠.”

“그런가요. 하지만···”


하렐이 말을 끌었다. 눈꽃 같은 눈동자가 나의 옆구리를 타고 흘러갔다.

성당이 있는 곳, 성당으로 향하는 길이 있는 곳, 작은 언덕 위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는 곳. 그녀가 그곳을 바라보았기에, 나 또한 등을 돌려 눈을 향했다.


“도망치기엔 이미 늦은 것 같은데요.”


작가의말

 결국 라이트노벨 문체로 돌아왔습니다. 역시 저에게는 이게 더 맞는 것 같군요. 허헣... 가독성은... 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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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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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불사를 베어내는 검-3 21.05.31 9 0 10쪽
120 불사를 베어내는 검-2 21.05.08 17 0 11쪽
119 불사를 베어내는 검-1 21.05.06 13 0 11쪽
118 녹빛의 검은 백화(白花)를 피워낸다. 21.05.04 20 0 12쪽
117 재생 21.04.28 16 0 12쪽
116 이뤄주지 못할 소원 21.04.27 40 0 11쪽
115 정보상과 의사 21.04.25 35 0 17쪽
114 상실 21.04.24 21 0 9쪽
113 고정부(固定附) 21.04.24 16 0 11쪽
112 낙마 21.04.14 20 1 13쪽
111 구역질 21.04.12 28 0 11쪽
110 발자국 21.04.09 62 1 12쪽
109 발을 들이다 21.04.07 48 0 11쪽
108 아침에는 가재 21.04.03 58 1 11쪽
107 별들에게 호소하는 밤 21.03.27 30 1 13쪽
106 지우지 못한 단서 21.03.24 27 1 11쪽
105 붙잡히다 21.03.23 25 1 11쪽
104 주맥시(呪脈視) 21.03.22 29 1 11쪽
103 잭이라는 화제 21.03.19 31 1 12쪽
102 믿음, 극복, 퍼져나가라 21.03.17 29 1 13쪽
» 성당, 시체, 전투 21.03.13 27 1 24쪽
100 외전-사냥꾼들의 밤 21.03.12 23 0 22쪽
99 간단한 수수께끼 21.03.03 20 0 12쪽
98 이동계획 +1 21.02.18 39 1 11쪽
97 쥐구멍에서 +1 21.02.16 30 0 13쪽
96 촉수 21.02.08 37 1 11쪽
95 협력제안 21.02.08 38 0 12쪽
94 탄로 21.02.06 30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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