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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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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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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2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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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맥시(呪脈視)

DUMMY

“우리의 과거를··· 구원하소서···”


남자는 말했다. 그리고 죽었다. 불과 몇 초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무언가를 묻지도, 듣지도 못했다.

시체를 검게 물들이며 퍼져나간 맹독에 해독제는 없었다. 모처럼 확보한 인질이었는데, 재미없게 뒈져버렸다.

쯧 하고 혀를 찬 잭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시시하다. 이런 곳에서는 배신이라도 때려서 살아남아야 하는 거 아닌가. 입을 깃털보다 가볍게 만들어서 있는 거 없는 거 다 불었을 거다.

잭이라면 그렇게 했을 터였다. 그리고, 리시스라는 청년 또한 그렇게 살아남기를 갈구했을 거다. 두 사람이 아니더라도, 살아가기를 원하는 자라면 누구나가.

몸에 새긴 마신교의 문양이 삶에 대한 갈망을 죽여 놓기라도 한 건가. 기이한 문양을 새기고 마신교를 칭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망설임이 없었다.

첫 번째는 우연일 것이라 여겼다. 두 번째도 운이 나쁘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번으로 세 번째였다.

세 번째부터는 우연도, 악운도 아니다. 필연이다. 그들에게는 삶에 대한 의지가 결여되어 있다.

잭은 확신했다.


“자신의 삶을 버릴 정도로 매혹적인 목적이라··· 알고 싶어 미치겠군···”

“네 녀석도 마신교의 목적은 파악하지 못한 건가?”

“매번 이래서야 원··· 아무리 나라도 수가 없지.”


끅끅 웃으며, 잭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뭐어, 그래도 이걸로 그 녀석에게 유예가 주어졌으니 나쁘기만 한 건 아니야. 우리 애들한테 맡겨서 공공연히 떠들고 다녀야겠어. 바로 이 몸께서 마신교의 사도를 죽였다고.”

“은폐는 할 수 없나?”

“마신교는 소수파야. 소수정예지. 가끔씩 이런 개뼈다귀들도 굴러다니기는 하지만···”


잭은 발끝으로 시체를 툭툭 건드렸다.


“은폐는 무리야. 물론, 이 녀석의 사교성이 너보다도 못하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지.”

“···실랑이를 벌일 생각은 없다.”

“그건 유감인걸. 우리 엘프 나리만큼 놀리는 맛이 좋은 사람은 없는데 말이야.”


끅끅대는 웃음소리가 다시금 골목길에 울려퍼졌다.

엘무리아스가 미간을 찌푸렸지만, 잭은 개의치 않고 더욱 농후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목적을 모른다는 건 피차일반이야. 하지만,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게 뭔지는 알고 있지. 누가 무엇을 확보하냐에 달려있는 거야. 이번에는 단테의 실수였어. 백화가 리시스를 풀어줄 거라고는 생각치도 못했겠지.”


사람은 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협박을 해도, 인질을 잡아도, 눈이 돌아가서 물어버릴 때가 있다.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게 단테의 허점이었다. 그 허점이, 치명적으로 작용해버렸다. 아주 제대로.

비웃지 않고 어떻게 참을 수가 있겠는가.

신명나게 끅끅거렸다.

듣기 거북했는지 엘무리아스가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네 녀석은 목소리만으로 사람을 지치게 하는 재주가 있군. 슬슬 그만 듣고 싶을 지경이다. 다음으로 넘어가도록 하지. 백화라는 소녀가 단테에게로 넘어가면 곤란한 게 아닌가?”

“이봐, 너무 그렇게 빡빡하게 살지 말라고.”

“네 녀석이 할 말인가?”

“내가 할 말은 아니지. 좋아, 아주 좋은 지적이야.”


엘무리아스가 질렸다는 듯이 발걸음을 떼었다.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거리를 벌리려고 노력하는 엘프의 뒷모습을 잭은 끅끅, 또다시 끅끅 웃으며 뒤따랐다.


...


이른 새벽. 자욱한 안개는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관문을 지나기로 약속한 시간을 넘어서면 아무리 뇌물을 주었다고는 해도 지나갈 수 없기 때문에 출발을 미뤄서는 안됐다.

사라지고 싶지 않다는 바람으로부터 비롯된 두려움을 억누르고, 그것을 부질없게 여기기까지. 나는 무수한 거짓말로 스스로를 속이며 안장에 올라탔다.

괜찮을 거다, 적지 않은 사람을 죽였으니까, 설령 사라지더라도 루드가 대신해서, 와 같은 심증뿐인 생각들을 맹신하고, 이후로는 아무런 생각도 가지지 않았다. 아무런 감정도 생겨나지 않았다.

차분하고 차가운 태도를 일관하며, 주위의 기척에 집중했다.


“괜찮을 거예요. 지금은 무척 안정되어있어요.”


똑같이 안장에 오른 하렐뉴가 대뜸 말했다. 그녀의 손이 말의 목을 쓰다듬고 있었기에, 나에게 향하고 있다는 건 깨닫지 못했다.

내가 한 마디 대답 없이 침묵하고 있자, 그제서야 추가적인 설명이 덧붙었다.


“리시스님의 영혼 말이에요. 안심하셔도 좋아요.”

“영혼을 볼 수 있으십니까?”

“보고 싶으면 볼 수 있어요.”


나는 구태여 묻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물어본다고 해서 알려줄 것 같지는 않았다.

허물없는 사이가 되어보자는 말과 다르게, 비밀과 다음으로만 답하는 하렐뉴였다.

더는 기대를 품지 않는다. 체념하고, 내버려둔다.


“···그렇습니까.”


툭하고 내던지듯 대화를 끊었다.

그대로 아무래도 좋은 화제가 이어지리라고 예상했으나,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것은 무의미한 일상적인 화제가 아니었다.

그녀의 말은 내가 원하는, 알고 싶어 하는 지식을 담고 있었다.


“주맥시(呪脈視)라고 해서, 주술의 흔적과 맥을 볼 수 있는 특수한 시야에요. 그리고, 주술의 주체는 기본적으로 ‘영혼’이고요. 그러니까 맥의 집합체라고도 할 수 있는 영혼이 보이는 건 당연해요.”


설명을 끝낸 하렐뉴가 돌연히 한쪽 눈을 감았다. 무언가를 내뱉지도, 그 밖의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단지 감았던 눈을 다시 뜰 뿐이었다.

그 작은 행동 하나만으로, 그녀의 눈동자를 채우던 하얀색이 사라졌다. 아니, 물들었다.

검게 물든 그녀의 눈동자는 어둠이자, 공허였다. 검은색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곳에는 색이 존재하지 않았다.


“참고로, 팔란타(마족)는 영혼이 없어요. 그러니까 남의 것을 볼 수는 있어도, 자신의 것은 아무것도 비치지 않아요. 하지만, 리시스님은 다르겠지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좋아요.”


하렐뉴는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 천천히 뜬 오른쪽 눈은 다시 눈꽃 같은 흰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눈은 세상을 영혼에게 비춰주는 거울이에요. 주맥시는 그걸 반대로 만드는 기술이고요. 영혼이 세상을 눈에게 비추도록 한다고나 할까요. 팔란타는 영혼이 없으니 방법이 많이 다르지만, 리시스님께서는 인간이시니 아마 그렇게 이해하시면 될 거예요.”

“방법은 알려주지 않는군요.”

“리시스님의 영혼은 지나치게 거대하니까요. 신체가 감당할 수 없을 거예요. 마지막 하나 남은 눈까지 잃고 싶은 게 아니라면, 시도하지 말아주세요.”


감아보려던 눈꺼풀을 멈추었다. 살벌한 감각이 뒤늦게 찾아와 새벽의 한기를 빨아들였다.

후우, 하고 길게 숨을 내쉬며 엄습해오는 감정들을 가라앉혔다. 아무래도 하렐뉴는 설명에 미숙한 모양이었다. 순서가 뒤죽박죽 섞여있어서 정리하느라 애를 먹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가르치는 데에 재능이 있나봅니다. 머리가 나쁜 저라도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요.”

“잭이 알려줬어요. 조금은 쓸모 있어지라면서요. 메이드한테 가사 이외의 쓸모를 기대해서 그때에는 꽤나 고생했었어요.”


역시,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야, 라고 떠올렸다. 콜로세움에서 잭이 유난히도 나에게 집착했던 이유. 그 근거를 이제야 밝혀냈다.

제법 흐릿해진 기억이지만, 잭은 한때 콜로세움의 관중석에 있었다.

당시에는 살아남기 위해 죽이고, 죽였다는 사실에 절망하느라 되짚어보지 못했지만. 많은 감정들을 잃어버린 지금이라면 부자연스럽게 여겨진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위험을 감수하며 철창에 갇히기를 지원할 리가 없다.

잭은 주맥시를 사용했고, 내 안에 깃든 루드의 영혼을 보았다. 그것으로부터 어떠한 가치를 느꼈겠지. 어쩌면, 그것을 찾아 오랜 시간 헤매왔던 건지도 모른다.

뭐랄까. 조금 후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과거를 듣는 건, 이번이 처음이군요···”


나는 하렐뉴가 자신의 과거를 밝혔다는 사실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끊임없이 말을 했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었다.

안개가 짙다던가, 밤이 깊었다던가. 대부분이 주변 환경을 주제로 삼은 대화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그녀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허물없이 지내자고 해놓고, 계속 숨기기만 하는 것 같아서요. 좋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다예요.”

“···그렇습니까. 그건 제법 기쁘군요.”


나는 일부로 미소를 지어냈다. 웃음을 섞은 짧은 숨소리를 내뱉었다. 그것을 보고, 들은 하렐뉴가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말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정보를 흘려두도록.

일말의 진심조차 섞이지 않은 반응을 비추어보였다.

나는 믿지 않고, 믿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도 진심도 그녀에게로 향하지 않는다.

이용하거나, 이용당하는 관계. 속고 속이는 관계.

그녀가 많은 것을 알려주고, 줄수록 의심은 깊어지겠지.

감정은 사사롭다. 논리와 진실만으로 행동한다.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 베풀어진 은혜도, 쌓아올린 신뢰도 배신의 좋은 소재가 된다.

어머니의 죽음을 잊지 않았다. 바닥에 엎어져 등에 칼이 꽂히던 그 광경을 기억하고 있다. 단테라는 가증스런 이름에 복수를 연상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미뤄두었다. 나 같은 변변찮은 것보다도, 아루아가 중요하니까.


“다 왔네요. 관문이에요.”


대화가 끝나고, 하렐뉴가 초조해하지 않을 정도의 정적이 지나자 마침내 관문 앞에 도착했다.

본래라면 닫혀있어야 할 관문은 말 한 마리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틈만을 벌리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개를 뚫고 멀리서 달려온 한 남자가 인사를 건넸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평범한 생김새.

그러나, 독특한 무장이다. 양옆의 허리에 검을 두고 있다. 두 자루.

보통의 검문관들은 창과 검 한 자루가 정식적인 무장일 터인데, 꽤나 특이하다.

모험가에서 군인으로 전직한 건가.

흔히 있는 경우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겠지.

하렐뉴는 “수고하셨어요.”하고 답하며, 말 위에서 1실버를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아든 중년의 남성은 씨익 웃으며 “미인이시네요.”하고 아부를 떨었다.


“그렇게 말해도 돈은 안 나와요. 저희라고 많은 건 아니니까요.”

“전에 받은 걸로도 충분합니다. 더는 바라지도 않아요. 그냥 예쁜 사람에게 예쁘다고 했을 뿐입니다. 제 아내의 소싯적이 떠오르는군요.”

“그런가요. 고마워요, 칭찬해주셔서요.”

“겸손한 아가씨로군요.”


남자가 하, 하, 하 웃었다. 새벽에 어울리지 않는, 몹시 시끄러운 웃음소리였다. 마치, 외침으로 들리기까지 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전하는 신호일지도 모른다고.

의구심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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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녹빛의 검은 백화(白花)를 피워낸다. 21.05.04 21 0 12쪽
117 재생 21.04.28 2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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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상실 21.04.24 22 0 9쪽
113 고정부(固定附) 21.04.24 17 0 11쪽
112 낙마 21.04.14 21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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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별들에게 호소하는 밤 21.03.27 31 1 13쪽
106 지우지 못한 단서 21.03.24 28 1 11쪽
105 붙잡히다 21.03.23 25 1 11쪽
» 주맥시(呪脈視) 21.03.22 30 1 11쪽
103 잭이라는 화제 21.03.19 32 1 12쪽
102 믿음, 극복, 퍼져나가라 21.03.17 30 1 13쪽
101 성당, 시체, 전투 21.03.13 29 1 24쪽
100 외전-사냥꾼들의 밤 21.03.12 26 0 22쪽
99 간단한 수수께끼 21.03.03 22 0 12쪽
98 이동계획 +1 21.02.18 41 1 11쪽
97 쥐구멍에서 +1 21.02.16 32 0 13쪽
96 촉수 21.02.08 38 1 11쪽
95 협력제안 21.02.08 68 0 12쪽
94 탄로 21.02.06 3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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