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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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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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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3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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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7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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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에게 호소하는 밤

DUMMY

적막이 무거웠다.

건조한 시선이 무서웠다.

서있기만 할뿐인 버젓한 자세가 위협이었다.

너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경계를 할 필요도 없다, 자세를 취하지 않아도 된다, 그 정도의 상대이다. 듣지 않아도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허세, 라는 단어가 떠올랐다가 바람처럼 흩어졌다. 그리 생각하고 싶을 뿐이었다. 어떠한 근거도 찾아볼 수 없었다.

뽑아든 단검을 아무리 굳게 쥐어도, 호흡은 가다듬어지지 않았다.


“로셸!”


목소리가 뛰쳐나왔다. 리더였다. 그녀는 팔에 소녀의 목을 휘감고,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소녀는 아직까지 의식을 되찾지 못한 건지, 그녀의 팔에 매달린 채 늘어져있었다.


“인질, 입니까···”


리시스가 내뱉었다. 한숨처럼 들리는 공허한 목소리.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에 들어차는 것은 감정이 아닌, 포기에 가까운 무언가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시시각각 포기라는 선택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것을 알아차린 것은 로셸뿐이었다.

리더는 알지 못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 살아온 그녀는 알 턱이 없었다.

포기하는 자의 눈빛을. 체념의 전조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

때문에 알려주어야 한다. 놓아주자고.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그러나, 곧바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가로막혔다.


“무사히 넘겨주신다면, 조용히 사라지겠습니다.”


그것은 재촉도, 협박도 아니었다. 그는 내뱉고는 묵묵하게 기다렸다. 가만히, 그리고 조용히 서서 바라봤다.

그 뒤로는 한 마디도 덧붙이지 않았기에, 그 전의 한 마디가 마지막으로 다가왔다.


“거짓말이 아니라고, 어떻게 믿지?”


리더가 물었다. 시간을 벌 심산이었을 거다.

효과가 있을까. 그의 인내심이 어디까지 유예를 남겨줄지가 관건이었다. 성당으로 조사를 나간 동료들이 돌아온다면, 승산은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어렴풋이. 아니, 뚜렷하게 고려하고 있을 거다. 믿지 못하겠다는 주장이 시간벌이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떠올리고 있을 거다.

단번에 알 수 있다. 저 사내는 로셸과 닮아있다. 동류다. 최악을 상정하고 움직인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점만은 일치한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니, 저 사내가 소녀를 포기하고 덤벼드는 건 시간문제다. 길게 끈다고 나아지는 상황이 아니다. 악화되어가고 있다.

죽음으로 다가서고 있다.


『네가 죽으면, 소피아는 누가 구해주는데.』


주먹을 쥐었다.

이빨을 깨물었다.


『더럽혀진 나라도, 좋아해줄 거야···?』

『언제나, 당신만 기다릴 테니까. 꼭, 살아서 돌아와 줘.』


손을 뻗었다.

앞이 아닌 옆으로.

조심스럽게.


“로셸···?”

“놔줘요.”

“로셸, 하지만···”

“됐으니까.”


원하는 건, 그녀의 곁에서 사랑을 속삭이며 살아가는 것.

그녀의 곁에서 삶을 느끼는 것.

행복을 얻는 것.

이 세상에서.

그녀와 닿고, 그녀를 듣고, 그녀가 잊도록 도와주는 것.

결단코, 죽는 게 아니다.


‘미안해, 소피아. 많이 늦어질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반드시 살아 돌아갈 테니까.

돈 같은 같잖은 거. 잔뜩 들고 갈 테니까.


“부탁이야, 리더.”


눈을 감았다.


-챙그랑!

날붙이가 떨어졌다.

이어서 똑같은 소리가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가까워진 리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샌가 접힌 무릎이 몹시도 뜨거웠다. 몹시도 축축했다.


“미안, 미안···”


소피아.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한 그 이름이 자꾸만 떠올랐다.


...


차가운 물세례도, 따가운 따귀도 날아오지 않았다. 과격한 행동으로 깨우지 않았다고 해도 성욕의 분출구로 쓰일 각오정도는 하고 있었다.

예상외로 그들은 의외로 신사적인 인격을 지니고 있는 건지, 기분 나쁜 질척함 없이 깨어날 수 있었다.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고용을 제시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다행히 혀를 가로막는 무언가는 없었다. 목구멍을 쑤신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평범한 기상. 하렐뉴는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있던 몸을 조심스럽게 뻗었다. 손목도, 발목도 구속당하지 않았다. 신체의 자유가 허락되어 있다는 것에 우선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르는 얼굴이 아닌, 요 근래 깜빡이는 것도 잊고 감시했던 청년의 모습이 보였을 때.

굳혀놓았던 표정이 사르르 녹아내릴 정도의 무언가가 심장을 떨어뜨렸다. 철렁 하고 내려앉았다. 안심했다. 그 너머의 표현을 알지 못했기에, 하렐뉴는 적잖이 당황했다.


“리시스···?”


이름을 부르자, 모닥불을 바라보던 청년의 시선이 넘어왔다. 하렐뉴를 바라봐주었다. 그 뿐이지, 무언가 말을 건네 오지는 않았다. 조용히 바라보는 눈. 그 옆의 눈꼬리가, 그 위의 눈썹 끝이 아주 살짝 내려갔다.

웃은 걸까. 미약하게 들려온 날숨이 애매했다.


“여기는, 어디죠···?”

하렐뉴는 두리번거렸다. 주위를 살피니 황야였다. 높이 자란 들풀. 그것들을 짓눌러 눕혀서 원형의 작은 공간을 만들어두었다. 곳곳에는 조금 큰 짐승들을 잡기 위한 덫이 놓여있었다. 덫, 이라고는 해도 풀들을 매듭지어서 올가미에 가까운 형태를 만든 것이지만.

없는 것보다는 마음이 편했다.


“교역로에서 조금 떨어진 황야입니다. 그림자 숲과는 조금 거리를 두었으니 위험한 마물이 오는 일은 없을 테죠.”


그렇게 말하며, 청년은 나뭇가지를 건네주었다. 밤이라 알아보기는 힘들지만 무언가가 꽂혀있었다. 모닥불의 가까이에 가져가니 잘 익은 고기였다.

보존식이 아닌, 생고기. 그동안에 사냥이라도 했던 걸까. 그것을 건네준 청년은 대거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납치당한 일은, 기억하고 계십니까.”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저어보이지도 않았다. 기억을 하고 있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도 아니며, 대답을 할 수 없는 질문인 것도 아니었다.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기억의 유무보다 커다란 의문 하나가 목구멍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을 있는 힘껏 밀어서, 입 밖으로 꺼냈다.


“어째서, 구해주신 건가요··· 왜 저 같은 걸···”

“버려질 거라고 생각하셨던 겁니까.” “···그거 말곤, 없잖아요.”

“이유가 있었습니다. 기적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마물에 대해 빠삭하다는 것, 그리고 아직 듣지 못한 여러 이야기들도 있고, 무엇보다 당신이 죽어버리면 잭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설명할지도 난처해지니까요. 그리고 또···”


리시스가 말을 길게 끌었다.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꺼내고 싶은 게 아닌, 꺼내야 하는 말을 지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유를 만들고 있었다. 서투르고, 어색하게, 그러면서도 열심히 지어내려 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고마웠는지 그만 쿡 하고 웃어버렸다.


“뭐야, 그게···”

“···아무튼,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런가요.” “그렇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황야의 밤은 잠잠했다. 들려오는 소리는 두 가지. 모닥불의 장작이 무너지는 소리. 그리고 어딘가에서 울부짖는 짐승의 소리.

타들어가는 장작에서 버티지 못한 불씨가 타닥 튀어오르면, 멀리서 우오옹 하고 무언가가 울음을 퍼뜨린다.

그러고는 정적이 찾아온다. 무척이나 조용하고, 잠잠하다.

신기하게도 무섭지는 않았다. 불안하지도, 침묵이 폭력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어째서인지를 찾지 않아도, 그럴 수 있는 원인이 바로 앞에 있다는 걸 하렐뉴는 알았다.

잭에게 이야기만 전해 들었을 때는 한심했다.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는 성가셨다. 관문의 틈새로 창대에 매단 거울을 내밀 때에는 귀찮다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완만한 관계를 위해 육체를 내어주기는 하더라도 마음은 전혀 가지 않을 거라 단언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의외로 괜찮을 사람일지도.


“위험했을 텐데, 저를 위해서 감수해주신 건가요.”

“이유가 있었다니까요. 자신을 위해서 행동했을 뿐입니다. 설명도, 했는데···” “알겠어요. 그렇다고 쳐요.”


아마, 잔뜩 허세를 부렸겠지. 죽을지도 모른다고 수없이 생각하며, 작은 숨결 하나까지 거짓을 섞어 내뱉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필사적으로 싸워서 이겨주었던 걸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피로에 잠긴 목소리가, 무겁게 감겨 사라지는 눈동자가 고마웠다.


“···원래는 싫어했어요, 당신을요.”

“···그렇습니까.”

“왜 싫어했는지는, 말하지 않을게요. 이제는 아니니까요.”


이제는. 하렐뉴는 거기에서 말을 그쳤다. 그 뒤로는 말하지 않았다. 혹여나 오해하지는 않을까, 하고 괜한 염려를 했다.


“이제는···?”


끊겨버린 목소리에 불안했는지, 리시스가 감았던 눈을 뜨고 물어왔다.

하렐뉴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의외로 참을성이 없는 성격이었기에, 궁금해 하며 물어오면 대답을 피하지 않았다. 끌어안고 괴로울 바에는 차라리 지금 말하고 편해지는 게 좋았다.

“이제는 좋아해요. 엄청은 아니어도, 좋아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습니까.”


여느 때와 같은 담백한 대답.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때문에 좋았다. 예상할 수 있는 사람. 과격하게 감정을 들이밀지 않는 사람. 아아, 그래. 잭이라는 사람과 더할 나위 없이 닮아있다.

그 후로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눈을 감는 리시스의 표정은 어딘가 온화했다. 품안에 가둔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피어있지 않을까.

깊어진 잠결에 턱을 가둔 그의 팔이 무릎을 타고 흘러내렸다. 조금 벌어진 입술의 사이에서 미지근한 침이 삐져나왔다. 지금까지의 인상과 다르게 칠칠치 못해서,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행여나 모닥불로 고꾸라질까. 조심스럽게 다가가 웅크린 몸을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자신 또한 그 곁에 드러누웠다.


“심술 나네요. 누군지는 몰라도··· 부러워요.”


감지 않은 백색의 눈동자에 밤하늘이 비추었다. 붉은색, 하얀색, 푸른색이 뒤섞인 성운들을 배경으로 무수한 빛들이 소나기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떨어지는 새하얀 궤적들이 유난히도 많아서, 이 하늘의 별들이 언젠가 사라지는 게 아닐까 괜한 걱정을 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고 하자.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 말이야. 그리고 세상에 멸망이 찾아온다면. 자신과,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이 목숨을 바쳐서 멸망을 막을 수 있다고 하면. 너는 어떡할래?』


새삼 잭의 목소리가 스쳐갔다. 막 들었을 때에는 난해한 질문이어서, 뒤로 미루었지만. 그리고, 그 문장을 떠올리는 지금도 한창 미루고 있지만.

그래도 무언가 알게 되었다.

자신은 목숨을 바치지 않지만,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구한다고 목숨을 바친다면. 아마, 하렐뉴는 그것을 필사적으로 막지 않을까. 무슨 짓을 벌여서라도 막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목숨을 바쳐 구한 세계에서, 무얼 하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앞선 질문보다도, 이쪽이 더 난해하게 다가왔다.

적어도, 잭이 말한 이야기에서는 둘의 최후가 같았다. 동시에 죽어버린다. 함께 구하고, 함께 퇴장한다. 손을 맞잡고, 멋지게 구원한다. 어쩌면 해피엔딩일지도 모른다.

아니, 딱 잘라 말해서 해피엔딩이다. 함께 살아가는 것보다는 못해도, 행복한 결말이라고. 하렐뉴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한 쪽만이 희생하는 이야기. 둘 중 하나만이 살아남는 이야기라면. 하렐뉴 본인이 그 이야기의 생존자라면.

아아, 죄책감을 이겨낼 수 없다. 허무감을, 공허함을. 자기 자신이 싫어서 견디지 못할 테지. 목을 매달고 죽는 것도, 아무래도 좋다며 남자들에게 몸을 던지는 것도 하지 못한다. 스스로를 망가뜨리지 못하고, 제정신인채로. 수없이 울고, 울고, 울면서 죽을 때까지 살아간다.


“그건, 너무 괴롭잖아요···”


이로서 하렐뉴는 알았다.

이제, 자신은 살아서 돌아갈 수 없다고.

죽어서, 퇴장해야 하는 한 사람이라고.


“정말로, 철저하네요. 잭···”


그의 계획을 망가뜨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고는 해도.

잭의 그 말이 우스갯소리밖에 되지 않았다고는 해도.

지금의 하렐뉴는 이렇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제가 ‘그릇’이었다면, 좋았을 텐데요···”


죽어야만 하는, 죽어서도 이루지 못할 연심.


“어째서 저는, 아무것도 아닌 건가요···”


하늘을 향해 탄식했다.

바람에 녹아들어 오르지 못한 목소리는 별들에게도 닿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든 청년의 귓가에도 스며들지 못했다.


그렇게 밤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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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녹빛의 검은 백화(白花)를 피워낸다. 21.05.04 21 0 12쪽
117 재생 21.04.28 2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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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상실 21.04.24 22 0 9쪽
113 고정부(固定附) 21.04.24 17 0 11쪽
112 낙마 21.04.14 21 1 13쪽
111 구역질 21.04.12 29 0 11쪽
110 발자국 21.04.09 64 1 12쪽
109 발을 들이다 21.04.07 50 0 11쪽
108 아침에는 가재 21.04.03 58 1 11쪽
» 별들에게 호소하는 밤 21.03.27 31 1 13쪽
106 지우지 못한 단서 21.03.24 28 1 11쪽
105 붙잡히다 21.03.23 25 1 11쪽
104 주맥시(呪脈視) 21.03.22 29 1 11쪽
103 잭이라는 화제 21.03.19 32 1 12쪽
102 믿음, 극복, 퍼져나가라 21.03.17 30 1 13쪽
101 성당, 시체, 전투 21.03.13 29 1 24쪽
100 외전-사냥꾼들의 밤 21.03.12 26 0 22쪽
99 간단한 수수께끼 21.03.03 22 0 12쪽
98 이동계획 +1 21.02.18 40 1 11쪽
97 쥐구멍에서 +1 21.02.16 31 0 13쪽
96 촉수 21.02.08 38 1 11쪽
95 협력제안 21.02.08 68 0 12쪽
94 탄로 21.02.06 31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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