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연재수 :
121 회
조회수 :
11,887
추천수 :
264
글자수 :
658,374

작성
21.04.09 01:37
조회
63
추천
1
글자
12쪽

발자국

DUMMY

별 없는 밤이었다. 실틈처럼 흐르는 달빛만이 유일한 등불이었다.

앞서가는 그녀를 소리만으로 쫓았다. 떨어진 낙엽들을 밟으며 나아가는 소리.

하렐뉴는 이따금씩 “여기 있어요.”하고 목소리로 알려주고는 했다. 일부로 실 한 줄기 빛에 다가가 모습을 비쳐주고는 했다.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된다. 위협은 어디에든 있다. 그렇게 스스로를 타이르면서도 그녀의 배려에 안심하는 나였다.


“그쪽 조심하세요.”


불현듯 날아온 경고에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주위를 둘러보자, 손처럼 뻗어난 묘목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것은 자신의 가지 끝을 나의 팔목에 휘감으려 하고 있었다.

곧바로 물러서자, 그것은 언제 그랬냐는듯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저건···”

“숲의 여인이라는 마물이에요. 달라붙으면 살점을 떼어내지 않는 이상 못 벗어나요. 조심하셔야 해요.”


묘목이나 덤불의 일종이라 생각했던 그것은 하나가 아니었다. 수없이 서식하고 있었다. 자그마한 산림을 꾸리고, 소화시키지 못한 잔뼈들을 쌓아놓았다.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건드리는 것만으로 바스러질 만큼 오래된 뼈도 있었다.

하렐뉴는 그 마물들이 뚜렷하게 보이는지, 이리저리 경로를 바꾸며 주저 없이 나아갔다.

그녀의 뒤를 따르면 벗어나는 건 금방이었다. 무사히, 서두르지도 않고 빠져나왔다.

멀어지는 숲의 여인으로부터 관심을 거두고, 다시 소리에 집중했다. 방금 전까지 시야를 트여주던 달빛이 또다시 모습을 감추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

숨을 죽이고 앞으로. 걸어가는데, 무언가가 발치에 걸렸다. 무릎을 가로막았다. 그대로 부딪히고, 중심을 잃었다.


“흐엑?!”


칠칠치 못한 비명.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어째선지 쭈그리고 앉아있던 하렐뉴와 부딪혔고, 그대로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무언가가 턱을 올려친다. 도망치려던 다리가 뒤얽힌다. 중심을 잡으려 버둥거리던 팔이 어딘가를 붙잡는다.


“우아앗···?!”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철푸덕 넘어졌다.

“호에에···”하고 하렐뉴가 머리를 움켜쥐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런 기척이었다. 아마 깜짝 놀라 일어선 탓에 나의 턱과 부딪힌 모양이다.

깨질듯한 턱을 움켜쥔 채로, 그녀의 어딘가를 붙잡고 있던 손을 거두었다.


“죄송해요··· 제가 먼저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네, 다행이 없, 네요···”


숨결이 닿고 있다.

깨닫고는 같은 극의 자석처럼 떨어졌다. 성큼 일어서나서는 손을 건넸다.

충격이 상당했을 텐데도 하렐뉴는 가뿐하게 잡고 일어섰다. 거짓말을 하거나, 허세를 부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저어, 리시스 님은 괜찮으신가요···?”

“저는···”


말을 끌면서 자신의 몸상태를 점검했다.

아픈 곳이라고는 턱 이외에 없었기에, 다시 한 번 손으로 짚어봤다. 역시나 축축한 감촉. 무척이나 익숙한 텁텁함에 피라는 걸 곧바로 알았다.


“피가 조금···”

“으아아, 제 뿔에 스쳤나 봐요. 죄송해요.”

“아뇨, 괜찮습니다. 계속 가시죠.”

“제가 안 괜찮아요!”


성큼 다가온 하렐뉴가 턱을 어루만졌다. 따끔한 통증. 그녀가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읊자, 빛이 생겨났다.

푸른색의 머리칼. 그리고 검은 뿔. 그 아래의 새하얀 눈은 걱정스런 눈초리로 나를 향하고 있다.

죄송해요, 를 아끼지 않는 입버릇. 죄책감을 담고서도, 그걸로 모자라 버려질까 두려워하는 공포까지 비추는 눈동자.

닮아있다. 한순간 생각하고는 착각이라며 떨쳐냈다. 성격이 닮아있다고 해서 아루아와 연관이 있을 거라는 의심은 지나쳤다.


“···어째서 멈춰있었냐는 표정, 이시네요.”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게 표정을 만들고 있었던 걸까. 손끝으로 얼굴을 다듬었다. 그러나, 어느 하나 바뀌어있지 않았다.

침침한 평소의 표정. 의아함이 생겨났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손을 내리고, 몸을 숙였다.

그녀가 서있는 곳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발끝의 감각이 알려주었다. 넘어지기 전, 아주 얕은 계단을 내려가는 감각이 있었다.

하렐뉴도 그것에 의아함을 품었던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녀는 나와 달리 밤눈이 밝다. 앞을 볼 수 있고, 사물을 세밀하게 분간할 수도 있다.

그러니, 그녀가 설명조차 잊고 멈춰 설 정도로 놀란 이유는. 그저 땅이 낮아졌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발자국···?’


땅을 더듬던 손의 옆날이 흙에 가로막혔다. 흐트러뜨리지 않게 주의하면서, 천천히 그 형태를 따라갔다.

이내 아무리 손을 뻗어도, 그 끝에 다다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대하군요.”

“모르는, 마물이에요···”


하지만.


“그것뿐이었다면, 대수롭지 않았을 거예요···”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하렐뉴가 고개를 저었다. 부정하기보다, 떨쳐내려는 것만 같은 움직임.


“···착각, 일거에요. 아니, 착각이어야만 해요. 분명 그래야만 하는데···”


잠자코 기다렸다. 그녀에게는 진정할 시간이 필요했다.

몇 번인가 심호흡을 반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마 추스르지 못한 감정들이 목소리를 떨게 했지만, 그럼에도 하렐뉴는 말했다.


“발자국이 이어져 있어요. 그런데, 부자연스러워요. 갑자기 틀었다고나 할까요. 저희로부터 도망치려고 했던 것처럼 보여요.”


시작은 침착했다. 비교적, 이성적인 설명이었다.

그러나 점차 문장이 길어질수록, 넘어지며 생겨난 감정들이 하렐뉴의 안에서 지워졌다. 말을 하면 할수록, 그것에 대한 공포심이 차올랐다.

잊으려고 했으나, 잊지 못하고. 무시하려 했으나, 무시할 수 없는 무언가가. 만나지도 못한 미지의 공포가, 그녀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심지어는··· 발소리를 줄이려는 것처럼, 이 앞의 것들은 전부 앞꿈치만 남아있어요. 간격이 갑자기 넓어져서는··· 마치, 발소리를 죽이고 도망치려는 듯한··· 그런···”


기분 탓이다. 그렇게 말하려던 입을 도로 다물었다.

외면은 좋지 않았다. 이 발자국의 주인과 만나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다. 계속 가능성을 부정하며 외면했다가는, 실제로 마주했을 때에 패닉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천천히 적응해야 한다.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도록. 격려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을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그녀를 진정시킬 수 있을지, 나로서는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할 수 있는 말을 했다.


“···우선, 이곳에서 벗어나는 게 좋겠습니다. 아직은 대처법을 세울 수 없으니, 동이 트면 자세히 조사해보도록 하죠.”

“아··· 네··· 그렇겠네요···”

“너무 앞으로 나아가는 건 위험하겠죠. 달빛이 비추는 어딘가에서 머무르는 편이 좋겠습니다.”


부딪혀 넘어지고 나서도 한동안은 침착했던 하렐뉴였다. 공포라는 감정이 마비된 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치료를 마친 그녀는 부정하고 있었던 거다. 망각하려 노력하고, 그에 성공하여 잊어버렸던 거다. ‘그것’의 존재를. 하지만, 내가 보인 관심이 그 공포를 일깨웠다.


‘아마, 이렇게 생각하는 게 맞겠지···’


발바닥의 크기조차 나로서는 가늠할 수 없었다. 그 정도의 거대한 몸집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하렐뉴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달릴 수 있다. 뒷꿈치를 들어 발자국 소리를 지우는 지능도 지니고 있다. 거대한 몸집, 민첩성, 지능.

만일, ‘그것’이 우리를 노리고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하렐뉴의 심정을 이해했다. 잊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동안은 마물과 마주할 일이 없었다. 사람, 사람, 사람의 연속. 아무리 강하더라도, 인간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두려워하질 않았다.

머릿속으로 세운 가설도 있었다. 가설이 들어맞았고, ‘상대방이 나를 죽이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만 싸움을 시도했었다.

되돌아보니 더욱 명확해졌다.

공포는 사라진 게 아니라, ‘잊혀진’ 거였다.


‘···마주치고 싶지 않아.’


두려웠다.

그럼에도 숨을 들이켜고, 크게 내뱉었다. 간만의 심호흡.

조금씩 침착해지는 자신을 타일렀다. 공포를 느낄 시간이 있다면, 대책을 생각하라고.

간단하지는 않았으나, 점차 적응해나갔다.

머릿속으로 ‘그것’의 생김새들을 그려보았다. 발자국 하나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에, 무얼 떠올리건 망상에 불과했지만.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이른바 이미지 트레이닝이다.

가장 무서운 생김새를 떠올린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을 그려낸다.

그곳에서 자신에게 똑같은 의문을 수없이 던진다.

‘자, 이제 어떡할 거지?’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 샌가 호흡이 진정되어있었다. 공포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걱정이 들어차고 있었다.

걱정과 불안이 공포보다는 나은 법이다. 적어도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동안은 동요하지 않는다.


“조금만··· 붙어있게 해주세요···”


앞서가는 게 두려웠던 걸까. 계속 주저하던 하렐뉴가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다가옴으로서 두 마리의 말이 벽처럼 양쪽을 가렸다. 그 벽의 안에서 하렐뉴가 어깨를 붙여왔다. 손을 잡으려는듯하다가, 그 위의 옷깃을 붙잡는 그녀였다.

오랫동안 그대로 놔두었다.

얼마 걷지 않아 달빛이 비교적 많이 비추는 장소를 발견했다.

나는 그곳에서 주저앉듯 나무에 기댔다.

전투가 없었다고는 해도, 수 시간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에 많은 체력을 소모해버렸다.

지금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현재진행형으로 소진되어가고 있다.

이 상태를 동이 트기까지 계속 유지해야 한다.

버틸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이토록 장기간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건 처음이다.

하지만, 그건 그녀 또한 다르지 않은듯했다.

나보다도 지친 기색. 그리고 공포를 잊지 못하고, 여전히 떨고 있다.

아무래도 먼저 재우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잠시 주무시죠. 무슨 일이 생기면 깨우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까 편히 잤으니 괜찮습니다. 기적을 사용해서 소모가 심할 테니, 먼저 주무시죠. 버틸 수 없게 되면 무리하지 않고 깨우겠습니다.”

“그런, 가요···”


설득을 하고서야 마침내 하렐뉴가 눈을 감았다.

꼬옥 움켜쥔 옷깃. 희미하게 떨고 있으면서도, 손을 잡아달라는 부탁은 없었다.

혹여나 제대로 잠들지 못할까 염려되어 말없이 잡아주었다. 그러자, 조금도 지나지 않아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려왔다.

오른손이 붙잡힌 탓에 기습에 취약해지기야 하지만, 이거면 됐다. 주변에 기척은 느껴지지 않고, 무엇보다 하렐뉴가 불안 때문에 편히 잠들지 못하면.

하렐뉴의 몸상태 악화는 최악의 상황 중 하나. 이곳에서는 그녀가 생명줄이다. 방금의 발자국을 보고 소스라치게 실감했다.


“혼자서 지나려고 했다니···”


돌이켜보니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그건 착각이었다. 오만이었다. 크나큰 과오였다. 마물을 지나치게 무시하고 있었다. 안이하고도 섣부르게 판단하고 있었다.

발자국의 주인이 하렐뉴의 말처럼. 우연이 아닌, 의도적으로 상황에 따라 걷는 방법을 바꿀 정도라면.

그 정도로 섬세한 움직임이 가능하고, 달릴 수 있는 민첩함을 지녔고, 발소리를 줄일 정도의 지능을 지니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노리고 있다면.


‘···최악이군.’


살해당한다는 미래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쓰고 싶어서 쓰는 2기 후기! (필독X) +3 21.01.14 114 0 -
공지 1기 후기(필독X) +1 20.10.05 230 0 -
121 불사를 베어내는 검-3 21.05.31 9 0 10쪽
120 불사를 베어내는 검-2 21.05.08 17 0 11쪽
119 불사를 베어내는 검-1 21.05.06 13 0 11쪽
118 녹빛의 검은 백화(白花)를 피워낸다. 21.05.04 20 0 12쪽
117 재생 21.04.28 16 0 12쪽
116 이뤄주지 못할 소원 21.04.27 40 0 11쪽
115 정보상과 의사 21.04.25 36 0 17쪽
114 상실 21.04.24 21 0 9쪽
113 고정부(固定附) 21.04.24 17 0 11쪽
112 낙마 21.04.14 21 1 13쪽
111 구역질 21.04.12 29 0 11쪽
» 발자국 21.04.09 64 1 12쪽
109 발을 들이다 21.04.07 50 0 11쪽
108 아침에는 가재 21.04.03 58 1 11쪽
107 별들에게 호소하는 밤 21.03.27 30 1 13쪽
106 지우지 못한 단서 21.03.24 28 1 11쪽
105 붙잡히다 21.03.23 25 1 11쪽
104 주맥시(呪脈視) 21.03.22 29 1 11쪽
103 잭이라는 화제 21.03.19 32 1 12쪽
102 믿음, 극복, 퍼져나가라 21.03.17 30 1 13쪽
101 성당, 시체, 전투 21.03.13 28 1 24쪽
100 외전-사냥꾼들의 밤 21.03.12 24 0 22쪽
99 간단한 수수께끼 21.03.03 20 0 12쪽
98 이동계획 +1 21.02.18 39 1 11쪽
97 쥐구멍에서 +1 21.02.16 30 0 13쪽
96 촉수 21.02.08 37 1 11쪽
95 협력제안 21.02.08 40 0 12쪽
94 탄로 21.02.06 30 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B둘기'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