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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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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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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7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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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이뤄주지 못할 소원

DUMMY

하렐이 죽었다.

리시스는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녀가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받아들였다고 해서 죽어가는 자신의 처지가 바뀌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현실을 부정하며 헛된 희망을 한 줌이라도 품은 채로 눈을 감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으나, 죽음에 익숙해진 그의 눈동자는 의사와는 관계없이 냉랭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공허한 눈동자. 그곳에 후회는 없었다. 후회를 할 감정이 남아있지 않았다. 예전처럼 망가졌다던가, 무너졌다던가. 그런 치졸한 단어들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며 엄살 피우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괴물을 응시했다. 이름조차 알 수 없었던 그것은 비대한 두 팔을 뻗어 리시스를 붙잡았다. 세로로 벌어지는 입속을 내비치며, 날카로운 가시들을 강조했다. 지능이 있다 보니 죽어가는 인간을 농락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공포에 질린 표정이라도 지으면 만족하는 걸까.

미안하다는 문장만이 유일하게 그의 머릿속을 떠돌고 있었다.


‘몇 명이 더 죽어야 하는 걸까···’


죽고 싶지 않다는 본능도 남아있지 않았다. 괴물의 손을 물어뜯는 것은 이유 없는 무의식이었다. 복수심 같은 건 없었다. 삶에 대한 의지도 결핍되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저항을 하는가.

문득 떠오르는 의문.

아무래도 좋았다. 거대한 손을 거침없이 물어뜯었다. 검은 피가 식도 속으로 쏟아졌다. 단단한 피부를 찢을 때마다 부식되어있던 이빨들이 부러져나갔다. 살점에 꽂힌 그것을 텅 빈 잇몸으로 깊숙이 처박았다.

입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선혈의 격류는 뱉어지지 못하고 거친 호흡과 함께 삼켜졌다.


-쿠웅!


거친 충격이 등골을 감쌌다. 두 번씩이나 내동댕이쳐지니 아프지도 않았다.

나무에 달라붙은 뒤통수를 떼어내며, 하나만 남은 다리로 일어섰다.

기대지 않고는 서있을 수 없는 몸. 짝다리로 서있는 것, 다가오는 사물을 물어뜯는 것. 이외에 가능한 것은 없었다.

예상치 못한 먹잇감의 저항에 괴물은 분노했다. 그것에게 발성기관은 없었으나, 몸을 뒤틀며 천장을 올려다보는 그 모습은 포효의 광경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재생하고 있어···’


리시스가 필사적으로 물어뜯은 상처가 재생되었다. 깊고 깊은 어둠속.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 그것의 재생을 목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리시스는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수많은 사경에 담금질당한 그의 감각은 현재 인간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재생을 마친 괴물이 달려왔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으스러졌을 터였다. 내동댕이쳐져서 숨을 쉬는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 지금은 당연스럽게 숨을 쉬고 있다.

부상이 치유됐다는 가설을 세웠다. 허물어져있던 오른팔에 감각을 넣어보았다. 손끝, 그곳에서부터 생겨난 칼날이 뒤틀린 혈관으로 내달리는 고통. 이어서 움직임을 발견했다.


‘움직일 수 있어···’


고통은 익숙했다. 익숙해진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비슷한 것들을 몇 번씩이고 겪다보면 적합한 움직임을 알게 됐다.

아프다는 것은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될 수 없다.

달려오는 거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비대한 주먹이 정면으로 날아왔다. 그곳을 향해 몸을 밀어냈다. 넘어지는 균형, 내뻗은 손끝이 두터운 망치와 맞닿았다.

잠시라도 늦는다면 손가락이 부러질 것이다. 그대로 팔이 떨어져나갈지도 모른다.

예전이라면 뇌리를 스쳤을 걱정들도 남아있지 않았다. 상대의 힘을 이용하여 부드럽게 마디들을 접었다.

손끝으로 한 번.

접히는 마디로 한 번.

완성된 주먹으로 한 번.


“파쇄격(波碎擊).”


-퍼엉!


한순간 부풀어 오른 마물의 팔이 터져나갔다. 뼈가 존재하지 않는 그것의 주먹은 팔이 터져 사라지자마자 땅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회복된 다리로 넘어지는 몸의 중심을 붙잡고, 회전하며 뿌리 잃은 주먹을 피해 접근했다. 몸통은 닿지 않을 높이. 그렇다면 다음으로 노려야 할 곳은 정해져있다.

손가락들로 이루어진 그것의 다리.

리시스는 그곳을 향해 또 한 번 손끝을 뻗었다.

괴물은 그 공격을 피하고자 뒤로 물러섰다. 견제하기 위해 남은 한 손을 휘둘렀다. 터져나간 한 쪽 팔은 벌써부터 회복되고 있었다.

싸움을 지구전으로 끌고 가려는 심정이었던 걸까. 그것에게는 그러한 책략을 사용할 지능이 있었다. 거리를 벌리고 상황을 지켜보려는 걸지도 몰랐다. 그대로 도망치려는 심산이었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결국 그 속셈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그것은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분명 뒤로 뛰어 물러났으나, 거리는 벌어지지 않았다. 손을 휘둘러 견제했으나, 질주하는 청년은 멈춰서지 않았다.


“파쇄격(波碎擊).”


-퍼엉!


또 한 번의 굉음. 다리의 역할을 하던 손바닥에 터져나갔다. 다섯 개의 손가락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기울어지는 중심을 붙잡으려, 그것은 커다란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리고.

실수라는 것을 깨닫고 수습하기에는 너무나도 늦었다.

‘그것’의 사고속도가 미처 따라가지 못할 속도로 리시스가 질주했다. 순식간에 땅을 짚은 팔에 도달했고, 똑같은 기술로 폭파했다.


“파쇄격(波碎擊).”


막대한 충격. 상황이 역전되었다. 괴물이 스러졌다. 빈사상태까지 다가섰던 청년은 이제 그 몸의 대부분이 회복되어있었다.

아직 죽지 않은 괴물은 통나무 같은 몸뚱아리를 굴렸다. 두 팔과 다리를 잃어버린 이상, 그것에게 남은 선택지는 그 이외에 없었다.

그러나, 그 거대한 몸을 땅에 굴려 도망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수백 년이 넘도록 생장해온 그림자 숲의 고목들은 ‘그것’의 힘만으로는 넘어뜨릴 수 없었다.


-쿠웅!


둔탁한 울림. 요동치는 가지들이 눈처럼 작은 잎들을 흩뿌렸다.


“후우···”


길게 호흡하는 인간의 숨소리가 정적을 울렸다.


-따다닥.


넘어진 괴물은 이빨들을 부딪혔다. 세로로 찢어진 입속. 날카로운 갈비뼈들이 울렁거렸다. 하나하나를 손처럼 움직인 끝에, 뱃속에 잠들어있던 소화물들을 토해냈다.


-따다다다다닥.


차마 소화되지 못한 인간의 뼈와 머리카락. 그리고, 한 소녀의 시신이 날카로운 가시들에 이끌려 빠져나왔다.


‘목숨구걸인가···’


멈춰선 리시스는 그 의미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시신을 돌려주었다고 해서 그녀의 목숨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구걸로 용서받을 수 있는 일선을 넘은지가 오래였다.

눈앞의 마물 한 마리로 인해서 하렐이 죽었다.

리시스 본인 또한 죽을 위기에 쳐했었다.

살려둘 수는 없다.


“파쇄격(波碎擊).”


-퍼엉!


몸뚱아리가 터져나갔다.


“파쇄격(波碎擊).”


-퍼엉!


머리가 사라졌다. 검은색이 피어올랐다. 한동안은 빗소리가 이어졌다.

홀로 남은 리시스는 얼룩진 나무줄기에 등을 기댔다. 녹아내린 시체를 바라보았다. 짐작이 아니고서는 그것의 이름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미안···”


짧게 사과하며, 리시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녹아내린 시체를 안아들었다. 죽은 괴물의 위산이 리시스의 피부와 맞닿았다. 따끔한 감각이 팔과 가슴을 뒤덮었다.

그녀는 산 채로 이것을 뒤집어썼던 걸까. 그랬더라면 분명 괴로웠을 것이다.

숨을 거둔 지금도, 왠지 모르게 괴로워보였다. 옷깃으로 그나마 닦아주었다. 녹아내린 피부가 달라붙고서는 관두었다.

햇살처럼 내렸던 푸른 머리카락도, 어딘지 모르게 다정했던 새하얀 눈동자도 이제는 남아있지 않았다.

과연 그녀가 맞을까. 의문을 품어봤자 소용없었다. 희망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희망이 클수록, 절망이 깊어져갈 뿐이었다.

그녀를 등에 업고 나아갔다. 얼마 전, 그녀를 현상금사냥꾼들로부터 돌려받았을 때에도 이렇게 업고 왔었다.

그런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지금처럼 가볍지는 않았다. 조금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차갑게 식어버리지도 않았다.


-투둑!


그녀의 팔에서 떨어져나간 살점이 검은 뼈를 드러냈다. 마족의 유골이 검은색이라고는 처음 알았다. 알고 싶지 않았다. 알게 된다 하더라도 그녀의 입에서 듣고 싶었다.

그게 아니라도 많은 약속을 했었다. 언젠가는 말을 해주겠다고, 이제는 사라진 그 입으로 기약했었다.

언젠가는 이제 오지 않는다. 그녀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 말들이 흥미를 끌기 위한 거짓말들이었는지 가려내지도 못한다.

알고자 했던 진실들은 그녀와 함께 죽었다.


“···시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토록 그녀가 살아나기를 원했던 걸까.

그게 아니었다. 리시스는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였고, 지켜주지 못했다고 체념했다. 호흡도, 박동도 멈춘 그녀를 바라보며 시체라고 인식했다.

그러니 간절한 바람은 없었다. 허무한 망상도 품지 않았다.

때문에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환청이 아니라고.


“···리시스···님···”


걸음을 멈추었다.


“하렐···?”


시선이 흘러갔다. 푸른 머리카락이 보였다. 녹아내린 눈꺼풀의 틈으로 새하얀 눈동자와 마주쳤다.

사라졌을 터인 입술이 돋아있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녀의 모습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이목구비가 서서히 회복되어갔다.


“도망, 쳐요···”


누구에게서. 불현듯 솟아난 의문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리시스의 감각에 비치는 건 없었다. 이곳에 있는 건 그녀와 리시스가 전부였다. 이외에는 나무였다. 잎사귀였고, 삐져나온 뿌리였다.

의문이 바뀌었다.

어째서.

등에 업은 그녀를 살며시 내려놓으며 물었다.


“나는 이제 당신과 함께 갈 수 없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침착하게 물음을 건넸다.

되살아난 그녀를 꺼림칙하게 여기지 않았다. 감사했다. 죽지 않고 살아주었다는 사실에 눈물마저 나올 지경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붙잡은 그녀의 손은 분명 차가웠다. 하지만 따듯해지리라고 믿어의심치 않았다.

그도 그럴게, 그렇다. 지금 하렐은 리시스의 눈앞에서 버젓이 말하고 있다. 숨을 쉬고, 그 눈으로 차갑게 무감정을 주장하고 있었다.


“···이유라도, 알려주시겠습니까.”

"소원, 이에요···"


샘물처럼 솟아나는 감정들을 퍼나르며, 담담하게.

뚜렷해져가는 그녀의 표정을 새겨넣었다.

이제 그녀를 시체라고 부르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다. 한동안 봐왔던 평소의 모습과 가까웠다.

표정에 감정이 담겨있지 않다는 사실을 저절로 깨달을 수 있을 만큼이나 돌아와있었다.

어떠한 감정도 드러내지 않으면서 소원이라는 단어를 꺼내들어봤자, 설득력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를, 죽여줘요···"


리시스는 결국 그녀의 소원을 이뤄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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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주맥시(呪脈視) 21.03.22 2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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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믿음, 극복, 퍼져나가라 21.03.17 30 1 13쪽
101 성당, 시체, 전투 21.03.13 29 1 24쪽
100 외전-사냥꾼들의 밤 21.03.12 26 0 22쪽
99 간단한 수수께끼 21.03.03 22 0 12쪽
98 이동계획 +1 21.02.18 40 1 11쪽
97 쥐구멍에서 +1 21.02.16 3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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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협력제안 21.02.08 6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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