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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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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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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4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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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녹빛의 검은 백화(白花)를 피워낸다.

DUMMY

몇 번이고 죽였다. 그러나 몇 번이고 재생했다.

손바닥을 닮은 이름 모를 괴물은 죽여도 죽지 않았다. 그야말로 불사였다. 손톱만한 살점 하나까지 짓뭉개놓았음에도 어딘가에서 반드시 되살아났다.

그뿐이었다면 도망칠 수 있었다. 되살아나는 것이 그 하나만이었다면, 리시스의 발걸음에 망설임은 사라져있었을 터였다. 그럼에도 사라지지 못하는 것은 두고 갈 수 없는 존재가 살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비대해져가며, 그나마 남아있던, 사람이었다는 흔적들을 없애갔다. 이제는 그저 거대한 살덩어리였다. 커다란 눈알이 돋아났고, 그 위로 또다시 눈알이 돋아났다. 끓는 물처럼 부글거리며 무언가를 형성하는 피부는 벌어질 때마다 발과 손과 머리 같은 것들을 내뿜으며 피를 토해냈다. 그렇게 토해진 신체들은 그것의 일부로도 자리 잡지 못하고 뼈 없이 흘러내려 흙바닥을 기어다녔다.

점차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그것은 모종의 진화를 거듭하기라도 한 것인지, 자신의 피와 살에 닿는 모든 존재들을 부식시키고 있었다.

최악으로 치달아버린 상황. 추격전을 이어갈수록 거미줄처럼 늘어지며 퇴로를 차단하는 살점들과 파괴를 거듭해도 되살아나는 검은 괴수가 숨통을 조여 왔다.


“흐윽···! 흑흑···!”


들려오는 울음소리가 점차 리시스의 발목에 무게를 더해갔다. 감정은 남아있지 않았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체력은 다행스럽게도 남아있었다. 그러니 그 무게는 리시스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목소리에는 모종의 힘이 담겨있었다. 소리가 들려올수록, 리시스는 몸이 무겁게 굳어가는 것을 느꼈다. 섬뜩한 소리를 울리며 쫓아오는 검은 괴수와의 거리가 점차 줄어가는 것을 보았다.

감정 없이 덩그러니 남겨진 사고는 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도망이라는 선택지가 사라지니 싸운다는 생각 말고는 남지 않았다. 본래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죽일 수 없다는 현실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리시스는 계속해서 타개책을 떠올렸었다. 그러나, 아직은 떠오르지 않았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앞으로도 아무리 생각해봤자, 리시스는 그것들을 죽일 수 없을 것이라고.

무언가가 필요했다. 죽지 않는 것을 죽일 수 있는 무언가.

처참하게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그녀를 위해서.

아루아를 위해서도. 리시스 자신을 위해서도 아니다.

그녀를 죽인다고 해서 리시스의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끝에 남는 것은 허무와 공허. 그리고 관둘 수 없는 후회와 자책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죽여야만 해···’


그녀를 위해서.

원하는 때에 이뤄주지 못했던 그녀의 소원을.

뒤늦게나마.


『언젠가, 당신의 손으로 거둬주세요···』


그것은 끝내 체념했던 그녀의 말이었다.

그 체념이나마 들어주고 싶었다.


‘반드시.’


죽인다는 목적만을 남긴 이성이 마침내 사고를 가속했다. 모든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역재생했다. 허나, 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죽일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리시스의 무지한 기억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했다. 리시스는 자신의 기억을 넘어서서, 자신의 것이 아닌 영역에 침범했다. 기억의 끝에서 역류를 막고 있던 얇은 정체성을 찢었다.


“내 이름은 리시스··· 내 이름은 리시스··· 내 이름은 리시스···”


폭풍처럼 밀려오는 두통. 낯선 기억들을 받아들이는 뇌가 막대한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무표정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혀가 덜덜 떨렸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서로를 찢어 죽였다.

몹시 아팠지만, 참았다. 고통에는 익숙했다. 이를 깨물고, 악을 써가며 기억들을 받아냈다. 받아내는 기억들을 빠르게 훑으며 해답을 찾았다. 분명 이 기억 속에 무언가가 있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으윽···!”


괴리감이 덮쳐왔다. 수없이 많은 광경들이 겹쳐보였다. 그곳은 전장이었다. 그곳은 밀실이었다. 그곳은 검고 어두운 숲이었다. 그곳은 평범한 가정집이면서도 신전이었다. 열기와 한기가 동시에 스쳐지나가는 기이한 감각.

세계 전체가 흔들리는 울렁증이 달리던 발목을 무자비하게 꺾었다.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넘어지자, 뒤따라오던 촉수가 매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곧바로 땅을 구르며 회피했고, 손목만 남은 팔뚝으로 흙을 파헤치며 일어섰다.


『···셀스티나는, 편히 갔어?』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녹슨 검.》

『아프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있지, 저 검이 빛났던 적은 있어?』

《만나러 갈 수 없었던 흑기사에게 사죄를.》

《그곳에 인간의 형상은 남아있지 않았다.》

『기적은 신의 힘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무한하지도 않죠.』

《신앙을 져버린 신관들은 허탈하게 미소지었다.》

『그러니까, 나한테 죽지 말아줘. 절대로.』

『상관없다. 고작 시체. 내 영혼이 육신을 떠난 뒤의 일은 알 바 아니지.』

《그곳에 존재하는 것은 녹슨 검. 그곳에 서있는 것은 준용사라 불리는 울보. 그곳에 사라지는 것은 한때의 성녀.》

『지키고 싶은 사람들을 죽여야만 하는 운명이라니··· 너무 서글프잖아.』

《누구도 지키지 못한. 지킬 수 없었던. 서글픈 운명선상의 주인공. 그의 손을 이끌어 피를 묻힌 인도자. 그 이름은···》


“···아이크 테르시(불사자의 최후).”


녹빛의 편린이 몰아쳤다. 허공에 축적되어 탄생한 그 검은 녹슬고도 무뎠다. 한 줄기의 빛도, 사방을 채운 어둠도 들이지 않는 적갈색의 칼날.

그는 새롭게 태어나는 손끝으로 그것의 손잡이 붙잡아 휘둘렀다. 검신을 휘감고 있던 녹이 무수한 꽃잎이 되어 떨어져나갔다. 흩날리는 녹의 칼날들은 맞닿은 살결들을 모조리 동화시키며 죽지 않는 생명을 향해 퍼져나갔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위기를 감지한 검은 괴수가 등을 돌리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녹슨 검을 손에 쥔 그는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지 않았다.

하렐이라는 소녀가 ‘불사체’가 된 원인은 그것에게 없었다. 다만, 그것이 없었더라면 그 사람과 조금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느끼는 감정은 원망이었을까. 그게 아니었다. 그는 원망하지 않았다. 설령 원망이라는 감정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자신에게로만 향하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 그가 행하는 행동은 전부 해야만 한다는 생각. 죽어버린 감정들을 하나의 의무로서 인식해버렸기에 실행되는 움직임이었다.


“스읍···!”


그는 검을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는 팔을 넘겼다. 등 뒤로 넘어가는 체중. 제동을 건 호흡과 함께 후방으로 기울던 중심을 바로잡았다. 자연스럽게 들어올려진 왼발을 강하게 내려찍으며, 검의 시위를 당기던 오른팔을 휘둘렀다.


-촤악!


경쾌한 마찰음이 공기를 갈랐다. 화살보다 빠르게 질주하는 녹슨 검은 일직선으로 날아가 도망치는 괴수의 몸을 관통했다.

단말마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것이 죽지 않은 건 아니었다. 녹슨 검이 꿰뚫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죽이고 또 죽여도 되살아나는 괴물. 그것의 뼈와 살로 탄생한 적녹색의 꽃잎들이었다.


“아이크 테르시(불사자의 최후).”


두 번째 호명. 다시 한 번 녹의 꽃잎들이 그의 손안에서부터 치솟아 소용돌이쳤다. 없는 것을 쥐고 있던 주먹의 안으로 녹슨 검을 쥐어주었다.

그 어떠한 무기보다도 익숙한 무게감이 돌아오자, 그는 마지막 남은 의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길게 늘어진 살점들을 도화선 삼아 전염되어가던 녹들을 끊어낸 그녀를 보았다. 끊이지 않는 울음소리가 아직까지도 그의 몸을 굳혀가고 있었다.

어째서 그런 모습이 되었는가. 한때 품었던 의문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이제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찾아올 유일한 구원은 죽음뿐이라는 사실을. 살아있는 매순간이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현실을.

때문에 그는 검을 겨누었다. 땅을 박차고, 얽히며 날아오는 그녀의 일부를 베어냈다. 나아갈수록 거세지는 방해. 차마 녹이 되지 못한 피와 살들이 그의 온몸을 불태웠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고 검을 휘두르며 전진했다. 흘러내린 피부에 발목이 녹아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서서히 낮아지는 시선의 높이. 시시각각 깎여 내려가면서도 그는 끝내 그녀에게 도달했다.


“이제, 끝이야···”


-푸욱!


검을 꽂아넣었다. 귓가를 괴롭히던 울음소리가 멈추었고, 매섭게 둘러싸던 살점들은 멈춰버린 시간을 인지한 듯 경직되었다. 안구의 위로 자라난 안구는 자신에게 최후를 선사한 청년을 오랫동안 주시했다.


“고마··· 어···”


그녀가 무언가를 말했다. 그는 그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의 뜻을 이해했다. 그리고는 무어라 말을 해주어야 할지 생각했다.

생각하는 사이, 매정한 시간은 흘러가기 시작했다. 녹슨 검은 자신의 책무를 미루지 않고 성실하게,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녹으로 바꾸어갔다.

결국 그는 어떠한 말도 건네지 못했다. 피폐해져 사라진 감정들을 헤아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에게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직 그녀가 자신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였는지도 구분하지 못했다.

더없이 기뻐하기에도, 목 놓아 통곡하기에도 부족한. 너무나도 애매한 관계였다.


『빚이에요. 착실하게 지불한 만큼, 착실하게 받을 생각이에요. 물론, 돈은 아니고요.』

『손이라도 잡아주시면 안 될까요? 아무래도 불안해서 잠에 들지를 못하겠어요.』

『···원래는 싫어했어요, 당신을요. 왜 싫어했는지는 말하지 않을게요. 이제는 아니니까요.』

『도망치신 줄 알았잖아요. 조마조마했어요.』

『싫다고는 안하셨잖아요. 마음만 받겠다고 하셨으니까요. 몇 번이고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건 쌓이고 쌓인 제 마음이에요.』

『그러니까, 으음··· 리시스 님이 괜찮으시다면, 하렐이라 불러주셔도 괜찮아요. 지금까지 한 번도 불러주시지 않았지만요. 섭섭하다거나, 그런···』

『조금만, 이대로 있어주세요···』

『이 세계가 멸망한다면, 당신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희생으로 구해낼 수 있다면··· 어떡하실 건가요···?』


그녀와의 지난날들을 되돌아보았다. 천천히, 기억속에서 잔류하는 감정들을 곱씹었다. 그러는 끝에 자그마한 후회가 남았다.


『어째서 저는, 아무것도 아닌 건가요···』


적어도, 잠결에 들었던 그 한 마디만은 부정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으니까.

이제 후회하는 것밖에 남은 길이 없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아껴두었던 말들은 후회가 되어버렸다.


『리시스 님.』


그는 고개를 들었다. 이제 와서 새로운 감회가 드는 것은 아니었다. 남겨진 회포가 있다면,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을 것이다. 감히 그 부끄러운 낯빛을 치켜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높은 곳을 바라보았다. 치켜든 시선에 순백의 휘광이 눈부셨다. 천천히 낙하하는 반짝임. 그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외로이 흩날리던 새하얀 꽃잎을 받아들었다.

하나뿐인 손바닥의 위로 살포시 내려앉은 그 허연 꽃잎은 아름답다는 감상을 가지기도 이전에 홀연히 스며들었다.

눈을 감으면 그 자태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까.

그는 눈꺼풀을 닫았다.

한 잎뿐인 백화(白花)가 피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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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불사를 베어내는 검-3 21.05.31 7 0 10쪽
120 불사를 베어내는 검-2 21.05.08 16 0 11쪽
119 불사를 베어내는 검-1 21.05.06 13 0 11쪽
» 녹빛의 검은 백화(白花)를 피워낸다. 21.05.04 20 0 12쪽
117 재생 21.04.28 16 0 12쪽
116 이뤄주지 못할 소원 21.04.27 40 0 11쪽
115 정보상과 의사 21.04.25 35 0 17쪽
114 상실 21.04.24 21 0 9쪽
113 고정부(固定附) 21.04.24 16 0 11쪽
112 낙마 21.04.14 19 1 13쪽
111 구역질 21.04.12 28 0 11쪽
110 발자국 21.04.09 61 1 12쪽
109 발을 들이다 21.04.07 46 0 11쪽
108 아침에는 가재 21.04.03 56 1 11쪽
107 별들에게 호소하는 밤 21.03.27 30 1 13쪽
106 지우지 못한 단서 21.03.24 27 1 11쪽
105 붙잡히다 21.03.23 25 1 11쪽
104 주맥시(呪脈視) 21.03.22 29 1 11쪽
103 잭이라는 화제 21.03.19 31 1 12쪽
102 믿음, 극복, 퍼져나가라 21.03.17 29 1 13쪽
101 성당, 시체, 전투 21.03.13 26 1 24쪽
100 외전-사냥꾼들의 밤 21.03.12 23 0 22쪽
99 간단한 수수께끼 21.03.03 20 0 12쪽
98 이동계획 +1 21.02.18 39 1 11쪽
97 쥐구멍에서 +1 21.02.16 30 0 13쪽
96 촉수 21.02.08 37 1 11쪽
95 협력제안 21.02.08 38 0 12쪽
94 탄로 21.02.06 2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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