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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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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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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3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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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6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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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를 베어내는 검-1

DUMMY

〈이것은 준용사의 이야기.〉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최후의 희망이라 불리우는 용사에게도. 용사만으로는 지킬 수 없는 변방의 일곱 기사에게도. 비범할 것 없이 스러져 죽는 일개 병사에게조차도.

한껏 들어찬 우울을 생전 지워내지 못한 준용사마저도.

처음이 있었다.


“이로서 출정식을 마친다! 진군하라! 잃어버린 우리의 터전을 되찾아라! 달리 돌아갈 곳은 없잖은가! 귀향길에 올라라!”


시끄러운 지휘관이 말을 타고 돌아다니며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제대로 된 훈련조차 받지 못한 그들을 과연 병사라고 칭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 들었다.

그들은 엊그제까지만 해도 농부였고, 가장이었다. 도공이었고, 누군가의 아들이었다.

활짝 젖혀 모습을 감춘 성문의 앞에 다가갈수록 대열의 걸음은 느려져갔다.

누구도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뒤따라오는 행렬에 떠밀려 밖으로 밀려나고 있을 뿐이었다.

불만을 표출하는 이는 없었으나, 죽고 싶지 않다는 그 마음은 입을 열지 않는다고 해서 드러나지 않는 게 아니었다.


“가라! 그대들이 인류의 희망이다! 자부심을 가져라! 우리는 승리하리라!”


초조해진 지휘관이 목청을 터트렸다.

침묵이 진군했다.

고향이 아닌 고향땅을 되찾기 위해.


...


하나의 전장이 정적을 맞이했다. 처참한 승리였다. 환호성은 눈치를 살피며 기어들어갔다. 누구도 살아남은 사실을 기뻐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속에는 깊은 안도감이 스며들고 있을 터였다.

쟁탈한 고향의 땅에서 그 누가 환희를 느끼지 않겠는가.

자그마치 스무 달이 걸린 끝에야 인간족은 잃어버린 조국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그 무너진 성벽의 안에는 아직까지도 가증스런 마물들이 넘쳐나고 있었지만, 그런들 어떠한가.

언젠가는 사라질 것들이었다. 현재의 군에는 전례 없는 힘을 지닌 용사와 그에 뒤지지 않는 걸출한 일곱 기사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일주일 뒤에는 그 중 하나가 파견되어 희생당한 병사들의 울분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줄 것이다. 위험과 어둠으로 가득 찬 고향에 안식을 심어줄 것이다.


『소리치고 싶은 자는 솔직하게 언성을 드높여라.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살아남은 자에게만 허락되는 명예이다.』


루드는 장군의 연설을 떠올렸다. 멋진 말이었다고 생각했다. 깊은 감명조차 받았다. 짤막하면서도, 강렬했다. 그 말을 들은 병사들은 하나같이 눈물을 흘리며 기쁨의 찬가를 불러 마땅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용맹스러웠던 병사들은 끝까지 기쁨을 표출하지 않았다. 장군의 연설이 끝난 후에도 정적이 깨지는 일은 없었다. 모두가 조용히 막사 안으로 들어갔고, 휴식을 취했다.

마흔 한 명.

그것은 살아남은 병사들의 숫자였다. 물론 부상자도 포함이었다. 출정식까지만 해도 그 수십 배는 되었으나, 그 대부분이 세르나리아의 무너진 성벽조차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성벽을 보며 기뻐하던, 대부분이 아니었던 병사들의 대부분이 어제와 오늘 숨을 거두었다.

처참하고도, 치열한 전투였다. 얻은 것은 번영했던 과거의 조국. 그토록 바라왔던 고향이었으나, 그것은 병사들의 체감에도 들지 못했다. 한낮 병사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본 적도 없고, 봤더라도 이미 기억에서 잊혀졌던 수십 년 전의 터전이 아닌, 어젯밤 술을 나누고 농담을 따먹었던 동료. 초라하게 허름한 판잣집 안에서 배를 굶주리고 있을 가족이었다.

그러니 이 승리에 환호성을 지를 자는 없었다. 있었다고 해도 눈치를 살피다 마음을 추스렸으리라.

밤이 깊은 막사 안에는 사내들의 통곡만이 차오르고 있었다.


“···또 터무니없는 사람이 들어왔네요.”


꺼져가는 모닥불에 장작을 더할 즈음이었다. 뒤에서 문득 목소리가 들려와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땀에 젖은 금발을 뒤로 쓸어넘기며 다가오는 앳된 소녀가 있었다. 전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면모. 그러나 그 벽안에 깃든 눈동자에 순수함은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 전장에 이토록 어린 소녀가 있는가. 나이를 많이 쳐주어도 열일곱을 넘지 못할 것만 같은, 작고 여린 소녀. 그 비어버린 표정의 아래에는 신관복이 있었기에. 의문을 품지 않고 그녀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성녀.’


신의 힘이라 불리는 기적은 인간의 신체에 막대한 피로를 끼쳤다. 하나의 신관이 감당할 수 있는 인원은 2명 정도.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곳은 전장이고, 소모되는 병사들은 죽은 자 아니면 부상자로 나뉘었다. 상처 없이 승리를 거둘 정도로 인간들은 강하지 않았다.

마수의 손짓에 수십 명이 죽는다. 엘프의 마법 한 번으로 수백 명이 목숨을 잃는다. 드래곤의 숨결만으로 수천이 말소된다.

목숨이 짓밟히는 풀 한 포기보다 허무하게 꺼져버리는 전장. 그곳에서 고작 검을 든 농부 둘을 살린다 한들, 무엇이 바뀌겠는가.


‘바뀌지 않아.’


하나의 신관은 너무나도 무력하고, 신관으로서의 자질을 지닌 자는 희박했다.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태어나는 것이 바로 성녀. 신관의 심장이라 불리는 존재들이었다.

신관들은 성녀에게서부터 신의 힘을 끌어와 기적을 일으켰다. 그런다고 해서 그들이 지치지 않는 것도, 그들 스스로가 기적의 힘에 무언가를 희생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성녀가 전장에 배치되고부터는 생존자의 숫자가 급격하게 불어났다.

신관은 10명을 살릴 수 있게 되었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경험을 쌓고, 노련한 베테랑이 되어 최전선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인간들은 조금씩 멸망의 추세로부터 벗어나고 있었다. 절망적인 전장에 승기를 가져왔다. 용사와, 일곱 명의 기사와, 성녀의 덕분에. 그리고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떠나버린 어디 살았던 누군가의 덕분에.


“살아남은 부상병들한테서 들었어요. 단신으로 네임드를 둘이나 처치했다면서요? 부상자의 이송도 5명이나 했고.”

“칭찬 받을 일은 아닙니다.”

“허···”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루드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곁에 앉은, 어처구니를 잃은 표정을 짓고 있는 성녀의 것이었다.

예상 외의 반응.

어째서. 의문이 들었을 때에는 뒤통수에 회초리가 날아오고 있었다.


-퍼억!


“아야···”

“누가 칭찬하겠답시고 온 줄 알아요?! 어째서 단신으로 들어간 거죠?! 당신도 중상이었잖아! 가서 뒤지면 개죽음인 거 몰라?! 앙?!”


매몰찬 꾸지람이 날아왔다. 도저히 소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가질 않는 잔소리들. 루드의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그런 것과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어머니라기보다는 양아치 같은···

깡패나 건달에 가까운 야단이었다.

한 차례 퍼붓고는 진정되었는지 후우 숨을 내쉬는 소녀.

본능적으로 새겨진 공포가 루드의 어깨를 흔들었다. 아무리 철이 들었다고는 해도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당하면 여러 의미로 공포를 느끼게 되는 법이었다.

결국 루드는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야단맞았다.


“···저희에게 보이는 건 당신이 얼마나 큰 무훈을 세웠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다쳐서 돌아왔는가. 얼마나 위태로운가, 예요. 단신으로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다는 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무사할 수 있었다는 뜻이니까. 성직자로서 용서할 수가 없어요. 당신처럼 목숨을 내다버리지 못해 안달난 사람들을 보면 말이에요.”


설교가 이어졌다. 걱정해주는 마음이 싫은 건 아니었으나, 막사 안의 병사들은 아직 슬픔으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했다. 감격 없는 허무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더욱 긴 정적과 더욱 깊은 어둠이 아직은 필요했다.

결국 루드는 점차 커지는 그녀의 목소리를 말려야겠다 싶어서 모닥불 아래의 잿더미를 파헤쳤다.

안에는 두꺼운 나뭇잎으로 감싸놓은 생선구이가 먹음직스럽게 담겨있었다.

자고로 사람은 먹을 때만큼은 조용해지는 법. 루드는 담담하게 생선 한 마리를 소녀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제게는 지켜야 할 것이 없습니다. 언젠가는 생기리라 믿으며 검을 수련했었지만, 좀처럼 생겨나지 않더군요.”

“그래서, 일단 닥치는 대로 지키고 있는 건가요?”

“뭐, 그런 셈입니다.”

“애인이라도 사귀어보면 어때요? 아아, 물론 저한테 그러시면 곤란하답니다. 제가 아무리 귀엽고 아리따운 십대의 소녀라고는 하나 따로 사모하는 남성이 있기도 하고, 성녀의 사랑은 금기인지라 그 마음은 받아줄 수가 없네요.”


애인. 루드는 해가 떨어진 지평선을 주시했다. 해를 쫓아 흘러가는 은하수의 별을 바라보며 나름의 낭만적인 상상에 잠겨보았다.

일단은 그도 10대 청년이었다.


“돌아갈 이유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 라는 필사적인 의지를 지닌다고 해서 죽지 않는 건 아니지만. 죽기 위해 싸우는 사람보다 살기 위해 싸우는 사람이 강한 법이랍니다.”

“···돌아갈 이유.”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서, 그녀에게 사랑받으며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낸다는 것. 전투가 끝나고, 죽어간 전우들을 애도하며 슬퍼하기보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연인을 떠올리며 기뻐하는 것.

멋지다.

루드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저 같은 경우는, 고아원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을 만나러 가야한다거나, 아니면 사모하는 그 분의 웃음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거나. 지극히 평범한 이유들이에요. 그래도 그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소녀는 어느 샌가 앙상하게 남은 가시들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붙은 먼지만한 살점들을 우물우물 삼켰다. 이윽고 생선의 뼈를 내려놓지 못하고, 꾹 닫은 입술을 쓰다듬었다.

감회에 찬 눈동자가 바라보는 것은 모닥불일까. 아니면 그 속에서 생겨나는 회상일까.

이어지는 정적 속. 루드는 그녀가 그리는 것이 뭔지 헤아리지 못하고, 귀중한 수면시간을 허비했다.

한 가지 알아낸 것이 있다면.

성녀의 배가 꼬르륵 울렸다는 것.

그리고 미안한 점이 있다면.

더는 생선이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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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불사를 베어내는 검-3 21.05.31 7 0 10쪽
120 불사를 베어내는 검-2 21.05.08 16 0 11쪽
» 불사를 베어내는 검-1 21.05.06 13 0 11쪽
118 녹빛의 검은 백화(白花)를 피워낸다. 21.05.04 19 0 12쪽
117 재생 21.04.28 16 0 12쪽
116 이뤄주지 못할 소원 21.04.27 40 0 11쪽
115 정보상과 의사 21.04.25 35 0 17쪽
114 상실 21.04.24 20 0 9쪽
113 고정부(固定附) 21.04.24 16 0 11쪽
112 낙마 21.04.14 18 1 13쪽
111 구역질 21.04.12 27 0 11쪽
110 발자국 21.04.09 61 1 12쪽
109 발을 들이다 21.04.07 45 0 11쪽
108 아침에는 가재 21.04.03 56 1 11쪽
107 별들에게 호소하는 밤 21.03.27 30 1 13쪽
106 지우지 못한 단서 21.03.24 27 1 11쪽
105 붙잡히다 21.03.23 25 1 11쪽
104 주맥시(呪脈視) 21.03.22 29 1 11쪽
103 잭이라는 화제 21.03.19 31 1 12쪽
102 믿음, 극복, 퍼져나가라 21.03.17 29 1 13쪽
101 성당, 시체, 전투 21.03.13 26 1 24쪽
100 외전-사냥꾼들의 밤 21.03.12 23 0 22쪽
99 간단한 수수께끼 21.03.03 20 0 12쪽
98 이동계획 +1 21.02.18 39 1 11쪽
97 쥐구멍에서 +1 21.02.16 29 0 13쪽
96 촉수 21.02.08 37 1 11쪽
95 협력제안 21.02.08 38 0 12쪽
94 탄로 21.02.06 2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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