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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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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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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8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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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를 베어내는 검-2

DUMMY

조금 세월이 흘렀다.

인간족의 칠성군은 드워프의 강철전선과 연합을 이루었고, 엘프들의 거센 저항을 무너뜨리고 진군에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드워프의 흑철부대의 정예와 인간의 특수전력(검성)으로 이루어진 유격대의 활약은 빛을 발했다.

자칫 수만의 사상자가 발상할 수도 있었을 극대마법의 마력공급로를 파괴하고, 적들의 퇴로를 차단. 그에 이어 촌장급의 엘프를 포획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 결과 순조롭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사상자가 적지 않았으나, 유격대가 극대마법의 발동은 끊어놓지 않았더라면 거의 전멸수준으로 사망했을 것이기에. 비교적으로 적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연합군은 마침내 엘프를 포획하는 데에 성공했다. 타협점을 찾은 칠성군과 강철전선은 엘프를 심문하고, 취조할 것이었다. 어쩌면 고문이라는 비인륜적 수단을 취할지도 모른다.


‘이로서 전쟁의 진상이 조금은 밝혀지겠지.’


처음으로 엘프가 포획되었다. 그것은 전례가 없는 성과였고, 때문에 그 성과를 만든 유격대에는 특별보급이 수여됐다.

고가의 술. 그리고 고기와 향신료. 풍족하지는 않지만 있다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식자재들을 받아든 드워프들은 밤이 깊기도 전에 술을 진탕 퍼마시다 뻗어버렸다.

결국 저녁을 먹게 된 것은 터무니없는 활약을 보인 검성과 어쩌다보니 발탁되어버린 말단병, 그리고 유격대의 의료지원을 한 몸에 도맡았던 성녀.

거의 유일한 세 명의 인간들은 경사스러운 날을 축하하며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나 정작 시간이 되니, 누가 요리를 할지 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취사병들은 술에 절어 잠든 지가 오래. 괜스레 깨워서 술주정을 듣기보다는 굶는 편이 낫다고 세 사람은 똑같이 생각했다.


“제가 만들게요.”


가만히 앉아있던 셀스티나가 소매를 걷어올리며 일어났다. 그 순간 라이넬의 안색에 한기가 돌았다. 창백해지는 그곳에 색상이란 남지 않았다.

입술조차 퍼렇게 질려버린 그를 바라보며, 루드는 좋지 않은 직감을 느꼈다.


“문제 있나요? 라, 이, 넬, 님?”


셀스티나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고 또박또박 못을 박았다. 뻑뻑하게 끄집어올린 입고리가 섬뜩했다.

루드의 직감이 확신으로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살며시 도망친 눈동자가 라이넬과 마주쳤다.

라이넬의 시선이 말하고 있었다. 아니야, 이건 진짜 아니야, 라고.

그 즉시 거수했다. 그리고는 제 2의 선택지를 제시했다.


“저어, 셀스티나. 제가 하면 안 되겠습니까? 저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만···”

“마음만 받을게요.”

“그럼 옆에서 도와주는 건 어떨까요?”

“괜찮아요. 안 그래도 피곤하실 텐데, 앉아계세요.”


셀스티나는 반쯤 일어선 루드의 어깨를 눌러 앉히고 취사장으로 몸을 돌렸다.


“안 돼!”


걸음을 떼려는 그녀의 옷깃을 간신히 붙잡은 것은 다름 아닌 라이넬이었다. 심연을 경험한 자로서, 순진무구한 미각의 소유자를 어떻게든 지켜야만 했다.

검성으로서의, 한 영웅으로서의 의지. 루드의 미각만은 지켜주고 싶었다. 전우의 위장을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그, 그럼, 우리 셋이서 다 같이 하는 건 어떨까? 각자 하나씩 요리해서 가져오는 거야. 어때?”

“그건···”


멈춰선 그녀는 잠시 으음 하고 고민했다. 검지로 턱을 짚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한참을 지나도 그 고개는 내려오지 않았다.

이어지던 망설임의 소리도 끊겨있었다. 멍을 때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을 때였다.


“셀스티나?”


라이넬이 그녀를 불렀다. 움직이지 않는 어깨에 손을 올리고, 약하게 흔들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셀스티나는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역시 피곤한가보네.”

“아, 아니, 그런 건 아닌데요.”

“아니야. 피곤해보여.”

“아니에요. 정말 괜찮은데···”


셀스티나는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열을 확인한다기보다는 무언가를 떠올리려 애를 쓰는 것만 같았다.


“기적을 너무 많이 쓴 거 아니야? 아무리 성녀라고는 해도 혼자서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내키지 않는 기색으로 동의하며 제자리에 앉았다. 긴 한숨을 내쉬며 체념하는 셀스티나는 자신의 피로를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이었다. 혼자서 스무 명이 넘는 중상들을 치유했으니 유격대의 그 누구보다 지쳤을 게 분명했다.


“그럼 역시 저녁은 제가 차려오겠습니다.”


때를 살피던 루드가 일어났다. 그는 시무룩한 성녀의 기색을 살피고 있었다.

그녀는 요리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나오지 못할 표정이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 아린아이처럼 무구하고도 억울한 감정.

길지 않은 사색을 잠시 하다, 라이넬에게 동의를 구해보았다. 필사적으로 휘젓는 고개. 절대로 안 된다는 입모양. X자로 교차하는 팔.


‘그 정도야···?’


루드는 라이넬의 식성을 되짚어보았다. 본격적인 작전이 개시되기 전, 루드는 그와 함께 숲속의 땅굴에 잠복해있던 기억을 떠올렸다.

작전의 개시일이 원인불명의 사고로 하루가 늦춰졌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루드와 라이넬은 지독한 허기에 시달렸고, 마침 발치를 기어가던 지렁이 한 마리를 보았다.

루드는 만류했으나, 라이넬은 그것을 집어들고 맛있다는 듯이 씹었다. 길고 끈적한 지렁이의 머리에서 노란 체액이 터져 나와 그의 입술에 달라붙는 그 광경은 아직까지도 선명했다.


『먹다보면 적응돼.』


태연하게 말하며 끊어진 반쪽을 건네던 라이넬. 그런 그가 셀스티나의 요리를 처절하게까지 거부하고 있다.


‘일단은 살아야지.’


결의를 다지며, 루드는 취사장으로 향했다. 기운없는 성녀가 아, 하고 탄식을 내뱉었으나 그 누구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

루드에게 양심의 가책은 남아있지 않았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 고결한 식자재들의 죽음을 허투루 하지 않는 것. 오로지 그 뿐이었다.

식탁에 남은 라이넬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하는 바람소리. 동시에 구부러진 소녀의 등을 바라보았다.

진심으로 루드에게 자신의 음식을 먹여주고 싶었던 건가. 악의가 없다는 점이 오히려 무서웠다. 순수한 악 그 자체. 성녀의 탈을 쓴 맛의 악마.

하지만 요리를 하지 않는 이상은 다혈질의 성녀였다. 한 명의 소녀였고, 없어서는 안 될 전우였다.

그녀가 고단한 이유가 순전히 요리를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나마 좋아하는 요리로나마 그 감정을 잊으려고 했으나, 그조차 용납되지 않아 원통한 것이었다.


“···선배가 은퇴했다며?”


라이넬은 어느 정도의 침묵이 이어지고 나서 조심스럽게 화제를 꺼내들었다. 이번 작전의 개시일이 하루 늦어진 이유였다.

셀스티나의 선배였던 성녀가 본대에서 갑작스럽게 교체되었다. 신력의 한계를 맞이했다는 소식이었다. 더는 기적을 쓰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그 탓에 셀스티나는 친언니처럼 따르던 선배를 마중조차 하지 못하고 떠나보내게 되었다. 상당히 쓸쓸할 것이다. 성녀로서의 노고를 누구보다도 이해하고, 그 고통을 나누었던 사이였을 텐데.

셀스티나는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 은퇴은퇴 노래를 불렀으니, 오히려 잘 된 일이에요. 고향에서 가족들이랑 여생을 보낼 테니까, 조금 외롭다는 것만 빼면 전부 좋아. 응··· 내가 슬퍼할 일이 아니야···”


찰싹. 침울한 표정을 내버리며 소녀는 자신의 뺨을 때렸다. 손바닥이 떠나간 곳에는 따가운 홍조가 남아있었다.


“응, 슬퍼할 일이 아니야.”


똑같은 말을 곱씹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벌떡 일어서서는 기지개를 폈고, 다시 앉아서는 몇 번이고 응응, 하며 끄덕였다.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킨 셀스티나는 평소의 성격으로 돌아와 있었다.


“역시 요리를 해야겠어!”

“어···?”


소녀가 뛰쳐나갔다. 라이넬은 곧바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소녀의 달리기는 붙잡을 수 없었다.

사명을 다하지 못한 손가락이 허공을 허우적거렸다.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이마에 붙은 손바닥으로 마른세수를 하고, 식재료의 무의미한 희생을 막아내기 위해 취사장으로 따라갔다.

취사장의 적막 속에는 어수선한 공기가 느껴졌다. 무언가 확신이 드는 건 아니었으나, 본래 있어야 할 인물이 사라지고 없었다. 불 위의 냄비에는 막 끓기 시작한 육수와 그것을 맛보고는 소금을 더하려는 성녀만이 남아있었다.

보법까지 사용하여 한달음에 다가간 라이넬은 육수를 바닷물로 만드려는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주위를 살폈다.


“루드는?”

“어, 저도 모르겠어요. 화장실이라도 간 게 아닐까요?”

“그런가···”


직감은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직감은 직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가지런히 정돈된 취사도구들로부터는 어떠한 흔적도 묻어나지 않았다. 라이넬은 자신의 직감을 신봉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뒷덜미가 싸늘해지는, 기척의 잔류를 느끼고 있었다.

그가 뿌리칠 수 없는 찝찝한 직감과 갈등하는 사이였다. 소금의 화신은 남은 손으로 후추통을 집어들었다.


“됐고, 빨리 손이나 놓으시죠. 제가 아주 맛깔나게 요리해드릴 테니까.”

“아니, 그건 안 되지.”


순식간에 루드를 망각한 라이넬은 필사적으로 그녀를 말렸다.

지금 요리라는 이름의 독극물이 제조되려 하는데 화장실을 간 청년의 생사가 중요한가. 어느 쪽이건 이 작은 악마를 말리지 못한다면 둘 다 죽을 것이다.

후추를 무작정 쏟아 부으려던 그 손목을 붙잡고, 악착같이 냄비로부터 떨어뜨려놓았다. 떼를 쓰며 포기하지 못하는 그 허리에 손을 두르고, 번쩍 들어올려 취사장으로부터 멀어졌다.


“대체 왜 말리는 건데요?! 맛있게 해준다니까요?! 야, 놔! 놓으라고! 개X끼야! 요리 좀 하겠다는 게 죄냐?!”

“죄다. 너는.”

“가녀린 처녀의 몸에 손 대놓고 잘도 대답하네요?! 시리엘라한테 이를 거예요!”

“그 사람은 내 편을 들어주겠지.”

“하! 대체 어떤 여자가 바람피우는 남편을 좋아할까요?”

지쳐버린 라이넬은 그만 입을 다물었다. 아직까지도 그녀에게는 요리를 못한다는 자각이 없었다. 말을 해도 못 알아먹으니 이길 자신이 없었다.


“이제 아셨죠? 일러바쳐지고 싶지 않으면! 당장 놓으세요! 놓으시라구요!”


기세등등해진 성녀가 아둥바둥 빼액빼액 소리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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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불사를 베어내는 검-3 21.05.31 7 0 10쪽
» 불사를 베어내는 검-2 21.05.08 17 0 11쪽
119 불사를 베어내는 검-1 21.05.06 13 0 11쪽
118 녹빛의 검은 백화(白花)를 피워낸다. 21.05.04 20 0 12쪽
117 재생 21.04.28 16 0 12쪽
116 이뤄주지 못할 소원 21.04.27 40 0 11쪽
115 정보상과 의사 21.04.25 35 0 17쪽
114 상실 21.04.24 21 0 9쪽
113 고정부(固定附) 21.04.24 16 0 11쪽
112 낙마 21.04.14 19 1 13쪽
111 구역질 21.04.12 28 0 11쪽
110 발자국 21.04.09 61 1 12쪽
109 발을 들이다 21.04.07 46 0 11쪽
108 아침에는 가재 21.04.03 57 1 11쪽
107 별들에게 호소하는 밤 21.03.27 30 1 13쪽
106 지우지 못한 단서 21.03.24 27 1 11쪽
105 붙잡히다 21.03.23 25 1 11쪽
104 주맥시(呪脈視) 21.03.22 29 1 11쪽
103 잭이라는 화제 21.03.19 31 1 12쪽
102 믿음, 극복, 퍼져나가라 21.03.17 29 1 13쪽
101 성당, 시체, 전투 21.03.13 26 1 24쪽
100 외전-사냥꾼들의 밤 21.03.12 23 0 22쪽
99 간단한 수수께끼 21.03.03 20 0 12쪽
98 이동계획 +1 21.02.18 39 1 11쪽
97 쥐구멍에서 +1 21.02.16 30 0 13쪽
96 촉수 21.02.08 37 1 11쪽
95 협력제안 21.02.08 38 0 12쪽
94 탄로 21.02.06 2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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