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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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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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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3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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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를 베어내는 검-3

DUMMY

올려둔 육수가 데워지고 있었다. 허리 숙여 바라보지 않으면 놓쳐버릴 작은 기포들이 올라오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있어.’


서늘한 기척을 느꼈다. 루드는 허리춤의 칼자루에 손끝을 감았다. 적의는 아니었으나, 원만한 관계를 원하는 이가 염탐을 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더욱이나, 염탐을 하는 자가 일부로 감지될 리가 없었다.

질척하게 달라붙는 시선은 관찰이었다. 그와 동시에 일종의 지시이기도 했다. 자신을 찾아내라는 적나라한 명령.

거부권의 유무조차 알지 못할 상황 속에서, 루드는 판단을 강요당했다. 길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현재의 루드에게는 지켜야할 존재가 없었다. 자신의 목숨을 제외하고는 정말로 지닌 게 없는 사내였다.

삶에 대한 집착마저 없었다면, 그는 무시를 택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 살고 싶다는 생각이 남아있었다.

연심을 느끼는 소녀를 만났고, 입이 거친 성녀와 그럭저럭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지금은 검성이라는 영웅과 식탁을 함께하고 있었다.

언젠가 깨져버릴 삶의 편린들이지만, 그 언젠가가 지금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현재의 루드는 나쁘지 않게 행복했다.


“적의는 없습니까.”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막사의 그림자를 향해 말을 걸었다. 그러자 그 속에 녹아있던 밤의 로브가 걸어 나왔다. 흑의 베일로 감싼 그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체형만으로는 성별의 구분조차 애매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조차 신상을 드러내지 않았다.


“안전은 보장하겠습니다.”


녹슨 철판을 긁어대는 목. 울대 없는 자의 소리였다.


“우리에게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저 같은 일개 졸병이 말입니까?”

“나머지는 가면서 설명하지요.”


간결하게 손짓하는 그림자는 돌아섰다. 루드는 무방비하게 나아가는 뒷모습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뒤따랐다.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사색이 감각을 무디게 만들지 않도록 의식했다.

취사장을 빠져나와, 병영을 벗어났다.


“재차 말씀드리지만, 위해를 가할 의사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적 없는 곳으로 데려가는 이유부터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당신의 신변이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남에겐 알려져선 안 된다는 내용을 둘러말하는 그였다. 발설할 경우, 해를 가하겠다는 경고. 위해를 가할 의사가 없다고는 했으나, 사람의 의사란 자그마한 변덕만으로도 뒤집히는 실없는 것이었다.

루드는 당연하게 생각했다. 평범하게, 그리고 적당하게 비뚤어진 누구나라면 할 수 있는 해석을 했다. 그 스스로는 예외성을 가지지 않았다.


“제 입은 무거우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입술의 무게는 관계없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이 짊어질 사명은 누구보다 무겁고 괴로운 것일 테니.”

“사명···?”

“당신 이외의 적합자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이는 곧 신의 뜻이겠죠.”


아아. 루드는 그들의 정체를 간파했다. 이 시대에 신의 뜻을 운운하며 사명을 떠맡기는 단체라곤 하나밖에 없었다. 용사와 일곱 기사를 수족처럼 다루는, 인류존속의 중추.

신성교회. 그곳에서 보낸 암약자들이었다.

루드는 암약자라 불리는 그들의 목적도, 행적도 모르고 있었다. 다만, 좋은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좋은 일을 맡기지도 않을 것이다.

강요되는 사명에는 영광도 명예도 존재하지 않으리라. 무겁고, 괴로운 주제에 대가도 구원도 받지 못할 운명.

거부권은 없었다. 일개 병사는 신성교회에 거슬러선 안 됐다. 더군다나 루드 이외의 적합자가 없다고 못까지 박아놨으니 피할 길은 없었다.


“···설명해주시죠.”

“죄송하지만, 현재 저희로서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일주일 뒤, 성도의 신전에 방문해주셔야 합니다. 오늘은 이를 전하고자 찾아왔을 뿐이지요. 아아, 물론 저희의 일원이 마중을 나갈 터이니 그동안은 잊고 계셔도 좋습니다.”


암약자는 등을 돌렸다. 더이상의 용건은 없는듯했다.


...


일주일이 지났다.


성녀가 실종되었다. 교체되었다는 표현이 알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루드는 납득할 수 없었다. 새로이 배속된 성녀의 탓은 아니었다. 셀스티나, 즉 하루 전에 아무런 소식도 없이 은퇴해버린 성녀의 탓이었다.

무언가를 말해주었다면 마음을 졸이지 않았다. 떠나가는 뒷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면, 생겨나는 위화감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돌연히 종적을 감추었다.

병영의 그 누구도 행방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는 라이넬조차도, 아침점호가 끝나기 전까지 그녀의 부재를 모르고 있었다. 부자연스러웠다. 한동안 찾아헤맸다. 그러나 찾을 수 없었다.

결국 포기한 루드는 라이넬의 곁으로 돌아왔다.


“곧잘 있는 일이라는 모양이야.”


자신의 애검에 머리를 기댄 라이넬이 말했다. 오늘따라 그 목청에 힘이 없었다. 둘도 없는 친구였던 둘이었다. 라이넬은 아니라고 했었지만, 루드와 단 둘이 있을 때의 셀스티나는 라이넬을 그렇게 칭했었다.

한 마디도 없이 사라진다니. 납득하고 싶지 않았다. 제아무리 겉과 속이 다른 것이 사람이라 할지라도. 루드가 바라보고 있던 것이 두터운 가면이었을지라도. 안녕이란 말 하나쯤은 듣고 싶은 법이었다.

어려운 일도 아닐 텐데.


“다른 부대에서도 성녀가 갑자기 바뀌는 일은 많았데. 우리는 셀스티나가 정말 오랫동안 있어줬으니까, 그런 일을 겪어보지 못한 거야.”

“하르엘이던가. 그 성녀의 말이야?”

“그 외에는 모른다는 눈치였어. 척후대 중에서 진위간파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갔었으니까, 거짓이기는 힘들 거야. 타 전선에서 이동 배치된 녀석들의 경험과도 일치했어.”


그 말에 루드는 눈살을 찌푸렸다. 곧잘 있는 이야기, 라이넬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의혹이 짙어졌다. 이번의 은퇴가 셀스티나의 개인적인 사정 때문이라면, 곧잘 있을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이른바 괴리였다.


“···무언가 있어.”

“동감이야.”


은빛의 칼날이 드러났다. 라이넬은 검을 완전히 뽑지 않은 채로, 도신을 바라보았다. 선명한 도신의 평면에 한 사제가 비춰지고 있었다.


“신성교회인가.”


검을 닫았다. 십자가 형태의 칠망성이 새겨진 천을 뒤집어쓴 사제는 다가오지 않았다. 그에 대한 보답처럼, 라이넬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바라보고 있던 앞을 주시했다. 사제가 없는 그곳을 향해 말했다.


“사명통보는 서신으로 해달라고 부탁드렸을 텐데요.”

“예, 저희도 명심하고 있는 바입니다.”

“그렇군요.”


시선이 흘러왔다. 루드는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마른 웃음을 지어보이며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하아, 작은 한숨이 라이넬의 입에서 뛰쳐나왔다. 언젠가 이렇게 되리라고 그 또한 예측하고 있었다.


“전에 사라졌던 이유가 이거였네.”

“딱히 감추려고 했던 건 아니야.”

“알아, 너 같이 뛰어난 검사는 별로 없으니까. 일개 병사보다 조금 강한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그건 네 기준이잖아. 루드는 혓바닥에 올라선 반박을 삼켰다. 농담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조금 쓸쓸해지겠다고 덧붙이고 마는 것은 젊은 검성의 시원찮은 하소연이었다.


“무사히 다녀와. 기념품 잊지 말고.”

“잔소리 하는 여자인형이면 될까?”

“시리엘라 몰래 부탁해.”

“그건 자신 없는데. 노력은 해볼게.”


얼핏 보면 평범한 대화. 그러나 그 본질은 철저하게 감추어져있었다. 라이넬은 누군가에게 기념품을 원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루드에게 부탁했다. 단순한 변덕일지도 몰랐으나, 인형을 거부하지 않는 순간 확신했다.

신성교회 몰래 셀스티나를 구해오거나, 그녀에 대한 정보를 받아오라. 그런 지시였다. 말 그대로 자신은 없었지만, 노력은 해보기로 했다.

분명 무언가가 있다. 루드에게 암약자들이 찾아온 것과, 그가 성당으로 향하는 당일 셀스티나가 사라진 것. 우연으로 짚고 넘어갈 수만은 없는 시기의 일치였다.


“다녀올게.”


루드는 등을 돌렸다. 모든 표정을 거두고, 사제를 따라갔다. 병영을 빠져나와 백색의 마차에 올라탔다. 출세를 원하는 병사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극소수에 불과했지, 대부분은 루드를 향해 엄지를 세워주었다. 무사히 다녀오라는 격려의 세례를 받으며 병영으로부터 떠나갔다.


“이제는 둘뿐인데, 말씀해주시죠. 제 사명에 대해서.”

“송구하오나, 소인의 부족한 입담으로는 도저히···”


루드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본디 신앙으로 먹고 사는 혀가 제일 긴 법이었다. 신성교회의 사제씩이나 되는 인물이라면 입담이 부족해서 설명하지 못할 일은 없을 터였다.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지키고 싶은 기밀일까.

알려주지도 않을 거면서 어째서 성도로 소환하는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당분간은 지켜보는 수밖에 없나.’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결코 지리에 밝지 않은 루드였으나, 한 번 본 길은 대강 기억할 수 있었다. 때문에 그 위화감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라고.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눈살을 찌푸렸다. 검자루를 거머쥐고, 목청을 낮게 내리깔았다.


“성도로 향하는 길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진정하시지요. 해를 끼치지는 않으리라 신에게 맹세합니다.”


흥분을 가라앉혔다. 셀스티나가 사리진 원인을 신성교회라 여겼기 때문일까. 사제의 모든 언행이 불쾌하고도 거슬렸다.

자신의 처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동요는 좋지 않았다. 루드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신을 진정시켰다. 신성교회를 향해 지니고 있던 적대적인 확신은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렸다.


“루드님께 보여드려야만 하는 장소가 하나 있습니다. 부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길. 그곳에 모든 해답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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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사를 베어내는 검-3 21.05.31 8 0 10쪽
120 불사를 베어내는 검-2 21.05.08 17 0 11쪽
119 불사를 베어내는 검-1 21.05.06 13 0 11쪽
118 녹빛의 검은 백화(白花)를 피워낸다. 21.05.04 20 0 12쪽
117 재생 21.04.28 16 0 12쪽
116 이뤄주지 못할 소원 21.04.27 40 0 11쪽
115 정보상과 의사 21.04.25 35 0 17쪽
114 상실 21.04.24 21 0 9쪽
113 고정부(固定附) 21.04.24 16 0 11쪽
112 낙마 21.04.14 19 1 13쪽
111 구역질 21.04.12 28 0 11쪽
110 발자국 21.04.09 61 1 12쪽
109 발을 들이다 21.04.07 46 0 11쪽
108 아침에는 가재 21.04.03 57 1 11쪽
107 별들에게 호소하는 밤 21.03.27 30 1 13쪽
106 지우지 못한 단서 21.03.24 27 1 11쪽
105 붙잡히다 21.03.23 25 1 11쪽
104 주맥시(呪脈視) 21.03.22 29 1 11쪽
103 잭이라는 화제 21.03.19 31 1 12쪽
102 믿음, 극복, 퍼져나가라 21.03.17 29 1 13쪽
101 성당, 시체, 전투 21.03.13 26 1 24쪽
100 외전-사냥꾼들의 밤 21.03.12 23 0 22쪽
99 간단한 수수께끼 21.03.03 20 0 12쪽
98 이동계획 +1 21.02.18 39 1 11쪽
97 쥐구멍에서 +1 21.02.16 30 0 13쪽
96 촉수 21.02.08 37 1 11쪽
95 협력제안 21.02.08 38 0 12쪽
94 탄로 21.02.06 29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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