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따윈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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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둘기
작품등록일 :
2020.07.27 19:58
최근연재일 :
2021.05.3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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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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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썩어버린 곳

DUMMY

입으로 뚜껑을 물었다. 손으로 병을 돌렸다. 빗물에 젖은 탓인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이빨에 더욱 힘을 주었다. 나무로 된 뚜껑에 이빨이 박혀들었다. 고개를 꺾어서 힘들게 열었다.

밀가루만을 넣고 끓인 죽을 마셨다. 몹시 차가웠다. 이따금 덩어리지다만 것들이 물컹하게 씹혔다. 지난 사흘간 익숙해졌던 맛이었다.


“생각보다 번거롭네···”


반지하로 향하는 형태를 지닌 골목길 사이의 계단을 내려갔다. 어디까지나 형태만 그런 것이다.

이 계단의 실체라고 한다면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들여 결투를 벌이게 하는 불법 투기장. 그곳으로 향하는 통로이다.

복잡해보이지도 않는 이곳의 내부에 투기장을 설계한 건축가의 수완은 실로 대단하다고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을 수가 없다.


"내키지 않네···"


이곳으로 다시 오게 될지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짓을 해야만 했다.

매일같이 악몽의 소재로 쓰이는 장소이다. 가급적 들어가는 건 피하고 싶다.


-캉!


철문을 잠그고 있던 자물쇠의 잠금장치가 부서져 떨어졌다. 울려퍼진 금속음은 얼마 못가 빗소리에 의해 지워졌다. 다른 건 몰라도 날씨만큼은 잘 따라주고 있다.

저체온증에 걸린 탓에 온몸이 떨리고 있지만, 사소한 것이다. 불편한 몸으로 지나친 거리를 걸어온 다리가 절로 꺾이지만, 이 또한 사소한 것이다.

무시하고 문을 열었다.


“우욱···!”


역한 악취. 코를 틀어막았다. 고개를 잠깐 내리자, 파리 알이 박힌 눈알이 보였다.

먼저 부화한 구더기들은 그악스럽게 그것을 먹어치웠다. 피부였던 것이 꿈틀거리는 애벌레들로 뒤바뀐 안면이었다. 밥풀처럼 생긴 것들이 작은 몸을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며 크기를 키워나가는 광경이었다.

목 아래로는 이어지지 않는 시체에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입 밖에 없는 탓일까. 딱딱 부딪히며 입안에 들어찬 구더기들을 씹는 이빨들이 혀가 없는 머리의 언어를 지어내고 있었다.

뭐라고 말하는 걸까.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주인을 잃은 채로 방치된 몸뚱아리들은 꿈적하지 못하고 곰팡이와 구더기의 양식이 되어있었다.

블러드하운드라는 이름을 지닌 마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턱을 제외하고는 움직이지 못했다.

뼈는 썩지 않는다. 살이 먹혀들어갈지언정 날카로운 이빨만은 그대로 남아있다.

물린다면 상처부위가 감염되겠지. 팔 한 쪽을 잃어버린 처지에 다리까지 잃을 수는 없다.

창을 꺼내들어, 죽은 자의 머리로 만들어진 지뢰들을 구석으로 치웠다.

보기 역한 광경이다. 하지만 보기 역하다뿐이지, 괴롭지는 않다.


-칙!


성냥을 꺼냈다. 자그마한 불꽃이 약간의 어둠을 몰아냈다.

대거 하나를 꺼내 신발에 묶어 단단히 고정했다. 붕대가 언제까지 버텨줄 지는 모르지만, 팔이 하나밖에 없는 지금은 발이라도 써야했다.

성냥불이 꺼졌다. 금세 어둠이 물러갔던 만큼 다가왔다.


-칙!


하나를 다시 지폈다.


-푹!


시험 삼아 오른발로 시체를 찼다. 잘 고정된 칼날이 썩어가는 시체의 옆구리를 찔렀다. 안에서 검게 썩은 피가 흘러나오자, 파리가 몰려들었다.

손으로 붕대와 대거를 번갈아 확인했다. 매듭은 풀리지 않았고, 대거도 흔들리지 않고 버텨주고 있었다.


“좋아.”


마지막으로 대거 하나를 또 꺼내들었다. 그것은 입에 물었다. 제대로 휘두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발상이다. 하지만 고개를 세게 비틀면 생채기 하나쯤은 대수롭지 않게 새겨넣을 수 있지 않을까.


-칙!


다시 한 번 성냥을 켰다.

마지막 준비로 팔에 여분의 옷들을 둘둘 말았다. 모험가 협회에서 권장하는 언데드 대처법이었다. 죽음이라는 개념을 지닌 생명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상식이기도 했다.


-칙!


다시 한 번 성냥을 밝혔다. 다시 한 번이 몇 번째인지 세는 것은 관두기로 했다. 세 번을 넘어가니 무의식에 맡겨도 저절로 불이 켜졌다.

대거를 문 입에 침이 고일 때면 간간이 성냥불을 내려놓고 뱉어줘야 한다는 번거로움까지도 저절로 되었다면 좋았겠지만, 턱을 타고 점착성 없는 침이 주르륵 흘러내릴 때의 감각은 잊혀질 줄도 모르고 감돌았다.


‘이번이 4층인가.’


조이고 있던 긴장의 끈을 끊어지기 직전까지 조여들었다. 1층부터 2층까지는 당시에 풀었던 블러드하운드가 사람을 죽이지 못했던 층수였다. 지하는 제법 깊었고, 마수의 탈출이 빠르게 알려진 탓에 지상에 가까운 층수의 조직원들은 어느 정도 준비를 맞힌 뒤였으니까.

그렇기에 깊어질수록 위험도가 높아진다.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검이 아닌 이빨에 찢겨죽은 시체의 수가 늘어갈 것이다. 그것들은 목이 잘려있지 않을 테고, 어둠속에서 아직까지 이어지는 단말마를 지르며 덮쳐들 테니까.


-칙!


계단을 내려오며 새로이 성냥불을 지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형태로 죽음을 맞이한 시체가 보였다. 그것은 목이 잘린 것도, 이빨에 찢어진 것도 아니었다. 어깨에서부터 옆구리까지에 이르는 대각선의 참격(斬擊)에 의해 갈라진 시체였다.

척추를 관통하는 일격에 몸이 두 동강이 났음에도 하반신과 상반신이 한 곳에 쓰러져있었다. 힘과 속도. 그리고 기술과 정확도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야만 가능한 일격. 이런 걸 스물이 넘게 달려드는 시체들에게 난도질하듯 휘두를 수 있는 존재는 영웅이라 불려 마땅하다.


‘아직은 부족해.’


다른 시체들도 살폈다. 하나만을 가지고 확신을 지니기엔 변수가 많은 세상이다.

머리가 터진 시체가 보였다. 보통 누워있는 것을 내리치면, 그 파편과 혈흔은 바닥에 새겨지기 마련이다. 이 시체에는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선 채로 머리가 으깨진 것이다.

벽에 박힌 시체도 조사했다. 심장이 있어야할 곳에 큼지막한 구멍이 뚫려있었다. 사람의 주먹을 넣어도 들어차지 않는 크기. 거기에 더해, 주먹으로 뚫었다기에는 부자연스러운 흔적도 보였다. 날카롭지는 않으나, 자국을 남길만한 내구성을 지닌 무언가가 이곳을 관통했다.

하나만을 가지고 확신을 지니기엔 변수가 많은 세상이다. 그렇기에 추가적인 조사를 진행했다. 앞으로 더 찾아본다면 더 나오기야 하겠지만, 세 가지나 되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이 시체들을 처치한 인물은 사람을 두 동강내는 거친 검술과 서있는 언데드의 머리를 넘어뜨리지 않고 터트리는 괴력. 갑주를 입고서도 사람의 몸에 주먹을 관통시킬 수 있는 체술을 지닌 자.

내가 알기로는 이런 자는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단테는 이곳에 왔었어.’


이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 봐도 무방하다.


『그 사슬을 부수면 저에게 협력해주시죠.』

『약속하지.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다.』


아름다운 꽃들이 만개해있던 호수 앞에서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마도병기’라는 위험한 물건을 부수면 아루아를 구해주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그는 현재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어째서일까.

알아내기 위해서는 더욱 깊은 곳으로 발을 들이밀어야 했다.


“바리케이트···?”


지저분한 돈이 걸린 결투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탈출을 꾀했다. 그들이 갇혀있던 곳의 앞에는 식당이 있었고, 그곳에서부터 식탁과 의자를 훔쳐 바리케이트를 지으려 했었다.

내가 서있는 계단은 기억 속에 있는 그곳이었다. 하지만 당시, 바리케이트를 치는 것은 이보다 아래였다. 심지어는 짓기도 전에 계획을 변경했었다. 어떻게 부르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위험한 존재가 소들의 시체를 먹어치운 덕분에 말이다.

결과만을 놓고 보자면, 그때에는 바리케이트가 없었다. 있던 것도 올라가기 위해서는 허물어야만 했다. 아무도 남지 않은 이곳에 칠 이유가 없었으니까.


‘누구지···?’


누군가가 이곳에 왔다. 그리고 바리케이트를 만들어, 이 너머에 있을 무언가를 막았다.

그 누군가가 단테라는 보장은 없다. 확신할 수 있는 건 단테가 이곳에 왔다, 까지. 그가 이것을 만들었다는 증거라곤 어디에도 없다.

커다란 식탁과 의자를 되는대로 던지듯 쌓아올린 조잡한 바리케이트를 바라보며 망설였다.

이 너머에 뭐가 있을지, 감당할 수 있는 건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손을 가져갔다. 결국에는 이런 선택지밖에 없을 테니까.

이제와서 도움 따윈 바라지도 않는다. 구원도 필요없다. 내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엘무리아스인지 뭔지 하는 천재마법사님께서 아루아를 구해주겠지.

안일하기 짝이 없는 자기위로지만, 그래서 그게 뭐. 사람마다 용기를 얻는 방법은 다른 거다.


-콱! 콰직!

-우당탕!


여러 차례 손으로 헝클어뜨리고 발로 밀치기를 반복하니, 조잡한 바리케이트가 무너졌다.


“윽···!”


먼지가 피어올랐다. 팔에 두른 옷더미를 빠르게 입과 코로 가져와 틀어막았다.

괴기스러운 초록색 알갱이들이 먼지와 함께 뛰쳐나왔다. 초록색 먼지.


“이건···?”


안 쪽으로 성냥불 서너 개를 연달아 던졌다. 사람의 키보다 높이 쌓인 초록색의 먼지 기둥이 보였다. 한 편으로는 초록 먼지에 잡아먹힌 주인 없는 거미줄이 보였다.

들어서기 전 마지막으로 성냥개비 하나를 더 소모했다.


-칙!


막 불이 붙은 그것은 천장을 향해 던졌다. 잠시 날아오른 성냥은 꺼질듯 말듯 위태로운 불빛으로 천장에 달라붙은 것을 비추었다.

잠깐이었다. 그 잠깐동안 눈을 감았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천장에 달라붙은 것은 그런 혐오감을 드러내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소의 시체였다. 초록색 먼지에 뒤덮인 시체가 네 발로 살아있는 소를 흉내내고 있었다. 하지만 네 다리로 짚고 있는 장소가 천장이라는 것에서 살아있는 소일 수가 없었다.


"움머···"


생겨나다만 목이버섯 같은 것들이 겹치고 겹쳐서 녹색 머리를 이루고 있었다. 눈처럼 보이는 붉은 혈관은 목에서부터 자라난 포자 덩어리들 사이에 비집고 들어가 있었다.

포자가 혈관에서 자라난 것인지, 혈관이 포자 사이를 비집고 뛰쳐나오는 것인지 구분하지 못하도록 두 가지는 심히 뒤섞여있었다.


"머어어···"


혈관이 꿈틀거리며 맥박쳤다. 흔들리는 덩어리들로부터 녹색 먼지가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우드득!


방금 난 소리가 어떤 상황에서 나는 것인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목이 돌아가는 소리. 목을 지탱하던 뼈가 돌아가고, 돌아가고, 돌아가며 비명치는 소리.

붉은 혈관이 돌아간다. 그에 맞추어 포자 덩어리가 회전한다. 끼릭끼릭 돌아가며 나를 주시한다.


-투둑! 투두둑!


풀지 않고 꼬아가는 포자 머리는 소의 목을 뒤틀고, 뒤튼다. 포자의 것과 달리 한계가 존재하는 소의 목은 돌아갈 수록 가늘어진다. 밧줄처럼 꼬여버린 목에도 개의치 않고 그것은 돌아가기를 계속한다.


-꾸드드득!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돌아간다.


-턱!


밧줄처럼 꼬였던 소의 목이 끊어졌다. 소의 머리를 대신하고 있던 포자 덩이리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머릿속이 도배되었다.

도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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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발견 20.12.09 43 1 11쪽
» 썩어버린 곳 20.12.06 42 1 11쪽
60 다시 투기장으로 20.12.04 46 1 16쪽
59 초코칩 쿠키 20.12.03 40 2 11쪽
58 병원에서 20.11.30 44 0 11쪽
57 기울어지다 20.11.28 52 0 16쪽
56 끝나버린 대화 20.11.24 47 1 12쪽
55 천년의 꽃-2 20.11.20 53 2 12쪽
54 천년의 꽃 +1 20.11.18 62 2 11쪽
53 이른 눈송이 20.11.15 43 2 12쪽
52 자그마한 성장 20.11.08 48 3 12쪽
51 두 남자 20.11.07 48 2 11쪽
50 낙사 직전 20.11.03 49 1 11쪽
49 경청 20.10.30 93 1 11쪽
48 또 하나의 만남 20.10.28 60 2 11쪽
47 재회 20.10.25 61 1 11쪽
46 언데드 20.10.23 69 3 11쪽
45 호랑이의 기세를 훔친 개미 20.10.20 67 1 15쪽
44 믿음에 대한 배신 20.10.15 59 2 12쪽
43 사랑을 위한 죽음에 대하여 20.10.14 57 2 13쪽
42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20.10.12 61 2 12쪽
41 사연풀이 20.10.10 65 1 12쪽
40 포기하다 20.10.05 75 1 12쪽
39 발악 20.10.04 6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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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자칭 천재 마법사 20.10.02 83 1 11쪽
36 쉬어가는 밤 20.09.30 8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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